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보러 영국갔다 #07
축구를 좋아합니다. 특히 리버풀을요. 스티브 맥마나만 선수 때문에 리버풀을 알고 좋아하게 됐으니 족히 20년은 넘었네요. 박지성이 맨유에 갔어도, 손흥민이 토트넘에 갔어도, 리버풀과 붙는 맨유나 토트넘은 그저 적일 뿐이죠. 하지만 축구 그 자체를 좋아합니다. 팬심은 어쩔 수 없지만 축구는 최고의 흥분과 감동을 주니까요.
어젯밤에 맨체스터에서 리버풀로 가는 기차는 분명 3.5파운드였다. 미리 예약을 할까 하다가 비싼 가격도 아닌 데다 시간을 정해놓고 움직이기가 부담스러워서 그냥 잤다. 그리고 오전에 체크아웃을 하고 시내를 느릿느릿 거닐다 기차역에 도착했다. 근데, 갑자기 표값이 5파운드가 돼 있었다. 아무리 영국의 기차표 가격이 일정하지 않다고 해도 하룻밤만에 1.5파운드가 오르다니! 비트코인이냐?! 이래서 가격 저렴할 때 예약을 해야 되는구나 싶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주말이라 가격이 좀 싸다는 것. 이곳은 평일이 비싸고 주말이 싸다. 우리랑 반대.
맨체스터 피카딜리역 안을 돌아다니다가 먹을 걸 샀다. 근데 역시나 북부 사투리 어렵다. 가뜩이나 영어를 잘 하는 것도 아닌데 독어 비스름한 북부 발음에 말까지 빠르니 도통 알아먹을 수가 없다. 계속 이렇게 지내다가는 대인기피증이 생길 것 같았다. 시간 여유가 있다고 생각했는데 리버풀 라임 스트리트 역으로 가는 기차의 플랫폼이 엄청 멀었다. 제일 끝에 있는 플랫폼으로 들어가 다시 오르막을 걸어 코너를 돌아 마지막 플랫폼까지 가야 한다. 시간 많다고 여유 부렸더니 괜히 마음이 급해졌다. 그래도 무사히 안착. 리버풀로 고고!
리버풀에 도착하니 날씨가 너무 좋다. 비와 눈에 바람까지 심했던 전형적인 영국 날씨 맨체스터와는 비교가 안 됐다. 역시 리버풀! 나름 두 번째라고 익숙하게 역에서 내려 광장으로 나왔다. 흔히들 리버풀에 오면 축구와 비틀스, 항구 등을 먼저 떠올린다. 관광도시로서 크게 볼 게 없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물론 관광으로 유명한 도시들에 비하면 맞는 얘기다. 하지만 리버풀에도 역사와 전통이 있고 문화재까진 아니어도 멋진 건축물들과 묘하게 서울과 비슷한 밤 문화도 있다. 첫날은 그런 것들을 경험하기로 했다. 뚜벅뚜벅 걸으며 리버풀 거리부터 느껴보기로 했다.
우선 캐리어를 끌고 간 곳은 리버풀 대성당. 숙소로 가는 길이어서 불편하지만 캐리어와 함께 했다. 그냥 지도만 한 번 슬쩍 보고 가다가 성당 비스름한 건물이 있길래 열심히 사진 찍고 했는데 알고 보니 여긴 루크 교회. 어쩐지 좀 소박하다 했어. 교회를 지나 진짜 리버풀 대성당을 만났다. 주택가와 어우러진 곳에 있는 대성당은 고풍스러운 분위기에 규모도 꽤 컸다. 나 외에도 성당을 둘러보는 관광객이 조금 있었지만 관광지처럼 북적이는 모습은 없었다.
리버풀 대성당 근처에는 리버풀 메트로폴리탄 대성당도 있다. 가지런히 들어선 주택단지를 통과해 숙소인 홀마크 인 리버풀을 지나 대학가 근처로 가면 뾰족한 창들이 인상적인 메트로폴리탄 성당이 보인다. 규모는 크지 않은데 리버풀 대성당과는 다르게 신식으로 지어진 건물이다. 뭔가 첨단 미래형 성당이랄까? 계단을 올라 내부로 들어가면 넓은 홀에 여러 색의 조명이 비취는 다소 촌스러운(?) 분위기도 볼 수 있다. 외부가 멋있어서 사진을 좀 찍으려는데 중국인 3인방이 또 수 백장의 사진을 찍고 있다. 비킬 때까지 기다리다 지쳐 다시 내부로 들어갔다 나왔는데 여전히 있다. 징하다 진짜.
