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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상남 Mar 14. 2020

유길준 <서유견문>을 읽고


구한말 멋쟁이 유학생의 정치학, 법학, 교육학 등 간학문적 개론서



<서유견문>을 한 마디로 정의하자면 위와 같을 것이다. 서유견문은 말 그대로 서양을 돌아보고 적은 기행문이다. 기행문은 보통 시간의 순서에 맞추어 자신의 겪은 일들을 나열하기 마련인데, 이 책의 저자 유길준은 하나의 학문 개론서를 적듯이 엮어, 마치 구한말 지식인들의 우물 안 개구리적인 사고에 경종을 울림과 동시에 무지한 백성들을 무한히 사랑하는 애민을 실천하는 듯하다. 


유길준은 일본과 미국 등에 사절단으로 다녀왔으며, 미국에 남아 유학을 홀로 하면서 개화사상을 체득했다. 귀국 시 세계일주를 하면서 기록한 것들과 이후 여러 지식인들의 저서를 통합해 <서유견문> 초고를 작성했으며 실제 고종황제에게 그 초안을 바쳤다고 한다. 


사실 이 책을 지금의 시각에서 보면 대단히 진부하지 않을 수 없다. 서양 강대국의 특성상 그 전통이 지식뿐만 아니라 문화와 예술에도 그대로 전해지는 부분이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구한말 당시의 상황을 상상하며 읽으면 혁신을 넘어 뜬구름 잡는 허황된 SF영화 정도로 조선인들에게 비치지 않았을까 싶다. 


나는 동서양을 넘나들며 정치사상 고전들을 읽기 좋아한다. 비록 독서의 깊이와 양이 현저히 떨어지지만, 저자의 생애와 시대상황 등을 종합해 그 사람이 어떻게 이와 같은 주장을 하게 된 것일까를 '역지사지'해 상상하는 것이 즐겁다. <역사란 무엇인가>를 읽으면서 공감한 것이, 역사에 해석은 필히 들어갈 수밖에 없고 그것은 곧 저자가 역사서를 집필할 때에도 마찬가지라 생각한다. 따라서, 나는 그들이 어떤 심정으로 이 책을 썼고, 어떤 목적을 위해 이 책의 내용을 사유했을지를 고민하기 좋아한다. 그렇게 책을 읽을 때만이 굳이 내용을 암기하지 않아도 내 머릿속에 한 줄의 구절이라도 남기 마련이다. 이해하고 가슴으로 공감하지 않으면 우리는 늘 망각해버리니 말이다. 


나는 우리 고전을 읽을 때 특히 구한말 실학자 및 개화 사상자들의 고전이 좋다. 박지원이나 박재가, 정약용의 책들이 기억에 유독 많이 남는다. 나는 그들의 책이 공통적으로 '남들이 잘 걷지 않는 길에 서서 그 길을 마치 함께 가자고 널리 홍보하는 듯한' 절박한 심정을 안고 있기에 더욱 감동받았다. 


유길준이 살았던 시절도 마찬가지다. 갓 개화가 시작되고 있을 19세기 말이었으나, 주체적으로 받아들이기보다 서양 열강에 뒤쳐져 그들의 압박에 못 이겨 받아들인 문물들이 많았다. 그 마저도 위정자들 사이에서 수동적으로 받아들여졌다. 그런 시기에 그는 무려 국비장학생으로 일본과 미국에서 살아보고, 유명한 학자들에게 개인지도를 받으며 고등교육을 수료했고, 21세기 현재에도 행하기 힘든 세계일주를 했다. 그런 그의 눈에는 얼마나 많은 충격이 있었을 것이며, 위정자의 한 사람으로서 조국 계몽에 대한 조바심과 스스로 그렸을 핑크빛 정치적 비전에 대해 얼마나 흥분했을까? 


내가 <서유견문>을 선택해 읽었던 막연한 이유는 바로 그러한 시각을 공유하고 싶어서다. 그때만큼 희귀하지는 않지만, 독일 유학생으로서 어쨌든 내 생애에서 중요한 변곡점을 보내고 있고, 동서양의 문화와 교육이 혼재해 나만의 정체성의 탄생을 앞두고 있는 이 시점이기 때문에 그의 생각이 궁금했다. 





간략하게 서유견문은 그야말로 간학문적인 개론서처럼 구성됐다. 세계지리와 기초 물리학, 법학, 정치학, 교육학 등 지금 읽어도 어색하지 않은 내용들이 가득하다. 내용들은 대부분 당시 서양의 공화주의, 자유주의, 민주주의 등을 기초로 하고 있으므로 21세기 대한민국 국민들이 이해하는 데는 전혀 무리가 없다. 그러나, 당시 동양 위주의 경전을 중심으로 정치가 진행되던 구한말 분위기에서는 굉장히 낯설었을 것이다. 낯설기 때문에 유길준은 책에 기록했으리라. 중간중간 당시의 시각과 과학기술의 수준에서 바라보는 세상은 어떠했을지 느껴보는 것도 중요한 관전 포인트 중 하나다. 


