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 이야기
·겨울··다시 날다 <세한도歲寒圖>···<해학반도도 海鶴蟠桃圖>
소복이 눈 내린 맑은 겨울날입니다.
12월 초중반쯤이었나? 그때도 눈이 내렸죠. 산 어귀 동네에 살다 보니 도심보단 눈이 좀 느리게 녹아요. 오래간만에 내린 눈이 반가웠던지 여기저기 눈사람이 여럿 출현했는데, 혼자서 툭툭 만들어 놓은 자그마한 눈사람들은 며칠 버티지 못하고 이내 사라졌지만 오늘 소복 덮인 눈을 보니 문득 그 모습들이 생각났어요. 어떤 이는 도로 벽 가까이, 어떤 이는 공원 벤치에, 어떤 이는 담장 위에, 어떤 이는 나뭇가지에 놓아뒀는데, 보는 순간 만든 이의 동심과 낭만이 전해져 제 얼굴에도 싸악 미소가 번졌었거든요.
확 기분 전환될 만큼 파급력 있는 희소식은 없지만 그래도 이 쌀쌀하고 매서운 계절에 좋은 의미로 마음에 온기를 더해줄 그림 두 점 소개드립니다. 예전엔 '의지·시간·돈'이 갖춰지면 어지간한 건 무엇이든 가능했는데 지금은 그럴 수없으니, 여러 상황 탓에 실물을 보긴 어렵겠지만 그래도 먼저 눈에 담아두세요~
'한국 미술의 명작'으로 각자 손꼽는 작품이 있죠? 그 대상이 국보나 보물일 수도 있고 특정 타이틀이 없는 무명 씨의 작품일 수도 있겠죠. 오늘 소개할 국보 180호 <세한도 歲寒圖>는 보면 볼수록, 의미를 새기면 새길수록 깊이가 더해지는 한국 미술 '명작'입니다. 제가 이 작품을 처음 본 건 학생 때로 그땐 그렇게 와 닿지 않았던 그림입니다. 워낙 여러 정보가 뒤죽박죽으로 머릿속을 휘젓고 다닐 때라 곰곰이 생각하면서 그림을 볼 여유가 없었고, 특히 수묵담채 문인화는 '서화동원'이니 '문자향 서권기'니 '흉죽성죽'이니 하는 전제들에 눌려 그냥 마냥 더 어렵게 느껴지더라고요 그림 읽기가, 사실 그럴 일도 아니었는데. 지금은 시간도 어느 정도 지났고 나름의 안목도 쌓여 확실히 이전과는 다른 느낌으로 이 작품을 대합니다. 매해 겨울이나 잎새가 다 떨어진 나무들을 마주할 때면 종종 이 작품이 떠오르기도 한다니까요.
<세한도>(1844)는 추사 秋史 김정희 金正喜(1786-1856)가 제주 유배 시기(1840-1848)에 그린 그림입니다. 권세 높은 명문가문에서 태어나 조선왕조실록에 여러 번 등장할 정도로 높은 관직을 지낸 명망 있는 학자이자 서법가(예술가)였던 그는, 헌종(1827-1849, 재위 1834-1849) 대 '윤상도 옥사'에 연루되어 원악도 遠惡島(현, 제주도) 대정현大靜縣에 위리안치圍籬安置되는 중벌을 받게 되죠. 당쟁의 희생양으로 절해고도에 갇혀 목숨만 부지하며 살던 그에게, 그래도 고난과 고독의 시간을 함께 버텨 준 좋은 지기들이 있었고 그들로 인해 이 <세한도>가 세상에 나오게 됩니다.
(왼) <세한도>주문방인 출처: 국립중앙박물관 <세한도> 소개 유튜브 (오) 인물관계도 출처: 국립중앙박물관 전시 소개 https://www.museum.go.kr/site/main/exhiSpecialTheme/view/specialGallery?exhiSpThemId=565928&listType=gallery,
<세한도> 발문에도 적혀있듯, 이 그림은 인생의 큰 부침을 겪고 있는 스승을 변함없는 마음으로 섬기고 의리를 지킨 제자 우선藕船 이상적李尙迪(1804-1865)에게 선물하기 위해 추사가 직접 그렸어요. 이상적은 당대 최고의 (통)역관으로, 그의 문집 『은송당집 恩誦堂集』은 청나라 유명 서점 거리인 유리창琉璃厂에서도 구할 수 있었을 만큼 글과 글씨에도 뛰어났죠. 그는 청나라를 오가며 외교 분야에 탄탄한 인적 네트워크를 형성하는 한편 서화·묵적·금석 등과 관련한 현지 문화 인사들과도 돈독한 관계를 유지했고, 스승 김정희에겐 현지에서도 구하기 어려운 책을 지속적으로 보내 주고 북학北學 소식도 전해준 살가운 제자였죠.
