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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정미 Nov 22. 2019

왜 아직도 전쟁하는 나라가 있는 거예요?

질문해도 되는 세상에서 살게 하기

나는 어렸을 때 '왜요?'라는 질문을 많이 했었다. 진짜 궁금해서 물어본 적도 있지만, 어른들이 쩔쩔매는 모습이 재미있어서 질문했던 적도 있는 거 같다. 그래서인지 내가 질문을 하면, '버릇없다' 또는 '말대답한다'는 꾸지람을 자주 듣곤 했었다.


처음엔 어른들이 잘못했다고 생각했었다. 어리다고 나의 말을 귀담아듣지 않는 거구나 라고만 생각했었다. 그런데 아이를 낳고 키우다 보니 비단 어른들만의 잘못은 아니었다는 생각이 든다. 어렸을 때 나는 질문하는 매너를  몰랐던 거 같다. 질문을 받는 어른의 입장에서 볼 때 연달아 '왜요?'라고 질문을 퍼붓는 것이 얼마나 기운 빠지고 짜증 나는 것인지를 몰랐고, 맹목적인 '왜요?'가 얼마나 버릇없 느껴질 수 있는지를 몰랐다. 


어본 자가 맛을 안다고, 좋은 질문을 받아본 자가 좋은 질문을 할 수 있는 거 같다. 나의 어린 시절의 사회 분위기에서는 아이의 의견을 묻고 아이에게 진지하게 질문을 하는 어른들이 별로 없었고, 나는 매우 보편적인 교육 시스템 속에서 자라 매우 평범하게 질문하는 법을  모르는 어른으로 자랐다.  


나 조차도 질문을 잘 못하는데, 아이에게 어떻게 질문하는 법을 잘 알려줄 수 있을까? 말문이 트여가는 아이 앞에서 초보 엄마의 고민도 터지고 있었다. 그런데 이 고민은 생각보다 쉽게 해결되었다. 아이는 태생 자체가 질문이 많다! 그래서 나의 고민은 '어떻게 하면 질문하는 아이로 키울까?'에서 '어떻게 하면 아이의 질문에 잘 대답할까?'로 바뀌었다.




질문하는 아이로 키우기 위한 첫걸음
아이의 질문 제대로 이해하기


"엄마! 의사는 어떻게 되는 거예요?"
"대학에 가서 의사 공부를 하면 되지"
"처음부터 의사 공부 그런 거 몰랐을 거잖아요"
"처음엔 몰랐지만 대학교에서 배우면서 알게 된 거지"


아이가 의사는 어떻게 되는 거냐고 질문했을 때, 나는 당연히 어떻게 하면 의사라는 직업을 가질 수 있는지에 대한 질문이라고 생각했었다.


"아... 엄마... 그게 아니라 맨 처음 의사요... 맨 처음 사람은 어떻게 의사가 된 거냐고요"
"..........."
"맨! 처음! 의사는! 어떻게! 사람을 치료하는 걸 알게 된 거냐고요"


의사가 되기 위해 대학가서 의사 공부를 해야 하고, 의사 시험을 봐야 한다는 현시대의 제도에 대 이야기로 답을 하던 나를 아이는 굉장히 답답해했다. 급기야 자기 질문은 그게 아니라며 짜증을 내기에 이르렀다. 내가 얼마나 열심히 대답했는데... 이게 짜증을 낼 일인가 싶고, 내가 어렸을 때 수도 없이 들었던 '버릇없이 이게 무슨 태도야!'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었다.


그런데 이제 막 7살이 된 아이에게는 자기의 생각을 정확히 설명하는 것이 쉽지 않다. 알고 있는 단어도 부족하고, 과거-현재-미래의 개념도 뒤죽박죽이다. 4살, 5살 때와 비교하면 이제 다 큰 거 같지만 복잡한 개념을 다루어야 하는 대화에서는 이제 막 걸음마 연습 중이라고 볼 수 있다. 아이가 자신의 질문을 못 알아듣는 상대방에게 짜증이 났다고 생각하지 말고 자기 자신의 부족한 표현력에 짜증이 났다고 봐야 한다. 


