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 이야기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
이 속담을 모르는 분은 없겠죠?
은유적으로 다양한 함의를 담고 있는 속담은 일상에서 잘 적용하면 대화를 풍부하게 하는 명구들이 많지만 생각만큼 자주 듣는 말은 아닙니다. 희소성이 높아진 격언들을 요즘은 '우리말 겨루기'처럼 한글 실력을 겨루는 교양 프로그램이나 '신서유기' 같이 퀴즈의 소재로 활용하는 예능 프로그램을 통해서 그나마 접하게 되더라고요.
어느 날 뉴스를 보다가 갑자기 이 격언이 떠올랐는데, 그게 어떤 소식이었는지 이야기해드릴게요.
제가 본 건 모두 '경매'라는 공통점이 있는데요, 하나는 알베르 우데르조 유족이 기증한 원화 드로잉의 경매 결과 다른 하나는 재정적 어려움을 벗어나기 위해 유물을 경매에 출품할 수밖에 없었던 간송미술관 관련 소식이었어요. 특히 간송미술관 소장품의 경매 출품 소식은 가히 충격적인 일이어서 유물이 경매에 출품될 수밖에 없던 이유와 출품작이 어떤 작품인지, 그리고 누가 사 갈지에 대한 모든 과정이 만인의 주목을 끌었습니다.
2020년 3월, 알베르 우데르조가 심장마비로 별세합니다. 알베르 우데르조 Alberto Aleandro Uderzo (1927- 2020)는 프랑스의 국민 만화 '아스테릭스 Astérix를 그린 삽화가로, '미국에 미키마우스가 있다면 프랑스에는 아스테릭스가 있다'라고 불리는 캐릭터의 창작자죠.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 코로나의 창궐로 세계가 어려움을 겪고 있었고 최일선에서 묵묵히 역할을 일임했던 세계 의료진들의 고생은 굳이 말로 설명하지 않아도 우리가 다 알고 있죠. 알베르 우데르조는 생전에도 다수의 작품 경매를 통해 그 수익을 좋은 일에 쓰곤 했는데요, 이번 기증 역시 코로나로 애쓰는 의료진의 노고에 보답하고자, 유족들이 그의 오리지널 드로잉 4점을 병원에 기증하면서 이뤄집니다. 수익은 의료진의 작업 환경 개선에 쓰일 목적으로 5월 경매에 출품되었고 다행히 모두 새 주인을 찾게 됩니다.
프랑스인의 조상인 골족 전사 아스테릭스와 단짝 오벨릭스가 로마 제국에 대항해 펼치는 모험을 그린 『아스테릭스』 시리즈는 언뜻 영웅이 등장해 신화적인 느낌을 주지만 유럽의 깊은 역사와 프랑스인의 성향을 기반으로 탄생시킨 프랑스 스타일의 역사 만화이기도 합니다. 2019년까지 발간된 38권의 단행본이 세계적으로 3억 7천만 부 이상 판매되었으니 세계인의 만화라고 해도 무방하죠.
『아스테릭스』 1권 첫 페이지에 만화가 담고자 하는 배경과 방향이 제시되어 있어요. 긴 서사의 시작을 알린 페이지죠.
"때는 기원전 50년경, 모든 골(Gaul: 현재의 프랑스) 지방은 로마제국의 정복지였다. 모두라고? 천만에! 불굴의 투지를 가진 골족들의 한마을이 있어서 아직도, 그리고 언제나 침략자에 저항하고 있었다. 바로 브르타뉴 쪽의 아르모리크라는 마을이다. 쁘띠본움, 로다눔, 바바오룸, 아쿠아리움 등 이 마을을 둘러싼 네 개의 요새에 진을 치고 있는 로마군들을 끊임없이 조롱하며 그들로부터 이 난공불락의 골족 마을을 지켜내고 있는 몇 명의 전사들이 있었다. 프랑스적인 유머와 기지와 낙천성에 충만한 모험담을 일궈내는 영웅, 아스테릭스와 오벨릭스가 그들이다. "
번역 출처- 성완경 지음, 『세계 만화』, p103 발췌. 생각의 나무(2001)
『아스테릭스』 시리즈는 『꼬마 니콜라』 등으로 유명한 작화가·시나리오 작가인 르네 고시니 René Goscinny(1926-1977)가 줄거리를 쓰고 알베르 우데르조가 삽화를 그린 합작품입니다. (참고로 『꼬마 니콜라』의 그림은 장 자끄 상페 Jean-Jacque Sempe(1932-)가 그렸어요.) 1959년 알베르 우베르조와 르네 고시니가 주간 만화잡지 『필로트 PILOTE』를 창간하는데 <아스테릭스>는 이 주간지의 사활을 건 전략상품으로 창간호를 장식하죠. 1974년까지 주간지로 발행되다가 월간지로 바뀐 『필로트』는 1989년에 종간되지만 만화 영역의 전문성 강화, 수많은 만화가 배출, 만화 개념을 혁신하는데 크게 기여한 잡지로 평가받고 있어요. 1977년 르네 고시니가 별세한 뒤 우데르조가 글과 삽화를 맡아 시리즈를 이어오다가 2011년~2012년에 만화가 장이브 페리 Jean-Yves Ferri(1959-)와 디디에 콘라드 Didier Conrad(1959-)를 영입하면서 2013년도 발간된 35권부터 자연스럽게 작가 교체가 이뤄집니다.
