Zeitgeist
내가 특별히 좋아하는 영어 단어들이 있다. 고등학교 때 워드스마트(wordsmart)라는 난이도 무시무시한 단어장을 공부하면서 알게 된 단어들이다. confidant(e), cliche, catharsis 등 우리말에서도 이미 익숙하게 사용되는 단어들을 실제 영어로 처음 보았거나, 그 뜻이 무척 구체적이고 특이한 경우다. 참고로 confidant(e)는 '친한 친구; 그중에서도 연애에 대해서 속 깊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친구' 정도로 단어장에 적혀있었다. 정말 구체적이고 깨알 같은 재미가 느껴진다. 이 단어는 참고로 불어에서 왔다. 영어에는 이처럼 불어, 독어, 라틴어 등에서 넘어온 외래어가 많다.
그 단어들 중에 zeitgeist라는 단어를 나는 무척 좋아한다. 정확히는 그 뜻이 무엇일까 내 삶 속에서 늘 고민하고 탐구한다. 유사한 단어로는 paradigm이 있다. zeitgeist는 독일어에서 넘어온 '시대사조', '시대정신'이라는 뜻으로 한 시대에서 요구하는 혹은 그 시대를 장악한 어떠한 철학 사상이나 생각 등을 나타낸다. 네이버 사전에는 '한 시대의 문화적 소산에 공통되는 인간의 정신적 태도나 양식 또는 이념'이라고 기재됐다. 독일어로 분석하면 그 뜻을 명확히 알 수 있다. Zeit(시간) + Geist(혼, 정신)의 단순한 합성어다. 독일어의 합성어는 우리말 번역과 유독 비슷하게 느껴진다.
나는 30대 초반의 혈기 왕성한 젊은이다. 사람의 생에는 시기별로 나름의 의미가 있다고 본다. 어릴 때는 몸과 마음을 건강하게 고취시키는 것이 그것이요, 20대-30대에는 삶의 방향과 가치관을 정립하는 것이다. 그 이후는 아직 안 살아봐서 잘 모르겠다. 친척 중 한 명이 40대 돈을 못 벌면 평생 못 번다는 말씀을 하신 것이 뇌리에 남아있긴 하다.
나는 내 삶의 소명이 무엇일까 고민한다. 아무리 생각해도 내 노력과 내 목표와는 무관하게 주어지거나 이끌리는 것들이 삶 속에 있기 마련이다. 반대로 아무리 노력해도 내 길이 전혀 아니라고 외치듯 안 되는 경우도 있다. 전자를 최대한 잘 찾아내고 후자를 최대한 잘 걸러내는 것이 삶의 지혜의 일부분이 아닐까.
삶에서 우리는 통찰력이 필요하다. 무언가 꿰뚫어 보는 능력. 어떤 것의 본질을 파악하고 경중을 판단해낼 수 있는 시각. 직관처럼 주어질 수도 있고 노력에 의해 배양될 수도 있다. 나는 이 통찰력을 얻기 위해 세 가지 노력을 한다. 첫 째, 과거에서 지금까지 그리고 앞으로도 다양한 경험을 쌓는다. 과거에는 반드시 필요하고, 가고자 하는 길에 표면적으로 도움이 된다 나고 생각되는 길만 걷지 않았다. 오히려 20대에는 다양성이라는 이유로 가능한 새로운 영역에 도전하고자 했다. 물론, 그럼에도 나의 시각은 어쩔 수 없이 주관적이고 한계가 지어져 아주 파격적인 수준은 아니었던 것 같다. 가능한 그 한계를 넓히길 소망한다. 둘째, 현재 독서를 열심히 한다. 독서에 뜻을 두고 진지하게 임하기 시작한 것은 부끄럽게도 몇 년 되지 않았다. 대학에 입학해 교수님들에게 자극받고 정치사상 수업을 들으면서 서양 고전들을 처음 읽었다. 그 전에는 가족들 사이에서 책을 읽지 않는 아이로 유명했다. 단, 미친 듯이 읽었던 책이 있었는데 바로 만화 세계사, 만화 한국사, 만화 그리스 로마 신화 그리고 만화 이문열 삼국지였다. 아주 어린 유년시절부터 그 책들을 읽었다. 만화책을 읽는 것은 지루하지 않았으니까. 한 출판사에서 나온 만화책은 사실 성인이 보아도 무방할 수준 높은 작화와 내용이 담긴 만화책이었다. 나는 그 책들을 게임을 하듯 읽었다. 너무 재밌어서. 보고 또 보고. 그러자 만화로 습득했지만 어릴 때 어지간한 세계사와 한국사 그리고 각종 역사 상식을 갖추게 됐다. 그 외 책은 그림을 따라 그리기 위해 끼고 다녔던 동물도감이었다. 그랬던 나의 독서는 지금도 발전 중이다. 조금씩 그 이해의 폭이 넓어지고 빈도가 높아지며 사색과 사유를 적어가며 생각을 발전시킨다. 그 자체로도 즐겁다. 이런 나의 모습이 나도 참 대견하다. 상전벽해라는 말을 이럴 때 쓰는 것인가. 셋째, 다양한 사람들을 만난다. 첫 번째 노력과 상호작용을 하는 것이다. 나와는 다른 고유한 색깔을 가진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 즐겁다. 그들의 저력을 보고 감탄하기도 하고, 내공을 쌓아가는 그 모습에 자극을 받기도 한다. 동시대에 자기만의 멋진 정체성을 만들어가는 그 사람들과 함께 있을 때 나도 그렇게 자연스럽게 그렇게 변화해간다.
