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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제르 Mar 29. 2018

<레이디 버드>, 떠나야 알 수 있는 행복

브런치 무비패스 #04


<레이디 버드>, 떠나야 알 수 있는 행복


엄마랑 맨날 다투는 크리스틴 '레이디 버드'는 자의식이 매우 강한 고등학생이다. 부모님이 지어준 이름을 거부하고 스스로에게 레이디 버드라는 이름을 붙이고 이렇게 불러달라고 요청한다. 그가 원하는 것은 단 하나다. 자신의 현실에서 벗어나는 것. 가난에서 벗어나고, 고등학생 신분에서 벗어나고, 처녀에서도 벗어나고, 고향을 벗어나고, 가족에게서 벗어나고 싶다. 하지만 정작 떠난 뒤에야 알게 됐다. 자신에게 고향 새크라멘토가 어떤 의미인지, 가족의 사랑이 무엇이었는지.


영화 <레이디 버드>는 한 아이의 성장담이다. 고등학교 졸업반이던 크리스틴 ‘레이디 버드’(시얼샤 로넌)는 현재의 모든 것으로부터 벗어나고 싶다. 어떤 방법으로라도 변화를 주고 싶다. 그가 가장 우선적으로 생각하는 것은 자신의 고향인 새크라멘토를 떠나는 것이다. 가난하고 꿈이 없고 앞길이 막막한 이유가 새크라멘토에 발이 묶여서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새크라멘토를 떠나는 것은 쉽지 않다. 레이디 버드의 집은 가난하고 본인도 공부를 썩 잘하는 편이 아니다.



영화에서 새크라멘토는 큰 의미를 갖는다. 우리로 치면 지긋지긋한 농촌을 벗어나 서울로 가고 싶은 마음과 같은 것이다. 그걸 청소년의 시선으로 솔직하게 그리고 있다. 보통의 관객들은 영화 속 캘리포니아에 환상을 갖고 있다. 해변이나 파도, 금문교, 라스베이거스의 화려함, 할리우드와 같은 이미지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은 로스앤젤레스와 샌프란시스코에 대한 이미지다. 캘리포니아는 넓은 농토를 기반으로 하는 곳이다. 넓은 농업지대의 북쪽 끝에 위치한 새크라멘토는 농업을 주요 산업으로 하는 지역이다. 결국 캘리포니아의 시골인 셈이다.


그래서 레이디 버드는 모든 것이 답답하다. 가난한 집에 사는 것도 싫고, 자신이 특출 나게 뭔가를 잘하는 게 없다는 것도 싫다. 부모님이 지어준 이름도 싫다. 그래서 크리스틴이라는 이름 대신 레이디 버드라는 이름을 스스로에게 붙였고 그렇게 불리길 원한다. 꿈도 없다. 그저 바라는 것은 새크라멘토를 떠나는 것. 무슨 수를 써서라도 떠나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했지만 어린 레이디 버드에게 방법은 그리 많지 않다. 그래서 선택한 가장 현실적인 방법이 대학 진학이다. 하지만 고향을 떠나면서 알게 된다. 자신이 새크라멘토를 꽤나 애정하고 있었음을.



영화의 초반과 중반은 여고생의 성장담을 다룬 보통의 영화들과 비슷한 흐름을 지닌다. 반항적인 모습으로 가톨릭 학교에서 적응하지 못하고, 부자를 동경하고, 룰을 깨고, 거짓말을 일쌈고, 반항한다. 특히 엄마랑 계속 부딪히며 사춘기 소녀다운 모습을 보인다. 여기에 시련이 더해진다. 남자 친구를 사귀었는데 하필 게이였고, 부자 친구와 가까이 지내려고 거짓말을 했는데 들켜서 망신을 당한다. 나름 정성을 다한 첫 경험은 남자의 거짓말과 무성의함에 존재감 없이 사라져 버린다.



어쩌면 그런 것이 그 나이 또래들이 겪는 일반적인 사춘기의 경험일 거다. 형태는 다르지만 다들 뭔가 기대를 걸었다 후회하고, 현실을 도피하기 위해 거짓말을 하고, 자신의 처지를 인정하기 싫어 가족이나 가까운 사람들에게 상처를 준다. 절친 줄리와의 관계나 입양된 오빠, 엄마와의 관계가 특히 그렇다. 사랑하는 사람들이지만 그들에게 자신의 속마음을 솔직하게 표현하지 못한다. 그때는 원래 그렇다. 사실대로 말하거나 솔직하게 행동하면 지는 느낌일 테니까. 좋아도 싫은 척을, 기뻐도 쿨한 척을 하기 마련이다.



