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제르 Jun 22. 2018

<여중생A>, 현실과 옛날 감성의 언밸런스

브런치 무비패스 #12

<여중생A>, 현실과 옛날 감성의 언밸런스


특기는 글쓰기, 취미는 온라인 게임인 미래(김환희)는 현실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지만 게임 세계 사람들과는 진심을 나누고 살아간다. 자연스레 현실에서는 왕따를 당하기 일쑤다. 집안 형편은 어렵고 아빠는 술만 먹으면 폭력을 휘두른다. 미래가 도망칠 수 있는 곳은 가상의 공간이거나 자신의 쓰고 있는 소설 속이 전부다. 하지만 이 소설이 카피를 당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같은 반 학생들은 미래의 소설을 베낀 백합(정다빈)을 다음 왕따의 대상으로 삼지만 미래는 온라인 게임에서 알게 된 재희(수호)를 통해 희망을 배우고 백합을 용서한다. 

영화에 대한 얘기를 시작하기에 앞서 나는 웹툰을 보지 않았다. 좀 부지런을 떨었으면 챙겨볼 수도 있었지만 원작과의 비교보다는 영화 자체의 이야기를 더 하기 위해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영화는 썩 좋지 않았다. 왕따 문제를 너무 흔한 방식으로 다루는 것도 불편한데 동화 같은 결말과 모두가 화목한 마지막 설정은 영화가 꾸준히 제기한 문제와는 상관없이 그냥 좋게 좋게 마무리 짓는 모양새다. 굳이 그래야 했을까? 중학생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기 위해서? 그냥 둬도 된다. 아이들이 현실을 더 잘 안다. 굳이 좋은 결말을 만들 필요는 없다.



영화의 배경은 (의외로)과거다. 2000년대 중반? CRT 모니터로 윈도 98로 PC를 돌려 어설픈 온라인 게임을 하던 시대다. 프리허그가 막 등장했고 홍대가 핫플레이스이던 시절. 하지만 이런 고전적인 시대적 배경에 주제는 왕따다. 그것도 좀 과도한 왕따. 당시에도 이렇게 심한 왕따가 있었나 싶을 정도의 패거리 문화로 그려진다. 요즘 학교에서 벌어지는 일이라고 해도 믿을만한 일을 굳이 과거를 배경으로 다루고 있다. 과거의 정서에서 답을 찾고 있는데, 왕따는 과거의 문제가 아니잖은가. 뭐 그럴 수는 있다. 여기까지는 다소 무리수가 있긴 하지만 그럭저럭 인정해 줄 만도 하다.



문제는 현재의 이슈를 적극적으로 다루면서 정작 그 해결 방법으로 과거의 감성이나 동화 같은 비현실을 차용했다는 점이다. 조용하고 소극적이지만 글을 잘 쓰는 중학생A와 그에게 접근하는 인기 많은 반장. 그리고 A가 짝사랑하는 남자애. 그리고 그 남자애는 나중에 반장과 사귀게 되고. 반장은 A가 쓴 글마저 가로챈다. 반장 주변의 아이들은 텃세를 부린다. 소설 카피 사건 이후 반장과 주변 아이들이 틀어지고 다시 왕따의 공격 대상이 A에서 반장이 되지만 A는 그런 반장을 보듬으며 모두와 화해를 이룬다는.. 80년대 청소년물다운 전개다.



가장 아쉬운 점은 학창 시절의 왕따 문제를 가장 코너에 몰린 주인공을 통해 풀어 간다는 점이다. 제목에는 불특정인을 지칭하는 'A'라는 표현을 썼지만, 그 대상은 항상 평범보다는 그보다 더 심하고 더 어려운 상황으로 설정된다. 집은 가난하고 가정 폭력에 시달리며 친구들과 잘 사귀지 못하고 자기만의 세계가 강하고 게임에 빠져 있으며 짝사랑하는 남자는 뺏기고 현실과 온라인 게임의 중간 어딘가에서 자기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그런데 글을 잘 써서 혼자 보내는 시간이 많은, 쉽게 말해 전형적으로 왕따 확률이 높은 캐릭터를 그대로 가져왔다. 그래서 어느 것 하나 예상을 빗나가지 않는다. 왜 항상 우리는 어려운 상황에 처한 인물을 통해 우리의 지난 시간을 돌아보고, 성장기의 고통을 경험해야 하는가. 모두의 경험이라고 하기엔 캐릭터의 보편성이 아쉬운 부분이다.



그나마 영화의 참신한 시도라면 온라인 게임의 세계와 현실 세계를 어중간하게 연결했다는 점. 근데 말 그대로 어중간하다. 적극적으로 한쪽 세계를 드러내지도 않으면서 필요할 때만 세계관을 가져와 방패처럼 이용만 해 먹는다. 납득이 가는 수준은 아니다. 온라인 게임에서 만난 얼굴도 모르는 사람에게 속마음을 다 털어놓는다는 식의 설정으로 주인공은 마음 속 깊은 감정을 쏟아내고 주변 사람들을 용서하고 어려움도 이겨낸다. 굳이 그렇게까지 모든 것을 용서하고 안아줘야 했는가는 의문이다. 그것이 올바른 성장인지도 묻고 싶다. 도덕책이 아니라 영화인데 현실 반영이 별로 되지 않았다. 그리고 그것이 불특정인인 A를 통해 전개된다는 것도 못마땅하다.



아마도 감독은 현재의 문제를 자신의 어린 시절 추억으로 풀어내고 싶었던 모양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건 요즘 아이들의 지지도, 옛날 아이들의 지지도 받기 어려운 방법이다. 아예 옛날의 정서를 바탕으로 하던지 요즘의 트렌드에 맞는 방법을 찾았어야 했다. 주인공을 계속 코너로 몰아가기만 하다가 극적인 반전으로 모두를 용서하는 이야기는 매력이 없다. 냉정하게 현실을 그려내야만 하는 건 아니지만 동화 같은 아름다운 세상을 그려 관객들을 속일 이유도 없지 않은가.


영화에는 나름 아역들이 중요하게 나온다. 하지만 김환희, 정다은을 제외한 정다빈, 유재상 등은 평범하기 이를 데가 없으며 EXO 수호 역시 캐릭터를 편하게 전달하지 못한다. 현실의 이야기를 동화적인 설정으로 풀어가면 캐릭터도 길을 잃을 수밖에 없다. 현실적인 느낌들이 사라지니까.


(사진 제공 : Daum 영화)

작가의 이전글 <허스토리>, 끝나지 않은 우리의 이야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