어쩌면 내게 시대정신을 인식하는 것은 바로 이 요소들이 복합적이고 화학적으로 작용해 내 머릿속에 저장된 것일 수도 있다. 나는 나의 삶을 구성하는 모든 요소들로부터 완전히 자유롭지 못하니까.
시대정신을 논하는 것은 우리가 그것을 간파하고 그것에 맞추어 사는 것이 나쁜 선택이 아니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은 시대정신을 좇는 것이 유행을 좇는 것이라고 비판할 수도 있다. 그러나 내가 의미하는 것은 '시대정신이 그러하니 맹목적으로 그것을 따르라'는 것이 아니다. 먼저 우리에게 자연스럽게 주어진 것을 간파하자는 것이다. 예를 들어, 2020년의 시대정신을 구성하는 하나의 키워드는 '국제화'다. 불과 10년 전만 하더라도 대학에서 교환학생을 가는 것이 지금처럼 쉽지 않았다. 80년대 대학생이었던 우리 부모세대는 아예 외국에 나가지 못했다. 지금은 대학에 들어가 교환학생을 가지 않는 것이 이상해질 정도로 흔한 것이 돼버렸다. 경제적으로 풍요로워지고 통신과 기술이 우리의 삶에 이토록 많은 변화를 가져다주었다. 바로 이런 요소, 시대가 달라져 내게 노력 없이 주어진 새로운 것들을 파악하는 것이 나는 시대정신을 바라보는 첫걸음이라 생각한다. 또 다른 요소는 위기에 대처하는 것이다. 국제화가 장점의 키워드였다면, 환경과 질병, 에너지 등은 우리가 마주할 새로운 위기 요소이다. 이것들을 어떻게 다룰 것인지가 앞으로의 미션이고 새로운 가치 창출의 영역이 될 것이다. 더불어 그 세상에서 나는 어떻게 살 것인가를 고찰할 수 있다.
위 요소들은 내 삶 속에서 인식하기란 쉽지 않다. 많은 공부와 독서가 필요한 이유다. 시대를 비교하지 않으면 지금의 시대정신을 어찌 알겠는가? 그러므로 동서양을 아우르는 역사 지식이 필요하다. 지금 이 사회가 어떻게 구성되었고 어떻게 굴러가는지 알기 위해서는 정치와 경제에 대한 지식도 필요하다. 즉, 통합적인 인문학 지식이 필요하다. 그래서 나는 점점 더 인문학에 대해 호감을 가지고 접근하고 있다.
자, 이제 내가 현재 인식하고 있는 어설픈 시대정신에 대해 짧게 정리하고 글을 마무리해보자.
1. 국제화
전술했듯 국제화는 시대정신으로 자리매김했다. 우리는 시대정신을 이용함으로써 우리의 인생을 풍족하고 다채롭게 빛낼 수 있다. 돈을 내지 않고도 세계 어느 나라의 음악을 시대를 초월해 감상할 수 있다. 교과서에 나올 법한 이야기지만 음식, 자동차, 문화, 예술 등을 세월이 갈수록 더욱 빠르고 쉽게 접할 수 있다. 한국인의 먹방에 영어와 동남아의 여러 언어들을 자막으로 달아 유튜브 구독자 수와 조회수가 폭발하는 현상은 교과서에서도 나오지 않은 최근의 사례다. 따라서 국제화 시대에 꼭 필요한 덕목은 외국어다. 그중에서도 영어를 제대로 구사할 수 있는 것은 전 세계의 50% 이상의 정보에 접근 가능하다는 것이다.
