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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제르 Mar 19. 2018

<지금 만나러 갑니다>, 결과를 알고 하는 사랑

브런치 무비패스 #03


<지금 만나러 갑니다>, 결과를 알고 하는 사랑


아내 수아를 잃고 아들과 살아가는 우진. 하지만 수아는 비의 계절에 다시 돌아오겠다고 약속하고 실제로 장마가 시작되자 두 사람에게 나타난다. 우진은 모든 기억을 잃고 돌아온 수아에게 자신과 수아가 어떻게 사랑을 하게 됐는지 이야기해주면 다시 한번 사랑을 시작한다. 수아와 우진은 그렇게 두 번째 사랑을 나누며 행복한 시간을 갖지만, 장마는 오래 가지 않는다.


2004년 개봉한 일본 영화 <지금, 만나러 갑니다>는 사랑과 기억이라는 서정적인 이야기에 시간을 넘나드는 독특한 구성으로 많은 인기를 끌었다. 고등학교 때부터 이어져 온 남자와 여자의 인연과 사랑, 결혼과 이별 등을 ‘두 번째 사랑’이라는 테마로 잘 풀어낸다. 플래시백을 통해 이야기를 전개하지만 단순히 과거 이야기를 하는 게 아니라 죽었던 아내가 기억을 잃은 채 다시 돌아온다는 설정으로 진짜 사랑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2018년 소지섭과 손예진을 주인공으로 한 영화 <지금 만나러 갑니다>는 원작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이야기의 큰 틀을 유지하면서 원작에서 인상적으로 그려진 장면들을 적재적소에 잘 배치한다. 여기에 새로운 인물이나 상황으로 유머 코드도 가미했다. 리메이크를 하되 리바이벌은 하지 않은 것이다. 하지만 여기에는 몇 가지 장점과 몇 가지 단점이 보인다. 일본 영화를 좋아하던 이들에게는 단점이 더 크게 보일 수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한국적인 ‘재미’라는 측면을 부각시키려는 노력은 보인다.



우선 리메이크된 <지금 만나러 갑니다>는 템포가 빠르다. 리메이크임을 의식해 배경 설명보다는 본격적인 이야기를 전개시키는데 더 주력한다. 다 알고 있는 이야기의 배경 설명이 자칫 지루하게 보일 수 있다고 생각한 것 같은데, 사실 원작을 모르는 사람도 많다. 그래서 우진(소지섭)과 지호(김지환)의 현재 모습이나 캐릭터 설명보다는 수아(손예진)를 빨리 등장시켜 미스터리한 현재와 아련한 추억담을 시작한다. 전개가 빨라 흥미롭지만, 현재와 과거의 감정을 연결시켜주는 연결고리가 더 필요하지 않았나 싶다.



두 사람의 과거와 현재가 맞닿아 있는 부분, 어떤 행동에 대한 인과관계, 캐릭터가 지닌 특징으로 인한 사건 전개 등에서는 부족하다. 죽은 수아가 비가 오는 날 다시 돌아와 6주의 시간을 보낸다는 중심 이야기가 강하다 보니 수아와 우진의 과거 이야기에 캐릭터의 재미가 더해지지 않는다. 사소한 행동이나 대사에 의미를 부여해 미묘한 감정을 잘 살린 원작에 비해 부족한 부분이다. 원작에 나온 우진이 아픈 이유나 서로를 좋아했던 고등학교 에피소드, 수아가 지호에게 집안일을 가르치는 이유, 수아의 ‘우린 잘 될 거야’라는 말의 의미를 어렴풋이 해석하는 우진, 우진과 수아가 다시 만난 후의 사소한 행동의 이유, 수아가 과거를 알게 되는 상황 등이 충분히 설명되지 않는다. 다른 방법으로 표현되긴 하지만 두 사람의 관계보다는 주변의 다른 요소로 인한 것들이 많다.



