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근성애자들
12년간 유지했던 '직장인' 타이틀을 내려놓은지 3개월이 다 되어갈 때 즈음, 면접을 보러 오라는 연락을 받았다. 그동안 평소보다 다소 늦은 9시 즈음 밍기적거리며 일어나 집안일을 하고 운동, 산책, 독서를 하는 중간 중간 여행 계획을 세우고 실행에 옮기던 '아직은 다소 여유있는' 백수인 나에게 면접은 신선했다. 마치 사회 초년생이라도 된 듯 셀레기도 했다. 면접 당일엔 나이 들어보이지 않게 재킷 대신 남방을 입고 소매를 말아올렸다.
면접 시간 10분 전에 도착해 대기했지만 본부장은 30분이나 늦게 왔다. 마주앉은 본부장은 내 이력이 마음에 든다고 했다. "기자 출신이시네요? 저희도 컨텐츠가 중요한 회사라서요"와 같은 말로 면접은 시작됐고, 중간 부터는 클라이언트잡의 고충에 대해서도 토로했다. 하지만 이미 국내 S기업, H기업, 외국계 G기업을 '갑님'으로 모신 경험이 있는 나에게 클라이언트잡에 대한 이해도는 이미 높았다.
업무에 대해서는 생각이 통했다. 컨텐츠의 완성도와 클라이언트와의 커뮤니케이션에 이견이 있을 리가 없잖은가. 그리고 이어 나와 함께 일할 팀원 4인에 대한 간략한 캐릭터 설명이 이어졌다. 낯설게도 그 중 한 명에 대해서는 험담도 했다. "조직 생활에 적응을 잘 못하는"이라는 말로 개인의 특징을 말살당한 팀원이었다. 얼굴을 보기도 전에 선입견부터 심어진 듯하여 유쾌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 뒤가 더 놀라웠다.
우선 본부장은 일에 모든 것을 바친 사람이었다. 40대 미혼에 멀쩡한 집을 놔두고 사무실과 사우나를 오간다. 일하는 스타일이야 개취라고 생각할 즈음 그는 그것을 열정이나 책임감이라고 설명했다. 레드준표의 "내가 느그들 롤모델이야"만큼이나 공허하고 허무하게 들렸다.
물론 미친듯이 일에 메달린만큼 성과는 좋아 보였다. 회사에서도 중책을 맡고 있으며 큰 프로젝트는 전부 그의 몫이었다. 이 모든 게 집에 가지 않고, 매일 야근을 밥먹듯이 하고, 주말마저 반납한 열정의 결과라고 스스로 평가했다. 물론 일에서 성과도 중요하지만 본부장은 모든 것을 포기하고 오로지 일에서 대가를 찾고 있었다.
그러면서 어린 나이에 진급한 후배 얘기도 곁들였다. 후배에 대한 마지막 칭찬은 "집에도 안 가고 매일 야근하는 애"였다. 아뿔싸. 이런 곳이었구나. 야근을 열정으로 해석하고 야근 배틀로 승진이 이뤄지는 곳! 집에도 허락을 받고 가고 서로 늦게 가는 것만으로도 뒤쳐지지 않았다고 안도하는 곳! 하지만 여전히 본부장의 눈빛엔 의기양양함이 가득했고, '우린 이 정도로 야근이 많아'라는 자랑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본부장은 뭐든지 자기가 해야 하는 타입이었다. 회의도 내가, 제작도 내가, 컨펌도 내가, 직원 컨트롤도 내가, 영업도 내가, 클라이언트 연락도 내가, 퇴근 허락도 내가, 내가 내가 내가.. 제대로 된 분업은 없었고 중간 관리자에게도 일을 맡기지 않는 듯 보였다. 왜 본부장이 회사의 중책을 맡고 있는지 감이 왔다. 그는 모든 일을 놓지 않고 전부 쥐고 있었던 것이다.
업무분장도 관리자의 능력인데, 모조리 쥐고 있으니 팀원들이 수동적이 되고 눈밖에 나는 사람들이 생기기 마련이다. 그의 후배 험담은 여기서 기인한 것이리라. 적당한 책임감과 적당한 업무량, 적당한 비중을 나눠줘야 팀원들도 사기가 올라간다. 모든 걸 관리하기 시작하면 클라이언트의 숨소리 하나까지도 다 보고받게 될 것이다. 하지만 중간 관리자나 팀원들에 어느 정도 재량권과 결정권을 준다면 그들도 성장한다. 일을 나누지 않는다는 것은 믿지 못한다는 의미다. 그럴수록 팀원들의 적극성은 떨어지고 책임 회피에도 능해진다. 본부장이 "몸이 열개라도 모자란다"고 하소연하는 이유는 모든 일이 자신에게 쏠리도록 잘못된 시스템을 구축한 탓이다.
