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 불가! ONE&ONLY, 《티노 세갈》, 리움

전시 이야기

저는 대개 전시를 보러 혼자 갑니다. 작품에 충분히 집중할 수 있는 장점이 있죠. 함께 보는 것도 재밌어서 좋지만 간혹 전시 관람 속도가 안 맞아서 재촉당하기도 하고 시간 조율의 어려움도 있어 그냥 가볍게 갔다 가볍게 오는 걸 더 선호해요. 그래도 오늘 소개드릴 전시는 전시 관람 템포와 성향이 잘 맞는 지인과 함께 봤으면 더 좋았겠다 싶었어요. 새로운 대화를 이끌 요소가 많거든요.

IMG_9249.JPG?type=w773 촬영:네버레스홀리다

리움미술관에서 진행 중인 《티노 세갈 Tino Sehgal 》 은 '하늘 아래 똑같은 건 없다'라는 말을 물리적으로 구현해 낸 전시입니다. 티노 세갈(1976~,영국)은 현대무용과 정치경제학을 전공한 현대미술가로 그의 작품은 퍼포먼스 즉, '구성된 상황(constructed situation)'으로 표현됩니다. 말하고 노래하고 움직이는 상황으로 구성된 퍼포먼스인 '구성된 상황' 그 자체가 작품으로, 미술관에서 작품을 볼 수는 있지만 벽면에 고정된 형태의 작품은 아닌 거죠. 작품이 계속 살아 움직이니까요.


" '물질적 대상이 없는 예술이 어떻게 존재할 수 있는가'를 질문하며, '어떤 기록도 물질적 오브제도 생산하지 않는 비물질적 작업을 전개' 한다"라고 소개된 티노 세갈의 작업은, 그 시간 그 장소 그 사람에 의해 표현되고, 현장 관람객 참여로 완성되어 딱 그 장소 그 순간에 있는 분들만 그 작품의 관람객이 됩니다. 처음엔 작품을 '보러' 가지만 결과적으로는 '경험'하고 오는 거죠. 하지만 같은 공간에서 같은 시간에 작품을 봤다고 해도 그것 역시 동일한 작품은 아닙니다. 내가 서있는 위치에서 다른 관점으로 작품을 보게 되니까요. 모든 '구성된 상황'이 동시에 실연되기에 관람객이 보는 작품이 같을 수 없고, 또 각 퍼포먼스마다 퍼포머가 여러 명이라 전시 기간 동안 보이는 작품은 같은 게 하나도 없습니다. 모든 관람객이 그 작품의 유일한 관람객이고요. 사진이나 영상 매체를 통한 기록도 불가합니다. 오직 눈과 귀로 작품을 기억해야 하고, 현장에서 느끼셔야 해요. 그래서 더 흥미롭고 그래서 더 봐야 하는 전시이죠. 하늘 아래 같은 작품은 없으니까요.


전시는 리움미술관 입구, 로비, 야외정원, M2에서 진행됩니다. 전시 출품작은 8가지의 구성된 상황(퍼포먼스)과 작가가 직접 선별한 리움미술관의 조각 소장품 40여 점입니다. 주의할 점은 퍼포먼스가 순차적으로 공개되어, 미술관을 적어도 세 번은 가야 작품을 다 만날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제대로 볼 수 있을 거라 말하기도 어렵죠. 모든 퍼포먼스는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되며, 연속적으로 이어져도 매 순간 디테일은 달라지니까요. 대신 우리는 이 작품을 보며 순간순간 바뀌는 관극의 태도와 감정의 변화에 더 집중하게 되죠. '다음'이나 '나중'이 없으니까요.


첫 작품은 입구 진입로에서 실연되는 <이건 너무 현대적이야(This is so contemporary)>(2004)입니다. 미술관 보안직원 복장의 퍼포머들이 조롱(?) 하는 듯한 어조로 전시 제목을 노래하는 것이 특징이죠. 리움미술관 입구에는 평소와 다르게 유니폼을 입은 퍼포머가 세 분 서있는데, 처음엔 가만히 계시던 분들이 관람객이 진입로 중간 정도 걸어가면 그때부터 'Oh~This is so contemporary'란 문장 혹은 단어로 분절해 노래하며 뮤지컬 배우처럼 다가옵니다. 제가 걸어 들어갈 땐 저 혼자였는데, 1,2초 당황하긴 했으나 이내 적응해서 핸드폰을 꺼내 이분들 사진을 찍었어요. ㅎ 이 작품은 입구 진입로에 들어서면 무조건 실연돼서 들어갈 때 한 번, 나갈 때 한 번 경험하게 됩니다. 나올 땐 이미 경험해 본 후라 저 역시 어깨 위로 두 손을 어깨 높이 들어 최대한 호응하며 끝까지 나왔고요. 괜히 신나더라고요 ㅎ 이분들은 미술관 모집 공지를 통해 참여한 퍼포머로, 저도 이 공고를 봤을 때 한번 해볼까 싶었지만, 발목이 불안정해서 도전하진 않았습니다. 작품을 경험해 보니 도전했어도 안되었겠더라고요 제 발목 상태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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촬영:네버레스홀리다

