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어나 올라가 임동식>&<박래현, 삼중 통역자>

전시 이야기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 본관 <일어나 올라가 임동식>(2020.8.19 - 12.31)&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 <박래현, 삼중 통역자>(2020.9.24 - 2021.1.3)



언제 또 상황이 바뀔지 몰라 한동안은 한번 나갈 때마다 최대한 여러 전시를 쭉~돌아보곤 했는데...

또.. 2.. 단... 계...

해보셨는지 모르겠지만 하루에 2,3개 전시를 몰아 보는 건 정말 '일'입니다. 체력은 물론 집중력도 관건이고 비용과 시간을 투자하는 만큼 전시 구성이 성에 차지 않으면 의욕이 순간 확 떨어지거든요. 나름대로 기준을 세워 선별해서 본다고 해도 실패하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생각했던 것보다 좋은 전시 구성과 작품을 만나게 되면 바로 보상이 되죠, 그 하루의. 왜 사람도 그렇잖아요, 잘 안다고 생각했던 사람의 색다른 모습을 보게 되면 없던 호감도 생기고, 있던 호감은 배가 되고. 물론 최악의 경우 호감이 반감으로 변하는 경우도 있지만요 :)


오늘 소개드릴 전시는 근래에 본 전시 중 개인적인 만족도가 가장 높았던 두 작가의 개인전입니다. 둘 다 화업을 요약적으로 볼 수 있는 회고전인 데다 전시관 역시 5분 내외로 가까우니 함께 보길 권해드려요. 아시죠? 개인 방역 철저히! 그리고 사전예약~

<일어나 올라가 임동식> 전시 설치 사진 : 네버레스 홀리다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 본관의 <일어나 올라가 임동식> 전은 자연미술가라 불리며 자연(환경)을 기반으로 50년간 퍼포먼스, 회화 작업 등을 지속해온 임동식(1945-)의 작업을 조명합니다. 대중적인 인지도가 높은 작가는 아니지만 한국 현대미술사에 유의미한 작업들을 많이 남긴 동시대 예술인이니 이번 기회에 꼭~ 기억해두세요.


전시 제목인 <일어나 올라가>는 1981년 여름 공주 금강에서 임동식의 주도로 시작된 '야투(野投) : 야외 현장미술 연구회'에서 작가가 처음으로 선보인 두 퍼포먼스의 명칭을 합친 것입니다. 이번 전시에서는 사진자료와 회화 버전으로 <일어나>와 <올라가>를 만날 수 있죠. '야투'라는 연구회 이름은 '자유투 이외의 슛'을 뜻하는 농구 용어에서 차용했는데요 작가는 '야투'를 '들로 던진다' , '들에서 내게 던져져 온다'라는 중의적 의미로 차용했다고 합니다. 또 자신만의 스타일을 발견하기 위해 자연에서 분투했던 당시의 예술작업을 대변하는 키워드이기도 하고요.


총 300여 점의 회화·드로잉·사진 및 각종 아카이브 등을 선보이는 이번 전시는 개인전이자 2021년 1월 개관 예정인 '서울 시립 미술 아카이브(2021,12월 개관 예정)'의 사전 프로그램으로, 앞으로 서울 시립미술관의 분관이 되어 예술기록 자원의 수집·보존·연구를 수행할 서울시 문화본부와 협업하여 기획된 아카이빙 성격의 전시이기도 해요. 그래서 다른 전시들에 비해 더 많은 양의 기록 자료들을 전면에서 마주하게 되죠.

<일어나 올라가 임동식> 전시 출품작 사진: 네버레스 홀리다


전시는 1970년대부터 2000년대에 이르는 작업들을 ‘Ⅰ. 몸짓’ ‘Ⅱ. 몰입’ ‘Ⅲ. 마을’ ‘Ⅳ. 시상’ 4개 섹션으로 구분했는데요, 이 소주제들만 보아도 그가 택한 작업의 근간이 어디인지 가늠할 수 있죠.

