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 이야기
수집의 끝을 보여주는, 《이력서:박미나와 Sasa[44]》, 서울시립미술아카이브,(2023.12.21-2024.03.31)
어떻게 지내고 계시나요?
작년 1월엔 뒤늦은 질풍노도의 시기를 겪느라 마음이 자주 오락가락했는데, 올해 1월은 평안하게 시작해서 평안하게 흘러가고 있습니다. 몇 해 동안 코로나19를 이유로 쓰고 다녔던 마스크도 방한용으로 여전히 쓰고 있지만, 올해 1월은 그 몇 년의 공백을 건너뛰고 거슬러 올라, 2019년에 맞이했던 그해 1월 같은 느낌입니다. 저는 요 몇 년을 기억에서 지우고 싶은가 봐요 여러 이유로.
1월이 시작된 후 몇 개의 글을 동시에 끄적끄적하고 있었는데, '오늘 꼭 하나는 마무리해서 올리자'란 생각 끝에 고른 글이, 그중에 가장 덜 써놨던 전시 소개입니다. 처음 봤을 땐 이 전시가 어렵기만 해서 '의욕은 있으나 쓰기 어려워' 쓰다 멈췄는데, 작가 인터뷰 글도 좀 읽어보고 작가와의 대화도 다녀오고 나니 어렵지만 친숙해졌어요. 이전에 소개했던 서울시립미술아카이브의 《라스트 제너레이션에게》도 좋았는데, 《이력서:박미나와 Sasa [44]》도 참 좋은 전시더라고요. 시각적으로도 매력적이지만 그 안에 담고 있는 내용과 프로세스가 제 취향이기도 하고, 요즘 작가들의 작업 경향과 방식도 알 수 있고요. 감각을 경험하는 전시라기보다는 작품이 만들어진 과정과 사회·문화적 배경을 이해해야 작가의 의도를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는 작품들이 대부분이라 그냥 봐서는 작가의 의도를 알아채기 어렵다는 게 문제라면 문제인데, 현장 도슨트 투어에 참여하거나 모바일 도슨트를 들으시면 그 부분도 조금은 해소됩니다.
《이력서:박미나와 Sasa [44]》는 서울시립 미술아카이브 개관 이후 진행하는 첫 주제 기획전입니다. 이전 전시가 소장 자료를 기반으로 연구 및 분류한 내용을 전시로 풀었다면, 이번 전시는 소장 예술자료 외 현대미술 작품과 자료를 선보이는 게 다른 점이죠. 주제 기획전 첫 작가인 바로 박미나와 Sasa [이하 44]는 20년 넘게 따로 또 같이 작업을 해오고 있는 현역으로, 서로 다른 작품 성향을 보여주지만 "자료 수집과 조사 연구를 기반으로 생산과 소비, 원본과 복제의 전후 관계에 대한 문제의식을 공유"한다는 점은 같더라고요.
이번 전시가 좋은 게 《이력서:박미나와 Sasa [44]》라는 전시 타이틀에 맞게 두 작가의 지금까지의 작업들을 '이력서'의 형식을 빌려 시각화 및 재맥락화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작가에게 중요 이력은 전시 기록이잖아요, 그 전시 이력’을 구성하기 위해 두 작가가 그동안 선보여 온 개인전, 단체전 이력을 데이터베이스화하고 그중 30여 개의 전시를 선별한 후 주요 전시에 출품된 초기작과 대표작, 미발표작 140여 점과 연속간행물 기사 1,259건을 수집해 제작한 신작까지 선보이고 있으니, 관람객 입장에서는 이보다 더 좋을 순 없죠, 그야말로 "진액"만 모아 둔 셈이니까요.
전시는 모음동 전관에서 진행 중입니다. 작품은 1 전시실에 집중적으로 배치되었는데, 협업작, 박미나와 44의 개인 작품이 확실한 구분 없이 한 공간 안에 섞여있어 개별 작품을 분간하기 어렵고 구조상으로도 좀 복잡합니다. 모든 작품에 설명 캡션이 붙은 게 아니라서 개인 작품인지 협업작인지 알아채기도 힘들고요. 그러니 꼭~ 먼저 인포데스크에 들러 리플릿을 챙기세요. 오늘도 몇 작품만 소개해 드립니다.
