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정성스러운 전시라니!

전시 이야기

이렇게 정성스러운 전시라니! 《아니메쥬와 지브리》, 《STILL, TASHA TUDOR: 행복의 아이콘, 타샤 튜더의 삶》, 《신상호:무한변주》



2026년 새해, 잘 시작하셨나요?

저는 첫 해맞이로 2026년을 시작했어요. 그리곤 작심삼일을 연일 반복하고 있죠. 사람 참 .. ㅎ

작년에 출간한 『화양연화, 동네 목욕탕』 이후 내내 글을 쓰지 못하다가 얼마 전부터 다음 책 원고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다음 책은 도시 베이징을 소재로 한 경험 정보 에세이예요. 정식 출간 전 일부 내용을 브런치에 연재할 계획인데, 이제 막 쓰기 시작한 터라 여름 전 공개가 목표입니다. 어쨌든 틈나는 대로 쓰고 있어요. 그런 이유로 올해부턴 최대한 효율적으로 포스팅을 해볼까 합니다. 단독 소개보다는 가급적 여러 건을 짧게 소개하는 방향으로요.


① 《아니메쥬와 지브리》전 (2025.06.06~2026.02.22) @아이파크몰 용산점 6층 팝콘 D 스퀘어

일본 애니메이션 좋아하는 분 많으시죠. 사실 저는 이런 쪽엔 좀 느린 편입니다. 대부분 개봉이나 공개 당시 봤을 작품들을 대개 10년이나 그보다 더 지난 후에 본 게 많으니까요. 자주 안 봐서 그렇지, 작품 만족도는 높아요. 《바람 계곡의 나우시카》(1984)와 《모노노케 히메(원령공주)》(1997)도 얼마 전에 봤는데, 그림체도, 메시지도, 연출도 좋았어요. 반면에 제 주변엔 일본 애니메이션을 좋아하는 친구가 많습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전시나 영화를 함께 보며 귀동냥한 부분들이 많아요. 《스즈메의 문단속》(2023)과 《더 퍼스트 슬램덩크》(2023)도 친구랑 영화관에서 봤고요. 참고로 제 일본 애니메이션 취향은 《언어의 정원》(2013)입니다. 어쨌든 이 전시는 오롯이 제 의지로 보고 온 전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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촬영:네버레스홀리다

《아니메쥬와 지브리》전은 일본 애니메이션 황금기를 이끈 잡지 『아니메쥬』와 애니메이션 명가 '스튜디오 지브리'의 탄생 이야기로 구성된 전시입니다. 이번 전시로 『아니메쥬』란 잡지를 처음 접했는데, 1978년 창간되어 일본 애니메이션 붐을 이끌며 수많은 걸작의 토대가 된 책이더라고요. 이 전시는 일본, 대만 등 총 14개 지역을 거친 순회전으로, 1300점 이상의 아카이브 자료를 선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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촬영:네버레스홀리다

전시장은 아카이브 자료와 자료 복제물로 꾸몄어요. 전시장을 가득 채운 인쇄물과 오리지널의 전시물 비율이 1:2 정도 되는 거 같았는데, 인쇄 설치물 크기도 커서 입구부터 뭔가 다른 세상으로 들어가는 듯한 느낌을 주죠. 원작을 확대한 인쇄물들은 곳곳에서 포토존 역할도 합니다. 잡지 역사가 오래된 만큼 숱한 명작들이 쏟아졌는데, 어렸을 때 봤던 만화 캐릭터들부터 현재 애니메이션을 통해 볼 수 있는 캐릭터들이 모두 등장하니까 반갑고 신기하고 그렇더라고요. 저처럼 일본 애니메이션에 큰 관심 없던 사람도 집중해서 보게 할 만큼 눈이 가는 곳도, 소장하고 싶은 것도 많았습니다. 제가 일본 애니메이션 덕후였다면, 하루 종일 여기에 갇혀 있어도 행복했겠단 생각이 들 정도였으니까요. 게다가 전시장 밖 역시 아이파크몰 내에서 각종 캐릭터 관련 상품과 콘셉트 카페 등을 만날 수 있는 공간이라, 전시장 입구부터 출구 밖까지 동화나라나 놀이동산에 다녀온 듯했어요. 덕분에 '아, 요즘엔 이런 캐릭터가 유행하는구나'라는 걸 알게 됐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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촬영:네버레스홀리다

