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후 ‘회복’에 오로지 집중한 몇 주를 보낸 후 간만에(?) 결혼 준비를 재개했다. 그건 바로 웨딩밴드 결정. (결혼반지를 웨딩밴드로 부른다는 사실을 결혼 준비를 시작하고 나서야 배웠다.) 웨딩홀 결정에서 엄청난 경쟁률과 공급 부족 현상을 겪은 터라 다시는 그 전쟁 속에서 고군분투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도 웨딩홀 결정보다는 수월하겠지, 싶었던 거다. 어쩌면 믿고싶었던 걸지도 모른다. 이미 백화점 브랜드도 많이 구경을 했고 까르띠에 같은 곳에서 웨이팅을 하긴 했지만, 대부분 긴 웨이팅 없이 입장해서 웨딩밴드를 구경할 수 있었다. 그래서 방심했다. 청담에서 웨딩밴드를 맞추기로 결정은 했지만, 주얼리 업체가 한두곳도 아니고 상담 정도는 수월할 거라 여겼다. 착각이었다. 웨딩밴드 방문 상담 예약을 희망했지만 이미 황금 시간대(라는 것이 있는줄도 몰랐지만..)인 이른 오후 시간까지는 전부 예약이 차 있었다. 어쩔 수 없이 늦은 시간대인 4시, 6시에 예약을 잡았다. 그나마도 한 곳은 예약 자체를 잡지도 못했다.
1순위는 E샵, 2순위는 민준주얼리였다.
민준주얼리를 선택한 이유는 ‘에뜨왈’이라는 웨딩밴드가 마음에 들어서였다. 에뜨왈은 내 프랑스어 이름이다. E샵을 선택한 이유는 웨딩밴드 종류가 다양하고 브랜드 이름이 마음에 들어서였다. 브랜드 이름이 왜 중요하냐고? 우리의 결혼반지를 담을 보석함에 각인이 될 이름이니까. 죄송하지만 민준주얼리에서 ‘민준’이라는 창업자로 추정되는 사람의 이름을 우리의 보석함에 각인하고 싶지는 않았다. (영업마케팅을 하는 나지만, 다시 한번 고객의 페인포인트 혹은 구매요소를 파악하기는 정말 어렵다는 생각이 든다…ㅎㅎㅎ)
예약된 시간인 4시에 민준주얼리에 도착해서 상담실로 안내를 받았다. 자리에 앉아 명함을 받았는데 왠걸. ‘전민준 CEO’라고 적혀있는 것이 아닌가. 사장님과 상담을 하게 될줄이야. 나중에 온라인 후기를 찾아보니 대표님과 직접 상담을 한 경우는 잘 없는 것 같았다. 나는 이것 또한 하나의 운명이라고 여긴다.
웨딩밴드 고르는 방법에 대해 설명하는 어떤 유투브 영상에 따르면 주얼리샵 대표님과 상담을 하는 건 운이 좋은 케이스라고 한다. 우선 대표는 당장의 영업 실적 아니라 경영을 책임지는 사람이기 때문에, 가격이나 프로모션 혜택으로 장난치지 않는다. 또한 본인에게 권한이 있는 만큼 혜택을 더 제공할 수도 있다. 무엇보다 자기 브랜드의 철학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있는 사람으로써 수준 높은 제품 상담을 할 수 있다.
상담을 진행하다 보니 대표님과 나의 대화 코드가 잘 맞았다. 어쩌면 고객인 내가 그렇게 느끼도록 하는 고도의 영업 능력일수도 있겠다. 아무튼 대표님과 나는 럭셔리카, 자기의 확고한 취향, 특히 인테리어에서 시각적으로 예쁜 것을 좋아한다는 점에서 비슷한 점이 있었다. 웨딩밴드에 대한 이야기와 서로의 취향에 대한 이야기를 무작위적으로 넘나들며 두 시간에 가까운 상담을 이어갔다. 중간에 나는 다음으로 예약되어 있던 주얼리샵을 취소했다.
결국 웨딩밴드는 ‘에뜨왈’로 결정했다. 다만, 인기도가 높은 색상이나 구성으로 하지 않았는데, 나의 결정과정을 지켜봤던 남자친구는 내가 대표님의 제안과 거의 대부분 반대로 선택했다는 목격담을 전했다. 실로 그랬다. 요즘 젊은 신혼 부부들이 많이 한다는 색상과 다른 화이트골드로, 무광으로, 가드링을 2개나 추가하며 우리만의, 아니 사실은 나만의 취향이 잔뜩 들어간 웨딩밴드를 만들었다. 가드링을 2개나 했다는 말에 내 단짝 친구는 와하하 하며 크게 웃었다. 너무 나답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