첫 번째 작품은 협업작 <라이프 세이버, 2014(2023)>입니다. 지금은 없어진 삼성미술관 플라토 《스펙트럼 스펙트럼》(2014) 공동 출품작으로, 그땐 '진정성'이란 단어를 각각 나눠 쓴 패널과 함께 설치됐던 작품입니다. 이번엔 화살표 모양과 라이프 세이버 사탕 모형만 출품됐는데, 그마저도 따로 설치되어 있어요.
전시장 입구에 설치되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이 작품은, 구명 튜브 모양의 박하사탕 ‘라이프 세이버’(Life Savers)가 만들어진 사연을 모티브로 제작되었다고 해요. 라이프 세이버는 1912년 미국의 사탕 제조업체 클라렌스 크레인사가 만든 링 모양의 사탕입니다. 제품 개발자는 알사탕을 잘못 먹고 질식사한 딸을 기리며 가운데가 뚫린 사탕을 개발해 수많은 아이를 구했는데, 정작 아들이 투신자살하는 것은 막지 못했다고 하죠. 이 작품이 발표된 2014년엔 세월호 참사(4월 16일)가 일어났고 올해가 10주기인데, 당시 이 작품에 대해 " '안전제일''안전국가'를 외쳐댔지만 ‘세월호’ 참사를 못 막은 정부를 넌지시 질타하는 듯하다", "우리 시대를 진정성을 필요로 하는 시대, 라이프 세이버가 절실히 요구되는 시대로 규정한 듯하다" 등 세월호와 연관 지은 평론들이 많더라고요. 저는 2024년에 2014년도 작품을 보면서 시간이 10년이나 흘렀음에도 그때와 지금의 상황이 크게 개선되지 않아 씁쓸하다는 생각을 했고, 결은 좀 다르지만 타블로의 <airbag>(2011)이란 노래도 떠올랐어요. 여전히 필요하잖아요, 라이프 세이버와 에어백은.
두 번째 작품도 협업작입니다. 〈하하하〉(2003/2023)는 박미나와 Sasa [44]의 첫 협업 전시인 쌈지스페이스 연례 기획전 《하하하: 이머징 Ⅳ: 미나와 Sasa [44]》에서 선보인 작품입니다. 전시 이후 철거되어 도판으로만 볼 수 있었는데 이번에 재제작되었죠. <하하하>는 전시실 초입에 설치되어 시선을 완전히 사로잡는데, 의외로 이 앞에서 사진을 찍는 분들이 없더라고요, 저는 제일 처음 이 작품을 찍었거든요.ㅎ 근데 찍고 나니 스마일의 입이 없더라고요, 아래 텍스트에 HAHAHA라고 적혀있어 너무 당연하게 웃고 있는 표정이라고 여겼는데.
"오리지널과 복제가 굉장히 복잡하게 얽히고설켜 웃고 싶지만 웃지 못하는 상황을 보여주는 한편 그것을 텍스트로 풀어주는 작업"인 <하하하>는, 처음 설치될 때 프라이탁과 디자인 도용에 관한 텍스트가 함께 붙어있었어요. 이번에는 초입에 하나 반대편 안쪽에 하나가 설치됐지만요. 독일어로 '금요일'을 뜻하는 프라이탁(FREITAG)은 버려진 천막, 화물차의 방수포 등을 재활용한 콘셉트로 유명해진 스위스 가방 브랜드입니다. 재활용 소재로 만들다 보니 모든 가방 디자인은 세상에 딱 하나만 존재했고, 프라이탁 가방을 사는 건 곧 세상에서 하나뿐인 오리지널을 소유하는 거라 당시 작가들이 굉장히 좋아했대요. 그렇게 프라이탁이 대중적으로 유명해지면서 이들의 콘셉트를 모방한 회사가 생겨났는데, 그 브랜드가 바로 스위스 슈퍼마켓 기업인 미그로스에서 만든 돈너스탁(Donnerstag)입니다. 돈너스탁은 '목요일'이란 뜻이에요. 돈너스탁 가방은 실제 재활용 소재를 사용하지 않고 재활용 소재처럼 보이게 만든 천으로 가방을 만들어졌고요. 1996년에 소규모 사업체였던 프라이탁이 돈너스탁을 상대로 소송을 걸었고 결국 승소했지만, 이 사건이 큰 이슈가 되어 아이러니하게도 시장에서 철수하는 돈너스탁 가방이 희귀 아이템이 되었고 소장 붐을 불러일으키게 됩니다. 이 사건 후에 프라이탁에서 나온 책이 있는데 거기에 실린 한 문장이 전시장 안쪽 모니터 뒤 벽면에 인용되어 있어요. 이 작품 제목이 <목요일 금요일>입니다. 텍스트는 "뭔가 좋은 물건이 나오고 그게 성공했다면 다른 누군가가 그대로 따라 할 거다, 프라이탁도 예외가 아니었단 내용"인데, 저작권이나 재산권 등으로도 막을 수 없는 복제와 인용에 관한 문제는, 지금도 여전하죠. 표절 시비가 붙는 영역들이 여전히 많잖아요.
