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자상남 Feb 21. 2020

#13. 여행(5)

오스트리아 그라츠 가톨릭 여행

어느 맑은 날이었다. 방학을 앞두고 나는 오스트리아로 여행을 떠났다. 다른 학기보다 자유시간이 많은 학기였지만 역시나 쉽지 않은 학기였다. 가짓수는 줄었지만 공부의 양이 줄어들지도 않았다. 수많은 사색으로 나의 마음은 지쳐있었다. 


여행은 내게 망각의 시간이다. 잠시의 망각일 수도 있다. 그 망각을 통해 다시 다가올 일상도 새롭게 느껴질 수 있기에 나는 여행을 떠난다. 사색과 명상과 기도는 내게 많은 걱정거리를 안겨준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고 나와 대화를 하고 신과 대화를 나눈 후에 나는 이내 조금씩 평정심을 되찾는다. 답을 찾는다. 그리고 나는 평화 속에서 자유로워진다. 여행은 사색을 좀 더 쉽게 해주기도 한다. 


오스트리아에 반가운 얼굴들을 만나러 떠났다. 참 오랜만이다.



그라츠 공항에 내렸다. 독일과 달리 상쾌한 날이었다. 여행에 맑은 날씨는 정말 축복이 아닐까 싶다. 오스트리아 그라츠는 제2의 도시임에도 인구수가 그리 많지 않았다. 그 덕에 한국으로 치면 소도시 공항과 유독 닮았다.



안셀모 신부님을 만났다. 그는 그라츠 교구로 파견을 와 언어와의 힘겨운 싸움을 하고 있었다. 몇 년을 있어야 한다. 그는 주교님의 한 마디에 군말 없이 순종해 이곳에 왔다. 어찌 어려움이 없겠는가? 문득 예전 독일어를 처음 배울 때가 떠올랐다. 


그라츠 교구 주교좌 성당에 들어갔다. 안셀모 신부님께서 이제 막 리노베이션이 된 곳에 마침 잘 왔다고 말씀하셨다. 크리스마스 콘서트를 앞두고 리허설을 하고 있었다. 땡잡았다. 바흐의 칸타타였다. 



크리스마스 기간의 유럽은 정말이지 보기만 해도 이쁘다. 화려한 문양이면서 화려하지 않게 따뜻한 단색 노란 불빛이 참 잘 어울린다. 유럽엔 아날로그적인 낭만이 살아있다. 안셀모 신부님은 외로운 삶을 살고 있었다. 성직자의 삶이 어찌 외롭지 않겠느냐마는. 그에게 외국 생활 자체는 또 다른 현실의 십자가가 아닐까 싶다. 동병상련이 전해졌을까? 신부님은 반가운 마음에 맛있는 음식을 사주시고는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사람이 그리워 보였다. 나도 그랬다.



독일과는 조금 달랐지만 그라츠에도 작은 마켓이 열렸다.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 시청사 앞 테이블에서 서서 글루바인을 마시고 있었다. 술을 끊은 나도 무알콜 킨다푼쉬(Kinderpunsch)를 마셨다. 그저 그들은 특별한 것 없이 얼굴을 맞대고 이야기만 했을 뿐이다. 그래도 즐겁다. 음료 하나와 맑은 하늘 화려한 야경이 그저 삼합이 아닌가!


사람의 행복이 큰 것이 아니라 이토록 가까이 있음을 느낀다. 그래. 홀로 살아야 할 것이 있고 함께 살아야 할 것이 있다.


개인적으로 너무 북적북적한 독일의 마켓보다 그라츠의 마켓이 더 좋았다. 더 깨끗했고 무언가 정제되었으며 그 안에 와글와글 즐거움이 묻어 나왔다. 나이가 들면서 무조건 화려한 것보다는 나만의 작은 행복을 충실히 쌓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많이 든다. 우리도 이 사람들 틈바구니에 서서 흡족하게 음료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동양인이 거의 없었다. 이민자도 많이 없었다.



나는 그라츠 교구 신학교에 손님으로 등록되어 기숙사에서 하루 묵었다. 요셉 큰 신부님 덕분이다. 특이한 곳에서의 하룻밤이었다. 아침에 일어나 창문 밖을 바라보니 유럽스러운 빨간 지붕들이 펼쳐졌다.



중세부터 대학은 교회의 부속기관이자 최대의 연구기관이었다. 신학교 건물에는 식당과 강당 숙소 그리고 도서관과 박물관 등 없을 것 빼고는 다 있었다.



신학교 기숙사 내부. 단정한 느낌에 규칙적인 배열이 돋보인다. 지금은 신학생들이 거의 없어 외국인 신부들 정도만 지낸다. 그래서 숙소가 많이 비었다고 한다. 곧 그라츠 신학교는 문을 닫지 않을까 싶다.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왕가에 빵을 댔다는 유서 깊은 빵집이 신학교 바로 앞에 있었다. 가보지 않을 수 없었다.


아침 일찍 조식을 먹고자 들어왔다. 투박하게 생긴 빵이 뭐 그리 맛있을까 싶었는데. 정말 맛있었다. 빵을 잘 모르는 나지만 한 입 물었을 때의 그 식감과 맛이 모르긴 몰라도 다르다는 것은 알 수 있었다. 따뜻한 차를 한 잔 곁들였다.



그라츠 시내를 돌아다녔다. 이 작은 도시에 성당이 어찌나 많은지. 나는 아무 성당이나 들어가 미사를 봤다. 사람들이 나를 신기하게 쳐다봤다. 얼마 없는 미사 참례자조차 대부분은 백발의 노인들이다.



안셀모 신부님과 마지막으로 점심밥을 먹으러 왔다. 일식집을 한 곳 발견했다. 거리는 참 깨끗했다. 다시 오고 싶다. 


식사를 하고 어느 커피집을 갈까 검색해보니 핸드드립을 하는 곳이 있었다. 그라츠에도 유명한 로스터리가 있었고 그중에서도 이 집은 핸드드립을 겸하고 있었다. 역시 커피는 핸드드립이다. 나는 맑고 깨끗한 그 맛이 좋다. 우리의 삶도 늘 그렇기를 바란다.


커피의 세계는 정말 심오하다. 연금술사들이나 쓸법한 이 기구를 통해 커피를 내려 보았다. 깔끔한 맛이 핸드드립 못지않았다. 신기했다.


약간은 한국적인 모던하면서도 아기자기한 실내였다. 오스트리아의 실내 디자인을 한국 사람들이 많이 좋아할 것 같다. 독일보다도 더 밀도 있고 특징이 있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12. 여행(4)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