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자상남 Feb 01. 2019

딸기라떼의 추억

기숙학원에서 솟아난 온정

2009년 말에서 2011년 초까지 정말 물처럼 많이 마신 음료수가 하나 있다. (덕분에 난 20대 초반 역대급 몸무게를 기록했다.) 학원에는 층 별로 자판기가 있었다. 가격이 딱히 싼 편은 아니었다. 보충수업과 질문을 하루 종일 받다 보면 목이 굉장히 마르기 마련이다. 그럴 만도 한 것이, 질문을 받으면서 설명을 해줄 때 거의 고함에 가까울 정도로 고래고래 소리가 크게 뻗어 나온다. 의도하진 않았는데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그렇게 나왔다. 


많은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쉬는 시간 없이 일을 지속하다 보면 갈증은 물론 몸 안의 에너지가 어딘가로 쭈욱 빨려 나가는 것을 느꼈다. 피로가 축적되는 것이다. 윈터스쿨이 중반기를 넘어가면서 아이들은 질문에 탄력을 받는다. 질문 자체가 어색했던 친구들도 있었고, 단순히 문제풀이만 요구했던 학생들은 이제 자기만의 '이야기'를 내어 놓는다. 조교들은 시간뿐만 아니라 식사시간까지 쪼개서 바쁘게 일했다. 욕심이 많아진 학생들의 니즈를 충족하기 위해서다. 


여느 때처럼 열심히 일 하다가 우연히 학원 복도 한 구석 자판기에 있는 '딸기라떼'라는 웬 음료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이전에는 한 번 도 마셔본 적 없는 음료였다. 800원이라는 무언가 애매하고도 꽤나 비싼 돈을 모험 삼아 지불했다. 캔 하나가 경쾌한 소리를 내며 떨어졌다. 한 모금 맛을 보았다. 아아니! 이럴 수가? 뭐가 이리 맛있노?



학원 로비 전경, 왼쪽이 그 자판기



내가 재수를 할 때나 수학 조교로서 학생들을 가르칠 때 주된 생활권이었던 학원 내 2층 로비다. 사진에는 보이지 않지만 좌우에 긴 복도가 있고 복도를 따라 각 학급들이 나온다. 사진에 보이는 저 자판기를 애용했다. 문득 학생들의 먹거리를 저장할 수 있는 냉장고도 눈에 들어온다.


무언가에 몰두하면서 체력을 많이 소진하면 당분이 몸에서 빠져나면 단 것이 당긴다는 것을 이때 처음 느꼈다. 군대에 있을 때 초코파이와 같은 단 음식을 극도로 찾는 것과 비슷한 것 같다. 한 모금 따악! 마시면 신기하게도 그 즉시 갈증과 단맛에 대한 열망을 한 방에 날려주던 딸기라떼. 너로 정했다! 내 동료가 돼라! 빠져나가는 돈이 문제랴. 그 날부터 나는 하루에 적어도 2개는 꼬박꼬박 딸기라떼를 마셨다. 한 번은 내가 마신 음료의 빈 캔들을 모아보았는데 그 숫자가 꽤 됐다. 동시에 살이 찌는 것은 이미 '아웃 오브 안중'이다.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아이들과 깊은 친분을 쌓을 수 있다. 아무리 선생님으로서 공부를 위해 공과 사를 구분할지라도 드는 정은 막을 수가 없는 법이요, 들려오고 나가는 말을 붙잡을 수는 없다. 아이들은 어디서 구했는지 각종 먹거리와 손수 적은 쪽지 혹은 장문의 편지도 주고 가곤 했다. 쑥스럽지만 고맙다는 말도 많이 해주었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눈 아이들은 우리가 나눈 대화의 시간과 연결된 인연의 끈에 대해 더욱 감사함을 느끼곤 했다. 나 또한 마찬가지다. 


종종 아이들은 질의응답을 와, 음료나 약간의 먹거리를 먼저 주며 인사를 건넸다. 나도 모르게 솜사탕 가게 앞의 천방지축 어린아이 마냥 입이 헤~ 벌어지곤 했다. 학생들 입장에서 구하기도 어려운 것을 신경 써서 구해주었으니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돈이 없어서가 아니다. 정성이다.


어느새 아이들은 내가 많이 마시는 것을 보고, 약속이나 한 듯 나에게 딸기라떼 뽑아주었다. 공부 이외 아이들과의 정서적 유대, 우정을 음료를 통해 공유했다. 사방이 꽉 막힌 산 꼭대기 기숙학원에서 하나씩 건네주던 편지와 여러 먹거리들. 기억이 참 많이 난다. 함께 한 시간들이 얼마나 즐거웠고 또 나와 그 아이들이 합심하여 얼마나 열심히 했는지를 알려주는 것이니까. 아! 그리워진다. 그 순간순간들.




자상남의 2010년 생일, 아이들의 선물과 작은 편지들



바로 이렇게. 각종 먹거리와 그리고 그 안에 깨알같이 적혀있던 정성스러운 편지들은 나를 너무나 감동시켰고, 
더욱 내가 힘을 더 낼 수 있던 원동력이었다. 이것은 비단 2010년의 윈터뿐만 아니라 일을 완전히 마무리했던 그 순간까지 반복되었다. 사람은 달라져도 진심은 늘 통하는 법이다. 그래서 나는 그 시절을 기억해낼 수 있는 것이다. 


항상 다음과 같은 상황이었다: 어떤 학생들은 들어오면 먼저 무언가를 주고 질문을 시작한다. 그것은 내가 학생일 때 써먹던 방법이었다. 아무 이유 없다. 그냥 주고 싶었다. 고맙기도 하고. 그런 마음이 학생들로부터 나에게도 전해진 것 아닐까? 


또 어떤 학생들과는 1) 15분간의 치열한 질의응답을 마친다. 2) 이번 건도 열심히 잘 해결했다고 나와 학생은 눈길을 주고받으며  보람 있었다는 듯이 한숨을 휴~ 내쉰다. 3) 그런데, 학생들(대부분이 여학생들이었다만)이 자리를 일어나기 전에 히죽히죽 웃으면서 꽁기꽁기 무언가를 꺼낸다. 4) 궁금함에 나도 쳐다본다. 그랬더니, 나한테 음료와 편지 혹은 먹을거리를 준다.


"쌤 이거 하나 드세요 ㅋㅋ"

얼떨결에 나는 대답했다.


"어어 땡큐!ㅋㅋㅋ 잘 가!"

"네, 안녕!"


그렇게 학생들은 자기 교실로 돌아간다. 나는 다시 기다라고 있는 다른 학생과 새롭게 '어 안녕!' 수줍게 인사를 나누고 질문을 받아준다. 매주 일을 하다 보면 나한테 오는 아이들은 항상 빠짐없이 계속 와준다. 질문을 위해서 오기도, 상담을 위해서, 그리고 그저 이야기를 털어놓고 싶어서 나를 찾아왔다. 


생각해보면 나도 선생님들께 한 번씩 커피나 다른 음료를 자판기에서 뽑아서 간 적이 있었다. 자주 보지만, 그럼에도 매번 감사와 애정을 손쉽게 표현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것을 몸소 체험해 보았기에 그렇게 무언가를 가져다주는 동생들 한 명 한 명에게 더욱 애정이 갔다. 그렇게 척박한 환경에서(?) 오며 가던 그 자그마한 것, 하지만 너무나 거대했던 정. 아. 그립다!

매거진의 이전글 수업 준비 -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