첫 섹션인 '몸짓'에서는 야외 현장에서의 퍼포먼스를 통해 본격적으로 자연미술을 시작한 시기의 작업들을 다룹니다. '한국 청년미술작가회'(1974년 창단), '금강 현대 미술제' (1980년 개최), '야투'(1981년)의 활동 기록이기도 하죠. '몰입'에서는 함부르크 조형예술대학(유학 시절)(1981-1989)의 기록들과 작업을 보여주는데 이들은 다시 '음향 시각 놀이 sound -visual play, 환영 놀이 illusion play, 매체 놀이 medium, play'라는 구성으로 재분류되어 있죠. '실험 정신이 묻어나는 것들이 많다'라는 생각과 '어렸을 때 누구나 한 번쯤은 저런 행동을 해보지 않았을까?' 혹은 '하려고 하지 않았을까?' 하는 궁금증을 자아내는 흥미로운 작업들이 많아요. 아주 사소한 터치가 더해졌을 뿐인데 신박하게 다가오는 기록(작품)들이 많아서 '나중에 꼭 한번 해보고 싶다'라는 자극이 되기도 했죠. '마을'에서는 1993년부터 10여 년간 공주 원골에 터전을 잡고 마을의 자연환경과 사람들에 동화되어 교감하는 방식의 작업들을 선보이고 있습니다. 특히 이때는 마을 주민들과 함께 개최한 예술제인 '예술과 마을'을 통해 ' 농경이야말로 자연생명 예술의 원형'이라는 미학적 관점을 제시한 시기이기도 해요. 풍경 위주의 회화 작업들이 다수이고 관람자의 시선을 편안하게 하는 익숙한 자연들이 눈앞에 펼쳐져, 뭔가 이상향을 바라보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짙은 섹션입니다. '시상'은 자연을 바라보는 작가의 시선을 가장 잘 담고 있습니다. 그런 작가에게 도움을 주고 함께 성장해가는 친구의 영향도 녹아들어 있죠. 최근에는 동료들의 과거 작업들을 소환해 회화로 재탄생시키고 있는데 그런 일련의 작업들을 볼 수 있는 공간입니다. 작가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10여 분 남짓한 영상도 상영되고 있으니 전시를 보기 전에 먼저 보셔도 좋아요.


이 전시는, 첫눈에 확 끌리지는 않습니다, 저도 도입 부분에선 흥미를 느끼지 못했었거든요. 근데 뒤로 갈수록 매력이 터지고 좋은 필력으로 그린 작품을 보다 보니 어느새 오묘한 색채와 화재가 주는 편안함에 그냥 스르륵 스며들고 있더라고요. 그래서 한번 보고 다시 역순으로 한번 보고 전시장을 빠져나왔습니다, 그런 경우는 드문데 말이죠. 이 글을 쓰며 이미지를 다시 보니 퍼포먼스의 기록을 옮긴 화폭도 새롭고 다른 매체의 결과물 사이에서 느껴지는 오랜 시간의 간극도 새삼 크게 느껴져 여운이 더 깊어졌어요. 전시 영상을 보면 아시겠지만 가는 붓으로 대작을 그리는데 그 촘촘한 붓질을 하는 행위가 마치 수행자의 모습 같았고 작품들을 보고 나면 그림과 그가 참 많이 닮았다는 생각에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어 지더라고요 저는. 변하지 않고 묵묵히 지켜온 그가 가진 예술가로서의 신념에.


아래, 대전 MBC에서 제작한 다큐멘터리를 첨부했으니 시간 될 때 먼저 보시고요ㅡ 꼭 전시장을 찾아 원화를 감상해 주세요. 나뭇잎도 거의 다 떨어져 쓸쓸한 기분이 드는 요즘, 멀리 가지 않고도 푸르른 자연을 다시 눈에 가득 채우고 돌아오시게 될 테니까요.


<박래현, 삼중 통역자>전시 작품 사진:네버레스 홀리다


우리 미술사엔 저평가된 예술인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 많은 이유 중엔 ‘단지 여성’이라는 이유도 있었죠. 아직도 어느 부분에선 여전히 여성과 남성의 성 역할을 구시대적인 틀로 구분 짓기도 하지만, 적어도 지금은 우향雨鄕 박래현朴崍賢( 1920-1976)의 시대보다는 나아지긴 했죠. 개인적으로는 반가운 전시였는데 단독 회고전이 드물다 보니 대중적으로 자주 들어본 이름은 아닐 거예요.


<박래현, 삼중 통역자>전은 여성에게 요구된 역할을 수용하면서도 여성에 대한 사회적 제약을 극복하고 성공적인 예술가로 자리매김한 그의 예술세계를 보여줍니다. 회화·판화·태피스트리 등 총 135점의 작품을 35년 만에 공개하는 나름의 대규모 전시죠. 낯설면서도 호기심을 자아내는 '삼중 통역자'라는 제목은 박래현 스스로 자신을 일컬은 표현입니다. 미국 여행에서 그는 여행 가이드의 영어를 해석하여 다시 구화와 몸짓으로 청각 장애를 가진 남편 운보雲甫 김기창金基昶(1913-2001)에게 설명해 주었는데 여행에 동행한 수필가 모윤숙이 그 모습에 관심을 보이자 그 스스로 자신이 '삼중 통역자와 같다'라고 말했다고 하죠. 그때의 삼중 통역은 남편을 위한 영어·한국어·구어口語의 언어 통역이었지만 이번 전시에서의 '삼중 통역'은 회화·태피스트리·판화라는 세 가지 매체를 넘나들며 서로 연결 짓고 새로운 창작 방식을 모색했던 예술세계의 확장을 의미합니다.


