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업 별로 가르칠 수학 교과 단원에 대한 수요를 조사했다. 무턱대고 우리가 하고 싶은 수업을 진행할 순 없다. 학창 시절의 경험을 살려 학생들이 처한 시기와 체감 난이도를 고려하여 리스트를 작성했다. 우리에게 어려웠던 부분은 대부분 학생들에게도 어렵기 마련이다. 자원한 수학 조교들의 수에 맞게 얼추 단원들이 추려졌다. <통계, 수열의 극한, 삼각함수> 그 외 이과 단원 몇 가지가 후보로 올라왔다.단원이 정해졌으니 조교들이 그중 하나를 선택했다. 나는 전 학년 대상의 공개수업인 <통계> 단원을 선택했다. 정리한 리스트를 학생과 실장님께 제출하였다.
얼마 후 학생과에서 공문을 보냈다. 예상되는 수강생들의 수와, 수업 일정과 강의실 번호, 그리고 누가 주로 수강을 할 것인지에 대한 정보가 들어있었다.
모든 조교가 똑같은 모양의 열정을 드러내지는 않는다. 또한 모든 조교가 똑같은 열정을 가지고 있지는 않는다. 더욱이 중요한 것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기준을 남에게 강요할 수도, 해서도 안된다. 그것이 옳든 그르든, 높든 낮든 말이다.
이왕 하는 것 내가 가지고 있는 작은 것이라도 아낌없이 주고 싶었다. 처음이지만 왠지 난 학생들이 정말 좋았다. 그 아이들도 나를 그만큼 믿고 의지했다. 이 기분을 글로 제대로 형용하기란 어렵다. 늘 무언가 해주고 싶었고, 그 일에 열심히 임하고 싶었다. 결국 나는 이 일이 재미있었다. 사람은 재미를 느끼면 몰입하게 되고, 몰입하면 그가 가지고 있는 창의력을 뿜어낸다. 그런 나와 비슷한 생각을 공유하는 조교들이 있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그 친구들과 자연스럽게 더욱 깊은 관계를 맺게 되었다. 나는 지금도 그들과 인생의 절친으로서 함께하고 있다.
단체 합숙을 하던 조교들이 언젠가부터 세네 명씩 나뉘어 뿔뿔이 흩어져 잠을 자게 되었다. 학생들이 추가적으로 입소하면서 우리들의 숙소를 내줘야 했다. 각별히 친해진 조교들과 삼삼오오 모여서 자는 것이 가능해졌다. 소규모로 숙소를 쓰다 보니 이젠 일에 관한 이야기들을 늘 그들과 나누게 되었다. 매일 밤 그 친구들과 업무가 끝난 뒤에도 교무실에 남았다. 산 꼭대기 위에 숲으로 둘러싸인 이 학원에서 특별히 할 것도 없긴 했지만, 우리는 매일 아이들에게 못 풀어준 문제를 서로 돌려 풀어보았다.
우리는 아무도 없는 어두컴컴한 교무실에 둘러앉아 그날 있었던 이야기들 나누고, 자기가 맡은 학생들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면서 여가시간을 보냈다. 어려운 문제들은 돌려 풀며 더 나은 풀잇법을 만들기도 했다. 집에 전화를 하는 사람, 야식을 먹는 사람도 있었다. 선생님 전용 컴퓨터로 몰래 게임을 하거나 TV 프로그램을 함께 시청하기도 했다. 하루의 피로를 푸는 우리만의 시간이었다.
수업일이 다가왔다. 먼저 자기 단원에 대한 공부를 다시 해야 한다. 문제를 푸는 것 이상으로 수업이란, 논리적인 흐름을 타면서 개념을 자세히, 그리고 알기 쉽게 설명을 해야 한다. 말 그대로 교재 연구가 필수적으로 요구된다. 잊은 부분이 없는지를 점검하기 위해 나는 재수를 하면서 만들어 둔 요약노트를 꺼냈다. 나는 훌륭한 선생님들로부터 굉장히 좋은 퀄리티의 수업을 듣고 공부를 해왔다. 동시에 내가 재수까지 겪으면서 알게 된 나만의 노하우들이 꽤 축적되어 있었다. 아이들의 입장에서 최대한 생각을 하고자 했다. 기존 교재나 문제집에 필요한 부분을 넣거나, 필요 없는 부분을 뺄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어떤 부분은 선생님들이 가르쳐주신 순서에서 나름대로 배열을 바꾸면 더 효과적이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들었다.
어느새 나는 시키지도 않은, 나만의 교재를 자연스럽게 만드는 단계에 이르렀다. 흥미로운 점은, 내가 선생님을 해본 적도 없었고, 수학교육과를 전공하지도 않지만 머릿속에서 아이디어들이 쉴 새 없이 번뜩였다. 완전한 무에서 유를 창조할 수는 없을 것이다. 긴 시간 수학을 공부하면서 축적된 모든 경험 속에서 생각들이 떠오른 것일 테니까.
