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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상남 Mar 13. 2019

#5. 짧은 도보 여행

장학재단 세미나를 마치고 코에 바람을 넣었습니다

Youtube의 한 재즈 음악 모음




정신없이 논문만을 읽으며 단조로운 일상을 보내는 중, 멀리 슈투트가르트에 다녀왔다. 장학재단의 네트워크를 위한 세미나가 있어서다. 우리 재단에서는 의무적으로 참여해야 하는 1주일짜리 세미나도 있지만, 그 외 자율적으로 참여하거나 조직하는 세미나도 존재한다. 많은 학생들이 스스로 테마를 정해 세미나를 조직하고, 재단으로부터 행사를 위한 자금을 지원받는다. 이래저래 참여하는 사람들은 숟가락 들고 밥상머리에만 앉으면 되기에 편리하다. 


이번 세미나는 1박 2일의 짧은 세미나였지만, 꽉 채운 일정으로 알차게 다녀왔다. 덕분에 나와 비슷한 외국인 장학생들도 많이 사귀게 됐다. 다음 학기에도 참여해보기로 하며 여행을 위한 기록을 시작하겠다. 






슈투트가르트는 바덴-뷔르템베르크 주의 주도이다. 몇 년 전 단 한 번 여행을 한 적이 있었는데, 깔끔하면서도 오래된 성이 잘 정리돼 좋은 인상을 받았다. 세미나를 참여하면 보통, 정치인을 만나거나, 기관을 방문하기도 하며, 대학의 교수를 초빙해 특정 주제에 대한 특강을 듣고 토론을 한다. 첫 째 날 우리는 미디어 전문대학에 방문해 젊은 교수로부터 „Herausforderungen des Lehrens im 21.Jahrhundert und Weiterentwicklung des Hochschulbildungssystems “라는 주제의 강의를 들었다. 번역하면 "21세기 가르침의 도전(*위기)과 고등교육 시스템의 지속적인 발전"정도가 된다. 


주된 내용은 소위 "4차 산업 혁명 시대의 미래에 필요한 덕목 및 그를 위한 교육과정의 발전"이었다. 



사진이 별로 없네. 슬라이드에 5년 만에 우리가 살아가면서 필요한 top 10 skills가 다소 바뀌고 있음을 보여준다. 참 좋은 말들인데, 나는 얼마나 생활 속에서 그리고 공부 속에서 위와 같은 사고를 가지고 살았을까? 복합적인 문제 해결 능력과 비판적 사고, 창의력, 협력 등이 앞으로의 시대에서 더욱 부과될 것이라는 내용이다. 50페이지가 넘는 슬라이드가 있었는데, 강의에 몰입하느라 사진을 하나밖에 찍지 못했다. 


같은 공간 다른 느낌. 독일의 건축과 실내 인테리어는 그 특징이 디테일에 있다. 전체적으로 화려하기보다, 기본의 바탕 위에 작은 요소를 가미한다. 강의실의 입구를 유리 칸막이로 막아 공간감을 주었다. 우리의 평범한 일상에도 이렇게 작은 즐거움이 톡톡 쏘듯 하나씩 있을 때 결국 큰 행복을 느낀다. 


콘크리트 천장에서 줄을 내려 펜던트 등처럼 실내 형광등을 달았다. 하나씩 떼어보면 정말 평범한 직선에 불과한데, 비싸 보이지 않는 소재들을 배치하니 하나의 기하학적인 재미가 느껴진다. 내가 느낀 독일스러움이었다. 


또 다른 인테리어의 느낌은 대칭성을 파괴한다는 것이다. 노출된 콘크리트에 같은 소재의 등을 달았지만, 그 크기와 위치가 대칭적이지 않아 무언가 보는 사람의 미적인 감각을 자극하는 듯하다. 


1시간의 강의가 끝나고 1시간의 토론 시간이 있었다. 독일에서 토론은 필수 요소다. 질문을 하는 것도, 답변을 하는 것도 거침이 없다. 공부하는 학생에게 이같은 자세는 어쩌면 당연한 것이 아닐까? 당연한 것을 한국 사람들은 많이들 잊고 산다. 


마지막 세션에서 나는 삘을 받아 여러 질문을 날렸다.

"한국에서 소위 4차 산업혁명을 겨냥해 코딩 교육을 의무화했습니다. 이에 대해 어떤 평가를 하십니까?

"코딩은 반드시 배워야 하는 겁니까?


교수님께서 말씀하셨다.

"모두가 코딩을 잘 다룰 줄 알아야 할 것입니다. 그것의 시대의 흐름입니다. 다만, 사람마다 요구되는 코딩의 실력은 다를 수 있습니다. 그러니, 교육과정에 반영하는 것은 난이도를 고려할 필요는 있어 보입니다."


그래, 우리나라에서만이 아니라 이곳에서도 코딩의 중요성을 피력한다니, 덮어둔 코딩을 열심히 해야할 것 같다. 통계에 국한될테지만 말이다. 



첫 날 일정으로 주 의회에 다녀왔다. 내부는 촬영이 허가되지 않아 바깥에만 찍었다. 비가 오는 와중에 우리가 도보로 이동하니 해가 쨍쨍하게 떴다. 주 의회는 슈투트가르트에서 가장 문화적으로 번성한 거리 한 가운데에 있다. 옛 궁전과 아름다운 호수, 그리고 각종 발레 공연장, 연극장 등 한눈에 보아도 유럽스러운 느낌이 있는 곳에 의회가 있었다. 의회의 건너편 곳곳에 의원들이 업무를 보는 집무실이 있다. 