최고의 콘텐츠로 시장과 평단에서 인정받은 아스테릭스는 110개국 언어로 번역된 텍스트 북, 영화, 게임, 캐릭터 굿즈, 연극, 라디오 프로그램 등으로 성공한 '원 소스 멀티 유즈'의 사례가 되고 있어요. 또 1989년 파리 외곽에 지은 테마파크 Parc Astérix(Astérix Park)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있고요.
이 모든 사랑이 배경이 되어 그가 그린 초창기 원작 만화 사인본은 2017년 파리 경매를 통해 140만 유로(약 18억 8800만 원)에 거래되기도 하죠.
2020년 5월 26일 프랑스 경매 회사 Artcurial에 출품된 알베르 조의 원화 드로잉 4점은 총 390,000(한화 약 5억 3천 /수수료 불포함) 유로의 수익을 창출합니다. 대부분 예상 범위 내에서 거래되었지만 좋은 마음을 펼칠 수 있는 기회가 된 것 같아 괜히 제가 좋더라고요. 기부나 기증은 정말 마음의 문제라 돈이 많거나 시간이 많아야 이룰 수 있는 일은 아니니까요. 생전에 자신이 진료를 받던 병원에 표현하고 싶었던 의료진에 대한 '고마움'이 담긴 뉴스라 이 경매가 더 인상 깊게 다가왔고요, 시기가 시기이니 만큼. (물론 우리나라에서도 많은 분들이 각 방면의 후원에 동참하고 있습니다.^^)
앞의 내용과 상반된 분위기의 경매가 그 하루 뒤인 5월 27일, 서울 K 옥션에서 일어나죠.
뉴스를 통해 본 분들도 계시겠지만 간송미술관이 소장품 2점을 경매에 출품했죠. 출품작은 보물로 지정된 제284호 '금동여래입상'과 제285호 '금동보살입상'으로 삼국·통일신라시대 불상입니다. 추정가는 각각 15억 원으로 책정되었고요. 자주라고는 할 수 없지만 '보물'이 경매시장에서 거래되는 건 종종 볼 수 있습니다, 국보·보물도 개인 소장품은 매매 가능하고, 외국인 구입도 가능은 하지만 해외 반출은 불가합니다. 대부분 전시 기관과 목적이 확실한 경우만 심의를 거쳐 해외 반출되었다가 돌아오는데 어지간해서는 나가기가 어려워요, 우리 문화재 불법 반출 방지를 비롯한 여러 가지 제도적인 이유와 보험료 그리고 기타 등등의 이유로요.
어찌 되었든 이번 경우는 보물도 보물이지만 그 출처가 간송미술관이었다는 게 더 이슈가 됐죠.