전시가 진행된 지 이미 8개월째라 많은 분들이 보셨겠지만, 작년부터 티켓 1+1 행사도 하고 있으니 아직 안 보셨다면 끝나기 전에 친구와 함께 보고 오세요. 전시장 입구에선 전시 포스터, 책갈피 등 나름 기념되는 소박한 굿즈도 줍니다. 어른이로서 충분히 만족할 전시이니 동심 장착하고 다녀오세요.


② 《STILL, TASHA TUDOR: 행복의 아이콘, 타샤 튜더의 삶》 (2025.12.11~2026.03.15) @롯데뮤지엄

타샤 튜더는 예전에 한번 소개한 적 있죠. 세계적인 동화 작가이자 일러스트레이터로, 그의 책이든 그가 가꾼 정원이든 삶을 대하는 자세로든 많은 분들에게 다방면으로 친숙한 인물입니다. 이번 전시는 타샤 튜더 탄생 110주년 기념전으로, 아시아 최초로 선보이는 타샤 튜더(Tasha Tudor, 1905~2008)의 회고전입니다. 평일 오전에 전시를 보고 왔는데 다른 전시장과 확연히 다른 점이 있더라고요. 관람객 연령대가 높고 대개 여성분들이었다는 점. 왜 그럴까 생각해 봤더니 제 세대뿐만 아니라 제 어머니 세대에도 타샤 튜더는 유명한 작가였더라고요. 제가 늦게 접하다 보니 작가 나이를 생각하지 못했는데, 장수한 데다 작품도 세계적인 인기를 얻어 그를 기억하는 세대가 폭넓습니다. 그래서 이 전시는 엄마와 함께 보거나 티켓을 선물하는 걸 권해드립니다. 전 혼자 봤는데 엄마랑 같이 왔으면 좋았겠다 싶은 지점이 많았어요. 물론 전시장엔 아이와 함께 온 부모님, 연인도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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촬영:네버레스홀리다

출품작도 많습니다. 수채화, 드로잉 원화에 직접 만든 인형과 같은 오브제, 영상 자료 등 약 190점을 선보이거든요. 드로잉 위주라 작품 사이즈가 대체로 작긴 하지만 단조로움을 깨는 공간 설치물들이 있어 지루하진 않아요. 게다가 손 그림 하나하나 다 디테일이 살아있어서, 사이즈는 작아도 보는 내용이 적다는 생각은 안 들고요.


전시는 미디어 아트로 구성한 인트로부터 콘셉트 정원인 작은 정원까지 12개의 섹션으로 구분됩니다. 그의 약력부터 그가 발간한 책, 식물, 동물 등 드로잉과 인형, 음식, 가족, 영화 등 주제별로 다양하게 구성됐어요. 동선이 복잡하지 않아서 순서대로 보시면 되고요. 좋은 작품들이 많지만 개인적으론 코기 그림이 가장 좋았습니다. 코기를 볼 때마다 이미 무지개다리를 건넌 지 한참인 저희 강아지와의 추억이 생각났거든요. 보면서, 저 그림 속의 코기처럼 우리 강아지도 행복했을까? 하는 생각도 해봤고요. 저도 타샤 튜더처럼 그림으로 저희 강아지를 기억하고 싶었지만, 배운 적 없는 그림이라 그리진 못하고 당시 같이 찍은 사진 20여 장을 제 방 창문 한쪽에 빼곡하게 붙여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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촬영:네버레스홀리다