티노 세갈의 퍼포머들은 '구성된 상황'의 '해석자(Interpreters)'입니다. 그들이 해석한 작품을 관람객에게 퍼포먼스로 보여주고 그 해석된 퍼포먼스에 관람객이 참여하며 작품이 완성되는 구조예요. 관람객과의 반응이 또 다른 작품을 탄생시키는 거죠. 퍼포머들은 실연 도중 이 퍼포먼스가 작품이란 걸 알립니다. 작가 이름과 제목, 작품 연도를 말해주거든요. 근데 작품 연도와 작가는 잘 들리고 제목은 잘 안 들려요.


로비에서는 <무제>(2026)가 진행됩니다. 이 작품은 언뜻 봐서는 작품인지 알 수가 없어요. 퍼포머의 의상이 평상복이고 크지 않은 동작으로 조용하고 느리게 움직이거든요. 진행 시간 역시 공지되진 않지만, 어떤 행동들이 끊임없이 퍼포머와 관람객에 의해 계속 발생하고 있죠. 관람객이 주의를 하고 있지 않은 순간에도요. 사실 이 작품은 놓칠 뻔했는데 관람 후 가방과 옷가지를 정리하면서 로비에 앉아 있다가 우연히 발견했고, 제게 다가오는 퍼포머들의 미소에 호응에 저도 작품에 참여했습니다. 나란히 서서 손을 맞대고 있는 퍼포머들이 눈을 맞추며 다가와서 저 역시 자리에서 일어나 그 퍼포머 중 한 분과 손가락을 맞대고 그의 행동을 따라 했죠. 동작이 빠르지 않고 생각보다 진지하게 임하는 게 쉽진 않아서 어색함을 이기지 못하고 말을 몇 번 건넸어요. 긴 대화를 나누는 관람객도 계셨고요. 관객 참여형 작품으로, 로비에 앉아 계시면 누군가가 다가갈 거예요. 그럼 당황하지 말고 상황에 따르시면 됩니다. 열린 마음으로.

SE-85bcd2d6-92ff-483b-b7ab-cd55896664d5.jpg?type=w773 로비 촬영:네버레스홀리다

M2 전시실 B1층엔 입구와 내부 공간에 초록 비즈 커튼이 설치되어 있습니다. 초록 비즈 커튼은 펠릭스 곤잘레스- 토레스의 작품 <("무제"(시작)>(1994)로, 전시장 입구에서 사진 촬영 금지라는 말을 들어서 찍진 않았습니다. 작품이지만 공간을 통과하는 문이라 손으로 만질 수 있어요. 그렇다고 세게 잡아당기시면 안 돼요 작품이니까요.


M2 B1층 가장 넓은 홀에서는 <이 입장>(2023)이 실연됩니다. 무용수、바이올린 연주자、축구선수、사이클 선수가 등장하는 작품으로, 실연 시간이 대략 40분입니다. 한 타임이 끝난 후에 또다시 작품이 연달아 시작되고요. 이들은 따로 또 같이 퍼포먼스를 펼치는데, 사이클과 축구 선수 퍼포먼스는 기예적으로 특출 나서 서커스 구경하듯 봤어요. 퍼포머들은 관람객에게 다가와 질문을 던지는데, 이게 작품의 마무리더라고요. 다른 작품들은 시작과 끝을 잘 모르겠는데, 이 작품은 '여기가 끝이구나'라는 걸 이때 알 수 있었죠. 질문은 퍼포머가 한국인이면 한국어로 외국인이면 영어로 건넵니다. 영어라고 해도 '이름이 뭐니, 취미는 뭐야'를 묻는 정도라 긴장 안 하셔도 돼요. 이 작품은 4월 5일까지만 볼 수 있고, 이후 4월 7일부터 5월 17일까진 <이 환희>(2020)가, 5월 19일부터 6월 28일까진 <이 당시나나당신>(2023)이 실연됩니다. 우리가 본 작품은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고 존재할 수도 없으니, 현장에서 꼭 끝까지 다 보고 오셔야 합니다.


