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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상남 Jan 27. 2019

#4. 여행 (2)

부산 곳곳을 누비다

https://youtu.be/0b5uulBrDrs

Parasyte OST - Next To You, Youtube



지난 학기 나는 청운의 꿈을 품고 대학원에 진학했다. 두 달간 어학원을 다니며 워밍업을 했고 학기 시작과 동시에 새로운 친구들을 만났다. 친구들과 첫 주, 비가 오는 어느 날 캠퍼스에서 맥주파티를 열었다. 아쉽게도 그것이 처음이자 마지막 파티였다. 우리는 너무 바빠 놀러 갈 엄두를 내지 못했다. 


부모님과의 시간을 보내고, 한국에 들어와 가장 친한 친구들을 만났다. 오랜만에 보는데 어제 본 사람들 같냐? 짜슥들. 


바쁜 친구들을 억지로 데리고 부산으로 내려왔다. 역시 인생은 명분이다.  "마, 외국에서 친구가 왔는데 놀러 함 안 가나?" 

부산은 대도시면서 소도시의 아날로그가 공존하는 매력 있는 도시다. 나는 서울보다 대구와 부산에서 여행하기 더 좋다.



깡통시장으로 향했다. 너무 넓어서 어떤 골목에 무엇이 있었는지 한참 헤맸다. 

"부산 하모 어묵 아입니꺼"

옛날엔 어묵이 참 흔한 음식이었는데, 지금은 몸값이 많이 오른 프리미엄 간식으로 탈바꿈했다. 

꼴찌가 1등이 되는 세상이 진정 자유로운 세상이다. 반대로 1등이 꼴찌가 될 수도 있으니, 늘 우리는 경계할 수밖에 없다. 


여기저기서 생선이 있었다. 서울에서 귀한 대접받는 생선들이 남부지방엔 지천에 널렸다. 

예전에 부산에 놀라왔을 땐 다른 시장에서 망 안에 든 황소개구리도 본 기억이 스쳤다. 신기한 동물 없나 살펴보았다. 너희들은 어쩌다 줄 서서 진열된 신세가 되었니? 


시장에 가장 먼저 온 이유는, 맛있는 음식들이 많기 때문이다. 점심도 먹어야겠고, 우리는 조금씩 다양한 음식을 맛보기로 했다. 줄 서서 먹는 한 분식집에 들어가 김밥과 당면을 시켜 먹었다. 음식의 맛은 큰 차이가 없지만, 허술한 탁자 위에서 뜨거운 국물 한 입하니 이곳이 진정 전통시장인가 보다. 똑같은 음식도 분위기에 따라 다르게 느껴지듯, 폼생폼사라는 말이 떠올랐다. 


녹두전과 파전이 많이 팔리고 있었다. 전도 빼먹을 수 없어서 한 점했다. 우리와 같은 생각을 가진 관광객이 많은지 저렴한 가격에 적은 양으로 팔고 있었다. 한 번에 다 먹으면 시장을 둘러보는 의미가 줄어든다. 우리도 그렇게 행복을 조금씩 떼서 음미한다. 행복이 한꺼번에 밀려오는 것보다 투쟁과 같은 삶 속에서 잊지 않고 조금씩 찾아오는 것이 훨씬 살맛 나는 인생이라고 생각한다. 



불맛 탑재한 와규를 얹은 초밥이었다. 셋이서 먹기에 안성맞춤의 양과 가격. 이젠 서른이 돼버린 아재들이 먹으니 크으, 호로록 넘어가는 것이 소주 각 이다. 소소한 음식으로부터의 행복이 여행의 행복이다. 



자갈치 시장을 향하다 젊음의 거리를 지나쳤다. 유명 포장마차들이 많았다. 가는 길에 웬 잉꼬와 십자매들이 있었다. 우리도 세명인데 너희도 셋이구나. 어릴 때 열심히 십자매를 기르던 기억이 스쳤다. 