이 전시의 장점은 따뜻함 같아요. 찌든 마음, 나쁜 마음을 가지고 있다가도 전시를 보면서 싹 정화되는 기분이 들거든요. 저 그림 속의 안온함을 일상에서 언제 느껴봤나 하는 생각도 들고요. 계절감도 느껴집니다. 그림 속 묘사된 대상은 봄부터 겨울까지 사계절이지만 전시실은 내내 봄 같아요. 이 전시를 크리스마스 전에 봤는데, 타샤 튜더의 작품을 통해 이미 미국 스타일의 크리스마스를 함께 보낸 듯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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촬영:네버레스홀리다

세상 무해하고 온기가 가득한 전시라 누구와 봐도 좋지만, 앞서 말했듯 엄마에게 선물해 보세요. 현장에서 모녀의 대화가 들렸는데, 엄마가 딸에게 "전시 보여줘서 고마워"라고 하시더라고요. 요즘 그런 말 듣는 전시 드물잖아요.


③ 《신상호:무한변주》(2025.11.27~2026.3.29)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

이 전시는 2025년에 마지막 날에 본 전시입니다. 연내에 꼭 보고 싶었던 전시라 31일 낮에 셔틀 타고 다녀왔거든요. 가기 전엔 과천관 전관 작품을 다 보고 와야겠다 결심했는데, 집중해서 보고 난 이후 기력이 쇠해서 카페테리아 들러 든든하게 먹고 오후 셔틀 타고 돌아왔습니다. ㅎ 이 전시하나 보러 그 하루 반나절을 썼지만, 그 시간이 전혀 아깝지 않은 전시였어요. 오히려 더 많은 사람들에게 이 전시 관람을 독려해야겠다 생각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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촬영:네버레스홀리다

《신상호:무한변주》는 한국 현대 도예작가 신상호(1947~)의 60여 년을 집약한 전시입니다. 전시를 꼭 봐야 할 이유죠. 신상호 작가 스튜디오에 가도 이 작품들을 다 보긴 어려웠을 테니까요. 출품작은 도자 작품 90여 점과 아카이브 70여 점인데, 체감은 그보다 더 많은 작품을 본 듯합니다. 저는 신상호 작가 SNS를 팔로우하고 있는데 이 전시를 본 이후 진짜 멋진 아티스트라는 생각이 더 짙어졌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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촬영:네버레스홀리다

《신상호:무한변주》는 총 5부로 나뉩니다. 1990년대부터 현재까지의 작업을 보여주는 연대기 구성으로, 전통 도자에서 도자 조각, 건축 도자, 타 매체와 결합한 오브제, 도자 회화에 이르기까지, 말 그대로 무한 변주된 '흙의 세계'를 보여줍니다. 매체를 활용한 다양한 작업 결과물이 있지만 제가 좀 더 좋아하는 건 그의 도자 조각(陶調)입니다. 특히 <꿈>과 <아프리카의 꿈> 연작 등 동물 형상을 지닌 작품들은 아... 정말 멋있어요. 귀엽기도 하고, 우아하기도 하고. 전시장엔 작은 오브제들도 많은데, '탐난다'는 생각을 여러 번 하며 봤네요.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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촬영:네버레스홀리다

전시 설명도 잘 되어 있고 전시 내용도 어렵지 않은 데다 동선도 편해서 누구나 부담 없이 전시를 볼 수 있습니다. 게다가 작가 소장의 아프리카 수집품들도 함께 볼 수 있어 두 개의 전시를 함께 보는 듯하죠. 전 연령대가 좋아할 전시로, 올해가 말의 해라서 말 조각이 더 눈에 들어오긴 하지만 전반적으로 작품들이 큼직해서 보기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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촬영:네버레스홀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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촬영:네버레스홀리다

전시 관람 전 준비하셔야 할 건 충분한 체력과 데이터입니다. 다들 유료 전시로 입장료가 있긴 하지만, 1+1도 있고, 이미 전시 막바지라 할인 폭도 큽니다. 과천관 전시는 커피 한 잔 값도 안되지만 문화가 있는 날엔 무료입장이니 참고하시고요.


그럼, 올해도 문화생활 많이 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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