'지난해에 계복(桂馥)의 『만학집晩學集』(1841)과 운경(惲敬)의 『대운산방문고大雲山房文庫』(1811)
두 가지 책을 보내주더니, 올해 또 하장령(賀長齡)의 『황조경세문편 皇朝經世文編』(1827)을 보내주었네. 이 책들은 모두 세상에 늘 있는 것이 아니라서, 천만 리 먼 곳에서 사 오고 여러 해에 걸쳐 얻은 것으로서, 일시에 가능했던 일도 아니었을 것일세.' - (『추사와 그의 시대』,돌베개(2002), 212p 재인용)
'책 좀 보내준 게 대수인가?'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당시 그가 보낸 책은 우리가 생각하는 단행본의 개념이 아닌 책 한 질 수량이 백여 권에서 천여 권에 달했을 뿐만 아니라, 나랏일을 보는 현직에 있던 그가 중죄인의 신분으로 절해고도에서 귀양살이를 하고 있는 스승에게 귀한 책을 지속적으로 보내줬다는 건 자신이 공공의 적이 되더라도 감내를 하겠다는 마음이 깃든 것이니, 고맙지 않을 수가 없죠. 게다가 현지에서도 구하기 어려웠던 책들임을 감안하면 들어간 비용과 그 수고로움은 상당했을 텐데, 대가 없이 행한 제자의 마음이 분명 고맙고 미안하고 감격스러웠을 겁니다. 그래서 추사는 자신이 구할 수 있는 최선의 재료로 정성을 다해 그 마음에 대한 답례를 준비하죠, 그게 바로 <세한도>입니다.
김정희 <세한도> 이미지 및 발문 해석 출처:국립중앙박물관 https://www.museum.go.kr/site/main/exhiSpecialTheme/view/specialGallery?exhiSpThemId=570115
전해지는 추사의 그림은 많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추사'하면 대다수가 <세한도>보다는 제주 유배 시기에 완성된 그의 서체인 '추사체'를 먼저 떠올릴 거예요. 그의 글씨는 이미 널리 정평이 나 있었으니까요. <세한도>는 학문과 교양을 갖춘 문인들의 그림인 문인화文人画입니다. 직업 화가의 그림처럼 직접적이고 극사실적인 묘사보다는 가슴속에 품은 뜻이나 어떤 대상의 본질을 수묵과 담채를 사용해 화폭에 담은 회화 장르죠. 대개 화면은 복잡하지 않고 소략하게 표현한 그림에 제발을 달아 제작 목적이나 내용 등을 함께 적어두는 형식을 취했는데, 선비들의 절개·의리 등을 의미하는 사군자나 세한삼우 등이 자주 등장한 소재였어요.
<세한도>는 그 발문에서 보듯 『논어論語』의 "세한연후歲寒然後 지송백지후조知松柏之後凋 한겨울 추운 날씨가 된 다음에야 소나무와 잣나무가 시들지 않음을 알게 된다."라는 구절을 주제로 삼았죠. 추운 겨울의 소나무·잣나무를 그려 어떤 역경 속에서도 자신을 향한 의리를 지키는 마음을 표현했고, 거칠고 마른 붓질과 진한 먹으로 자신의 처지와 심경 그리고 상황의 퍽퍽함을 묘사했어요. 그림 속 집은 추사가 위리안치된 공간처럼 출입구 외엔 모든 벽이 막혀있지만, 집 주위를 굳건히 버티고 서있는 네 그루의 나무들이 마치 그를 버티게 해 준 지인들로 의인화되어, 비록 현실은 고되고 막막하지만 마냥 쓸쓸하게만 느껴지진 않는 작품입니다. 스승으로부터 그림을 선물을 받은 이상적은 기뻐하며 이듬해 청나라 문인 16인에게 선보였고, 그들로부터 이 작품에 대한 찬사의 글을 받아 옵니다. 사후에 소장자가 수차례 바뀌고 오세창, 이시영 등 한국인 4인의 감상글도 더해져 <세한도>는 전체 33.5 ×1,469.5cm의 정말 긴 두루마리가 되었죠. 그림과 글씨를 합한 길이가 20m에 달하는 <몽유도원도>보다는 짧지만요.
