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년이 지나 초등학교 모교를 찾아가 보았다.
중학교 모교를 우연히 찾아가니 더 먼 과거로 가보고 싶어 초등학교 모교도 방문했다.
나는 5년간 A학교를 입학하여 잘 다니다, 신도시가 생기면서 강제로 이주한 뒤 1년 다닌 학교에서 졸업을 했다. 1회 졸업생.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남다른 생각도 든다.
초등학교 때 나는 가방 속에 책이 아니라 야구 글러브, 축구공 등 각종 운동기구를 넣고 다녔다. 축구는 그때 최고의 놀이였다. 누구와 만나도 함께할 수 있었던 축구... 나이가 들면서 오히려 사람을 만나는 것이 때론 두렵기도 하다.
운동 후 시원한 수돗물 맛은 그 어떤 물보다도 상쾌했다.
본관 옆 구름다리가 있다. 꾸불꾸불한 것이 실내화 축구를 하기 안성맞춤이었다. 유리가 깨지지 않게 테니스공을 친구들과 차고 놀았다. 6학년은 권력의 상징이어서 독점했다.
"우리는 미래의 주인공" vs "정숙"
현재는 정숙해야 미래의 주인공이 되는 것인가. 1회 졸업생이지만 난 아직 미래에 발을 제대로 디디지 않았다. 그 미래는 언제일까? 지금일까? 더 먼 미래일까?
나도 모르는 우리말들이 많았다. 우리 땐 없었는데.
반가웠다. 콜렉트콜이 아직도 있었다. 이쁜 곰돌이 인형이 있었다. 우리 땐 전용 전화기만 있었는데. 나는 이 전화기를 이용해 엄마와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엄마 저예요, 받으세요!"
초등학교 3학년, 공교육에서 처음으로 영어 수업이 시작됐다. 지금은 많은 학생들이 더 높은 수준을 더 이른 시기에 접한다.
우리 학교의 장점이라면, 당시에 새로 지어 골마루가 넓었다는 것이다. 교실과 신발장이 넓으니 자연스레 골마루는 탁트익 제2의 운동장이었다. 초딩들이여... 뛰어놀거라...
우리 때 가구를 아직도 사용하고 있었다. 신발장 곳곳이 무너지고 구부러졌다. 나도 나이가 들면 그렇게 될 것이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건재하는 것이 현존재다. 세월이 흘러도 하얀 실내화는 여전히 사용되는 것처럼.
6학년 2반이었던 우리 반 자리를 기억을 더듬어 찾아냈다. 지금은 6반이 들어왔다. 학생수가 많이 줄어있었지만 학급은 꽤나 많다. 아마 아파트가 많은 동네라 그런 거 같다.
우리 때 쓰던 칠판과 가구들이 눈에 보였다. 17년이 지났다. 그래도 잘 보존되어 사용되고 있었다.
"꿈꾸는 배움터"
학급 게시판은 그 학급의 특색을 보여주던 초딩의 전유물과 다름없다. 꿈꾸라는 말을 우리는 초등학생 때부터 20대까지도 듣다 못해 30대에도 여전히 입에 물고 있다. 꿈은 그렇게 위대한 것이다.
여러 복도가 있다. 내가 주로 친구들과 이야기를 하던 곳이다.
삐그덕 삐그덕 골마루에서 소리가 났다. 처음 지었을 땐 소리가 나지 않았다. 요즘은 골마루가 많이 없어지는 추세다. 골마루를 밟으며 걸어 다니니 더욱 향수를 자극하는 듯했다. 인간은 오감을 통해 기억을 해낸다.
정말 신기한 것은 더러운 실내화가 없었다는 것이다. 우리 땐 정말 때가 많이 묻었는데.
저 멀리 학교가 바로 5년을 다닌 학교다. 우리 학교가 새로 지어지고, 강제로 이주하면서 절반의 친구들과 헤어지게 되었다. 몇 발자국 안 떨어진 우리는 점심시간에 이쪽저쪽 운동장에서 만나 축구를 했다. 그리고 급식표를 공유해 이곳저곳에서 맛있는 음식을 찾아 급식을 먹었다. 비망록이다.
떠나기 전 아쉬운 마음에 문을 열어 다시 찍어보았다.
현악 4중주의 현장이 있었던 것 같다. 요즘은 학교에서 정말 다양한 프로그램을 제공한다. 물질은 풍요로워지고 배움도 깊어지고 다양성도 그만큼 증가하는데 왜 사회는 늘 불행을 외치고 있는 것일까?
나는 합주부에서 심벌을 연주했고, 방과 후에는 플루트를 저렴하게 배워 학예회에서 공연을 했다. 그런데 지금은 무려 오케스트라가 있고, 문화예술회관에서 정기공연까지 한다. 때론 이들이 두렵기도 하다.
출발 전 화장실을 들렀는데, 재수학원에서도 보지 못한 종이들이 붙어있었다.
삐뚤빼뚤한 글자는 초딩의 전유물인데, 그 옆의 영어문장들은 씁쓸했다. 우리는 그토록 오랜 시간 영어를 공부하고 투자를 아끼지 않는데, 왜 한국사람들은 영어를 두려워하는가? 초딩들을 쉬게 하자.. 소리 없는 아우성을 외쳐본다. 이 아우성이 실재하는 외침이 되기 위해 나는 오늘도 공부를 한다.
큭큭. 무슨 ~날만 되면 포스터를 적었다. 항상 궁금했다. 도대체 이걸로 어떻게 해야 상을 받지?
미래를 상상하는 그림이었던 것 같다. "통일된 국가 퍼지는 웃음"
복잡한 이해관계와 정치논리를 벗어던지고 이들처럼 쉽게 외치고 싶다.
유독 앞쪽에만 많이 벗겨져 있었다. 골문에서 격한 몸싸움이 많았던 걸까?
누군가 면접을 하러 왔나 보다.
학교의 주인은 학생인데, 졸업생이나 그 현황은 어디에도 없고, 어른들의 '귀빈'들만 적혀있었다. 어른들의 세계는 그런 거야. 언제쯤 우리는 한 줌밖에 되지 않는 어깨의 힘을 뺄 수 있을까? 그것이 가능할까? 아이들의 눈높이로 돌아가는 것은 안 되는 걸까? 생각에 잠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