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 무비패스 #02
절름발이라는 이유로 직장에서 쫓겨나는 지미 로건(채팅 테이텀)은 외팔이라는 이유로 무시를 당하는 바텐더 동생 클라이드 로건(아담 드라이버)에게 공사 인부로 일하며 얻은 정보를 통해 레이싱 경기장을 털자고 제안한다. 그리고 감옥에 있는 폭파 전문가 조 뱅(다니엘 크레이그)을 합류시키기 위해 하루짜리 탈옥도 진행한다. 여동생 멜리 로건(라일리 코프)까지 가세한 덕분에 치밀하게 세운 계획은 성공적으로 진행된다. 하지만 정작 돈의 행방이 묘연하다. 과연 이 계획은 제대로 진행된 것일까?
‘스티븐 소더버그’라는 이름을 들으면, 오래된 영화광들은 <섹스, 거짓말, 그리고 비디오테이프>를 떠올리겠지만, 그는 데뷔 이후 다양한 영화를 기획, 제작, 연출, 심지어 촬영까지 하면서 꾸준히 영역을 넓혀왔다. 그중에서도 <오션스 일레븐> 시리즈를 성공시키며 2000년대 케이퍼 무비의 새로운 유행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그런 그가 <로건 럭키>라는 또 다른 케이퍼 무비를 선보인다. 하지만 <오션스 일레븐>과는 좀 다르다. 세련되고 매끈한 범죄물에 비해 뭔가 조금 촌스럽고 올드한 분위기가 풍긴다. 영화 시작을 존 덴버의 ‘Take me home country roads’로 시작할 정도니.
그렇다고 영화 자체가 후지다는 얘기는 아니다. 웨스트 버지니아를 무대로 로건 집안의 불운한 역사를 배경으로 하는 설정이나 사건을 끌어가는 캐릭터와 표현 방식 등 콘셉트적인 부분에서 옛 향수가 느껴진다는 의미다. 범죄 그 자체에 집중하기보다 가문의 불운한 역사, 두 형제와 여동생을 중심으로 한 가족의 이야기, 지역적인 특색 등을 함께 담다 보니 전형적인 범죄물과는 다른 정서가 나온다. 사실 범죄 영화에서 "우리는 운 없는 집안이야" 같은 설정이 크게 흥미롭지는 않으니까.
영화 속 범죄 이야기는 상황과 해결 방법 등이 딱딱 맞아떨어지는데, 이게 너무 정확하고 치밀해서 오히려 안 어울리는 느낌도 있다. 배경 설정이나 캐릭터가 얼뜨기 촌뜨기들인데 이야기는 이렇게 매끈하게 흘러가니 서로 섞이지 않는 느낌이랄까? 이럴 바엔 더 세련되고 치밀한 캐릭터가 낫지 않았나 싶다. 모든 이야기가 주인공의 생각대로 치밀하게 전개되는데, 인물들은 뭔가 어설퍼 보이니 밸런스가 안 맞는다. 범죄를 다루는 방식은 <오션스 일레븐>인데, 캐릭터는 시골 출신의 뭔가 부족한 가족들이다. 영화 속 대사처럼 뭔가 조금 어긋난 <오션스 일레븐>, 즉 ‘오션스 세븐 일레븐’ 같다.
그럼에도 <로건 럭키>가 썩 괜찮은 케이퍼 무비인 이유는 배우들의 덕이다. 채닝 테이텀, 다니엘 크레이그, 라일리 코프, 힐러리 스웽크, 케이티 홈즈, 세바스찬 스탠 등 크고 작은 배역들에서 배우들이 각자의 색깔을 드러내니 영화가 풍성해진다. 캐릭터가 강해 이야기가 묻히는 경향도 있긴 하지만, 마치 코엔 형제의 영화를 보는 것 같은 낯선 차분함이 <로건 럭키>에서도 느껴진다. 정적이면서 긴장되고 방만하면서도 집중되는 묘한 감정으로 치밀하고 계산적인 범죄 이야기를 전개시킨다.
영화의 또 다른 장점은 ‘레이싱 대회를 턴다’는 설정이다. 케이퍼 무비에서 흔히 다뤘던 도박장이나 은행이 아니라 엔터테인먼트를 범죄 대상으로 한다는 점이 독특하다. 여기서 엔터테인먼트는 돈이 모이는 공간이자, 스폰서의 갑질이 있는 곳이고, 미디어가 자극적인 내용을 다루는 곳이다. 특히 정리되지 않은 채로 경기장 지하로 모여드는 돈의 모습은 마치 사람들의 주머니를 털어 돈만 뽑아내는 자본주의의 괴물처럼 보이기도 한다. 지하 돈 창고를 터는 모습은 흥미롭다. 중간중간 위기 상황을 적절히 배치해 긴장감을 유지하고, 각 캐릭터의 특징을 살려 불안 요소를 다루는 솜씨도 눈여겨볼 부분이다.
하지만 마무리가 조금 아쉽다. 케이퍼 무비답게 통쾌한 기분을 잘 살렸지만, 애매하게 드러난 반전의 효과는 미미하다. 영화 속에 나오는 10 계명 중 ‘적당한 선에서 끝낸다’라는 계명을 영화의 마지막 부분으로 다루고 있는데, 정작 내용은 홍길동처럼 끝내니 어색한 감이 있다. 치밀한 범죄 전개에 맞는 깔끔한 마무리면 좋았을 텐데, 굳이 착한 마무리로 갈 필요가 있었나 싶다. 또 중간중간 타이밍을 잘 못 맞추는 농담도 아쉽다. 흔히 말하는 '미국식 농담'도 아니고 캐릭터를 드러내는 장치로서 역할을 하는데, 불필요해 보이는 장면도 꽤 있다.
그럼에도 신나는 음악을 이야기에 적절히 녹인 것은 이 영화의 장점이다. 조용한 동네에서 조용한 관계로 조용히 시작한 영화는 캐릭터들이 활약하는 흥미로운 중간을 거쳐 치밀한 계산과 반전의 마무리가 나오는 후반부로 이어지는데, 여기서 음악이 브릿지 역할을 잘 해낸다. 흥겨운 분위기에 잘 설계된 범죄 전개는 매력적이지만, 오락적인 요소를 부각하기보다 사람들의 관계에 초점을 맞춘 것이 케이퍼 무비로서 장점이 될지 단점이 될지는 관객이 판단할 일이다.
영화를 보는 내내 이 영화의 시대적 배경이 어디일까 궁금할 정도로 올드한 분위기가 물씬 풍긴다. 물론 등장하는 자동차나 대사 등으로 시대를 짐작할 수는 있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90년대 아재 감성이 물씬 풍기는 영화다. <오션스 일레븐>을 시골 촌뜨기 버전으로 만들면 이렇게 되지 않을까? 하지만 오해는 마시라. 옛날 감성이 싫다는 얘기는 아니니까.
(사진 제공 : Daum 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