부산은 역시 부산이었다. 곳곳에 특색 있는 포장마차들이 있었다. 사람들도 많았다. 이 사람들은 적어도 내 인생에 한 번 스친 사람들이다. 그렇게 스친 사람들은 사라져 간다. 내 삶에도 그렇게 스쳐 사라진 사람들이 참 많이 있었다. 



골목을 더 들어갔다. 어떤 호떡집이 있었는데 방송에 나왔는지 유독 사람들이 줄을 많이 서 있었다. 내 눈엔 사람 없는 옆집 호떡이랑 같아 보이던데. 


사람 구경이 제일 재밌었다. 유럽에 처음 갔을 땐 사람이 없어서 좋다가, 지금은 사람이 없어서 아쉽다. 상황은 똑같은데 사람은 늘 다른 생각이 드는 이기적인 존재다.

그라탱이면 사죽을 못쓰는 나지만, 참았다. 휴. 지난 학기 살이 급격하게 찌며 건강이 안 좋아졌다. 한 달간 맛있는 음식은 먹고 싶고 살은 빼야 되고 머리 참 많이 썼다. 


수제 우유였다. 기똥차게 맛있었다. 홍차 우유를 마셨는데 은은한 홍차 향과 우유의 달콤한 맛이 기가 막히게 조화로웠다. 요즘은 저렇게 아날로그 감성 넘치는 병에 우유를 넣어 높은 가격에 판매하는 것이 유행인가 보다. 



어릴 땐 그토록 싫었던 책이 지금은 정말이지 좋다. 보수동 책방 골목을 가니 사람들이 많았다. 책은 정말 팔릴까? 이렇게 모여있는 책만 봐도 무언가 깊은 향수가 느껴진다. 수학의 정석, 해리포터, 부의 미래. 내 어릴 때 나왔거나 그때도 유행했던 책들이 이젠 오래된 중고가 되어 있었다. 



검색을 하다 남천동의 한 곰장어 집으로 왔다. 몸보신에는 최고다. 


"마! 느그 서장 남천동 살제?! 내가 어으? 느그 서장이랑 어으? 밥도 묵고 어으? 술도 마시고 어으?"

그 남천동이다. 옛날엔 서울의 명동과 같은 부촌이었다고 한다. 

괜시리 영화대사가 생각나 친구들 앞에서 걸쭉한 경상도 사투리를 연신 뽑아내 보았다. 


크으

주인 할머니께서 너무 친절하셨다. 그래서 음식이 더 맛있었다.


나는 술을 끊었고, 창주는 술을 당분간 못 마셔 봉이만 소주 한 병을 시켰다. 역시 너한테 술 걱정하는 것은 난센스다. 


중(中) 자 곰장어가 순식간에 사라지고 밥을 볶았다. 주인 할머니께서 밥이 없어 옆 집에서 공깃밥을 급히 빌려오셨다. 


남천동 끝자락엔 광안대교와 해안도로가 있다. 그 길을 따라가려고 했는데, 생각 없이 들어선 길이 아파트밖에 없어 택시를 탔다. 광안 대교가 보였다. 이상하게 서울 사람들은 "광안리 등킨 드나쓰"라고 기억을 한다. 주위를 보았지만 던킨 도너츠는 보이지 않았다. 



파도가 밀려들었다. 



그 옆에 유명한 단팥빵 집이 있었다. 어릴 때 맛없던 단팥이 이젠 달콤하고 맛있게 느껴졌다. 입맛이 변하는 걸까 내가 변하는 걸까. 빵 하나를 맛보고 팥빙수를 시켰는데 정말 맛있었다. 전국으로 택배도 보내고, 세상 돈 벌 방법은 다양하다. 


숟가락의 긴급한 움직임. 먹는 데는 위아래가 없다. 먼저 먹는 놈이 임자다.


아디오스. 

이젠 서른이 된 아재(진)가 되었구나. 

또 열심히 살다가 다음 방학 때 만나자. 고추튀김들아. 


우리는 코인 노래방으로 갔다. 인후염 있는 창주를 데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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