아! <목요일 금요일> 섹션엔 두 개의 영상이 설치되어 있는데, 그중 위에 설치된 모니터 작품인 <볼레로>는 <하하하>와 <목요일 금요일>의 철수 과정을 영상으로 기록한 뒤 설치하는 것처럼 재편집한 영상작업입니다. 15분 정도 재생되는데, 당시 전시 기록이 담겨있으니 꼭 챙겨 보세요.
세 번째 작품은 박미나의 인물 시리즈입니다. 이번 출품작 중 제가 좋아하는 작품 3위 안에 들어요.
“사람을 그리지 못하고 감정을 드러내지 못하는 제 한계에 도전하기로 했어요. 제 주변에 있는 사람 스물두 명을 그리기로 했죠. 그런데 그들의 얼굴을 직접 그리기보다는 성격을 패턴화하여 추상적으로 표현하고자 했어요.”
(출처 : 하퍼스바자, 2014년 4월 호)
이 작품이 재밌는 건 "색이 가진 감정을 최대한 배제하고 행위로 인물을 표현" 하고자 국내 화방에서 수집된 흑·회·백색의 유화 물감들만 사용했고, 0호부터 200호까지 초상화 용도로 규격화된 총 22개의 캔버스에 제작되었다는 점입니다. 작가에게 중요한 인물 22명에 대한 인상을 초상화로 시각화한 건데, 추상화로 그려지다 보니 어떤 사람을 그렸는지에 대한 정보가 명확하게 전달되진 않죠. 인물화형(figure) 캔버스는 총 24개로, 300호 500호도 있지만 300호만 돼도 세로 길이가 거의 3미터라 어지간한 공간엔 들여놓을 수가 없어서 딱 200호까지만 사용했다고 해요. 초상화이다 보니 누구를 그렸는지에 대한 호기심도 자연히 생기는데, 22개의 인물 연작 중 대상을 알 수 있는 건 단 세 점뿐입니다. 작가가 밝힌 대상은 <figure 0>이 스무 살에 만난 첫 남자친구의 초상, <figure 25>가 엄마의 초상, <figure 200>이 스승의 초상입니다. 첫 남자 친구의 초상이 젤 궁금했는데 아쉽게도 전시가 되진 않았고, 나머지는 전시실에서 만나볼 수 있습니다. 너무 궁금합니다, 당시 물감을 너무 많이 덧발라 두 달이 지나 전시할 때까지도 마르지 않았다던, 가장 작은 0호에 담긴 남자친구의 초상!
박미나(1973년~) 작가는 로드아일랜드 미술대학 회화과와 헌터 칼리지 뉴욕 시립대학원 회화과를 졸업했어요. 어느 인터뷰에서 “한국에서 학교를 나왔으면 작가가 못 됐을 거다. 반 농담이긴 했지만, 첫 전시 때는 그림에 감정이 하나도 없어서 자폐 같다는 말까지 들었다. 원래 미술도 감동을 주려면 <케이팝스타> 참가자들이 노래하듯 조였다 풀었다 하는 감정상의 기복을 보여야 한다. 그런데 나는 처음부터 끝까지 같은 감정일 때가 많다. 물론 작정하고 하면 다른 것도 가능하고 실제로 그런 시도가 있었지만 그건 배워서 하는 거지 내게 자연스러운 작업이 아니다. 처음 개념미술을 접했을 때 작가가 될 수 있는 길을 찾은 기분이었다. 난 내게 쏟아지는 관심이 불편하고 스스로가 별로 흥미롭지 않아서 자꾸 밖을 보게 되는 사람이다” 란 글을 봤는데, 작품을 보다 보면 '그래, 한국에서 했었으면 어쩌면...'이란 생각이 들긴 하더라고요.