짜증 내는 태도를 훈육할 것인가, 질문에 답을 해 줄 것인가 이 중 딱 한 가지에 집중해야 효과적이다. 그리고 나는 주로 질문에 답하는 쪽을 택한다. 아이의 질문의 의도를 제대로 파악하기만 하면 아이의 짜증은 순식간에 사그라드는 데다, 모든 대화가 끝난 뒤에 아까의 그 태도의 문제를 지적하면  아이는 로 수긍하고 반성하는 편이기 때문이다.


"아주 옛날에 가족이 아프거나 다치면 사랑하는 사람이 너무 아프니까 치하기 위해 이것저것 해보았겠지? 상처에 나뭇잎도 으깨서 붙여보고, 몸에 좋은 것도 먹여보고. 그렇게 여러 가지 방법을 써보다가 치료가 되는 경우가 있었던 거야. 그렇게 발견된 치료법을 혼자만 알고 있지 않고 주변 사람들에게도 알려주고, 글로 적어서 아들 손자들도 알 수 있게 하고, 렇게 모인 글들이 책으로 만들어지고, 특별히 사람들을 치료하며 사는 게 꿈인 사람들이 그 책으로 공부하게 되고, 사람들은 다른 사람을 치료하는 사람들을 의사라고 부거야"


자기의 질문을 이해 못한 엄마에게 성질이 났던 아이는 장황하고 긴 설명을 집중해서 끝까지 다 들었다. 이건 자신이 궁금했던 부분을 엄마가 이해하고 적절한 답을 했다는 신호다. 아이의 질문의 의도를 정확히 파악하는 건 쉽지 않지만,  무렵 아이가 경험한 콘텐츠들에서 단서를 찾게 되는 경우가 많다. 맨 처음 의사가 어떻게 의사가 될 수 있었는지에 대한 질문의 맥락에는 그 당시 아이의 꿈과 연관이 있다.


아이로봇 박사가 되기 위해 유치원 특강으로 '창의 로봇'강의를 듣고 있었고, 로봇 관련 책을 사달라길래 아듀이노 초급 로봇 만들기 책을 사줬었다. 아이는 헬로카봇과 같은 변신 로봇만 로봇인 줄 알다가, 자기가 생각지도 못한 것들도 로봇이라는 사실들에 놀라워했다.


다만 좀 특이했던 점은 새로운 로봇에 놀라워하는 것 못지않게, 그 로봇들을 발명한 사람들과 자기에게 로봇 교육을 시켜주는 사람어떻게 그 사실들을 알게 되었는지를 굉장히 궁금해한 것이다. 맨 처음 의사에 대한 질문의 배경에는 누가 제일 처음 이 로봇을 발했는지에 대한 금증의 패턴이 있었다.




아이는 질문의 답을 찾음과 동시에
새로운 질문을 발견한다


맨 처음 의사가 어떻게 의사가 될 수 있었는지에 대한 나의 대답이 충분했는지 아이는 바로 새로운 질문을 했다. 엄마라고 모든 질문에 대한 답이 바로 준비되어 있을 리 없다. 그래서 나는 종종 생각할 시간을 좀 달라고 하거나, 관련된 질문을 역으로 던져 시간을 벌곤 한다.


"엄마... 근데 옛날이야기들을 어떻게 알 수 있는 거예요?"

"글이 없던 옛날에 어떻게 이야기들을 전했는지 알아?"

"몰라요"

"말이야. 말로 이야기를 해줘서 알게 된 거야. 그러다 글자를 발명하게 된 뒤에는 글로 이야기를 남겼어. 우리가 알고 있는 모든 옛날이야기는 글로 기록된 책으로 알 수 있는 거야"
"옛날이야기를 어떻게 다 알 수 있는 거지.."
"우리는 옛날이야기를 모두 다 알 수는 없어. 글로 남기지 않은 건 우리는 알 수는 없거든. 그래서 우리는 기록된 것들만 알고 있는 거야"
"왜 옛날이야기를 쓴 거예요?"
"잘못한 일은 남겨서 나중에 태어난 사람들이 보면서 이렇게 하면 안 되는 구나를 배우는 거고, 잘한 일은 남겨서  아.. 이렇게 하면 되는구나를 배우는 거지. 그래서 역사를 기록하는 건 매우 중요한 거야."
"도대체.. 왜 아직도 전쟁하는 나라가 있는 거예요... 왜 남의 것을 빼앗으면 안 된다는 걸 모르는 거예요?"
"너도 엄마가 남의 것을 빼앗으면 안 된다고 알려주지 않았으면, 아기였을 때 동생들 거 친구거 다 빼앗았을걸? 너무 갖고 싶으니까"


아이의 질문에 '왜'라는 단어가 많이 들어 있긴 하지만, '왜'가 이끄는 좀 더 구체적인 문장이 들어 있다. 이것이 어렸을 때 내가 하던 단편적인 질문, '왜요?'와 다른 점이다.


