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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제르 Jul 05. 2018

<잉글랜드 이즈 마인>, 꿈으로 향하는 전기의자

브런치 무비패스 #14


<잉글랜드 이즈 마인>, 꿈으로 향하는 전기의자

오스카 와일드를 좋아하는 문학소년 스티븐(잭 로던)은 음악에 대한 꿈을 접고 세무사로 일하며 생계를 이어간다. 하지만 음악을 향한 꿈을 접은 적은 없다. 그러다 우연히 만난 예술가 로던(제시카 브라운 핀들래이)을 통해 내재된 예술 감각과 음악을 향한 욕망을 확인한다. 스티븐은 한 번의 공연으로 관심을 받게 되지만 이후 오디션에선 떨어지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온다. 일상에도 적응하지 못하고 음악에 대한 꿈도 펼치지 못한 채로 시간을 흘려보내던 그는 음악을 향한 열정을 인정하고 직접 밴드를 결성하기로 마음먹는다.


'더 스미스'의 보컬 모리세이의 청년기 얘기를 다룬 <잉글랜드 이즈 마인>은 위대한 팝 역사의 시작이 어떠했는지에 대한 궁금증을 해소해주지만 반대로 그 과정이 꽤나 현실적으로 질척거렸다는 것도 보여준다. 2018년의 청년들이 먹고사는 문제와 꿈 사이에서 방황하듯, 70-80년대 영국 맨체스터의 청년들 역시 그 사이에서 스스로를 잠식시켰다. 당장 생활비가 없어 생계를 걱정해야 하는 이들에게 무대에 서서 노래를 한다는 것이 얼마나 큰 용기가 필요한 부분인지도 설명된다.



우리는 여전히 현실 속에서 꿈을 꾼다. 현실을 벗어나서 꿈을 꾸어본 적이 없으며 꿈을 실현하면서 현실을 걱정하지도 않는다. 사회 구조 탓일 수도 있고 사람들의 인식 문제일 수도 있지만 두 가지를 동시에 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현실에 안주해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거나 꿈을 향해 될 때까지 시도하며 일단 버티는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은 (여러 이유로 인해) 전자를 택하게 된다. 꿈을 향해 가는 길도 노잣돈이 있어야 가능한 게 아니겠는가.



근데 이 문제가 비단 서울에 사는 아무개 씨한테만 해당되는 게 아니라는 거다. 전설적인 그룹 '더 스미스'의 보컬 역시도 이런 현실적인 문제를 겪었다니 뭔가 좀 친근하다. 아버지가 떠나고 식구들이 모두 생계에 뛰어든 상황에서도 음악을 향한 꿈을 접을 수 없었던 스티븐. 그는 어려서부터 어머니의 영향으로 문학, 음악 등을 접하고 글쓰기에도 능했다. 그런 환경 속에서 성장한 사람에게 갑자기 월급에 목매는 인생을 살라고 하면 그 누가 그걸 적응할 수 있겠는가? 아무리 먹고사는 문제라고 해도 자기가 가진 본질, 자기를 키워낸 근본 요소에 반하는 행동을 쉽게 할 수는 없는 법이다.



스티븐 역시 그렇다. 근무태반 직원으로 세무사에서 일하며 월급을 받아 생계를 유지하지만 늘 마음은 콩밭이다. 그러던 와중에 예술을 하는 린더와 어울리면서 자극을 받는다. 평범한 삶이 아니라 꿈을 향해 나아가고 싶다는 욕구가 계속 커진다. 아마 혼자였다면 자신의 욕구를 누르고 현실에 안주했을 수도 있지만 예술적 감성과 자신의 재능을 일깨워주는 주변 사람들 덕분에 스티븐은 점차 현실 밖의 자신에게 믿음을 갖게 된다. 소극적이던 모습도 점점 벗게 된다. 하지만 모든 일이 술술 풀린 것만은 아니다.



