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천대 탐방]: 여행은 망각을 위한 것
https://youtu.be/kf0HYeQp760 (BGM을 넣었다!)
귀국을 앞두고 기념으로 홀로 여행을 떠났다. 여행은 망각을 위한 것이다. 한순간이든 오랜 시간이든 새로운 시작을 위해서는 망각이 필요하고, 그 분수령으로 나는 늘 여행을 택한다.
문득 전라남도 순천으로 향했다. 그냥 순간 떠오른 곳을 정했다. 내 진로는 어디로 가야할까. 고민을 하는 것이 벼슬처럼 여겨졌던 때도 있었다. 하지만 정작 내 선택은 고민없이 들어선 길이었다.
국립대인 순천대에 왔다. 나는 종종 국립대학을 탐방하곤 한다. 사립대를 나온 나로서 국립대는 왠지 모를 동경의 대상이었다. 나에겐 대학의 로망이 있었다. 넓고 평탄한 캠퍼스에서 햇빛을 맞으며 재잘재잘 친구들과 함께 강의실로 향하는 로망... 하지만 내 캠퍼스 라이프는 언제나 셔틀버스와 함께 하거나 종아리 알통만 올라오곤 했지.
가장 먼저 꼭대기에 있는 인문대학에 왔다. 건물은 열려있었지만 방학이라 내부는 한적했다. 강의실을 둘러보았다. 이곳에서는 어떤 토론이 이어졌을까. 나는 누구일까. 철학의 근본 질문은 바로 인간은 무엇인가가 아닐까. 재잘거리는 학부생들의 어설픈 토론이 더욱더 정겹게 느껴질 것이다. 때로는 한국의 향이 짙은 강의실이 그리워진다.
복도에 훤칠한 난과 대나무를 수묵화로 그려두었다. 낡은 사물함들이 즐비한 다른 층과 달리 이곳의 사물함들은 유독 운치가 있었다.
복도를 따라 더 들어가니 철학과 학생회실이 나왔다. 여느 학생회실처럼 지저분했다. 수업이 끝나면 삼삼오오 말하지 않아도 모여 밥을 먹고 와글와글 떠들것이다. 나도 누군가의 손을 붙잡고 끝없이 재잘거리고 싶은데...
건물을 나와 사범대로 내려가다 보니 플래카드가 붙었다. 공무원, 공기업, 대기업. 우리는 늘 줄을 선다. 나는 어디에 서있을까. 내가 바라보는 곳은 앞인데, 그 앞은 정말 앞이 맞을까, 우물안이면 어쩌나...우리는 늘 전전긍긍하기 바쁜 존재다.
그 옆으로 취업에 성공한 학생들의 명단이 있었다. 기쁠 것이다. 하지만 두려울 것이다. 다른 사람들은 그 사람들이 되지 못한 것을 아쉬워 할 것이다. 결국 인생엔 영원한 승자도 패자도 없다.
사범대로 내려오니 낯이 익은 건물들이 들어섰다. 전형적인 빨간 벽돌 건물들. 왠지 위에서 볼 땐 육각형이 있을 것 같은 각진 선이 눈에 들어온다. 기하학적인 재미가 마치 유명 건축가 김수근 씨의 작품들을 연상시킨다. 호옥시?
건물에 플래카드가 붙었다. 1차 합격자들이다.
내가 하지 못해 아쉬운 것이 하나 있다면 대학교 CC와 복수전공이다. 복수전공을 했더라면 나는 교육학과나 철학과를 선택했을 것이다. 공히 책을 읽고 많은 사유를 하게 만든다.
정독실에 방학임에도 몇몇 예비 선생님들이 나와 공부를 하고 있었다. 몰래 문을 살짝 여니 뜨거운 열기가 튀어나와 내 얼굴에 부딪혔다. 당신들은 왜 선생님이 되고자 하는가? 교육은 무엇이고 좋은 선생님이란 무엇인가.