언어를 구사한다는 것은 AI가 제공하는 정밀한 자동통역기가 대체할 수 없는 장점이 있다. 예를 들어, 독일어를 전혀 구사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독일에서 영어로 무탈하게 지내지만 그 사회로 들어가 그 사람들의 정서를 새롭게 배우는 데는 커다란 한계를 느낀다. 내가 Junge Union에서 매주 토론을 하고 사람들을 만나 그들로부터 새로운 삶의 방식을 배우는 것도 독일어를 구사하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즉, 시스템적으로는 무탈할지 모르나 정서적으로는 여전히 번역기가 대체할 수 없는 무언가가 있다.
나는 독일에서 영어로 정치학 공부를 했다. 언어의 파워 측면에서 영어는 전공에서든 일반적으로든 독일어를 압도한다. 정치학을 독일어로 공부하는 것은 정치학을 한국어로 공부하는 것과 대동소이하다. 단지 한국인의 입장에서 제2 외국어의 실력이 증대되는 것밖에 의미가 없고, 극소수의 분야가 아니고서는 독일어는 유엔 공용어도 아닌 탓에 그 영향력이 제한적이다. 처음 내게 5-6개의 독일 대학원이 선택권으로 주어졌을 때 다양한 요소들을 고려한 뒤 지금의 학교를 선택했다. 그중 유일한 영어과정 대학원이면서도 독일 정치학대학원 랭킹 1위였기 때문이다.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지금도 그 선택에 만족한다.
2. 과거로의 회귀
대다수 독자들은 국제화가 시대정신 중 하나라는 말에 쉽게 동의할 것이다. 특별한 고찰 없이도 우리는 피부로 느낄 수 있다. 두 번째 시대정신은 '과거를 배우는 것'이다. AI가 출몰한다고들 한다. 인간의 양식이 빅데이터에 저장되어 나도 모르는 사이 인공지능이 머신러닝(maschine learning)을 통해 스스로 발전하며, 나보다도 더 잘 나를 분석하고 나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최적화하여 추천한다고 한다. 우리가 인지하지도 못하는 사이 구글 등 소수의 대기업들이 우리의 데이터들을 마구 저장하고 있다. 곳곳에서 환경 문제들이 도지고 있고, 물질이 풍요를 가져다주는 와중에 비인간성이 판을 치고 기아와 질병에 취약한 지역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역설적이고 모순적이다. 즐길 것은 많아지고 배울 것은 늘어나는데 우리의 삶은 더욱 여유가 없어지고 무엇 하나 제대로 아는 것은 점점 줄어든다. 세상은 복잡해져 정부 부처는 전문화되어 더욱 쪼개지고 정부의 규모는 커져가는데 한쪽에서는 컨트롤 타워가 필요하다고 아우성이다. 세상 대다수의 정부는 작은 정부를 추구하는 이념에 기초해 설립됐는데 정부의 역할이 커져간다.
<엔트로피>의 저자 제레미 리프킨은 이렇게 주장했다. 선사시대부터 농업혁명(the Agricultural Revolution)을 거치는 시간보다 산업혁명(the Indistrial Revolution)을 거치는 시간이 훨씬 짧아졌고 지금 이 시대는 사회변화의 소요시간이 더욱 짧아지고 있다. 그만큼 일정한 양의 에너지는 점점 더 빨리 그리고 많이 재사용이 불가능한 형태로 바뀌고 있다. 엔트로피가 증가 추세가 지수함수의 증가 형태와 유사하다. 이것이 열역학 제2법칙이다.
우리가 세상을 통찰하고 현재의 모습을 사유하기 위해서는 과거와 비교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역사 공부에 대한 필요성이 증대된다. 단지 과거의 연도를 외우고 무엇이 있었는지를 아는 것을 넘어서 그것이 당시에 어떤 영향을 끼쳐 어떤 변화를 이룩했고 어떠한 메커니즘이 있었는지를 이해하는 것이 통찰력 형성에 도움이 된다. 흔히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격언이 우리 세대에서 통용된다. 그런데 과연 우리가 얼마나 공부하고 이해하는지 진실로 반성할 필요가 있다. 세상은 생각보다 '~카더라'에 의해 진실처럼 받아들여진 것들이 많다. 저 명언 조차 단재 신채호 선생이 했다고들 알고 있지만 그 근거를 찾을 수가 없다고 한다. 얼마나 황당한가?
