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가 왜 운 줄 아세요?
엄마라고 모든 걸 아는 건 아니다
주말 아침 꿀잠을 자고 일어난 아이가 눈도 제대로 못 뜬 채 거실로 나와 환하게 웃으며 두 팔을 벌려 아침인사를 하는 엄마에게 안긴다. 아이는 이불 밖의 공기가 스산한지 잔뜩 몸을 웅크려 팔과 다리 모두 엄마의 두 팔 안에 욱여넣고는 꿍얼꿍얼 알 수 없는 소리를 내고, 엄마는 한참을 별다른 말 없이 토닥토닥 아이의 등을 두드리는 리듬에 맞춰 몸을 좌우로 흔든다. 하늘에서 뚝 떨어진 아기 천사를 두 품에 받아낸 사람의 모습이 이렇지 않을까 싶게 평온하고 따뜻하다.
"그때 있잖아요. 그때... 제가 왜 울었는지 아세요?
며칠 전 아침의 일이었다. 알람 대신 아이의 우는 소리가 잠을 깨웠고, 나는 반사적으로 아이방으로 달려 들어갔었다. 아이는 눈을 감은 채로 두 팔을 허공에 허우적거리며 두려움 가득한 울음을 쏟아내고 있었다. 아이 손을 잡고 엄마 여기 있다며, 이제 괜찮다며 달램과 동시에 허겁지겁 아이를 살폈다. 우느라 눈을 질끈 감은 줄 알았는데, 말라붙은 진물과 눈곱에 아이의 두 눈이 접착제로 붙인 것 마냥 딱 붙어 있었다. 눈이 간지러웠는지 밤새 비빈 모양이다. 따뜻한 물에 적신 손수건으로 눈에 붙은 이물질들을 닦아내며 놀란 아이를 진정시켰던 그때. 아이가 말한 그때가 바로 이때다.
"눈에 병균이 들어가면 그 병균이 눈을 아프게 하거든. 그래서 병균이 들어오면 많은 눈물을 흘려서 병균이 빠지게 하는 거야. 그리고 그 병균과 싸워서..."
본인이 그때 왜 울었는지 아냐는 질문에 나는 평소처럼 정성 들여 사실에 가까운 설명을 했다.
"아니에요. 아기는 엄마가 보이지 않아서 운 거예요"
나의 구체적이고 긴 설명을 가로막은 아이의 한마디는 내 뒤통수를 때리고도 남는 그런 말이었다. 사실에 입각한 설명이 문제를 해결해 줄 것이라고 생각했던 나에게 아이는 존재의 가치를 이야기하고 있었다. 아이의 대답은 눈에 보이는, 증명 가능한, 원인과 결과가 뚜렷한 그런 종류의 것이 아니었다. 원인에 의한 결과로 인해 잃게 된 본질에 대한 것. 나는 아이에게 세상을 가르치려고 먼저 배운 수많은 사실을 이야기해주는데, 아이는 내가 잊고 살던 수많은 본질을 깨우쳐 주고 있다.
"엄마.. 도하가 왜 아기였을 때 이야기를 자꾸 물어보는지 알아요? 기억이 안 나서 그래요.. 아기였을 때가 기억이 하나도 안 나요.. 그래서 아기가 되고 싶은 거예요. 지금 되면 아기가 무슨 생각하는지 다 알 수 있을 텐데.. 하.."
그래.. 엄마도 아기였을 때 기억이 없어져서... 그래서 여전히 다 알지 못하는 존재이기 때문에 너와 내가 함께 서로의 빈틈을 채워주며 살고 있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