텅빈 복도가 나왔다. 지금 내 마음도 텅비었다. 새로움을 넣기 위해서다.
아무도 없는 복도를 구두 소리를 내며 걸어보았다. 돌아가고 싶다. 학부생으로 다시 돌아간다면 나는 지나가는 누군가를 붙잡고 물을 것이다. "우리 커피 한 잔하면서 재밌었던 일 하나씩만 이야기해 봅시다."
대학 하면 중앙도서관을 빼먹을 수 없다. 미세먼지 없이 맑은 하늘을 보니 내 마음도 한결 가벼워진다. 방학임에도 여러 사람들이 도서관에 있었다. 그들은 무엇을 고민하고 있을까. 왜.. 어떤 사연이 있기에 그들은 자리에 앉아 있는가.
불이 꺼진 스터디룸을 살펴보았다. 내가 잘한 것 중 하나를 꼽으라고 묻는다면 나는 스터디를 꼽을 것이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그들을 배워가고 그들과 생각을 나누는 그 순간이 가장 그립다.
선현들은 녹차를 마실 때 그 위에 찻잎이나 나뭇잎을 하나 띄웠다고 한다. 토닥토닥. 쉬어가자. 젊은이들이여. 여백의 미를 느끼며 숨 쉬는 하루에 감사하며 지내자. 최신 영화들이 방영되고 있었다. 국립대 클라스 크으.
학교마다 간이 컴퓨터 책상을 유심이 살펴본다. 그곳에는 학교만의 특색이 있다. 내 모교는 컴퓨터와 모니터가 있고, 그 아래 작은 레이저 프린트가 있었다. 이곳은 커다란 자판기처럼 컴퓨터와 스캐너가 구비돼 있었다. 크으. 국립대답다.
기숙사들이 촌을 이루고 있었다. 예전에는 그저 촌스럽게 느껴졌던 저 벽돌들이 오히려 감성이 있게 다가왔다. 나도 누군가에게 다시 보였을 때 그렇게 보이고 싶다. 성장한 사람처럼. 건물들은 또 그 자리를 항상 지키고 있다. 나도 누군가에게 항상 그 자리를 지키는 존재가 되어주고 싶다.
독일에 있다 보면 테라스가 있는 건물이 부러웠다. 테라스에 앉아 햇빛을 쬐는 것이 하나의 낭만이었다. 이곳에도 양지바른 곳에 신축된 기숙사가 있었다. 나는 좋은 학교를 다니며 많은 혜택을 입었지만, 늘 국립대학의 넓은 기숙사가 부러웠다. 캠퍼스에서 사는 것은 어떤 느낌일까? 자유를 만끽하는 기숙사생활은 어떨까?
요즘은 교문을 없애는 대신 공원처럼 개방하는 것이 대세가 아닐까 싶다. 글자가 암스테르담의 Ilove Amsterdam을 연상시켰다. 풋. 개눈엔 똥밖에 안보인다. 그런데 개는 똥만 바라보니 얼마나 행복한가. 아는 것은 무엇이고 나는 얼마나 알고 있으며 알아야 할까?
적당히 구경을 하고 배가 고파 국밥을 먹으러 왔다. 기숙사 옆 식당이 있어 그곳에서 먹을랬더니 전용 식당이라 외부인은 불가능했다. 하는 수없이 근처 웃장으로 왔다. 이곳 웃장에는 맛있는 국밥집이 있다.
국밥 하면 부산이라 생각하기 쉬운데, 이곳도 한 내공하더라. 연신 익힌 돼지고기 냄새가 코를 찌르고 있었다. 순대국밥을 시켰더니 쫄깃한 순대가 가득 담긴 맑은 순댓국이 왔다. 초장에 찍어 먹으니 맛이 새콤하고 색달랐다.
볕을 맞으며 걷다보니 망각이 되었다. 추억과 기억은 이곳에 모두 두고 오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