지식뿐만이 아니다. 우리는 인간성 자체를 회복해야 한다. 가정 내에서도 '먹고살기 위해 산다'는 말이 진리가 된 양 행복이 무엇인지도 인지하지 못할 정도로 바쁘게 살아간다. 사실 한 번뿐인 인생에서 내 옆의 가족과 담화를 나누며 서로를 알아가는 시간을 평생 가지는 것만큼 의미 있고 즐거운 것이 있을까? 산과 들, 바다로 다니며 바람을 쐬고 좋은 풍경을 즐기는 것만큼 휴식이 되는 것이 있을까? 제레미 리프킨은 이 부분에 대해서도 신랄하게 비판했다. 사회가 복잡해질수록 역설적이게도 정신적으로 아픈 사람들이 더욱 생겨난다고. 물론, 그가 <엔트로피>에서 주장한 모든 것에 동조하는 것은 아니다. 그의 결론은 엉뚱하게도 선사시대와 같이 저 에너지 소비 사회로 돌아가자는 형이상학적인 주장이었을 뿐이다. 우리 앞에 산적한 문제들이 많지만 그 문제들을 해결하는 키워드는 '인간성 회복'에 있다고 느꼈다. 또한 그렇게 생각하는 나의 소명의 일부도 그것에 있다고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레트로 감성' 등이 유행하는 요즘을 보며 역시나 인간은 지루함을 선천적으로 견디지 못하는 존재가 아닌가 생각한다. 촌스러워 바꿔왔던 과거의 유행들이 재조명받고, 나아가 그것이 현재의 방식과 만나 새롭게 재창조되는 것을 보며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듯 문화적으로도 지금의 키워드는 과거의 것을 찾아 지금의 다양성의 폭을 넓히려고 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3. 자기만의 색깔을 가지는 것
참 어렵다. 시대를 막론하고 자기만의 개성을 가지고 그것에 몰입하기란 여간 쉬운 것이 아니다. 현실적인 조건도 맞아떨어져야 할 때가 많다. 그런데 여건이 돼도 자기만의 색깔 없이 대중에 묻혀 아무런 존재에 대한 가치를 느끼지 못한 채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다. 현실적인 여건이 매우 중요하다. 목구멍이 풀 칠이 중요한 마당에 음악은 무슨, 공원 산책이 무슨 말인가. 인정한다. 나는 아직까지 찢어지게 가난한 삶을 살아보지 못했기 때문에 그 삶을 이해하지 못한다. 나는 신이 아니며, 학술적으로도, 인생적으로도 최고의 경지에 오른 성인이 아니기 때문에 나의 글이 완벽한 구조를 지니지 못한다는 것을 겸허히 수용한다. 단순히 최대한 굴릴 수 있는 나의 짱구를 굴리며 생각해낸 것을 열심히 적는다는 것을 독자들은 잊지 않아 주길 바란다.
한 편으로 밀이 <자유론>에서 주장하였듯, '다양성의 꽃'을 피워야 한다. 그것을 위해서는 자기만의 개성을 가져야 하며, 이는 가정 내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시작돼 사회의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크게 향상된다. 나는 작든 크든 자기만의 색깔을 가지지 못하는 사람에게서 매력을 전혀 느끼지 못한다. 그 사람이 아주 아름다운 이성일지라도! 자기만의 색깔은 곧 자기만의 행복의 방정식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자기만의 삶의 방식과 철학이 뚜렷하고 투철하다는 것이다. 모르겠다. 단지 그런 사람들과 있으면 즐거울 뿐이다. 그리고 어디서 무엇을 하든 그 뚜렷한 방식이 필요한 자리가 있다. 경제적으로도 사회적으로도 분명 길이 생긴다는 말이다. 가보지 않은 길이지만 나는 철석같이 그렇게 믿는다.
복잡해진 사회에서 생존하는 것을 넘어 나의 인생을 다양하게 즐기기 위해서는 '다양성의 꽃이 활짝 핀' 개인들이 모여 서로 도울 수밖에 없다. 그것이 전술한 이 시대의 장점과 단점을 모두 아우르는 키워드라 생각한다. 그래서 인간성의 회복의 요구되는 것과도 결부된다.
이상으로 시대정신에 대해 적어보았다. 장문의 글을 적지 않는 내 브런치의 특성과는 다소 동떨어진 글이었다. 사흘을 고민하며 적었지만 역시나 나의 식견 부족에 글쓰기 능력 부족까지 겹쳐 어려운 글이 됐다. 그렇지만 글을 적는 순간의 사유는 또 다른 재미를 주었으므로 만족한다. 당신이 생각하는 이 시대의 정신은 무엇인가? 그 시대정신 속에서 살아가는 당신의 색깔은 무엇인가? 궁금하여 듣고 싶다. 시원한 바람이 부는 파아란 하늘 아래, 야외 테라스에서 당신과 마주 보고 앉아 커피 한 잔을 하며.
그동안 도전의식을 가지고 적은 나의 작은 프로젝트를 여기서 마친다. 끝이다! 다음 글에서는 유학을 마무리하며 적는 일반 글들과 졸업논문의 경과를 적는 연구 설명글을 적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