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껏 나를 알고 지냈지만 앞으로 나랑 지낼 시간은 더 많아서.
집에 돌아오지 않는 그를 기다리다 마침내 내 인생을 살겠노라고 마음을 먹었다. 그렇게 혼자 해외로 가는 비행기표를 끊었다. 올겨울 내가 일을 그만두고 나면 함께 여행하자고 그는 입버릇처럼 말했다. 하지만, 돈은 언제 모으냐, 여행은 왜 이렇게 많이 다니냐는 등 결혼해서도 끊임없는 부모님의 잔소리 덕인지 요즘 들어 함께 여행하자는 그의 말이 언짢게만 느껴졌었다.
"아니, 안가. 못가. 나 돈 없어, 이제 돈 모아야 해."
그에게는 분명 그렇게 말했었는데.
나의 인생을 살 거라고 마음먹은 순간 나를 위해서 한 일이 여행을 위한 소비라니. 여행은 우리의 공동 취미였나 보다. 너는 단지 연애 때의 우리로 남아 여전히 자유롭고 싶었던 거고, 나는 현실에 치였던 거겠지.
그러고 보면 투어가이드도 어릴 적 장래 희망 중 하나였다. '투어가이드가 되면 여행을 많이 다닐 수 있겠지...'라는 순진한 마음에 해본 상상이었다. 20대 초엔 배낭 하나 메고 혼자서 유럽을 몇 달씩 돌만큼 나도 여행을 참 좋아하는데.
한국에 온 후 부모님이 나에게 하는 말들 때문인지 아니면 그에 대한 전반적인 불만 때문인지 여행을 가고 싶어 하는 남편을 볼 때마다 짜증이 났다. 함께 여행하면 너무 즐겁지만, 마음 한구석이 편하지는 않았다. 여행 갔다 왔다는 사실을 부모님께 말할 수가 없으니 떳떳하지 않고 내 삶을 숨기는 것 같아서 움츠러들었다.
하지만 나는 현생에 지쳤고, 나를 위한 시간이 너무 필요했기에 그냥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그렇게 나를 위한 선택을 했다. 그리고 그건 앞으로 내가 나를 위해 해나갈 무수히 많은 선택 중에 하나였다.
최근에서야 내가 주체이고, 배우자는 내 인생에서 객체임을 깨달았다. 나는 배우자가 하는 행동으로 내 인생이 영향을 받는다고 생각했기에 배우자의 행동을 바꾸려고 힘썼다. 하지만, 내 인생에서 주체는 나뿐이니깐, 타인의 행동으로 어떻게 영향을 받을지의 결정권은 내가 가지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그래서 난 이제 내 인생을 살고 싶어졌다. (이혼이니 별거니 결혼 유지이니 등이 중점이 아니다.)
여행만 다니냐는 부모님의 잔소리를 듣고는 남편이 야속해질 만큼 나는 아직 원가족으로부터 독립을 못 한 것 같기도 하다. 안 그래도 혼자 여행 가는 걸 이야기하지 말까 싶긴 했지만, 부모님께 내 삶을 숨기고 싶지 않은 마음에 오늘 혼자 여행을 간다고 했다가 결국은 또 한바탕 했다. 언성을 높이시길래 크게 일을 만들기 싫어서 '네~ 네'라고 대답했다가 부모의 말을 무시한다고, 부모의 말을 감정적으로 받아들인다고 화를 내셨다. 아버지가 이렇게 언성을 높이실 때면 자극 버튼이 눌려 나도 '말대꾸'를 하게 되고, 가족 구성원은 모두 참지 않은 내가 잘못했다고 한다. 일이 이렇게 될 걸 알면서도 부모님께 내 인생을 다 솔직히 공유해야 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던 건 내가 아무래도 아직 독립을 못 했다는 게 아닐까. 30살이 넘어서도 내 인생의 선택에 대해 부모에게 인정받고 싶어 하는 마음은 감정적인 독립이랑은 거리가 있으니깐.
어찌 되었든 남편으로부터도 부모로부터도 독립해 나를 찾는 일이 필요하단 생각이 들었다. 오은영 박사님이 그러지 않았는가. 육아의 궁극적인 목표는 자녀의 독립이라고.
어릴 때 심리적 안전기지를 가지며 자랐으면 좋았으련만, 그러기엔 이미 너무 늦었다.
그래서 나는 이제부터라도 스스로에게 울타리가 되어주기로, 나의 가족이 되어주기로 했다. 내가 자립하고, 유능하고 건강한 어른이 될 수 있도록 나 스스로 힘을 길러주고, 나를 이끌어주는 것이다. 어떤 모양과 방식으로 나의 울타리가 되어줄지 아직 잘은 모르지만, 그렇기에 우선 나를 알아가기로 했다. 내가 좋아하는 것은 무엇인지, 나라는 사람은 누구인지, 나는 어떤지 등, 이미 다 안다고 생각하는 것부터 다시 들여다보고 싶었다. 육아 경험은 전무하지만, 육아를 할 때 아이의 성격, 성향, 기질, 필요, 장점 등을 아는 것이 필요하듯이 나도 나를 키우기 위해서는 나를 먼저 알아야 할 테니깐. 그래서 나를 알아가고, 스스로에게 울타리가 되어주는 과정을 기록해 보려고 한다.
설을 맞아 그렇게 조금 더 구체적인 새해 목표가 생겼다. 스스로에게 울타리가 되어주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