<세한도> 기증자 손창근 옹과 그 가족사진 출처: 조선일보 https://www.chosun.com/politics/blue_house/2020/12/09/JLU5G6CIVZCFBPIT4NOBWG3C2I/
유홍준의 저서 『안목』(2017, 눌와)에 따르면 이상적이 죽은 뒤 그의 제자였던 김병선이 <세한도>를 소장했고, 그의 아들 김준학을 거처 휘문고등학교 설립자인 민영휘의 소유가 되었다가 그의 아들 민규식이 [경성 민 씨 소장품 경매전]에 매물로 내놓은 것을 후지츠카 치카시(대학교수·추사 연구자, 1879-1948)가 낙찰받아 소유하게 됩니다. 태평양 전쟁이 한창이던 1943년 여름, 서예가이자 당대의 서화 수집가로 추사 마니아였던 소전 손재형(1902-1981)은 후지츠카가 <세한도>를 가지고 귀국하게 될 것을 염려하여 '원하는 대로 주겠으니 양도해달라'라고 부탁했지만, 그 역시 '평생 추사를 존경하여 고이 간직하고 있겠다'라는 말로 제안을 거절합니다. 1944년 여름, 전쟁이 막바지에 이르자 모든 세간을 챙겨 후지츠카가 도쿄로 돌아갔다는 소식을 들은 소전은, 부산으로 내려가 관부 연락선을 타고 일본 도쿄에 있는 그의 집을 찾아갔고, 매일 아침 문안인사를 드리며 부탁과 거절이 반복되는 상황이 두 달간 지속되었죠. 후지츠카가 아들에게 '자신이 죽고 나면 주겠다'라는 생전 유언을 남겼음에도 물러서지 않고 기다려 결국 소전은 <세한도>를 서울로 가지고 옵니다.
귀국 후에도 조용히 보관하고 있다가 1949년 정부 수립 이듬해, 위창 오세창과 당시 부통령으로 서예에 조예가 깊었던 이시영에게 보여주고 축하 발문을 받았죠. 훗날 소전은 정계에 진출하여 6대 민의원과 8대 국회의원을 역임했고, 이때 정치 자금 마련을 위해 수장품 중 겸재 정선의 <인왕제색도>와 <금강전도>를 삼성물산 이병철 사장에게, <세한도>를 이근태에게 저당 잡히고 돈을 빌려 썼다 갚지 못해 소유권을 잃었다고 합니다. <세한도>는 결국 미술품 소장가인 손세기에게 넘어갔고 그 아들 손창근의 소유로 2005년도부터 국립중앙박물관에 기탁됩니다.
손창근 님은 개성의 이름난 인삼 무역 실업가인 선친 손세기 선생의 대를 이어 수집한 국보·보물급 문화재 202건 304점을 2018년 11월에, 2020년 국보 180호인 <세한도>를 국립중앙박물관에 영구 기증합니다. 대가 없이 305점의 문화재를 기증한 공로에 감사하는 뜻으로 국가에선 문화훈장 중 최고 영예인 '금관문화훈장'을 수여했고, 당시 청와대로 초청된 손창근 님을 마중 나간 문재인 대통령은 그를 향해 90도로 숙여 고마움과 예를 표했죠. 문화재청에 따르면 2004년 시작된 '문화유산 보호 유공자 포상' 이래, 서훈자 중 문화유산 수집가는 현재까지 간송 전형필과 손창근 님 두 분인데, 간송의 소장품이 비용 마련을 위해 2020년 상반기 미술시장에 출품된 것과는 대조적이라 이 소식이 더 기억에 남긴 합니다. 앞으론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모두 만날 수 있으니 이러한 사연도 유물을 볼 때 함께 떠올랐으면 좋겠네요. (간송 유물에 대한 이야기는 제 이전 글에서 읽어보세요~)
현재 <세한도>의 의미를 되새겨볼 수 있는 전시가 진행 중인데, 아직은 참관이 불가합니다. 혹시 기회가 된다면 꼭 보세요, 전체 약 1500cm의 두루마리를 쫙 펼쳐 놓는 건 아주 드문 일이거든요.
참고로, 후지츠카가 모은 15000여 점의 추사 관련 자료는 그의 아들 아키나오(1912-2006)를 통해 과천 추사박물관에 기증됐습니다. 추사박물관 설립에 지대한 공헌을 한 자료들이죠. 국적은 다르지만 아끼는 마음으로 수집하고 소장했을 테니 어떤 것들이 있는지 나중에 기회가 될 때 꼭 방문해보세요.
두 번째 그림은 고궁박물관에서 특별 공개 중인 국외 소재 한국문화재 <해학반도도 海鶴蟠桃圖 Sea, