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계발서를 끔찍이 혐오하는 나다. 내용이 틀려서가 아니다. 그 글을 적은 사람의 의도와 의식을 정작 나 스스로가 해낼 수 있어야 한다는 것, 즉 자기 계발서에 나올 법한 내용을 내가 직접 체험하고 실천하며 사유할 수 있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몰라서 못하는 경우도 있으나, 알면서도 하지 않은 경우도 흔하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자기 계발서를 읽는 사람이 아닌 쓸 수 있는 사람이 돼야 한다고 믿는다.
그럼에도 내가 꼭 찾아보는 자기 계발서가 있다. 이지성 작가의 책들이다. <리딩으로 리드하라>, <에이트>에 이어 세 번째로 읽는 책이다. 작가의 요지는 매우 일목요연하다. "인문학을 하라"이다. 이 책에서는 인문학이 무엇이고, 왜 해야 하며,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동서고금을 막론한 사례와 함께, 과거의 미래를 넘나들며 통찰하고 있다. 작가의 의도에 전적으로 동의하며 때로는 전혀 알지 못했던 수많은 사례와 데이터들이 그의 주장을 뒷받침한다. 이것이 이 책을 읽는 즐거움 중 하나다.
<생각하는 인문학>은 주로 인문학의 방법을 소개하며 작가의 나름의 방식으로 사유한다. 작가의 인터뷰와 동서양 천재들의 철학과 사색의 방법을 자세히 기술한다. 실로 흥미롭다. 우리가 잘 아는 아인슈타인과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철학의 삶이 어떻게 전개됐는지, 그들이 현재의 천재들에게 어떻게 영향을 끼쳐왔는지 등은 대단히 충격적이다.
우리는 왜 인문학을 해야 할까?
작가는 이 물음에 다양한 방식으로 메시지를 던진다. 우리의 뇌가 과학적으로 어디까지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지, 인문학의 본질이 사랑에 있으며, 지식을 너머 지혜에 도달하는 것임을 끊임없이 강조한다. 우리는 그간 나이가 들었다는 이유로, 주어진 삶이 평범하다는 이유로, 현실에 치이며 그저 그렇게 살아왔기에 너무나 당연하다는 이유로 입지, 즉 뜻을 세우는 것조차 하지 않아 실천의 단계도 가지 못한 것은 아닌지 자기반성을 해야 한다.
우리가 '생각'이라고 인식해온 것이 실은 서양의 철학 천재들이 해온 수준이 아닌, 단순히 지식을 추가하는 것에 머무르거나 조급함 속에서 본질을 찾지 못한 우를 범한 것은 아닌가? 단지 그러한 행위를 했다는 것에서 오는 허구적 포만감에 심취한 것은 아닌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이 책은 Think라는 어원을 분석하며 미국의 천재들과 IT를 주름자는 거대 공룡기업들의 CEO들이 어떻게 사색과 생각을 거듭하며 세상을 바꾸는 창의력을 발휘했는지를 추론한다. 사실이라면 믿기지 않을 정도로 복잡하고 고통스러움이 느껴진다. 이는 곧 나의 소양과 사색이 그 천재들에게는 역. 시. 나. 미치지 못하고 있음을 반증한다. 고로 인문학 공부의 이유가 또 하나 마련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난 7년간 나의 인문학을 위한 노력들이 헛되거나 전혀 다른 방식으로 허송세월을 보낸 것이 아님을 확인했다. 궁극적으로 자기만의 방식이 있어야 한다. 비록 방법과 양, 질에서 부족함이 있을지라도 나는 작가의 의도가 자연스럽게 공감되는 만큼, 여러 사람들과 즐거운 방식으로 '저자의 입장에서 사유하기', '저자 A 입장에서 저자 B를 사유하기', '나의 입장에서 저자를 바라보기'등을 어설프게나마 실천해 왔음을 인지한다.
이 책을 자기 계발서라 일컫는 것은 그 주안점이 인문학일 뿐, 그 실천을 위한 다양한 방식의 동기부여와 정보전달이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우리는 인문학으로 꽃피던 선비문화가 사라지고 일제강점기와 미군정기, 군사독재 시기를 거쳐 21세기 현재까지 변함없이 철학 없는 우민화 교육을 받아왔음을 통렬히 반성해야 한다. 나부터 자기 교육을 통한 혁명적인 천재로의 변모를 꿈꿔야 한다. 그것이 곧 공동체, 사회, 국가, 나아가 세계를 변화시키는 방법이다. 인문학은 평생의 놀이이며 성장이자 우리 행복에 본질적인 목적이 있기 때문이다.
