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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제르 Jun 18. 2018

<허스토리>, 끝나지 않은 우리의 이야기

브런치 무비패스 #11

<허스토리>, 끝나지 않은 우리의 이야기


부산에서 일본인 관광객을 대상으로 하는 문사장(김희애)은 우연히 위안부 문제를 알게 되고 자신의 일을 봐주던 할머니 역시 위안부 피해자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 뒤 적극적으로 위안부 문제 해결에 앞장선 그는 재일교포 변호사들의 도움을 받으며 6년에 걸쳐 부산과 시모노세키를 오가며 관부재판을 벌여 일부 승소를 받기도 한다. 그 과정에서 위안부 할머니들의 슬픔에 공감하며 분노하기도 한다. 하지만 일본은 상고에서 이 판결을 뒤집고, 문사장은 위안부 문제를 전 세계에 알리기 위해 더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


<허스토리>는 1982년 있었던 관부재판을 소재로 하고 있다. 관부재판이란 일본의 시모노세키와 부산을 왔다 갔다 하며 6년간 진행된 재판으로 우리에게 위안부 사건을 알린 결정적인 계기가 된 재판이다. 이 재판의 놀라운 점은 최초로 일본이 위안부와 관련된 잘못을 부분적으로 인정했다는 점인데, 하지만 상고심에서는 기각돼 일본 스스로 잘못을 덮었다. 그리고 이 사건은 위안부 수요집회가 시작된 계기가 됐다. 영화는 바로 이 관부재판을 다루면서 이와 관련된 인물들에 초점을 맞춘다. 물론 그들은 주로 여성들이다. 위안부 할머니들을 비롯해 문사장과 그의 딸 등이 주요 인물로 등장한다.



<허스토리>가 기존의 위안부 소재 영화들과 다른 점이 있다면 위안부 할머니들의 피해를 전면에 내세우기보다는 그 사건을 풀어가는 사람들의 이야기에 비중이 높다는 점이다. 사실 위안부 문제야 그 내용을 알면 알수록 분노를 금할 길이 없다. 이미 <귀향> 같은 영화에서도 우린 충분한 분노와 슬픔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허스토리>는 그런 분노의 경험을 관객이 아닌 1980년대 사람들을 통해 전해준다. 직접적인 피해자는 아니지만 위안부와 관련된, 혹은 주변 사람들의 모습을 통해 위안부 문제의 심각성과 일본의 태도를 우회적으로 보여준다.



하지만 위안부와 관련된 여러 클리셰들은 등장한다. 과거 위안부였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사람들로부터 지탄을 받는 장면이나 학대의 흔적, 피해자임에도 오히려 죄인처럼 취급되는 상황, 마지막까지 감추고 싶었던 그들만의 비밀 등이 그렇다. 영화는 여기에 몇 가지를 더 했다. 같은 여자로서 문사장의 분노와 그들의 희생을 모르고 살아왔던 것에 대한 미안함, 또 배상 문제에 대한 당사자들의 직접적인 태도 등이 그렇다. 우리가 알고 있거나 예상할 수 있는 부분들이기는 하지만 실제로 있었던 일이라는 점에서는 피부에 와 닿는 느낌이 좀 다르다.



익히 알고 있는 이야기에 예상 가능한 전개이기는 하지만 위안부 문제는 우리가 계속 관심을 갖고 알고 있어야 할 사건이다. 일본의 뻔뻔한 반응도 물론이지만 아무런 힘을 쏟지 않았던 지난 정부들의 태도에 대해서도 그렇다. 문사장 한 사람의 힘으로 위안부 사건의 불씨가 댕겨진 것은 아닐 거다. 하지만 누구라도 그 문제를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적극적으로 개입했다는 점에서 관부재판을 비롯한 이후 위안부 문제 자체는 큰 전환을 맞게 된 것이다. 영화에서 왜 이렇게 이 문제에 매달리냐는 지인의 질타에 "혼자 잘 먹고 잘 살아온 게 부끄러워서 그런다"라는 말은 우리 모두의 마음을 울린 부분이다.



<허스토리>의 또 다른 굉장한 점은 연기 좀 한다 하는 중견 여배우들이 총집합했다는 점이다.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문사장 김희애를 중심으로 김해숙, 예수정, 문숙, 이용녀 등 방송이나 영화에서 익숙한 얼굴들이 대거 출연해 평소와는 다른 모습을 보인다. 거친 욕을 입에 담고 사는가 하면 거친 분장과 시간의 흐름을 담은 맨살을 노출하는 등 시대의 아픔을 적절한 연기로 선보인다.



시대의 아픔이 단순히 호기심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영화의 소재가 된다는 것이 자극적인 이슈로만 끝나서는 안 된다. 위안부 문제는 어떤 방식으로 알려지더라도 우리에겐 슬픔이고 분노이다. 하지만 그런 일시적인 감정으로 끝날 것이 아니라 지속적인 관심과 역사에 대한 바른 이해로 이어져야 할 것이다. 일본의 만행이나 사과받지 못한 시간들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이 이야기를 지금까지 이어져오게 한 다른 사람들의 존재와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는 그들의 노력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져봐야 할 것이다.


위안부 소재 영화는 아무래도 힘들다. 알고 있는 이야기라도 영화의 전개를 따라가는 것이 힘에 겨울 때가 많다. <허스토리> 역시 그렇다. 하지만 영화는 그런 분노만을 자극하지는 않는다. 그 시대 사람들의 안간힘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그것이 지금의 사람들에게도 닿기를 바라본다.


(사진 제공 : Daun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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