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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엠지MZ대리 Jul 15. 2024

#04 완벽한 스펙의 딸

24.01.31



요즘의 나는 확실히 나사가 하나 빠져있다. 뚜껑을 제대로 확인하지 않고 가방 속에 물이 가득 담긴 텀블러와 노트북을 함께 두어 노트북을 폐기했다. 출근할 때 무언가를 하나씩 두고 나와 지하주차장에서 다시 집으로 돌아간 적이 부지기수다. 예를 들면, 차키나 스마트폰을 두고 온다. 출근을 위해 타협할 수 없는 필수품들이다. 실수하는 것 이외에도 무언가 정돈되지 않은 일상을 보내고 있음이 확실하다. 가령 집의 모양을 살필 때 이를 확실히 알 수 있다. 빨래는 개어지지 않았고, 고장난 모니터는 해체되어 소파에 대강 누워있다. 하나 둘, 작지만 쌓여서 다소 거대해진 설거지 거리가 쌓여있다. 오늘은 꼭 정리해둬야지.



정신적으로 무너진 이유를 살펴보는 며칠을 보냈다. JH의 원인진단에 따르면 크게 세 가지 요인이 있다. 결혼준비, 지나치게 많은 개인약속 그리고 갑작스레 대두된 건강이슈. 더 큰 원인은 이 세 가지 사건이 같은 시기에 발생했다는 점이었다. 나는 집이라는 물리적 공간뿐 아니라 마음이라는 심리적 공간도 정돈할 필요가 있었다.


기운이 없고 자주 졸렸다. 퇴근하자마자 다른 약속을 가지 않고 귀가했다. 밤 10시면 주체할 수 없는 졸음에 굴복하여 고통스럽게 그러나 쾌락적으로 잠에 빠져들었다. 10시 요정의 복귀!



오늘 아침 출근 길은 평소보다 늦었다. 운동을 쉬고 있고, 동시에 그냥 늦잠도 조금 잤다. 한산하지 않은 도로 위에서 기계적으로 브레이크 패달과 엑셀 패달을 번갈아 밟았다. 만약 운전도 피아노 연주와 같은 어떤 예술의 영역에 넣을 수 있다면, 나는 지금 물아일체의 상태일거다. 물아일체일 때, 우리는 육체적으로는 전혀 다른 일을 하면서 머릿속으로는 생각을 정리할 수가 있다.



오늘은 수요일. 비로소 수요일이 되어서야 나는 마음을 조금 일으켜 기대할 일들을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내가 이번 주 기대하는 일은…


우리 부모님에게 결혼 인사를 드리러 가는 것이다.


지난 주말엔 남자친구가 아빠에게 드릴 전통주를 구매했고, 한우도 사갈 예정이다. 엄마와 아빠가 좋아하는 음식(아마도 회?)을 먹으며 좋은 시간을 가질 거다. 좋아하실 부모님 모습, 특히 아빠의 모습을 생각하니 주말이 무척 기대된다.


문득 생각한 것인데 나는 아빠에게 스펙적으로 완벽한 딸이다. 의도하지 않았지만 아빠의 기대에 대하여 충족을 뛰어넘는 성과를 이루며 살아왔다. 나의 아빠는 그 시절 어른들이 대부분 그렇듯이 학벌, 직장, 결혼 등 인생의 주요 성과들을 중시하는 사람이다. 이를 표면적으로 자식들에게 강요한 적은 없지만, 대개 자식이란 존재는 부모의 마음을 자주 알아챈다. 대학 진학이든, 취업 혹은 이직이든, 심지어 결혼 조차도 아빠를 의식하고 선택한 적은 없는데 돌이켜 보니 모두 아빠의 기대에 완벽했던 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이에 동의하는지 이번 주말엔 아빠의 의견을 물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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