여러 색과 결을 지닌 작가지만 그의 작업 스타일 중 가장 특징적인 건, 수집과 연구를 통한 과정의 결과물(증빙)로써 작품이 존재한다는 거예요. 어떤 작가가 수집과 연구를 하지 않겠냐마는, 박미나 작가의 작품은 일단 색 수집에 관해서는 거의 끝을 보더라고요. 전시실에는 대학 때부터 현재까지의 작업들이 고르게 놓여있는데, 이 결과물들은 모두 오랜 시간 색을 수집하고 연구해 낸 평균값의 결과물입니다. 예를 들어 <하하하> 맞은편에 있는 <2004-빨강색-TV 유닛>(2004)과 <2005- 코리아나- 립스틱>(2005)은 국내에서 유통되고 있는 아크릴 물감 중 이름에 빨강(Red)이 들어간 색상을 전부 수집한 뒤 물감 회사별 이름 순서에 따라 2cm 너비의 색띠로 정렬한 작업이고, <2005-코리아나-립스틱>은 코리아나 화장품에서 2005년도에 생산되고 소비된 립스틱의 모든 컬러를 수집하고 색상을 분류한 작업입니다. 이외에 볼펜 작품도 있는데, 이렇게 국내에서 특정 색으로 분류된 색 물감(소재)을 모두 모아 다양한 분류 명칭과 그 색들을 펼쳐 보여줌으로써, 동시대 시각 표현 재료 환경에 대한 기록을 하는 한편, 그 시대에 생산된 특정 공산품에 관한 사회 문화적 요소들을 읽어낼 수 있게 하죠. 작년엔 있었는데 올해에 그 색이 사라졌다면 사람들이 많이 찾지 않아 제품 생산을 멈췄다던가, 특정 안료 값이 올라 생산할 수 없다던가, 뭔가 사회적 요인들이 원인이 되어 환경이 변화되는 거잖아요. 이런 유통 패턴에 대한 발견은 여러 해의 수집이 진행되어야 통계 분석이 가능한 거고요. 이 작품과 연계한 설명은 정말 많은데 다 설명하기엔 너무 길어지니 종합적인 건 꼭 전시 해설을 참고해 보세요.
44의 <위대한 탄생>은 "조용필을 기념하는 한편 조용필이라는 시대적 상징을 필터로 한국 현대사의 변천을 되돌아보는 작업"입니다. 44는 미국에서 음악(작곡)을 전공했고, 공연기획 및 무대 연출가로 잠깐 몸담은 이력이 있습니다. 그렇다 보니 음악적 요소들이 소재나 작품 표현 형식으로 자주 등장하죠. <위대한 탄생>은 작품을 발표한 2007년의 시점에서 조용필이라는 인물의 역사로 1980년대를 들여다보는 작업으로, 조용필의 이력을 따라가다 보면 그의 가수 활동과 함께 1975년 대마초 사건, 1979년 10.26 사건, 1980년 5월 광주 민주화 운동, 1987년 6.29 선언 등 사회 문화적으로 굵직한 이슈들을 함께 짚어보게 됩니다.
