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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엠지MZ대리 Sep 09. 2023

당신은 할 수 있습니다

리치디보스 긍정의 말 세번째



"당신은 할 수 있습니다."라는 말이 위선적으로 느껴지던 시절이 있었다. 상대방을 기분 좋게 하는 말에는 여러 가지가 있을 것이다. '예쁘다', '똑똑하다'와 같은 칭찬의 말이나 '괜찮아?', '무슨 일 있어?'와 같이 관심을 표현하는 말과 같이 말이다. 나는 이러한 말들이 듣기 좋은 말인 만큼 가식과 위선이 섞이기 쉽다고 생각하여 자주 경계한다. 내가 경계하는 대표적인 말로 "너는 할 수 있어"가 있다.



사실 더 정확하게 기술하자면 "너는 할 수 있어"라는 말 자체에 크게 집중하지 않았었다. 적어도 1년 전까지는 말이다. 이미 수십번도 더 고백했듯이 교만함이 가득한 나는 그런 말 따위 듣지 않아도 스스로 할 수 있다는 것을 잘 알았기 때문이다. 살아오며 성취한 것들은 대부분은 내가 노력하고 에너지를 투입한 만큼 성과를 가져다 주었다. 그렇기 때문에 굳이 타인의 격려 따위가 없어도 괜찮았다. 어차피 '나는 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것을 교만이라고 일컫은 이유는 단순히 내가 이러한 격려의 말을 필요로 하지 않았다는 사실 때문이 아니라, 내가 도전하고 성취한 영역의 것들이 대부분 의지를 갖고 노력한대로 성과를 기대할 수 있는 것들에 국한되어 있었던 까닭이다. 나는 우물 안에 갇힌 존재들이 자주 그러듯, 우물 밖의 존재를 '인지'하지 조차 못한 상태로 이미 스스로 우물을 떠나 큰 바다 속에 유영 중이라고 '착각'함으로써 그 교만을 키워왔다.


또한 나는 스스로가 "너는 할 수 있어"라는 말을 필요로하지 않는 만큼 타인에게도 그 말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공감하지 못했다. 어쩌면 나는 이따금씩 "너는 할 수 있어"라고 말하면서 마음 속으로 위선했는지 모른다. '할 수 있을까?'라고 의심하거나 '정말로 이런 말 따위가 필요해? 해주지 않아도 할 수 있잖아?'라고 생각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혀에 권세가 있다는 것을 깨달은 후에, 내 능력과 의지만으로 되지 않는 일이 있다는 것을 깨달은 후에, 이미 우물 밖 바다에서 유영 중이라 '착각'했지만 그것이 진정 '착각'이었다는 것을 깨달은 후에 "너는 할 수 있어"라는 말을 필요로 하게 되었다.



이 모든 깨달음의 과정이 낭비는 아니었다. 태생적으로 수학을 좋아하고 논리적으로 납득되고 납득시키기를 즐겼던 사람이었던 내가 '결코 납득할 수 없는 것도 납득할 수 있는' 자질을 갖추기 위한 준비 과정이 되었기 때문이다. 나는 여전히 스스로 할 수 있다고 믿지만 그것이 나의 능력과 추론 가능한 과학적 근거로 인한 믿음이 아니라 혀를 통해 터져 나오는 권세가 주는 도덕적 경험에 의한 것이라고 믿기 시작했다. 또한 이 모든 과정은 절대자의 준비과정이라고 믿는다. 이것이야말로 불가지론적 경험인 것이다. ​


글 짓는 능력의 부족함으로 앞선 문단을 보다 쉽게 기술할 수 없어 몇 문장 덧붙인다. 이 글에서 이야기하고자 하는 결론은 결국 이것이다. 첫째 '나는 할 수 있다'라는 말을 필요로 하지 않던 교만을 덜어내고 내 능력을 넘어선 어떤 '힘'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둘째 '너는 할 수 있어'라는 말을 필요로 하는 타인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고 위선을 떨쳐 내고 이 말을 진심으로 전할 수 있게 되었다.


​나는 할 수 있다.

당신도 할 수 있다.


진심과 사랑을 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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