다음은 다양한 메모를 구절과 함께 사유하고자 한다. 나는 이 책을 직접 구매해 밑줄을 긋고 반복해 사유하고 있다.
더 크게 성장할 가능성이 있는 사람이 잘못된 교육으로 인해 평생 일개미처럼 살아가야 한다면 그것은 옳지 못하다. (89)
왠지 크게 마음이 닿았다. 교사 출신의 작가여서 그런지 그 경험이 나의 경험과 맞닿아 여러 곳에서 공감이 됐다. 내가 학원에서 아이들을 가르칠 때 많은 고등학생들 중에서 위 문장에 해당하는 사례를 만났다. 비록 대입이라는 좁은 목적에 국한된 사례였지만, 그들이 대부분의 시간을 학교에서 선생님으로부터 막강한 영향을 받는 바, 그들의 잠재력과 현재 가지고 있는 능력이 그들의 학업에 훨씬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된 멘토를 만나지 못해 그 존재를 인식하지 못하거나 꽃 피우지 못하는 아이들이 너무나 많았다. 나는 그들의 마음에 작은 촛불 하나 지피자는 마음으로 당장의 공부뿐만 아니라 조금 더 멀리 보기 위한 대화를 많이 나누었다. 내 브런치 매거진 <초보 멘토와 교육을 사유하다>는 그러한 사례들을 정리하고 있다.
제 아무리 위대한 운명을 타고난 사람이라도 몸과 마음이 온통 평범한 것에 둘러싸여 있다면 평범한 존재밖에 될 수 없다... 몸과 마음이 늘 위대한 것과 만난다면 특별한 존재가 될 수 있다. 이는 자연계가 증명하는 바다. (90)
단지 공부를 잘하기 위해 성공하기 위해서도 중요하겠지만 한 번뿐인 우리 인생을 아름답게 꽃 피우고 그것에서 나와 내 주변이 모두 행복해지기를 바란다면 우리는 스스로를 가치 있는 곳에 옮겨야 할 것이다.
교사들에게 도전적인 질문을 던지고 싶다. 도대체 언제까지 이 세계 최악의 교육 시스템에 순응해서 살아갈 생각이냐고. (94)
20대 초중반 나는 몸으로 겪었다. 이 질문을 나도 던지고 싶다. 예전 독서 모임에서 공교육에 대한 토론이 크게 벌어졌다. 나는 공교육의 문제의 시발점을 교사 자신에게, 나아가 교사를 양성하는 사회 시스템에 두었다. 단적으로 말한다면, 우리 주변에는 여러 의미에서 훌륭하지 못한 교사들이 너무나 많다. 교사들이야 말로 그 누구보다도 훌륭해야 한다. 바로 소크라테스가 그러한 스승의 표본이 아닐까. 그러므로, 그가 주장하는 철인정치는 바로 그러한 훌륭한 사람들이 정치를 이끌어 가는 이상 사회가 아닌가.
내 영혼이 사랑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아야 한다. 내가 사랑하는 일을 통해 경제적 자유를 얻어야 한다. 내가 사랑하는 일을 통해 시간의 자유를 얻어야 한다. (111)
행복의 방법 중 가장 중요한 게 아닐까 싶다. 나는 끊임없이 고민한다. 그리고 답이 여전히 주어지지 않는다. 선택을 해야만 답안지가 펼쳐질 것이기 때문이다.
자신이 무한한 지능을 가졌다고 확신하는 사람들... 천재들은 자신의 지능을 무한히 신뢰합니다. 스스로 두뇌가 천재적이라는 것을 전혀 의심하지 않죠. (141)
겸양이라는 이유로, 그렇게 주어졌고 그렇게 살아왔다는 이유로, 입지조차 하지 않는다면 그것이야 말로 우매한 인간이다.
