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안녕 리버풀, 안녕 맨체스터

축구보러 영국갔다 #12

by 김제르
축구를 좋아합니다. 특히 리버풀을요. 스티브 맥마나만 선수 때문에 리버풀을 알고 좋아하게 됐으니 족히 20년은 넘었네요. 박지성이 맨유에 갔어도, 손흥민이 토트넘에 갔어도, 리버풀과 붙는 맨유나 토트넘은 그저 적일 뿐이죠. 하지만 축구 그 자체를 좋아합니다. 팬심은 어쩔 수 없지만 축구는 최고의 흥분과 감동을 주니까요.


온통 푸른빛인 맨체스터 공항 연결 통로


#12 안녕 리버풀, 안녕 맨체스터


축구가 끝나고 1시간 가까이 걸어와서는 저녁을 사서 숙소에 오니 대략 11시가 넘는 시각. 비행기는 아침 7시지만 맨체스터 공항역으로 가는 기차가 3시 반에 있으니 꼼짝없이 일찍 가서 기다려야 할 판이다. 잠을 잘까? 1~2시간만 자고 일어날 수 없을 것 같아 고민이다. 일단 뭘 좀 먹으면서 짐을 싸고 씻기로 한다. 꼼꼼하게 짐을 싸도 시간이 남고 여유롭게 씻어도 시간이 남는다. 잠깐 누울까 하다가 그만 잠이 든다. 역시 피곤엔 장사 없다.


새벽 3시가 넘은 리버풀 라임 스트리트역


다행히 알람 소리에 눈을 뜬다. 짐을 챙겨 체크 아웃. 새벽 시간 아무도 없는 길을 걸어 리버풀 라임 스트리트역에서 맨체스터 공항으로 향하는 기차를 기다린다. 의외로 이 시간에 비행기를 타러 가는 사람들이 꽤 많다. 내가 캐리어를 끌고 왔다 갔다 하니 어떤 남자가 이 기차가 맨체스터 공항으로 가는 게 맞냐고 묻는다. ‘아마 지금 기차라고는 이거 하나잖아?’ 속으로 생각했지만 친절한 미소로 맞다고 알려준다. 기차를 타고 잠깐 졸까 싶었지만 의외로 잠이 안 왔고 열차는 꽤나 빨리 맨체스터 공항에 도착했다.


너무 이른 시각에 도착한 맨체스터 공항


온통 파란빛의 맨체스터 공항 복도를 지나 게이트가 열리길 기다린다. 너무 일찍 왔기 때문에 당연히 무지 많이 기다렸지만 의외의 복병은 게이트를 들어간 뒤에 있었다. 들어오는 것도 아니고 나가는 건데 엄청나게 꼼꼼하게 검사를 했다. 줄이 엄청 길었고 웬만해서는 잘 줄어들지도 않았다. 몸수색은 물론이고 가방에 사소한 뭐라도 있는 사람은 다 걸렸다. 나 역시 치약 때문에 걸려서 가방 정밀 검사를 받느라 또 기다리고 기다렸다. 의외로 작은 실수를 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정밀 검사를 하는 곳이 엄청나게 붐볐다. 그곳을 직원 3명이 커버하고 있으니 줄이 줄어들 리가 있나. 맨체스터 테러 때문인가 싶다가도 근데 나가는 걸 이리 꼼꼼하게 할 이유가 있나 싶어 갸웃했다.


몸 수색, 가방 검사 다 마치고 우여곡절 끝에 비행기 입성


가방 찾고 긴 줄을 통과해서 나오니 게이트는 또 제일 끝에 있다. 바쁘게 도착했더니 비행기가 연착이다. 아부다비에서 3시간도 안 되는 시간 동안 환승해야 하는데 설마 연착이 길진 않겠지? 그러던 와중에 기차 탈 때 나한테 물어봤던 청년이 인사를 한다. 하여튼 유럽 사람들 붙임성이 좋다. 잠깐 얘기를 한 사이라도 나름 아는 사이라도 친한 척을 하다니. 그 와중에 한국인 2명이 게이트에서 자꾸 입장 금지를 당한다. 왜 그러는지 지들만 모르는 것 같아서 좌석 뒷번호부터 먼저 입장이라고 알려줬더니 고맙단다. 뭐 대단한 일이라고. 그냥 안내 멘트만 잘 들으면 되는 걸.


