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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제르 Nov 15. 2017

'착하다'는 말을 들었다

회사는 군대가 아닙니다

'착하다'는 말의 어이없는 정의


퇴사를 앞두고 대표랑 얘기를 나누던 중에 대표가 이런 말을 했다.

"김부장은 착한 게 문제예요. 애들하고 얘기를 너무 많이 해. 그냥 하라고 시키고 야근하든 밤을 새든 먼저 퇴근해서 다음날 확인하는 그런 카리스마가 없어."

퇴사를 하는 와중이라 대충대충 흘려 듣던 중에 '착하다'라는 말에서 잠깐 멈칫했다. 내가 악랄하고 독한 상사는 아니었지만 '착하다'라는 말은 신선하게 다가왔다. 내가 유순한 편이고 일이 생겼을 때 잘잘못을 따지기보다 해결 방법을 찾고 사람을 사람답게 대하면서 일을 진행하는 편이긴 하지만 이게 회사에서 '착하다'라는 말을 들을 정도인지는 미처 몰랐다. 아마도 대표가 나를 보는 시선이 '착해 빠졌다'였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했다.


나는 상사는 물론 팀원들과도 잘 지내는 편이다. 퇴직한 직원들과도 연락을 하고 지내고 나 역시 퇴사 이후에도 기존 구성원들과 친하게 지낸다. 이건 착한 사람 컴플렉스나 강박이 아니다. 내가 일을 할 때 사람들을 어떻게 대하는지 그들도 알기 때문이다. 회사는 일을 하기 위해 사람들이 모인 곳이기 때문에 일에 하면서 서로의 선의를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다. 그 선의는 일을 대하는 태도와 함께 사람을 대하는 태도도 포함된다.

회사 사람들과 술자리를 하면서 형동생 하는 걸 즐기는 편이 아닌 나는 일을 통해 친해진다. 일을 하면서 얘기도 많이 나누고 농담을 주고 받고 서로에 대해 알아간다. 이걸 착하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지만 대표는 순하다, 얌전하다, 화를 안 낸다, 착해 빠졌다와 같은 시각으로 날 바라봤던 모양이다. 나름대로 '민주적이다'라고 생각했었지만 누군가는 '착하다'로 봤다는 것이 새삼 충격적이었다.


관리자는 시키기만 하는 사람인가?


대표가 그런 얘기를 한 의도는 '왜 팀원들의 이야기에 다 귀를 기울이느냐', '왜 힘들고 어려운 사정까지 다 봐주느냐' 하는 것이다. 탑다운으로 위에서 시켜버리고 군말하지 못하게 그냥 눌러버리지 못하는 것을 두고 나에게 '착하다'라는 표현을 썼던 것이다. 

혼란스러웠다. 다 같이 하나의 목표를 가지고 일을 하는데 그저 일을 시켜버리는 것이 전부라면 그건 팀으로 일할 이유가 없다. 팀원은 단순히 팀장의 수족이 아니다. 물론 일의 성격에 따라서 수족이 되는 경우도 있겠지만 그게 모든 일의 기준이 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각자 일에 대해 생각하는 바가 있고 아이디어도 있다. 회사에 들어온 이상 각자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이 있는 사람들이다. 특히나 크리에이티브를 강조하는 우리 업종에서는 그렇게 시키는 것만 하는 수동적인 구성원은 오히려 독이 된다.


팀원들의 의견이나 생각을 듣고 나의 의견을 공유해서 좋은 답을 찾고 그걸 토대로 방향을 정하는 것은 일을 잘하기 위한 기본이다. 그래서 우리팀은 성과도 좋았다. 팀원들의 특성을 제대로 파악했다는 점도 한몫했다. 누구는 스포츠에 관심이 있고, 누구는 패션에 관심이 있다. 누구는 음악을 잘 모르고, 누구는 인터뷰를 잘 못한다. 그렇다면 각자의 장점을 극대화할 수 있는 업무 분장이 중요하다. 스포츠 전문가에게 패션 컨텐츠를 맡겨놓고 "야근을 하든 주말에 나와서 하든 일을 끝내 놓으라고!"라고 하는 건 억지다. 단지 팀원을 괴롭히겠다는 것밖에 안 된다. 팀원들 각자는 팀 안에서 각자 하고 싶은 일들이 있다.