배우들의 외모도 영화를 방해(?)하는 측면이 있다. 원작에서는 두 사람 모두 그렇게 눈에 띄는 캐릭터가 아니었다. 특히 우진은 아웃사이더에 가까웠다. 하지만 소지섭과 손예진이 캐스팅되면서 외모가 캐릭터를 덮어 버린다. 어리숙하게 행동해도 소지섭이고, 미스터리하게 풀어도 아련한 손예진만 보인다. 연기에 대한 얘기가 아니다. 다만, 캐릭터를 드러내기에 이 캐스팅은 좀 과하다. 지호의 역할도 좀 달라졌다. 원작에선 두 사람의 관계에 기름칠을 하는 정도지만, 리메이크에서는 주도적으로 감정을 이끌거나 적극적인 대사로 이야기를 전개한다. 아마 많은 사람들이 두 사람의 추억보다 아이의 대사 때문에 눈물을 흘리는 일이 많았으리라.



한국적인 리메이크의 고질적인 문제인 웃음 코드 집착도 아쉽다. 원작과 달리 리메이크에서는 주변 캐릭터의 활약이 많다. 고창석을 소지섭의 노안 친구로 캐스팅했다는 것만 봐도 어느 정도 작정했다는 걸 알 수 있다. 물론 적당히 성공했다. 웃을 일이 전혀 없는 소지섭과 손예진의 이야기에 고창석과 주변 캐릭터가 플러스알파가 되기는 한다. 하지만 큰 의미 없이 등장하는 카메오들의 활용은 고개를 갸웃하게 만들기도 한다.


원작과 달리 장점으로 얘기될 수 있는 부분은 아들 지호의 역할이다. 단순히 분량이 많아진 게 아니라 지호의 에피소드를 통해 이야기에 감정을 더한다. 특히 학예회 에피소드가 그렇다. 원작에는 없는 내용으로 수아의 감정을 지호를 통해 드러낸다. 감독은 우진과 수아의 안타까움을 표현하거나 관객에게 상황을 설명하기 위해 지호를 잘 활용한다. 물론 '엄마 없는 아들'과 같은 과한 설정이 거슬리고 우진의 캐릭터를 가로채는 모습도 보여 밸런스에 아쉬움이 있기도 하지만, 관객이 지호를 통해 영화의 감정적인 부분에 가까이 오게 된다는 점은 부인하기 어렵다.



일본 원작이 있기에 어쩔 수 없이 비교를 하면서 보게 되지만, 원작을 보지 않은 이들에게는 시간과 공간을 넘나드는 사랑 이야기에 호기심을 생길 거다. 단순한 시간 여행이 아닌 운명을 미리 보여준다는 설정에서 사랑과 행복, 죽음과 이별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빠른 죽음을 맞는 상황과 죽음을 피하기 위해 행복을 포기하는 상황 중에 과연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을까? 그리고 그 행복이 진짜 행복인지, 그 사랑이 진짜 사랑인지 어떻게 확신할 수 있을까? 사람에 대한 믿음과 사랑에 대한 확신은 어디에서 나오는가?



지금 하고 있는 사랑이 어떻게 끝날 줄 안다면, 우리는 시작할 수 있을까? 아무리 사랑하는 과정이 행복해도 정해진 결과의 아픔을 견딜 만큼 위로가 될까? 사랑이 끝난 뒤 밀려오는 그리움은 어떻게 감당할 수 있을까? 결과를 안다면 시작할 수 없는 일이 많다. 하지만 모든 일에서 결과만 중요한 건 아니다. 과정에서의 행복과 즐거움은 결과보다 더한 가치를 지니기도 한다. 실패한 사랑이라도 다시 만나 사랑할 수 있다면 거부할 수 있을까? 그 과정에서 진짜 행복을 경험했다면 누구라도 '결과를 알고 하는 그 사랑'을 기꺼이 감내할 거다. 사랑은 원래 그런 것이다.


개인적으로 원작의 제목인 <지금, 만나러 갑니다>를 더 좋아한다. ‘지금’ 옆에 찍힌 쉼표에는 이 사랑의 과정과 결과까지 모두 알고 있음에도 두 사람을 만나러 가겠다는 수아의 의지가 담겨 있다. 쉼표는 바로 ‘그럼에도’의 의미다. 모든 것을 알고 있는 지금,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두 사람을 만나러 갑니다.


(사진 제공 : Daum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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