더욱 큰 문제는 본부장은 자신의 스타일을 '일 잘하는 사람의 본보기'처럼 생각한다는 점이다. 진짜 '내가 느그들의 롤모델'을 시전한 거다. 그는 자신의 중요도를 높이고 열정적인 사람으로 보이게 하는 데는 성공했는지 모르겠지만 일의 효율성을 떨어트렸고 팀웍도 해쳤으며 스스로도 너무 바빠졌다. 직원들을 자신처럼 만들 것이 아니라 시스템을 고쳐 각자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야근을 많이 한다는 것은 물리적으로 일이 많거나 방법이 잘못되 거다. 둘 다 문제다. 하루 업무시간을 초과하는 업무량은 결과의 질을 떨어뜨리고 방법이 잘못된 일은 직원을 혹사시킨다. 야근은 결국 나머지 근무다. 야근을 많이 하는 이들은 일 욕심이 많은 사람일 수도 있지만, 대부분은 일정 관리 능력이 떨어지는 사람이다. 주어진 시간 내에 자신의 업무를 파악하고 처리할 수 있도록 일정을 관리해야 한다. 물리적으로 무리라면 그건 인원 충원이 필요한 일이다. 야근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야근을 많이 하는 사람을 '업무 능력이 좋은 사람'으로 포장해서는 안 된다. 관리자는 일을 잘 나눠야 하고, 실무자는 일정에 맞게 일을 처리해야 한다. 어느 정도 업무 시간을 초과하는 변수는 그렇다쳐도 야예 하루 일정에 야근을 넣는 것은 고쳐야 할 습관이다. 그래서 분위기가 중요하다. 3시간만에 할 수 있는 일도 야근을 계산해 6시간 일정으로 하면서 늘어지기도 하고, 3시간만에 업무가 끝난 사람에겐 추가 업무가 떨어지기도 한다. 만약 그렇다면 누구도 일을 빨리 끝내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모두가 야근 지옥에 갇히고 말 것이다.
회사와 인생을 동일시하는 본부장의 경우라면 회사의 업무량으로, 성과로, 사람들의 평가로 자신의 존재감을 세우게 된다. 이런 이들은 회사나 일이 없다면 자존감이 현저하게 떨어진다. 회사에서 더 많은 일을 해야하기에 일을 멈추지 않고 양도 줄이지 않는다. 그러다 회사 전체의 분위기를 야근으로 물들인다. 그리고 야근을 자주하는 직원을 '일 잘하는 직원'이라 부르는 위험한 기준을 만들고 만다.
칼출근만큼 중요한 것은 칼퇴근이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칼퇴근이 어렵다면 최소한 칼퇴근을 독려라도 해야 한다. 상사의 '퇴근'이라는 단어 사용 자체가 분위기를 바꿀 수 있다. 사람들을 책상에 잡아두고 퇴근을 허락받게 해서는 안 된다. 야근을 할 지 퇴근을 할 지는 누구보다 실무자가 잘 알고 있다. 할 일을 팽개쳐 두고 갈 정도로 생각이 없지 않다. 칼퇴근이 정착되면 각자의 일정관리가 빡빡해진다. 야근을 하지 않는 방향으로 일정을 잡고 업무에 집중하며 시간을 관리한다. 스스로 야근 일정을 잡는 것은 괜찮다. 하지만 누군가에 의해서, 눈치가 보여서, 강제적으로 야근을 한다면 그 집단은 일보다 야근에서 더 만족감을 찾을 것이다.
회사에 인생을 몽땅 받친 본부장의 무용담과 야근 만능주의에 대해 듣다 보니 '저녁이 있는 삶'에 대한 욕구가 어느 때보다 강렬해졌다. 지금까지 마감을 중심으로 한 야근과 철야가 많은 업종에서 일을 해오며 나름 즐거움도 느꼈지만, 이렇게 '야근해야 승진한다', '야근으로 너희들을 평가한다'는 식의 회사라면 입사도 하기 전에 내 자존감이 없어져버릴 것 같았다. 회사 전체가 이런 분위기 속에서 직원들의 체력과 사기와 멘탈을 축내고 있는 건 큰 문제였다.
그래서 면접 후 합격 통보를 받았지만, 나의 소중한 저녁 시간을 위해 입사를 포기했다. 연봉도 요구한 금액에 근접하게 맞춰줬지만 하루만에 결정을 내렸다. 그래서 다시 집안일을 하고 운동, 산책, 독서, 여행을 하는 일상으로 돌아왔다. 만약 계속 이 생활이 지속돼 철야도 불사할테니 일 좀 시켜달라고 할 수도 있지만 아직은 아니다. 아직은 나를 조금 더 아껴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