영화를 이끌어가는 가장 큰 관계는 엄마다. 감독이 레이디 버드의 성장담을 그려가는 방법으로 선택한 것이 엄마와 딸의 관계 묘사다. 현실적이고 엄한 엄마는 딸에게 직설을 마다하지 않는다. 아빠의 실직으로 매일 야근을 하며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지만 나아지지 않는 현실에 힘겨워한다. 딸 레이디 버드는 그런 엄마의 고생을 충분히 알지만, 이해하거나 공감하거나 배려하지는 않는다. 말 한마디로 다투고, 지지 않으려고 기를 쓴다. 물론 엄마도 밀리지 않는다. 하지만 둘은 또 누구보다 가까운 친구다. 여자로서 통하는 부분은 물론이거니와 엄마와 딸이라는 특별한 관계가 저변에 깔려있다. 남자인 아들이 감히 뭐라 정의 내릴 수 없는 미지의 영역이다.



결국 레이디 버드는 우여곡절 끝에 뉴욕 소재 대학에 합격하고 드디어 새크라멘토를 떠난다. 떠날 때는 행복했다. 냉담한 엄마만 빼고 모든 것이 뜻대로 됐다. 하지만 떠난 뒤에 알게 된다. 자기를 정말 사랑해준 것은 엄마라는 것을, 그리고 새크라멘토의 모든 것들이 자신을 성장시켰음을. 영화 후반부의 도로 주행을 하는 장면에서 레이디 버드는 새크라멘토의 낯선 길들을 눈에 담는다. 그리고 그 속에서 그동안 몰랐던 정겨움과 따뜻함을 느낀다. 아빠가 몰래 챙겨준, 엄마가 딸에게 보내려다 만 편지를 읽은 후에는 엄마에 대한 진심도 알게 된다. 계속 싸우고 험한 말을 주고받아도 엄마와 딸의 관계는 특별했다. 진심은 묵직했다.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장면은 대학교 파티장 장면이다. 어디서 왔냐는 낯선 남자의 물음에 처음엔 새크라멘토를 설명하지만 곧 샌프란시스코라고 거짓말을 한다. 이제 새크라멘토와의 인연을 지우고 싶다는 듯이. 하지만 다음 장면에서 스스로 지은 레이디 버드라는 이름 대신 부모님이 지어준 이름을 말한다. 처음엔 자신의 정체성을 숨기는 듯 보이지만, 크리스틴이라는 이름을 통해 스스로를 부정하지 않는다. 새크라멘토의 모든 것을 잊고 새롭게 시작하고픈 마음이었지만 결국 자신의 태생과 성장, 배경을 감추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드러나는 복잡한 심정을 보여준다.



<레이디 버드>를 보면서 신기했던 경험은 영화의 본질에 대한 것이다. 우리는 영화를 통해 이야기를 들으려 한다. 어떨 때는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고 싶어 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 영화는 레이디 버드의 삶을 관조하게 만든다. 마치 중간에 벽돌 몇 장을 빼낸 벽을 통해 반대편의 상황을 지켜보듯, 스크린을 통해 다른 사람의 인생을 엿보는 기분이 들게 한다. 카메라도 적절하게 거리를 유지하며 지켜보게 만든다. 스크린을 통해 다른 사람의 인생을 엿본다는 것, 우리가 그동안 잊고 지낸 영화의 본질적인 매력이 아닌가 싶다.


이 영화가 단순한 성장 이야기가 아닌 이유는 그 과정이 아름답게 그려지지 않기 때문일 거다. 사실 우리 인생은 다 좌충우돌이다. 가끔은 이기적이기도 하고, 가끔은 실수를 하기도 하고, 가끔은 거짓말을 하기도 하고, 가끔은 손해를 보기도 한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이 지나 봐야 그 가치나 의미를 알 수 있는 경우가 많다. 떠나봐야 그리워지는 것들, 지나 봐야 가슴 아픈 시간들.


(사진 제공 : Daum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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