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 무비패스 #01
임순례 감독의 신작 <리틀 포레스트>는 ‘다른 삶’을 통해 ‘진짜 삶’을 얘기한다. 단순히 바쁜 도시를 떠나 농촌에서 조용히 살아가는 게 ‘진짜 삶’이 아니다. 시간의 흐름과 계절의 변화를 느끼며, 자신의 일을 스스로 결정해 실행하고, 자연의 순리에 맞는 제철 음식을 먹는 것을 말한다. 우리가 머리로는 알고 있지만 몸으로는 쉽게 할 수 없는 바로 그런 삶에 대한 얘기다.
서울에서 대학을 마친 혜원(김태리)은 아르바이트와 공부를 병행하며 임용고시를 준비하지만 떨어지고 만다. 더 이상 서울에 있을 이유가 없어진 혜원은 고향으로 내려오고, 무덤덤하지만 따뜻한 환대를 받으며 서서히 그곳에 정착한다. 알바와 공부를 병행해야 하는 치열한 삶도, 시험에 붙기 위해 경쟁할 필요도 없이 제철 재료로 음식을 해 먹으며 자연이 주는 여유를 누릴 수 있는 그 곳에서 혜원은 안정을 찾는다. 그리고 그 조용한 삶 속에서 지난 시간을 되돌아보며 인생의 가치와 자기주도적인 삶에 대한 의미를 생각하게 된다.
<리틀 포레스트>는 이가라시 다이스케의 동명 원작 만화를 영화로 옮긴 작품이다. 만화는 여름과 가을, 겨울과 봄의 2편이지만 임순례 감독의 영화는 사계절을 한 편에 다 담아냈다. 전반적인 분위기는 원작을 크게 훼손하지 않지만 만화가 지역 특산물을 통한 요리에 집중했다면 영화는 사람과 삶, 특히 ‘헬조선’에서의 치열함에 대한 이야기를 부각시킨다. 그리고 영화의 가장 큰 테마라 할 수 있는 시간, 구체적으로는 ‘과정’에 대해 얘기한다.
영화에서 ‘과정’은 ‘요리’를 통해 표현된다. 수확 시기를 고려해 씨앗을 뿌려 시간을 두고 재배한 후에 식재료를 얻어 음식을 만들어 먹는 모습을 통해 '과정'을 그린다. 필요한 재료를 마트에서 바로 구입해 비닐만 벗기는 게 아니라 추운 겨울 눈을 걷어내고 칼로 잘라 오는 모습이나 완성된 음식을 편의점에서 구입해 데워먹는게 아니라 숙성의 과정을 거쳐 완성시키는 모습을 통해 모든 일이 시간의 흐름 없이 얻어지는 게 없다는 것을 깨닫게 한다. 급해도 과정을 건너 뛸 수 없는 것이 바로 재배(성장)의 과정이기 때문이다.
음식이란 제철 식재료를 사용해 만드는 것이 당연하다. 하지만 우리는 계절이나 시간의 구분을 잊은 지 오래다. 아무 때나 아무 재료나 필요할 때 구할 수 있고, 심지어 완성된 상태를 바로 얻기도 한다. 그래서 영화 속에 자주 등장하는 혜원이나 혜원 엄마(문소리)의 요리 장면은 우리가 잊고 지낸 시간의 개념을 다시 생각하게 한다. 무엇이든 결과만 중요하다는 생각들, 뚝딱뚝딱 빨리빨리 완성되는 것들, 생략되거나 간과되는 의도들, 잊고 있었던 초심과 근본적인 가치에 대해 생각할 기회를 준다.
영화는 과정과 결과를 극명하게 대비시킨다. ‘혜원이 임용고시에서 떨어져 고향으로 내려왔다’라는 하나의 결과로 시작되지만 영화를 이끌어가는 진짜 힘은 플래시 백으로 보여지는 혜원의 성장 과정이다. 아무리 결과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시대라지만 부정할 수 없는 가장 확실한 과정은 성장의 시간이다. 성장 없이 존재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며 누구나 가장 잘 기억하고 있는 과정 역시 성장이다. 사람들은 성장 과정을 통해 자신의 근본을 만들고 이를 통해 인생의 진짜 가치가 무엇인지, 어떤 삶을 살아갈 것인지를 생각하게 된다.