민주적이라는 말이 너무 거창하다면 합리적이라는 단어로도 충분히 설명된다. 하루종일 회의만 하느라 시간을 다 써버리는 무능한 팀장이 아니라면 조금 불편해도 팀원들의 이야기를 듣고 의견을 모으는 과정을 가져야 한다. 일의 진행상황을 공유하고 업무 분장의 이유를 납득시키는 것도 필요하다. 그래야 나중에 잘못을 지적할 때도 스스로 쉽게 인정하게 된다. 하지만 대표는 이런 나의 작업 방식을 '착하다'라는 말로 퉁쳐버렸다. 억울하다는 생각과 함께 여러 사람을 거느리고 있는 대표가 할 소리인가 싶은 생각도 들었다. 답답했다.


개개인에게 어느 정도의 책임감과 부담감을 주자


개인적으로 나는 누구에게 일을 시키기보다 그냥 내가 처리하는 것이 더 쉽고 편하다. 내 생각이나 아이디어를 설명할 시간에 바로 실행으로 옮겨 결과를 내는 것이 더 빠르다. 그럴 때 결과물이 더 좋기도 하다. 하지만 그렇다면 나는 팀을 꾸리고 팀원과 함께 할 필요가 없다. 내가 하는 일이 아니라 우리가 하는 일, 혹은 팀이 하는 일이라는 점을 나 스스로도 잊어서는 안 된다.

역할을 주는 것은 책임감과 부담감을 같이 주는 일이지만, 자존감을 높이고 능력을 발휘할 기회를 주는 일이기도 하다. 좋은 아이디어가 나오지 않으면 함께 고민도 해보고 진행이 서투르면 조언을 해주거나 다른 방법을 제시하기도 한다. 이야기를 통해 팀원의 특성을 알고 있어야 한다. 그래야 급한 일이 생겼을 때 적절히 처리가 가능하다.


함께 일하는 동료들은 단순히 시키는 일을 하는 사람이 아니다. 일의 진행에 대해 공유해야 하고, 자신들의 목소리도 어느 정도 반영되어야 한다. 일을 하고 싶게 만들어야 한다. 팀장은 한 명이지만 팀원은 여러 명이다. 그렇기 때문에 팀원들 사이에서 좋은 아이디어나 새로운 시각이 나올 확률이 높다. 특히 이렇게 빨리 트렌드가 변하고 새로운 것들이 등장하는 시대에는 젊은 친구들과 함께 가는 것이 중요하다.

당신이 스티브 잡스 정도 된다면 다른 사람 말 듣지 않고 혼자 밀고 나가도 아무말 안 한다. 하지만 당신도 나도 부족한 점 많은 사람이다. 장점은 살리되 단점은 보완해야 한다. 그리고 모든 일이 사람들의 힘으로 진행된다는 사실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들은 우리의 수족이나 부속품이 아니다. 실질적으로 일을 진행하는 주체다. 우리의 경험을 나누고 그들의 새로움을 배워야 한다. 이끌어 줄 능력도 안 되면서 남을 보고 쉽게 '착하다'라는 말을 써서는 안 된다. 그건 소통할 줄 모르고 혼자 잘난 꼰대들이나 할 소리다.


착한 것은 사람에게 필요한 덕목 중 하나다. 착해서 늘 당하고 손해보고 참기만 하라는 얘기가 아니다. 일을 하면서 사람을 존중하고 배려하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는 의미다. 회사는 일터다. 군대가 아니다. 위아래를 쉽게 나누지 마라. 일의 경험에 의해 수직관계가 설정될 수는 있어도 사람 자체는 항상 수평관계여야 한다. 그리고 그건 착한 게 아니다. 그저 일을 잘 해내기 위한 기본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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