간송미술관의 전신은 1938년 설립한 우리나라 최초 사립미술관인 보화각입니다.( 이전 국립중앙박물관 포스팅에서 언급했었죠. ) '간송'은 전형필全鎣弼(1906-1962)의 호로 그는 일제강점기 우리 문화재 수집과 보호에 전력을 다한 인물입니다. 그는 일제강점기 일본인에게 넘어갈 국보급 문화재 5000여 점을 전 재산을 들여 사들였고 그 유물을 보관할 미술관을 지었고, 사후에는 그 유지를 받든 후손들이 미술관을 운영해왔죠. 『훈민정음해례본』, <청자상감운학문 매병>과 같은 국보 12점과 보물 32점 등을 포함한 많은 소장품들은 성북동 전시를 통해 한시적이지만 무료로 정말 가까이에서 볼 수 있었기 때문에 한국미술사 전공자라면 무조건 가야 하는 전시였고, 그 작품들과 관련 논문을 수록한 도록 역시 한 두 권 이상씩은 책장에 꽂아두곤 했었죠. 현재는 공사 중이라 볼 수 없지만 예전에는 간송 컬렉션을 보러 1년에 두 번 성북동으로 가는 게 연례행사였어요. DDP 전시로 간송 컬렉션을 만난 분도 계시겠지만요. (더 깊은 이야기는 책과 자료로 많이 나와있으니 책을 참조해 주세요.)
이번에 출품된 유물은 2014년 DDP에서 열린 <간송 문화: 문화로 나라를 지키다> 전에서도 소개됐던 소장품으로 지난 82년 동안 소장품을 판매한 전례가 없었던 간송미술관의 사례라서 미술계에 던진 파장이 컸죠. 씁쓸하더라고요, 기사를 읽는 저도. 일제강점기에 전 재산은 물론 그 어려움을 무릅쓰고 지켜냈던 우리 문화재가, 그것도 보물이 여러 제도적, 경영상의 문제로 그야말로 '시장'에 던져졌다는 것이요. 대부분은 '국가기관에서 사야 하는 거 아닌가?'라고 생각하시겠지만 그것 역시 정해진 예산에서 움직여야 하는 부분이라 생각만큼 간단하지는 않습니다. 어느 분께서 하셨던 말인데, 국보는 'only one' 보물은 'number one'이라서 아무리 보물이라고 해도 비슷한 시기와 유형의 소장품이 있다면 구매가 성사되는 게 쉽진 않거든요.
시끌시끌했던 여론에 간송미술문화 재단에서도 입장문을 게재했는데 그때도,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여전히 뒷맛은 쌉싸름합니다.
결과적으로 작품은 유찰되었고 옥션 홈페이지에서도 소장품 정보를 볼 수 없습니다. 판매가 불발된 데는 뭐 여러 설이 나오고 있지만 유찰된 소장품이라 바로 경매 출품되긴 어렵고 시간이 좀 지난 후에 다시 보게 될 수도 있겠죠. 어쩌면 메이저 경매 후에 애프터 세일이나 프라이빗 세일을 통해서 이미 판매가 되었을 수도 있지만 후속 기사가 없는 관계로 관계자가 아닌 이상 사실 확인이 어렵습니다.
현실과 이상은 참 다르죠.
간송미술관은 국보와 보물 등 지정문화재에 대한 정부 지원금을 받지 않고, 자체적으로 재정을 운영해왔다고 해요. 그러다 2018년도부터 올해까지 지정문화재 보수정비 비용으로 3억 2000만 원, 비지정문화재 보존 지원금으로 2억 500만 원을 받았다고 합니다. 문화재청은 수장고 신축에 44억 원을 서울시와 함께 지원하는 한편 지난해 말 보화각 건물을 근대문화재로 등록해 보화각의 원형 복원도 도울 예정이라고 합니다.(서울신문 5.22-23일 기사).
상업 문화가 아닌 영역에서의 수익창출은 너무 어려운 문제라 평생 지원에만 의존할 수도 없고, 그런 이유로 부가적인 사업이 따라가는 건 어쩔 수 없지만 원래의 의미를 잃지 않는 기반에서 적절한 균형을 찾을 수 있는 방법이 잘 마련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관람객들이 많이 찾아주는 것도 도움이 될 거고요 또 작게는 비영리 기관에서 판매하는 엽서나 가벼운 굿즈를 기념품으로 구매하는 것도 후원 방법이 되겠죠.
의미 있는 것들이, 의미 있는 곳에서, 그 의미를 알아주는 사람들로부터 잘 보살핌을 받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참 많이 드는 오늘이네요.
오늘도 행복하세요!
https://www.asterix.com/la-collection/les-albums-illustres/le-menhir-dor/
https://archive.org/details/asterix_201907/page/n1/mode/2up
http://www.kocca.kr/cop/bbs/view/B0000153/1256036.do?statisMenuNo=20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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