일부러 대학가 근처를 돌아 숙소로 왔다. 리버풀 유니버시티, 리버풀 커뮤니티 칼리지, 존 무어 유니버시티 등 여러 학교가 있다. 특히 존 무어 유니버시티의 아트 앤 디자인 빌딩은 존 레넌의 얼굴을 상징 이미지로 해놨다. 전체 블록을 쭉 돌아 숙소에 도착한 뒤 짐을 풀었다. 허더즈필드, 맨체스터에 비해 조금 비싼 숙소라 그런지 상태가 좋았다. 계단이 많고 미로형 구조라 좀 많이 걷는 게 단점이지만 그래도 마음에 들었다. 짐을 풀고 서브웨이에서 간단하게 식사를 해결하고 알버트 독으로 향했다. 물론 걸어서.
항구 도시답게 리버풀의 항구는 볼거리가 많다. 특히 알버트 독은 많은 관광객이 찾는 곳이다. 비틀스 박물관인 ‘비틀스 스토리’도 이곳에 있고 해안가 산책로나 주변 시설들도 잘 꾸며놨다. 숙소에서 나름 가까운 편이어서 천천히 걸으며 알버트 독의 여기저기를 둘러봤다. 마침 한국인 관광객도 보였다. 특히 아무도 자기들 말을 못 알아들을 거라고 생각했는지 시종일관 큰 소리로 떠들던 한국인 여자 2명이 인상에 남는다. 손흥민 얘기도 하는 걸 보니 토트넘의 리버풀 원정 경기를 보러 온 것이 아닌가 싶기도 했다. 그렇다면 당신들은 나의 적!
알버트 독은 해안선이 멋지다. 멀리 보이는 하늘과 구름과 노을과 바다가 조화로운 모습을 보인다. 시간이 되면 출발하는 여객선이 잔잔한 바다에 길을 만든다. 파도가 치고 모래사장이 있는 해변은 아니지만 멀리서 바라보기엔 고즈넉한 모습이다. 해안가 산책로를 걸었다.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이 꽤 많았다. 구조물들을 지나고 개 동상을 지나 천천히 걷다 보니 어느덧 피어 헤드. 멀리 로열 리버 빌딩과 큐나드 빌딩이 화려한 빛을 뿜어낸다. 좀 더 걸어가니 비틀스의 멤버들도 보인다. 역시 기념사진을 찍는 사람들이 많다.
시청으로 넘어갈 때 즈음 해가 졌다. 퇴근 후 사람들이 식당과 술집을 찾아 시내로 모이기 시작했다. 캐번 클럽이 있는 환락가 거리가 북적거렸다. 유럽의 다른 도시들은 대부분 밤이 되면 거리 전체가 조용해지는 편인데 리버풀의 중심가는 밤이 화려했다. 술집도 많고 식당도 많고 쇼핑몰도 많으니 사람들이 모여든다. 게다가 이날은 불금! 잘 차려입은 사람들이 하나 둘 택시에서 내린다. 11시나 12시가 넘어도 영업을 하는 술집들이 꽤 있다. 특히 분위기가 좋다. 테이블이 있지만 다들 서서 술을 마시거나 즉흥적으로 춤을 춘다. 근데 이런 분위기는 대부분 나이가 좀 있는 분들이다. 젊은 친구들은 더 세련된 클럽에 가겠지? 도대체 어디냔 말이다.
리버풀의 밤 풍경은 뭔가 서울하고 비슷하다. 24시간 패스트푸드 점도 꽤 있고 밤늦게까지 영업을 하는 곳도 많다. 클럽 거리는 말할 것도 없다. 불금이라고 몰려드는 사람들도 우리의 금요일 분위기랑 비슷하다. 전체적으로 맨체스터보다 더 시골틱한데 좀 더 잘 노는 분위기랄까? 나이 든 사람들도 흥을 발산하고 노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