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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또자신 Sep 14. 2022

시러

[시제가 ㅅㄹ 인 글쓰기]

시러. 28개월에 접어든 둘째가 자주 하는 말이다. 또래보다 말이 느려 조금 걱정했는데 웬걸, 언어 폭발기가 이제야 도래한 듯 부쩍 말이 늘었다. "OO아~ 이제 그만 놀고 자러 갈까?" "시로!" "손 씻어야지?" "시로!" 엄마가 아무리 부드럽게(?) 이야기해도 그녀의 거절 의사는 아주 분명하다. 다시 물어봐도 돌아오는 대답은 한결같다. "시로시로~~" 그 거절의 순간조차 귀여운 것이 문제라면 문제이지만.


생각해보니 어른이 돼 갈수록 하기 힘든 말이 바로 '싫어' 인 것 같다. 나조차도 근래 누군가의 면전에 대고 싫다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나? 얼른 떠오르지 않는다. 수많은 사람들과 관계를 맺으며 소위 사회생활이란 걸 하기 위해서는 상대의 제안이나 부탁이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기분 나쁘지 않고 부드럽게 거절하는 방법을 터득해야 한다. 그게 어렵다면 싫은 티를 내지 않고 상대의 말을 들어주거나, 적당한 핑계를 들며 대답을 미루는 방법도 있다. 어찌 되었든 내일부터 당장 얼굴 맞대지 않아도 되는 사람이 아닌 이상 "싫어"라는 직접적인 거절은 피하라고 배워온 듯하다.


그런데 가끔은 시원하게 "싫어"를 외치고 싶을 때가 있다. 미안해서, 상대가 민망할까 봐, 나를 나쁜ㄴ으로 볼까 봐 등등의 이유는 다 넣어두고 깔끔하게 "싫다"라고 말하면 진짜 큰일이 나는 걸까? 진짜 무언가 거절해야 할 때 조차도 미움받을 용기가 없어서 납득할만한, 납득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찾기 위해 애쓰는 내 모습이 못내 안쓰럽다.


싫다는 거절의 말이 상대와 나의 관계를 싹둑 잘라내는 말이 아니라 어쩌면 진실을 마주해 서로를 배려하게 하는 말일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어쩔 땐 "싫어"가 싸가지 없는 말이 아니라 용기 있는 말이 되기도 한다. 다른 사람의 감정이 상하지 않게 하는 것 못지않게 내 마음과 상황을 잘 들여다보는 것도 중요한데 자주 놓치는 것 같다. 매 순간 모든 것을 거절할 수는 없겠지만 내 마음이 계속해서 거꾸로 갈 때는 용기 있게 외쳐보자.

시. 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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