제대로 된 인문고전 독서를 하다가 만나는 황홀경, 그것은 두뇌가 맛볼 수 있는 가장 중독성 강한 마약. (166)
자주는 아니지만 나는 플라톤의 <국가>를 두 번째 읽었을 때, 그리고 그 후 <소크라테스의 대화편>을 읽었을 때 미세하게 그 즐거움을 느꼈고, 밀의 <자유론>을 읽고 글을 쓸 때 큰 즐거움을 맛보았다.
고전들을 엄선해서 읽되, 책의 내용과 저자의 생각 시스템이 완벽하게 자기 것이 될 때까지, 원전을 반복해서 읽고, 필사하는 방법. (214)
여러 방법들이 소개됐지만 본질은 여기에서 출발한다.
전혀 이해되지 않는 부분은 그냥 건너뛴다... 마지막 페이지를 덮고, 필사를 한다. 그리고 당분간... 손에 자지 않는다. 일종의 숙성 기간을 갖는 것이다.(214)
뇌의 원리를 정확히 보지는 않았지만 나는 이런 경험을 많이 했다. 특히 공부를 할 때다. 책을 읽을 때도 마찬가지고, 외국어를 공부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단지 시간이 조금 흘렀을 뿐이다. 정지되기 전까지 쌓인 지식이 잠깐의 휴식을 거치고 난 뒤 새로운 이해의 지평과 정리가 머릿속에서 되고 있음을 자주 경험했다. 독서에도 마찬가지다.
<에이트>와 <생각하는 인문학> 두 권을 읽고 한 줄로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다.
인문학 -> 인문학적 공감 -> 인문학적 창조(창의) -> 문명적 의미의 Think -> Think의 실용화(현실화) -> 문명 창조 / 천재가 됨 / 부를 이룸: 21세기 인공지능 세계에서 인문학 인간이 인공지능을 지배하는 방법
바람직한 토론은 인간적이고 따뜻한 분위기로 진행되는 대화 형식의 지적 교류다 (238)
야호. 나의 방식이 틀리지 않았음을 다시 확인했다. 지난 독서 모임들의 모토는 '놀면서 공부하자'였다. 때로는 학기 최다 엠티 기록을 했고, 때로는 유일한 취미생활이 되기도 했으며, 누군가에게는 즐거움, 누군가에게는 새로움으로 다가왔다. 나는 축적되는 경험 속에서 더 많은 사색을 했고, 독일에 있으며 언젠가 다가올 새로운 모임의 방향과 방법을 사유한 글을 A4용지 10장이 넘게 메모하고 있다. 나는 모방하고 창조한다. 그럼에도 정수는 즐거움에 있다.
유득공의 <발해고>에 대한 철학적 의미는 대단히 신선했다: 당시 사람들에게 고구려, 백제, 신라는 역사였지만 발해는 역사가 아니었다. 하지만 유득공이 <발해고>를 저술함으로써 발해는 비로소 역사가 되었고 , 통일신라시대는 남북국 시대가 되었다... 혁명적인 사건이었다. (275)
고전을 읽을 때 형이상학적 사유를 통해 도덕 감정과 법감정을 구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러한 존재 자체가 철학적 의미를 지니는 저서들도 많다. 이런 관점은 대단히 신선했다. 바로 이 관점이 이 고전을 통해 새롭게 배울 천재의 사고방식 중 한 가지라는 말이다.
투표제도가 불완전한 것임을 수학적으로 증명한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케네스 애로의 '애로의 불가능성 정리'에 대해 알아보고.. (278)
무언가 했다. 게임이론 시간에 배운 것이었다. 이 정리는 합리적인 의사결정, 즉 개인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선택을 하는 경제적 인간이 모인 전체 혹은 단체의 결정은 늘 합리적일 수밖에 없다는 주장을 단순하게 숫자 몇 개로서 박살 내버린 정리를 말한다. 합리적으로 선택했으나 전체의 결론은 합리적이지 않음을 나타낸다. 그것을 지금의 다수결 원칙의 투표제도에 대입하면 어떨까? 언제나 합리적인 결론이 도출되어 우리의 이익을 극대화시키는 정치인 대리자가 나올 수 있나? 즐거운 사색이었다.
나는 알 수 없는 허무감이나 불안감 등이 밀려오면... 영적인 문제나 내면의 문제를 만나면... 성경을 펼친다... 사회생활을 하다가 문제를 만나면... 논어를 읽는다. 그러면 오래지 않아 해법과 만나게 된다. (3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