44는 어려서부터 신문 스크랩을 했다던데 그도 그럴 것이 아버지가 조선일보 주필, 이모와 이모부도 한겨레 주필과 기자였다고 하더라고요. 종이 신문을 어렵지 않게 접했을 테니 그 안에 담긴 정보를 접하고 수집 및 분류하는 데는 어려서부터 습관이 되지 않았을까 추측할 수 있죠. 이 작품에 사용된 조용필 사진도 작가의 스크랩에서 선별되었고요. ‘국민가수’, ‘오빠부대의 원조’, ‘최초의 한류스타’라는 타이틀을 지닌 조용필은 1980년 정규 1집 《창밖의 여자》를 시작으로 쭉 전성기를 누렸고, 요즘에도 드라마 '웰컴 투 삼달리' 인기에 힘입어 대표곡 리마스터링 음반이 나올 정도로 여전히 인기를 누리고 있습니다. 작가가 제시하는 조용필 아카이브엔 특별한 작품도 피처링되어 있는데, 바로 중앙에 설치된 조용필 인물화입니다. 이 초상 작품은 우리나라 팝아트 1세대라 불리는 이동기(1976-) 작가의 그림으로, 이동기 작가 역시 조용필로부터 큰 영향을 받았다고 해요. 그가 그린 초상은 조용필 10집 커버로, 10집은 1988년 서울올림픽이 열린 해에 발매됩니다. 1988년은 이동기 작가가 예술가로서의 정체성이 형성된 해로, <위대한 탄생>은 결국 조용필, 이동기, 현대 사회 문화사를 한 작품으로 엮음으로서, 대중음악인으로서의 조용필과 그가 겪은 시대사 그리고 현대미술가인 이동기 작가의 서사까지도 읽을 수 있는 작품이 된 거죠. 이 작품 전시 오프닝 땐 44 작가 기획으로 최고 수준의 정통 로큰롤 4인조 밴드를 초청해 이 작품 앞에서 공연도 했다던데, 가수 조용필의 팬, 화가 이동기의 팬, 44의 팬, 4인조 밴드의 팬까지 다양한 관객들이 모여 뿜어내는 기운이 범상치 않았을 것 같아요. 참고로 조용필 밴드인 '위대한 탄생'은 1979년에 결성됐습니다.
44의 초상화 연작도 재밌습니다. 이 연작은 "서울 대학로, 남산, 인사동, 파리 몽마르트르 일대에서 활동 중인 길거리 초상화가들에게 44의 초상화를 의뢰하고 수집한 작업"입니다. 44에 대한 신상 정보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어요. 본명이 뭔지 왜 이름을 44로 지었는지, 왜 한글 '사사'로 쓰지 않는지에 대한 기본 정보가 대중에겐 공유되어 있지 않죠. 그런 그의 얼굴을 26명의 화가들이 재현했는데, 같은 모델을 실물을 보고 그렸음에도 다르게 표현된 결과물을 보면 어느 게 진짜 44인지 오히려 더 혼란을 가중시키죠. 참고로 진짜 44의 모습은 전시실에 설치된 모니터 속 영상을 통해 볼 수 있습니다, 비록 20년 전 모습이긴 하지만요.
44의 초상화 연작을 마주하고 크게 두세 걸음 정도 뒤로 물러서면, 맞은편 붉은색 벽 상단에 붙은 박미나 작가의 초상화이 보입니다. 대학교 2학년 때 그린 초상이라는데, 넣을까 말까 고민했다고 하더라고요. ㅎ 또 언제 볼 수 있을지 모르니 놓치지 말고 보세요. 참고로, 저 초상보다 훨씬 예쁘세요! 박미나 작가는 인터뷰 기사가 많으니 한번 검색해 보시고요, 실물이 궁금하다면요.
박미나 작가의 스크림 연작은 "물감을 ‘자의적으로’ 섞지 않고 이미 나와 있는 색을 그대로 사용해 완성한 시리즈"입니다. 2001년에서 2002년이 연작의 시작인데, 이 작업은 기본 도상을 바탕으로 색 구성과 형태가 변주되는 특징을 보여주죠. 우선 많은 분들이 찰리 브라운을 연상하는 도상은, 원래는 저가 필통에 그려져 있던 이미지에서 따온 건데, 그땐 전혀 의도치 않고 그렸던 부분이라 인지하지 못했다가 후에 사람들이 찰리 브라운 같다고 해서 역으로 찰리 브라운을 공부했다는 인터뷰를 본 적이 있어요. 하트 형태의 목젖이 있고 색 그러데이션 동심원이 퍼져 나가는 형태라 소리의 파장을 시각적으로 표현한 것처럼 보이는 작업입니다. 원래 사이즈는 200 x 200cm이었는데 후에 제작된 건 사이즈가 조금씩 작아집니다. 대중적으로 큰 사이즈의 캔버스 작품을 찾지 않다 보니 캔버스 사이즈가 점점 작아져 가는 현상을 보여주는 대목인 거죠.