"나의 하루는 24시간으로는 너무 모자라요."

확실히 그녀는 과로했다.

아내, 어머니, 예술가의 '삼중의 삶'은

그의 삼중 통역과 마찬가지로

너무 버거운 것이었다.


-모윤숙, 「한 이상적 여성상, 예술의 향기와 함께」, 『우향 박래현』(1978)



<박래현, 삼중 통역자>전시 작품 사진:네버레스 홀리다


전시는 1부 한국화의 ‘현대’, 2부 여성과 ‘생활’, 3부 세계여행과 ‘추상’, 4부 판화와 ‘기술’로 구성됩니다. 1부 '한국화의 현대'에서는 일본 유학에서 배운 일본화 대신 수묵과 담채로 현대적인 한국화를 만들어가는 과정을 소개합니다. 조선미전 총독상 수상작 <단장>, 대한 미협전 대통령상 수상작 <이른 아침>, 국전 대통령상 수상작 <노점>이 한자리에서 공개되는 하이라이트 섹션이죠. 2부 '여성과 생활'에서는 화가 김기창의 아내이자 네 자녀의 어머니로 살았던 그가 예술과 생활의 조화를 모색해간 과정을 보여줍니다. 『여원』, 『주간여성』등 1960-70년대를 풍미했던 여성지에 실린 수필들이 함께 전시되어 생활과 예술 사이에서 고민했던 순간들을 엿볼 수 있죠. 3부 '세계 여행과 추상’은 세계 여행에서의 이국 문화 체험을 통해 완성된 독자적인 추상화를 선보입니다. 1960년대 해외 박물관에서 고대 유물들을 그린 스케치북과 오브제들을 통해 그의 추상화가 어떻게 시작되고 발전되어 왔는지를 추측해볼 수 있죠. 4부 '판화와 기술'에서는 판화와 태피스트리라는 새로운 조형 방식을 습득하여 확장된 작품세계를 펼치려고 한 그의 마지막 흔적들을 추적해볼 수 있어요. 이국적이면서 이색적인 작업들이 다수라 한 명의 작가가 창작해 낸 작품이라고는 쉽게 믿어지지 않을 정도죠.



" 태양의 생활력을 등황藤黃으로,

살아 있는 인간의 생명을 고대주古代朱의 피로,

그러나 타산을 벗어날 수 없는 시대의 신중성을 흑黑 빛의 침묵으로,

3색의 하모니는 하나의 언어로 백지 위에 나를 대변해 주었다."


「반생半生에 서서 지금까지」(1967)



박래현이라는 이름은 늘 그의 남편이자 화가인 '김기창의 아내'로 대체되었는데, 사실 작품을 보면 누군가의 아내로 기억되기보다는 당당하게 전면에서는 게 너무도 당연할 만큼 좋은 작업들이 많은, 능력 있는 예술가입니다. 불행히도 길지 않은 삶을 살았고 그마저도 시대가 시대였던지라 크게 부각되지 못했죠, 그의 능력과 작품들이. 그래서 이제라도 이렇게 볼 수 있는 기회가 생긴 게 더 반가웠는지 모르겠어요. 그가 살았던 동시대의 다른 예술가들과 비교해봐도 독창적이고 실험적인 작품이고 그만의 '멋'과 도전이 묻어나는 작품들이니 적당한 때에 전시장을 찾아서 꼭 원화로 보셨으면 좋겠습니다.


보실 때, 두 전시관의 조명도 비교해보세요. 그 차이를 아시게 될 테니까요.




https://sema.seoul.go.kr/ex/exDetail?currentPage=1&glolangType=KOR&exGr=&museumCd=&targetDate=20201122&searchDateType=CURR&exSearchPlace=&exNo=461340&searchPlace=&kwd=EXF01&kwdValue=

https://www.youtube.com/watch?v=lPtI1v8hHfc

https://youtu.be/5iWTVHROqiE

http://www.mmca.go.kr/exhibitions/exhibitionsDetail.do?exhId=202001090001228

https://youtu.be/UVJIyiz0R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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