고향 친구인 재하(류준열)는 도시에서 내려와 농사를 짓는다. 하지만 그는 도시의 삶을 경험하면서 자신이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해답을 찾았다. 하지만 혜원은 시험에 떨어지고 남자 친구와 헤어지고, 생활고에 시달리다 쫓기듯 고향으로 내려왔다. 누구보다 치열하고 냉정한 도시의 삶을 경험한 혜원이지만 재하와 다르게 도피의 장소로 고향을 선택한 것이다. ‘얼마간 머물자’고 생각했던 기간은 계절이 바뀌고 해가 바뀌고 결국 1년을 넘긴다. 하지만 그 시간은 낭비된 시간이 아니다. 혜원은 어떠한 외부적인 요인 없이 스스로 결정한 삶을 살았고 자기주도적으로 시간을 보냈다. 도피를 위해, 혹은 어쩔 수 없이 온 고향이지만 이곳에서 혜원은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어느 정도의 해답을 찾은 것이다.
바쁘고 시끄럽고 복잡한 도시 생활을 정리하고 시골에서 조용한 삶을 보내는 것이 무조건적인 정답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얼마나 주체적인 삶을 살고 있는가, 자기 시간을 자기 의지대로 쓰고 있는가의 문제다. 정해진 출근 시간에 지옥철을 타고 출근해 업무 시간을 넘겨 야근까지 하고 퇴근할 때는 허락을 받아야 하는 미생의 삶은 아무리 봐도 주체적인 구석이 없다. 하지만 자연의 섭리를 이해하고 씨를 뿌릴 시기를 정하고 수확 시기를 정하고 그것으로 어떤 음식을 만들어 누구와 나눌 것인가는 모두 나의 주도적인 행동으로 가능하다. 그 모든 것이 내가 정한 나의 삶이고 그런 결정들이 모여 진짜 인생이 된다.
앞만 보고 달리느라 우리는 많은 것을 놓쳤다. 햇살을 받으며 졸고 있는 할머니의 편안함을, 그늘에서 시원한 바람을 쐬는 엄마의 여유를, 음식을 나눠 먹으며 별을 보는 행복하 시간들 말이다. 혹자는 도시의 치열함을 견디는 이유가 성공을 위해서라고 한다. 하지만 <리틀 포레스트>의 혜원의 삶과 비교해 우리는 얼마나 성공한 삶을 살고 있나? 버티다 버티다 결국 버텨지는 삶과 내 시간을 내 의지대로 설계하는 삶 중에 어떤 삶이 진짜 삶일까? 성공, 돈, 사람들의 인정, 명예 모두 좋은 얘기다. 하지만 그것들을 신경 쓰느라 자신을 외면하고 있지는 않나?
우리는 그동안 "남들도 다 그렇게 사니까", "먹고살기 힘드니까", "바빠서" 등의 이유로 치열한 삶을 옹호하고 변명해 왔다. 그러면서 진짜 삶에 대해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하지만 음식이 만들어지기 위해 여러 과정을 거치는 것처럼, 우리도 성장이라는 과정을 거치고 있다. 그리고 그 시간들을 통해 가치관을 확립하고 기준을 만들고 지향점을 찾는다. 자연의 섭리는 시간의 흐름으로 완성된다. 그리고 그 자연 안에는 우리도 있다. 피 터지게 생존해야 하는 헬조선에도 우리가 있지만, 산들거리는 바람에 따뜻한 햇살이 비취는 어떤 곳에도 우리가 있다.
우리는 끈임없이 성장이라는 과정을 거치고 있다. 그래서 어떤 결과를 얻을 지는 중요하지 않다. 원하는 일이 있다면 성과를 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렇게 방향을 잡고 노력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중요하다. 마치 아무데나 던져 놓은 토마토가 다시 열매를 맺듯, 우리의 방향이 맞고 노력이 즐겁다면 우리 역시 잘 자랄 것이다. 가치를 어디에 둘 것인가는 각자가 정하는 것이다. 남과 비교하지 말고 자신의 내면을 바라보는 삶을 살아야 한다. 그렇게 자신만의 '작은 숲'을 만들어야 한다.
이 영화에는 시계가 나오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는 영화를 보는 내내 시간의 흐름을 극명하게 알 수 있다. 씨앗 심기, 물 주고 가꾸기, 수확, 제철 재료 손질, 논밭의 색깔 변화, 날씨 변화, 오구의 성장 등을 통해서 말이다. 월급 날짜나 휴대폰의 알람이 아닌, 계절의 변화를 통해 시간의 흐름을 아는 것이 바로 성장이다. 회사가 정한 시간이 아닌 진짜 내 시간이 어떻게 흘러가는지를 의식하고 스스로 결정할 수 있어야 한다.
(사진 제공 : Daum 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