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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또자신 Feb 05. 2021

요즘, 글 말고 밥도 씁니다.

내손내만 - 내 손으로 내가 만든 밥상, 기록하고 기억하기

육아휴직 전, 그러니까 오롯이 엄마로 살아보기 전에는 잘 몰랐다. 엄마들이 개인 SNS에 왜 그렇게 아기 사진을 올리는지, 또 왜 그렇게 밥상 사진을 찍어 올리는지. 삼시 세끼 밥을 차려 먹고 아기들과 씨름하는 것이 엄마들의 일상이고 주요 업무 이건만 웬걸, 당최 이 일은 하루 종일 해도 티가 안 난다. 밥은 입으로 들어가면 사라져 버리고, 오랜만에 아이를 만난 사람들은 멋모르고 "와~ 그새 많이 컸네!" 하며 마치 아이가 눈 깜짝할 사이에 저절로 큰 것처럼 이야기하니 말이다.


그래서 나도 얼마 전부터 밥상을 기록하기 시작했다. 일명 '내손내만 밥상일기', 내 손으로 내가 만든 밥상을 기록해 두는 것이다. 짧게는 30분, 길게는 1시간 정도 걸려 밥상을 차린 다음 음식이 내 입에 들어가기 전 꼭 사진을 먼저 찍는다. 사실 내 입과 내 배에 건강하고 맛있는 음식이 들어가는 것만으로도 밥상은 이미 자신의 소임을 다 한 것이지만, 밥상을 차린 사람의 입장에서는 티를 내고 싶어 진다. 오롯이 나의 피, 땀(눈물은 생략)과 수고가 들어간 이 밥상을 나 말고 다른 사람들도 좀 알아봐 주면 좋겠다는 소박한 외침인 것이다.


또 한편으로는 코로나가 장기화되면서 가족 외 친구, 지인들을 제대로 만나지 못하다 보니 나의 자잘한 밥상 기록을 통해서라도 '나 이렇게 살아 있어요'라고 생존 신고를 하고 있는 셈이다. 이제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늘어가는 요리 실력을 주변 사람들에게 실제로 검증해 보이는 일만 남았다. 과연 그 날이 언제 올진 알 수 없지만 말이다.




냉장고 속 재료를 꺼내 요리를 하다 보면 요리와 글쓰기가 많이 닮았다는 생각이 든다. 다양한 재료들을 씻고, 다듬고, 조리하면서 한 그릇의 음식을 만들어 내는 것처럼 내 머릿속에 둥둥 떠오르는 단어와 문장들을 정성껏 골라내고 다듬어서 맛있는 한 편의 글이 되게끔 하는 것. 갓 나온 제철 재료로 신선하게 만든 요리도 맛있지만 오랜 시간 숙성시킨 된장이나 김치처럼 깊어져야 맛이 나는 요리도 있듯이, 번쩍하고 떠오른 몇 가지 생각들을 엮어서 빠르게 써내려 간 글이나 며칠 동안 묵혀두고 오랜 시간 고민하며 쓴 글 모두 그 나름의 글맛이 있는 듯하다.


돌아서면 다시 부엌에 서서 밥을 차리는 내 모습과 함께 얼마 전부터 나의 글쓰기 모토로 삼은 '그냥 쓰자', '닥치고 쓰자'를 다시 떠올려 본다. 삼시 세끼 밥을 차려 먹듯 글도 이.유.불.문 하고 꾸준히 가열차게 쓰자. 뛰어난 재능도 꾸준함을 당해낼 수 없다고 하지 않는가. 밥상 차리는 횟수에 비례해 늘어가는 요리실력처럼 무작정 쓰고 또 쓰다 보면 어제보다는 조금 더 나은 글, 맛난 글을 써낼 수 있겠지.


그나저나 오늘 점심은 또 뭘 해 먹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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