IMG_9261.JPG?type=w773 오귀스트 로댕 <칼레의 시민>(1884-1985), 제프 쿤스 <작은 꽃병>(1991), 리움 소장 조각 촬영:네버레스홀리다

개인적으로 가장 파격적이었던 작품은 M2 B1 안쪽에서 실연되는 <키스>(2002)였어요. <키스>가 실연되는 공간에는 <키스의 남성 토르소>(1880년대)、 <생각하는 사람>(1880)、 <세 망령>(1881)、 <아리아드네 습작>(1882)、 <발작 나상>(1896-7) 등 로댕의 청동 조각 작품 14점들이 전시장 빙 둘러 놓여있고, 그 가운데에서 한 쌍의 퍼포머가 로댕의 동명작 <키스> 속 연인을 현실로 옮겨옵니다. 작가는 한 인터뷰에서 "로댕의 작품을 현실로 구현하는 데 관심을 갖게 되었고, 미술관이 소장한 로댕의 조각과 그의 작업을 같이 보여주는 것이 전시의 출발점"이라고 밝혔을 만큼, 그에게도, 이 전시에서도 <키스>는 대표 작품입니다. 하지만 보는 데 조금 불편함이 느껴지긴 해요. 미술사 속 다양한 키스 장면을 참조해 재구성한 퍼포먼스라 친밀한 키스 장면이 많고, 무엇보다 템포가 느립니다. 그래서 상상의 범위가 커져요. 어떤 땐 '내가 여기 앉아 있어도 되나?' 싶은 생각도 드는데, 그래서인지 많은 분들이 분위기를 이기지 못하고 조금 보다가 공간을 벗어나기도 하죠.


다른 작품의 퍼포머들도 대단하지만 <키스>의 퍼포머는 몰입력과 연기력이 정말 남다릅니다. 아무리 연기여도 관람객으로 빙 둘러진 공간에서 키스하고 애무하는 게 쉽진 않잖아요. 게다가 동작 하나하나가 사진으로 찍듯이 선명하면서도 더 느리게 연결되는 데다 동작의 난도도 높아요. 실제 연인이 아니면 힘들 것 같은 동작들의 연속이죠.


M2 1층에서는 <무언가 당신 코앞에 나타나게 놔두는 대신 춤추는 브루스와 댄 그리고 다른 것들>(2000)이 실연됩니다. 계단과 연결된 통로로 올라오면 한 명의 퍼포머가 1960~1970년대 영상 작품을 '살아 있는 조각'으로 구현하고 있죠. 퍼포먼스가 진행되는 1층 공간에는 오귀스트 로댕 <아리아드네 습작>(1882)、권오상<캄보드>(2007-2008)、<Bbd>(2009)、엘림그린&드라그셋 <그(블랙)>(2013)、발타자르 로보 <정면을 보는 젊은 여인 좌상>(1989)、알베르토 자코메티 <거대한 여인Ⅲ>(1960)、이사무 노구치 <고독>(1962)、안토니 곰리 <작은 콘솔 <2013>、존배 <신화의 흔들림>(2009)、김정숙 <토르소>(1970) 등 26 점의 조각 작품이 있습니다. 뭔가 카테고리 분류가 안된듯해 보이지만, 19세기부터 현재까지의 인물 조각 연대기를 보여주는 것 같다고 느꼈어요 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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촬영:네버레스홀리다

야외 정원에서는 <이 당신>(2006)이 실연됩니다. 아쉽게도 이 작품을 보지는 못했습니다. 4월 3일부터 전시 종료 때까지 볼 수 있거든요. 현재 정원은 진입 불가이고요. 이 작품이 궁금해서라도 나중에 한 번 더 가려고요.


티노 세갈전은 현장에 어떤 참고 요소도 주어지지 않습니다. 작품 제목과 관련 사항을 적은 그 흔한 텍스트 하나 없어요. 정리하면서 안 사실이지만, 작품 브로슈어는 티켓에 인쇄된 QR을 통해 개인적으로 다운로드해 볼 수 있습니다. 작품 설명은 없고 제목과 전시장 안내도만 적혀있어요. 전시장에선 조각 작품 사진은 찍어도 되지만 퍼포머가 등장하는 모든 신은 사진 및 영상 촬영 불가예요. 작가는 작품 판매 계약 시에도 공증인 앞에서 설치에 대한 그의 권한, 기록 금지, 해석자들에게 공정한 임금 보장 등을 담은 계약 내용을 구두로만 전달한다고 해요. 그의 작업이 물리적인 무언가를 '남기지 않는 것'이고 현장에서 관람객의 직접 경험을 중요시한다고 하니 사진、영상、도록 형태의 기록도 당연히 없고요. 퍼포머들에게 작품 설명을 할 때도 구두로 했다는데, 작품 관련 자료를 찾으려고 해도 작가 설명 외에는 이미지가 없네요, 극소수 관람객이 찍은 것 외에는.


그러니, 오랜만에, 텍스트에서 벗어나 현장성 가득한 작품을 만끽하고 오길 바라겠습니다. 지금이 아니면 영원히 이 작품들은 보지 못할 테니까요.


그럼 오늘도 평안한 하루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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