이쯤 되니 나는 아이들을 위해서 제대로 된 나만의 교재로 수업을 진행하고 싶었다. 그것이 꼭 내 것이라기보다는,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추려고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나만의 스타일이 생겼다. 여러 문제집들을 펼쳐놓고 머릿속에 떠오르는 논리적 흐름에 따라 예제문제를 발췌했다. 컴퓨터로 강사가 된 것처럼 교재 양식부터 교재 내용까지 모든 것을 밤마다 고민하고 제작했다. 함께한 조교들과 아이디어도 교환하고 같이 고민하면서 시간을 보내다 보면, 어느새 동이 트는 새벽이 다가오기 일쑤였다. 주로 함께한 사람들은 성민이 형, 주봉이, 창주 그리고 건희였다.
업무시간이 오후 늦게부터 시작되니 오전에는 잠을 보충했다. 새벽까지 친구들과 공부를 하고, 수업 준비에 교재 연구를 하더라도 다음 날 크게 지장이 없었다. 하루는 아이들이 기상해서 아침을 먹는 시간인 6시 30분까지 다 같이 잠을 안 자고 공부를 하다가, 완전히 초췌한 모습으로 아이들과 함께 아침을 먹은 적이 있다. 학생들은 아침 공부를 하러, 우리는 취침을 하러 가다 중앙홀에서 떡하니 마주쳤던 웃지 못할 사건도 있었다. 우리 반 아이들은 내 모습이 신기하면서도 웃겼는지, 지나가면서 나를 볼 때마다 웃으면서 이야기를 걸어왔다.
한 번의 수업을 위해 교재만 준비한 것은 아니다. 초보들이 수업을 진행하는 것은 익숙하지 않기 때문에 목소리 크기는 적당한지, 교재의 글자 크기는 알맞은지, 칠판 위 글씨는 이쁜지 등 사전에 연습하고 확인해야 할 것이 대단히 많았다. 우리들은 새벽 3시경에 빈 강의실에 들어가 리허설을 여러 번 했다. 판서 연습도 해보고, 어떻게 말로 설명해 나갈 것인지 고민하고 친구들 앞에서 연습도 해보았다. 많은 시간 노력과 공을 들인 결과 수업을 잘 진행할 수 있었다. 그렇게 세상에 단 하나뿐인 나만의 교재가 완성되고 나만의 수업이 탄생하게 되었다. 기존의 수학적 내용들을 효과적으로 전달하고, 학생들이 어렵다고 생각하는 부분들을 시원하게 긁어주는 명쾌한 수업을 해보고 싶었다. 역시나 몰입하면 창의력이 솟아난다. 그 몰입에는 재미라는 전제가 필요하다. (*칙센트 미하이)
특강은 말 그대로 특강이 되어야 한다. 특강이 일반 수업처럼 많은 내용들을 담으려고 한다면 그것은 정규 수업이 된다. 나는 부분 부분, 테마별로 아이들이 어렵다고 생각하거나, 기존에 학교나 학원에서 잘 정리해 주지 않지만 항상 시험에 출제되는 부분들을 과감하게 수업으로 기획하였다. 그것이 바로 내 아이디어다. 나는 공교육에서는 꿈꾸기 어렵고, 사교육에서도 수익성이 적어 잘 시도하지 않는 수업을 자유로이 할 수 있었다. 문제는 특별히 모교 수학 선생님께 받은 쉬운 연습문제를 그대로 활용하였고, 내용은 과거 여러 선생님들로부터 내가 배웠던 내용들을 용광로에 녹이듯 다시 재구성, 재배치해서 문제와 연결시켰다.
수업도 몇 번 진행하다 보니 요령이 생겨서 말도 잘 나오고 매끄러운 진행이 되었으나, 처음에는 그렇지 않았다. 이를 위해 친구들과 새벽에 리허설을 진행한 것이다. 첫 수업을 완전히 프로처럼 해줄 순 없겠지만, 최대한 매끄럽게 진행을 해서 아이들이 불편하지 않도록 해주고 싶었다. 언제 어떤 말을 하고, 어떤 유머를 던지고, 어떤 필기를 할지, 시나리오를 고려해 가능한 한 모든 연습은 다 하고 수업에 들어갔다. 내가 아이들에게 보일 수 있는 예의이자 책임감이 바로 이것이다.
문과 최상위권 반이었던 우리 반을 위한 고난도 문제들. 수업을 진행하고 아이디어를 짜내고 양식을 만드는 내공이 점점 쌓이고 진행된 2번째 우리 MF 반 수업이었다. 역시나 전원 다 참여하게 되어 나를 설레게 해 주었다.
또 다른 내 수업 중 하나는, 아이들의 불편함을 생각하고, 내가 보충해줄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를 고민하다가 태어났다. 단원을 막론하고 문장이 긴 도형에 관련된 문제만 보면 어려워하고 꺼려하는 아이들 모습에서 착안해 기획한 수업 <도형에 질리는 수학>이라는 수업이었다. 최근 5개년 기출문제들을 빠르게 훑어보고 필요한 문제들을 발췌하였으며, 단원이 기준이 아닌 나만의 다른 기준을 가지고 문제들과 내용들을 재배치 재구성하였다. 이렇듯 많은 노력과 역지사지의 입장 그리고 재미가 한데 모여 내 인생 첫 수업이 무사히 잘 진행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