44의 작품은,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궁금해하는 정보를 공개하기보다는 별로 궁금해하지 않는 정보를 제공하지만 그 대상들을 통해 사회문화적 추이를 다시 한번 짚고 발견하는 즐거움을 줍니다. 성향 따라 다르겠지만 전 이렇게 뭔가 계기가 되어 맥락을 파악하게 되는 걸 좋아하거든요. <2004년 7월 15일에서 9월 25일까지 호주 IMA 스튜디오 1에서 Sasa [44]가 마신 음료수>는 2004년 브리즈번 현대미술회관(IMA)과 서울 쌈지스페이스의 레지던시 교환 프로그램에서 열린 전시회 출품작으로, 긴 문장이 작품 제목인 동시에 내용입니다. 당시 출품작을 고민하던 44에겐 별다른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고, "일정 기간 오스트레일리아에서 마신 음료수 병을 모두 모아 생산은 몰라도 최소한 소비는 했다는 증거로" 이 192개의 빈 병들을 제시했다고 해요. '이것도 작품일 수 있을까?'싶겠지만, 생수뿐 아니라 초콜릿 우유, 소주, 위스키, 비타 500, 요구르트 등 그가 마신 음료수들은 어쨌든 작가가 술을 마시거나 술에서 깨는데 상당한 시간을 보냈다는 사실을 증거하고 있고, 또 이런 병들이 몇 해 쌓이게 되면 병 디자인의 변화라던가 크기의 변화 등 사회적 환경에 의해 변화해 가는 패턴도 볼 수 있긴 하죠.
동일 전시장 안쪽에는 더 흥미로운 작품들이 있는데, 각 작품의 맨 위에는 일본 오리지널판 만화책 혹은 프라모델을, 중간엔 우리나라 해적판(카피), 맨 아래엔 정식수입판을 배치한 조합이 꽤 재밌습니다. 일본 대중문화는 1998년 이후 단계적으로 우리나라에 개방되었는데, 개방 이전에도 일본 대중문화를 접하기 어려웠던 건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에게 아주 친숙한 형태로 자리했었죠. 텔레비전에서 방영된 만화는 대부분 일본에서 제작된 것을 더빙해서 상영했고, 만화책들도 꽤 많이 유통됐고, J POP도 유행했고요. 몇 해 전에 새우깡을 비롯한 우리에게 친숙한 과자의 원조가 한국이냐 일본이냐 하는 논쟁들이 있었는데, 저 그때 엄청 충격받았었어요. 너무 당연하게 우리 제품이라고 알고 있었는데 사실과는 좀 차이가 있었거든요. 마징가 Z, 은하철도 999, 아톰 이런 콘텐츠가 지금은 일본에서 만들어졌다는 걸 알지만, 인터넷이 지금처럼 보편화되기 전, 문화가 전면 개방되기 전까진 아마 헷갈린 분들이 많았을 겁니다. 어쨌든 작가가 제시한 작품을 보면, 분명 카피인데 약간 창의적인 카피가 된 흔적과, 해적판과 정식 수입판의 번역이 달라지는 변화 등도 보입니다. 그러고 보니 저도 <꽃보다 남자>를 해적판으로 먼저 봤네요, 정식 수입판보다.
2006년부터 2022년까지 지속된 <연차보고서>는 44의 작업 성향을 가장 잘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연차보고서〉는 작가의 8가지 행동을 1년 단위로 기록한 데이터베이스입니다. 지표가 되는 8개의 항목은 설렁탕 소비량, 자장면 소비량, 교통카드 사용량, 영화 관람 횟수, 도서 구매량, 휴대전화 통화량, 용무를 보기 위해 공기관에서 기다린 시간, 작업실 출퇴근 기록으로 어찌 보면 사소한 일상의 기록이죠. 일관된 조건으로 15년 이상 지속된 기록 작업이지만 이 안엔 주변 상황의 변화로 인한 변수도 반영되는데, 가령 책 소비량이 준 해엔 서점의 분점이 생겼다거나 내부 수리를 했거나, 인터넷 뱅킹을 시작한 2009년부터 대기 접수 번호표가 발부되어 대기 시간이 줄었다는가 하는 외부 요인이 변수로 작용했다는 객관적 사실도 되짚어 볼 수 있는 거죠. 출간 형식도 독특한데, 연차보고서라고 해서 꼭 책의 형태를 띠는 건 아니고, 포스터, 신문, 엽서, CD 등 예산에 맞게 다양하게 변주됩니다. 모든 〈연차보고서〉의 디자인은 미술 작가이자 그래픽 디자이너인 슬기와 민이 담당하고 있고요. 슬기와 민, 박미나와 Sasa [44]는 2009(?8?) 년부터 SMSM이라는 협업체로도 활동 중입니다. 재밌는 시도들이 많으니 내용도 꼭 주의 깊게 읽어보세요.