비행기 안의 90% 이상은 잤던 기억밖에


예상대로 아부다비까지 쓰러져서 잤다. 밥도 먹었는지 안 먹었는지 기억이 안 난다. 엄청 자다가 중간에 깼는데 옆자리 노부인의 베개가 내 발 앞쪽에 떨어져 있어서 돌려주려고 했더니 괜찮다고 쓰라고 한다. 네? 옆에 남편은 자기 것도 써도 된다면서 막 주려고 한다. 내가 엄청 잘 자니까 안쓰러웠던 모양이구나. 내릴 때가 다 되어 잠에서 좀 깨니 신기한 듯 날 바라보던 노부인이 말을 걸기 시작한다. 아부다비가 목적지냐? 영국에는 무슨 일로 왔다가냐? 자기는 싱가포르와 태국에서 휴가를 보내기 위해서 간다 등등. 안 자고 깨어 있었으면 질문 공세에 깨나 시달렸지 싶다. 반대로 저 노부인은 나한테 말 걸고 싶었을 텐데 타자마자 자서 얼마나 아쉬웠을까.


평화롭던 아부다비, 북적대는 인천공항행 게이트 앞


아부다비에서 환승했다. 맨체스터에서는 단 2명이던 한국인이 아부다비에서는 엄청 많다. 따로 떨어져 있을 때는 조용하던 사람들이 모이면 엄청 떠는다. 인천행 게이트 안은 시장통이다. 엄청 시끄럽다. 그 와중에 한 남자애가 유창한 외국어로 아랍 여인과 계속 얘기 중이다. 친구들이 다른 얘길 해도 무시하고 얘기에만 열중하고 있다. 아랍 여인이 무척 미인이었다. 아 저 친구 혼신의 노력을 다하고 있구나 싶었지만, 이 친구야 조심하라고 아랍인이야.


비행기 타러 들어가는데 교회 봉사활동하고 오는 사람들 틈에 끼었다. 시끄러운 건 둘째치고 이 사람들 한 사람이 줄 서서 기다리다 일행이라고 막 10명씩 새치기를 한다. 짐 실을 때도 모르는 짐은 그냥 막 내리고 자기들 짐을 먼저 싣는다. 역시 신앙심보단 양심이 먼저가 아닌가 싶다. 자리 역시 봉사단 사이다. 창가라 다행이긴 한데 나 빼고 앞, 뒤, 옆이 다 일행이다. 슬쩍 물어보니 레바논에서 봉사하고 온다고 했다. 영국에서 축구 보고 왔다고 하니 호기심을 보인다. 이런저런 얘길 하다가 역시나 잠을 청한다.


서서히 내려앉는 비행기, 드디어 한국 도착


드디어 인천공항. 괜히 아쉽다. 진짜 돌아왔구나 싶은 생각에 뭔가 허탈하다. 엄청 긴 시간은 아니었지만 영국에 있던 시간들이 너무 즐거웠는데 쉽게 다시 겪지 못할 시간들이라는 생각에 뭔가 더 마음이 무거웠다. 그래도 다시 일상을 살아야 할 테니. 리무진을 타고 가는데 어떤 여자가 계속 문 앞에 서 있다. 기사가 위험하다고 앉으라고 3번을 말한 끝에 문 앞자리에 앉는다. 그리고 정류장. 기사가 내리라고 하니 여자는 자기 내릴 곳이 아니란다. 뭐지? 왜 서있었지? 참 희한한 사람들 많다. 한국이 맞긴 하구나.


짧은 여행이었지만 축구에 온 신경을 쏟을 수 있는 시간이었다. 축구장을 구경하고 리버풀과 맨체스터 시내를 걸어 다니고 리버풀 경기를 직관하고 서포터들에게 휩쓸리고.. 외국인들이 한국에 방탄 투어 같은 걸 온다고 하던데 처음엔 그게 뭐냐고 비웃었는데 나는 축구 투어를 하고 있다. 똑같은 놈이지 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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