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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상남 Jan 26. 2019

#2. 뿌리를 찾아서

10여년이 지나 모교를 둘러보았다.

https://youtu.be/NXt-YY3Xt8Q


레포트를 쓰느라 한 달밖에 없는 방학의 절반을 할애했다. 모든 것을 내려 놓지 못한 자유는 알 수 없는 아쉬움을 가져다 준다. 


날씨가 맑았다. 아무런 생각 없이 햇빛을 즐기다가 문득 모교를 가보고 싶었다. 


중학교를 시작으로 모교를 찾아가 보았다. 바쁘고 정신없이 시간이 흐를 때 그 시간을 인식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발자취를 돌아보는 것이다. 


쪽문으로 들어와 주차장에 차를 대고 내렸다. 이곳은 점심시간 할 일 없던 남학생들이 은근 여학생들에게 어필하며 수다를 떨던 곳이었다. 사춘기의 남여가 함께 다녔던 우리 학교는 늘 시끌벅쩍했다.


학교가 너무 썰렁해 위층으로 가지 못하고 1층에서만 있었다. 우리 때 쓰던 신발장이 그대로 있엇다. 저 회색 돌도 그 자리에 있다. 단지 초록색의 페인트만 칠해져 있을 뿐이다. 내가 독일에 다시 돌아가면 산뜻한 민트향의 페인트를 칠하듯 새 학기를 보내고 싶다. 



회색빛이 강했던 교정이 어느새 밝은 주황색으로 바뀌었다. 교복을 입고 1층 과학실로 향하던 길.


그 길 위로 구름다리가 있다. 이제는 많이 생각나지 않는다. 항상 "뛰어 다니지 마라"라는 말을 들었을 뿐이다.


갖가지 교실들이 새로 생겼다. 교육의 질이 높아졌지만 한편으로는 학생수가 줄었기 때문이다. 내가 학교다닐 때 한 학년에 8개반이었는데, 지금은 3개반밖에 없다고 한다. 출산율이 줄어드니, 산골의 우리 학교는 더욱 찬밥신세다. 

왼쪽 좁은 골목으로 들어가면 작은 컨테이너 박스 안에 매점이 있었다. 컨테이너의 창문으로 손만 넣어 간식을 샀었다. 10여년 전엔 지붕이 없던 쓰레기장에 지붕이 생겼다. 학교의 주사 아저씨께서 늘 직접 들어가 못다한 분리수거를 하셨던 기억이 있다. 세월은 흘렀지만, 보도블럭이 새로 들어와 더 세월이 흐른 것처럼 느껴진다.


학교는 학생이 주인인데 왜 중앙현관을 사용하지 못하게 할까? 늘 그것이 궁금했다. 한적한 학교에 내 또래 젊은 여선생님들이 모여있었다. 그 선생님들은 나를 의식했다. 삐죽삐죽 나를 쳐다보다 사무실에 들어가더니 왠 나이든 남자 선생님이 오셨다. "누구십니까?", "아 네, 졸업생인데 모처럼 둘러보고 싶어서요." 


알고보니 우리 때 계셨던 선생님이 다시 들어오셨다. 학생수가 줄어들었음을 안타까워 하셨다. 만수무강하십시오.


학교에서 가장 신나는 시간은 점심시간과 체육시간이었다. 우천도로를 따라 정해진 순서대로 반별로 내려갔다. 왜 학교에 있는 우천도로들은 디자인과 제질이 모두 같을까? 궁금하다. 


체육시간은 운동도 재밌지만 몇 안되는 여학생을 보는 시간이었다. 우리 학교는 분명 남녀공학이지만 분반이어서 교류가 없었다. 근데 졸업할 때가 되니 많은 여학생 친구들을 사귀고 있었다. 어메이징-. 쥐구멍에도 볕들날 있고,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 어떻게든 방법은 찾아내기 마련이다. 원하면 말이지.


비가 오면 바닥에 물이 고였던 곳인데 새 보도블럭이 깔려 빗물걱정은 없을 것 같다.


빨간 벽돌 자리에 매점이 있었다. 매점은 사라졌다. 학생수가 줄어들고 학교가 변하고, 사회가 변했다. 우리도 그렇게 조금씩 변해가고, 변화에 적응할 것이다. 치열한 순번 경쟁을 하던 중학교 친구들은 다 무얼하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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