열람실엔 두 개의 작품이 설치되어 있는데, 하나는 Sasa [44]의 2004년 작업 〈글과 이미지는 하나>를 박미나 작가가 딩벳으로 재해석한 작업이고 다른 하나는 유리창에서 보이는 바깥 풍경을 종이테이프로 드로잉 한 박미나 작가의 작업입니다. 우선 2층 라운지 난간 전체에 붙은 딩벳 기호 작품의 원작은 그냥 텍스트였어요. 2004년 사간동 갤러리 현대 윈도 갤러리에 반투명 시트지로 The word and image are one라고 붙인 시트지 작업이었는데, 이번에는 딩벳 기호로 바꿔 전시된 거죠. 딩벳은 프로그램을 다운로드해 특정 키보드를 눌렀을 때 나오는 디지털 문자로, 그냥 그림문자로 생각하면 될 것 같은데, 벽면에 붙은 21개의 원형의 딩벳 이미지는 The word and image are one이라는 키를 눌렀을 때 나오는 딩벳 중 선별된 이미지입니다. 아무래도 열람실이다 보니 하면 안 되는 주의 문구를 대신할 수 있는 것들로만 모았는데, 좀 과한 주의 표시도 있어요 전혀 일어날 것 같지 않은.ㅎ <평창문화로 101>은 시립아카이브 주소로, 작품이 설치된 그곳의 유리창을 통해 보이는 풍경을 드로잉 한 작품이에요. 유리창에 드로잉 된 선들을 잘 따라가다 보면 겹쳐지는 이미지가 있으니 비교해서 보면 찾아가는 즐거움이 있을 겁니다.
2 전시실에선 <집 안>(2002/2023), <참고문헌 일부>(2023), <티티에스 TTS 2001~2022>(2023) 세 점의 협업작과 , 박미나 작가의 <집>(2007) 총 4개의 작품이 있습니다. 전시실 벽면을 가득 메운 〈집 안〉은 두 작가의 첫 협업작(2002)을 재제작한 작품으로, 마커 드로잉으로 전시실 벽면을 채우는데 거의 한 달이 걸렸다고 해요. 작가들의 고생이 눈에 보이는 작업이지만, 보는 입장에서는 그저 멋있기만 하더라고요. 특히 전시실 유리창을 통해 빛이 들어올 때 보면 더 환상적입니다. <참고문헌 일부>와 <티티에스 TTS 2001~2022>(2023)는 2001년부터 2022년까지 발행된 국내외 신문, 잡지 등의 연속간행물 중 박미나와 Sasa [44]가 언급된 일간지, 미술 전문지, 패션지 등 360여 개의 매체와 국내외 기자, 미술평론가, 미술사학자, 큐레이터 650여 명의 기록 총 1,259개의 기사를 수집하여 한 권의 책과 사운드 작업으로 재구성한 작품입니다. 이번 전시에서 첫 시도된 작업으로, 저 책은 그냥 넘겨만 보는데도 30분 정도가 걸리더라고요. 넘기다 힘들면 음성 AI가 읽어주는 기사를 들으며 쉬어가도 되니, 일단은 빈 의자에 앉아서 몇 장이라도 넘겨보세요.
2층 라운지엔 두 작가의 출판물과 개인전 도록, 작가론이 게재된 미술 전문지 등 참고문헌을 열람할 수 있는 장소가 마련되어 있습니다. 자료 대출 안내 데스크가 있고 이곳에 있는 자료 목록을 확인한 후 현장 신청을 통해 열람할 수 있어요. 다른 곳에서 보기 어려운 지난 전시 리플릿과 다양한 판본의 연차보고서도 볼 수 있으니, 꼭 한번 둘러보세요. 그리고 그 안쪽에 설치한 박미나 작가의 초기 회화들도 챙겨보시고요.
쓰고 나니, 오늘도 참 기네요 ㅎㅎ 짧게 자주 쓰는 법을 좀 연습해야겠어요.
그럼, 좋은 꿈 꾸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