밴드를 만들려고 찾아갔지만 소극적인 성격에 말도 못 붙이고, 음악을 만들고 노래를 부르지만 누구에게 보여준 적도 없다. 글도 마찬가지. 꾸준히 쓴 글도 자신의 노트 안에서만 존재할 뿐이다. 그렇게 욕망만 있던 그에게 린더와 어머니는 새로운 가능성에 대해 언급한다. 다른 사람들처럼 살 필요 없다고, 원하는 일이 있다면 도전해야 한다고. 실패를 거듭하고 밴드 결성도 실패하고, 오디션도 낙방하지만 스티븐은 멈추지 않는다. 친구가 심각한 병에 걸려 병원에 누워 있는 모습을 보고 인생이 짧다는 생각도 하게 된다. 망설이고 주저하면서 시간을 흘려보낼 수 없던 그는 꿈을 향해 보다 적극적으로 움직인다.



영화에서 아쉬운 부분은 현실과 꿈의 고민과 갈등을 다소 길게 표현한다는 점이다. 현실과 꿈을 사이에 둔 갈등은 충분히 고민스러운 부분이지만 영화는 대부분의 런닝타임을 이 고민에 할애한다. 조금씩 다른 계기와 변화의 이유가 등장하기는 하지만 그 과정이 다소 지루하게 그려지는 것도 사실이다. 아무리 음악으로 커버를 한다고 하지만 내용 자체가 답답한 부분도 있다. 너무 현실적으로 그린 건 아닌가? 하긴 청년시절을 다 다루며 그 시간 모두를 갈등과 고민의 시간으로 그릴 수는 없었을 테니 그렇게 따지면 또 함축된 내용이라 할 만도 하다. 하지만 전개가 지루한 건 사실이다.



<잉글랜드 이즈 마인>의 첫 장면이 파도일 정도로 영화 속에는 물의 이미지가 자주 등장한다. 파도치는 바다, 강, 비, 수돗물 등이 자주 나온다. 물은 만물의 근원이며 본질이다. 영화 속 물의 의미는 환경이 바뀌어도 상황이 달라져도 사람의 본질은 같다는 것을 의미한다. 어떤 역경이나 방해가 있어도 근본적으로 해야 할 일은 하게 돼 있다는, 혹은 그렇게 해야 한다는 걸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스티븐은 자신의 욕망이나 꿈을 숨기고 그렇게 먹고 살 수도 있었다. 행복하지 않고 욕구를 누르며 지내도 그냥 그렇게 살 수는 있었을 거다. 하지만 결국 그는 자신의 본질을 지켰고 ‘더 스미스’가 탄생했다.



특별한 재능을 가진 누군가에게, 굉장한 배경을 지닌 누군가에게, 특출 난 캐릭터의 누군가에게 해당되는 얘기는 아니다. 나의 본질이 세상을 바꿀 엄청난 무엇이 아니어도 상관없다. 자신의 소박한 행복과 이룰 수 있는 작은 목표는 부끄러운 일이라거나 나의 본질과 상관없이 사소하고 하찮은 일이 아니다. 오히려 반대로 세무사로 성공할 운명의 누군가가 억지로 밴드를 하고 있을 수도 있다. 모두가 대단한 무엇이 되기 위해 꿈을 향해 나가는 것이 아니다. 꿈의 가치는 스스로가 정하는 것이다. 다만 그것이 무엇인가에 의해 어쩔 수 없이, 누군가의 강요에 의해, 소극적인 의지 때문에 꺾이지 않길 바란다. 자신의 근본을 들여다봐야 한다. 고민하고 갈등하고 어려움도 이겨내야 한다. 크던 작던 그것이 가장 나답게 세상을 사는 방법이니까.


영화 속에서 스티븐은 밴드를 결성하자는 친구 앞에서 노래를 못 부른다. 성격의 문제였다. 하지만 어느 날 노래를 부르기로 마음먹고 친구에게 찾아온다. 그리곤 이렇게 말한다. “드디어 내가 전기의자에 앉을 용기를 냈어.” 꿈을 향해 발을 내딛는 것에는 용기가 필요하다. 하지만 그 용기에는 분명 책임과 의지가 수반돼야 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전기의자’라는 표현이 지나치지 않다.


(사진 제공 : Daum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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