새로 지어진 건물이었음에도 주변 환경과 위화감이 전혀 들지 않았다. 오히려, 건물 그 자체로서 구경거리가 되는 것이 특징이다. 1층에 식당 겸 커피숍에는 사람들이 북적였다. 전망 좋은 잔디밭과 호수 덕분일까? 


우리의 미적인 감각과 미에 대한 인식은 이에 비하면 한참 모자르다. 새로 짓는 관공서나 시청, 구청 등도 많은 돈이 들어 화려하게 짓지만 어쩐지 관광으로 가고 싶은 생각은 별로 들지 않는다. 우리는 그런 점에서 건축이 부여하는 하나의 선택적 옵션을 버리는 것이 아닐까?


지하로 향하는 계단이 있었고, 그곳에서부터 의회를 둘러보았다. 


친구 한 명의 뒷모습에 담겼다. 의회는 대단히 깔끔했다. 이후 촬영이 금지되었지만, 우리는 안내원의 가이드를 받으며 의회 회의장으로 들어가 각자 앉은 자리의 정당의 입장을 대변하듯 역할놀이를 하기도 했다. 



다음날 나는 처음으로 독일의 미대를 경험하게 됐다. 학부시절에도 미대와 같은 건물을 썼었지만, 무언가 그들은 우리와 다른 세계에 있는 것 같았다. 공간도 분리되고, 사람도.. 그렇게 우리는 제 갈길을 간다. 


노란 공의 표정이 외지인의 방문에 사뭇 놀란 듯 익살스럽다.



여느 작업실과 같이 지저분했다. 한 가지 다른 점이 있었다면, 햇빛이 잘 들어 작업실이 환해서 좋았다. 늘 느끼지만, 나무색, 아이보리, 하얀색 등은 참 잘 어울리는 색상이다. 밝고 긍정적인 에너지를 주는 색깔이랄까? 



콩깍지가 씌었는지 미대의 느낌은 무언가 좋아 보였다. 다른 친구들도 미대를 보고 환호를 날렸다. 

"이런 공간 너무 좋아!"라고 연신 외치는 팔레스타인 출신 친구도 있었다.

두루마리 휴지 같은 기다란 연습장에 무언가 선으로 사람의 형태를 부분적으로 그려놓았다. 똑같은 선도 왜 미대생이 하면 예술같고, 내가 하면 낙서가 되는 느낌이지?



참 벽에 붙은 사진도 어쩜 이렇게 유럽스러울까? 어디선가 보기는 많이 본 장면 같다. 작가는 이 사진을 보며 무엇을 떠올린 걸까? 몽롱함? 서로 다른 색상의 향연? 사진들에서 영감을 받으며 작업을 했을 작가의 모습을 상상해 보았다. 건조한 느낌의 소품들이 유럽스러움을 더해준다. 



둘째 날 우리들만의 발표와 토론을 위해 미대 출신 장학생이 공간을 내어주었다. 실제 수업이 이루어지는 교실이라고 한다. 나는 이곳에서 짧은 발표를 했다. 세미나에서의 첫 발표였다. 한국인 독일유학생에 대한 다양한 통계자료를 가져와 시각자료로 만들어 전 세계에서 온 장학생들 앞에서 발표했다. 토론이 없을 것이라는 내 예상과 달리 생각보다 많은 친구들의 질문을 받았다. 



어디선가 읽은 적이 있다. "공간의 층고가 높으면 창의력에 도움이 된다"

맞는 말이다. 굳이 창의력이 아니어도, 사람은 널찍한 공간에서 훨씬 더 안정감을 느끼는 것 같다. 

이곳의 교실도 우리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높은 천장을 가지고 있었다.


"똥 빼면 버릴 게 없는 독일"

정말 독일의 장점 중 하나는 '못하는 게 없다'는 것이다. 학문이면 학문 건축이면 건축. 이곳은 슈투트가르트에서 유명한 근대건축 거리이다. 콘라드 아데나워 총리가 프로젝트를 시작해 지금까지도 잘 유지되고 있는 이 거리에는 다양한 건축가가 참여해 각자의 특성을 반영한 근대 건축물들이 즐비하다. 트렁크를 끌고 걷는 바람에 사진을 많이 찍지 못했는데, 마침 르 꼬르뷔제의 작품이 있어 한 컷 담아보았다. 유럽의 건물들은 밝은 색상에 창살이나 기둥 등이 철제로 돼 포인트 색상을 잎히는 근대/현대 건축물들이 많은 것 같다. 


"바이센호프 무제움": 바이젠 호프라는 지명에 있는 박물관이라는 뜻이다.

"꼬르뷔지에의 집에서" 라고 그 아래에 적혀있다. 



사실 꼬르뷔지에 집 보다 이 집이 훨씬 좋았다. 사진을 너무 못 찍었다. 얼핏 보면 무슨 교도소 외벽에 있는 문처럼 생긴 것 같은데, 방갈로우 형식의 주택이었다. 사람들이 실제 관리단으로부터 임대를 받아 살고 있다. 내부 공간은 어떨까? 각진 기하학의 향연이 펼쳐지지 않을까? 쇠문을 열고 들어가면 몇 평 안 되는 마당이 있고, 이내 2층으로 이루어진 방갈로우가 있다. 기능적이면서도 아기자기한 맛이 있어, 1-2인이 살기 안성맞춤인 듯하다.


많은 건축학도들이 사진기를 들고 견학을 왔다. 좀 더 열심히 둘러볼걸. 이 거리의 정치적, 사회적 의미만을 좇다 보니 건축물 자체를 감상할 시간이 부족했다.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맑은 날 시원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들고 이곳저곳 고요함을 즐기며 도보여행을 이곳에서 다시 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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