이 책을 두루 거치며 저자가 강조한 것은 다름 아닌 '교육'이었다. 그는 교육의 목적을 개화와 자강에 두었다. 아래 내용은 중간중간 메모한 내용들을 인용해 사유하며 글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국민들을 교육하며 국정에 참여할 지식을 갖춘 뒤에 이러한 정치체제에 대해 의논하는 것이 옳다. 178p

정치학을 공부하는 학생으로서 크게 공감했다. 정치는 일상에 침투해있고 어디에서도 주요한 이슈이지만 막상 정치를 진지하게 공부하는 사람은 드물다. 


민간의 사무에 대해 정부가 그 방법을 간섭하면 안 된다... 국민의 생업을 작정하는 권한은 없지만 보호하는 책임은 있다... 188p

구체적으로 정부의 간섭의 범위가 현재의 자유주의 이념 국가와 대동소이하다. 


국민을 교육하는 일은 나라에서 가장 중대하고도 또 중대한 것이다. 돈을 아끼지 말고 , 필요한 경비는 공본 되게 거두어야 한다. 일상적인 교육과 학문적인 교육이다. 231p

이 책 전반에 그는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서양의 교육 시스템을 자세히 소개한다.


서양 사람들이... 건강을 유지하는 방법도 극진하다... 그에 알맞은 운동을 하도록 시킨다... 서양 사람들은 공부하는 틈틈이 마음대로 놀게 한다... 사람이 항상 정력을 쏟고 혈기를 펼치지 못하면 건강을 유지하는데 해로울뿐더러... 258p

서양의 예시를 들며 음악과 시 등 문화 교육도 강조했는데, 이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옛 고전에서 공통적으로 강조하는 것이다. (특히 어린아이 때부터) 예술교육은 육체와 더불어 좋은 정신을 가지게 한다. 논어에는 육례가 있으며, 플라톤 국가에도 시와 노래를 통해 어린아이들의 정신을 고양하게 했음을 우리는 알고 있다. 우리는 과연 우리 아이들에게 어떤 놀이와 예술을 가르치는가? 그들이 진정 즐길 수는 있을까? 스펙 경쟁을 위해 배우던 예체능도 이제는 스마트폰과 유튜브에 그 자리를 내주지 않았는가? 


상인의 공부... 어느 항구에 도착하든지 물품을 부리는 규칙을 자세히 알아야 한다... 비로소 직분을 행할 수가 있으며 생업으로 삼을 수 있다. 이런 공부를 하지 않고 성공하기만 바랄 수 있겠는가. 389p

어떤 일을 하든 우리는 많은 연구와 경험이 필요하다. 노력 없이 얻을 수 있는 것은 없다. 자영업의 비율이 높으면서 폐업률이 높은 이유도 나는 위와 같은 맥락이라고 본다. 


개화란 인간세상의 천만 가지 사물이 지극히 선하고도 아름다운 경지에 이르는 것이다... 개화한 자는 천만 가지 사물을 연구하고 경영하며 날마다 새롭고 또 날마다 새로워지길 기약한다. 393p

그런 점에서 나의 유학생활도 내 인생에, 내 주변 사람들에게 진정한 개화가 되길 간절히 바란다. 굳이 한 문장을 꼽으라면 나는 <서유견문>의 최고 구절로 이 문장을 선택하겠다.


반쯤 개화 한자를 권하여 이를 행하게 하고... 아직 개화하지 않은 자를 가르쳐서 깨닫게 해주는 것이야 말로 개화한 자의 책임이자 직분이다 396p

이 쯤되니 저자가 참으로 대단하게 느껴진다. 능력도, 책임도, 시대도, 기회도 있어야만 진정한 멘토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독후감의 마지막으로서 이 글의 또 다른 관전 포인트는 바로 글쓴이의 화려한 묘사에 있다. 물론, 어느 정도 현대어로 옮긴 사람의 능력도 가미됐을 것이다. 문학적이면서도 간단명료하다. 그가 구석구석 돌아보고 관찰한 사물 하나하나도 마치 내 눈 앞에서 보는 것처럼 자세히 묘사했다. 이쯤 되면 묘사의 달인이 아닐까 싶다. 그럴만한 것이 당시 이 글의 독자는 서양 사람 얼굴조차 제대로 보지 못했을 테니 그들의 문물과 규모가 상상은 됐을까? 건축 하나에도 어마어마한 양의 돈이 들어간 서양을 조선인들은 이해할 수 있었을까? 1만 냥에도 벌벌 기던 상인들이 몇백억 냥이 들어간 런던의 국회의사당이나 파리의 노트르담 성당을 이해할 수 있을까? 


지나가는 구름과 흐르는 노을이 그 위에 머물러 있는 듯 516p

묘사의 한 구절인데, 그의 묘사야 말로 그가 쓴 저 구절과 같다. 




참고문헌: 사진 속 <서유견문> 필자 구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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