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글을 쓰고 한 달 가까운 시간이 흘러갔다는 사실에 놀랍다. 그동안 나는 왜 글을 쓸 생각을 못했을까. 마땅한 이유가 있기는 했다. 마지막 글을 쓴 이후로 나는 더욱 심하게 아프기 시작했다. 다행히 설연휴 기간을 끼고 있어 연휴 내내 마음 놓고(?) 아프기만 했는데, 연휴가 끝날 즈음에는 프랑스 여행이 예정되어 있었다. 몸은 회복되지 않은 상태였지만 여행을 미루기는 어려워서 강행했다. 프랑스어 공부를 처음 시작했던 8년 전부터 그토록 가고싶었던 프랑스행이었다. 포기할 수 없었다.
처음 항공권을 발권할 때까지만 해도 이건 그저 평범한 여행이었다. 여행을 기다리는 두달 여 동안 몇 가지가 변하며 여행이 조금 특별해졌다. 바로 우리가 약혼했다는 사실이다. 파리에 가서 청첩장에 쓸 스냅 사진을 찍기로 했다. 파리에서 웨딩스냅이라니. 드레스를 입고 찍는 거창한 촬영은 아니지만, 에펠탑 앞에서 스냅을 찍는다는 사실이 나를 설레게 했다. 프랑스, 파리, 에펠탑. 난생 처음 가는 장소지만 이미 마음 속으로 수백번 방문한 장소다. 프랑스는 나에게 무척 각별하다.
기대하지 않고자 애쓰며 살아가는 나는 시니컬해서가 아니라 실망하는 것이 싫은 사람이다. 그래서랄까 어쩌면 마음 속에 남들만큼 로망이나 욕망이 가득한데도 불구하고 그 마음들을 애써 외면했다. 결혼식도 그랬다. 결혼이 아니라 결혼’식’이니까. 결혼이 지속되는 삶이라면 결혼식은 찰나니까. 내 욕심을 조금, 아니 많이 덜어내고 기대도 내려놔야 하지 않을까 생각했고 ‘귀찮아’ ‘그렇게 까지 할 필요 있나’라고 괜히 더 말하며 실망의 기회를 열심히 제거했다.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낭만적인 일이 나에게 일어난거다.
에펠탑 앞에서의 웨딩 스냅.
그 사실이 못내 맘에 들어 자꾸만 꺼내 본다. ‘내가 에펠탑 앞에서 웨딩 스냅을 찍다니’
여행 후 여독은 거의 없었다. 나의 배앙세가 여행 내내 살뜰히 나를 보살편 준 덕분이기도 하지만, 떠나기 전의 상태가 워낙 좋지 않았기 때문일거다. 떠나기 직전의 내 상태는 그야말로 방전상태였으니까. 결혼은 축복할 일이고 결혼식 준비도 즐거워야 한다. 하지만 나는 이 모든 ‘일’을 ‘일’로서 받아들였다. 나에겐 반강제적인 단절이 필요했다. 결혼준비라는 숙제로부터의 단절이.
그러한 맥락에 있어서 여행은 확실히 효과가 있었다. 파리에서 5일을 보내고 리옹으로 가는 기차 안에서야 겨우 결혼준비 중이라는 사실을 떠올리곤 이런 글을 썼으니 말이다.
‘파리에서의 5일 동안 결혼 준비는 새까맣게 잊고 매일의 컨디션과 관광지만 생각했다. 리옹 가는 기차안에서야 비로소 우리가 결혼 준비 중이라는 사실을 떠올린다. 비록 그조차 잠깐이지만 말이다. 그리고는 다시 결혼 준비 생각을 착착 접어 머릿속 서랍에 넣어두었다. 귀국하는 날까지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니 굳이 별다른 노력을 하지 않았음에도 머릿속이라는 방에서 어지럽게 굴러다니던 파편적인 생각들이 착착 제 자리를 찾아 서랍에 정리된 듯 여유 공간이 생겼다. 나는 그 공간을 유영하며 앞으로 해야 할 일들을 하나씩 생각해본다. 그리고 상기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