소년기의 나는 정확히 어떤 부분이 궁금한 것인지, 나의 질문의 근원을 파보려는 노력 하지 않았다. 문을 제대로 하지 못한 이유가, 더 이상 내 질문에 누군가 대답을 안 해줘서가 아니었다. 몸과 머리가 커진 수준에 맞는 질문을 내가 만들어 내지 못했기 때문에, 나 스스로 나의 질문의 수준이 부끄러워 질문하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게 된 것이다. 질문을 잃은 나는 주어지는 정보를 그대로 받아들이게 되었고, 그러한 습관은 학습 태도에도 이어졌다. 질문을 잃은 학습으로 얻는 지식들은 매우 단편적어서 금세 그 바닥을 드러내곤 한다. 나의 세상은 질문할 수 없는 세상이기도 했고, 질문하지 않은 세상이기도 했다. 




부모가 아이의 질문에 성의 있게 답하면,
아이는 질문해도 되는 세상에서 살 게 된다


아이는 궁금한 것이 해결될 때까지 절대 포기하지 않는다. 그러나 아이의 질문 쓸데없는 질문이라고 타박을 준다거잔말 말고 그냥 그런 줄 알라고 다그친다면, 그렇게 쌓인 경험들이 질문하기 망설이게 만들고  망설임의 기억들은 아이로 하여금 질문하기를 포기하게 만든다. 모르는 것을 알아가 첫걸음인 질문아주 쓸데없는 것에서 시작된다. 그 쓸데없어 보이는 질문을 어떻게 성공하느냐의 경험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아이였던 나의 거의 경험과 엄마로서 아이를 키우는 나의 현재의 경험이 만나 깨닫게 된 게 하나 있는데, 질문에 성공해본 사람이 질문을 잘할 수 있고,  질문을 잘하는 사람이 후회를 덜다는 것이다.


"엄마.. 전쟁이 다 없어지고 모든 나라가 사이좋게 돼서 모두 한 나라가 되면 좋겠어요. 그러면 모든 곳을 마음껏 걸어서도 갈 수 있고, 버스 타고도 갈 수 있고, 자전거 타고 갈 수도 있고 비행기도 안타도 되고, 저쪽 나라에 있는걸 마음껏 가져올 수도 있잖아요."

"다른 나라 물건을 마음껏 가져올 수 없을걸?"

"엄마 모든 나라가 사실 하나인 거 알죠? 선만 그어져 있는 거잖아요."
"왜 모든 나라가 하나가 되면 좋겠는 거야?"
"큰 나라에 살 수 있으니까요"


아이의 질문에 답하는 과정을 통해 아이는 질문하는 법을 배우고 동시에 답하는 법을 배운다. 아이가 하는 질문의 대부분 어른인 나도 잘 모르는 것들이거나 살면서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았던 것들이지만, 답을 찾아가는 나를 지켜보며 아이는 모르는 것에 답하는 법을 배운다. 


전문적인 지식이 필요한 것들은 '엄마도 잘 모르는 것이니 찾아보고 알려줄게'라고 솔직히 말하, 내 개인적인 의견을 말하고 싶을 때는 '다른 사람들은 보통 이렇게 생각하는데, 엄마는 이렇게 생각해'라고 말하며 객관적인 생각과 주관적인 생각을 구분해서 알려준다. 그러면 아이는 모르는 것은 찾아보려는 시도를 하게 되고, 자신의 생각과 다른 사람의 생각이 다를 수 있음을 배워간다.


이 모든 건 아이의 질문에 충분 시간을 투자하느냐 아니냐에 달려있 거 같다. 이의 질문에 부모가 성의 있게 답하면, 아이의 세상은 질문해도 되는 세상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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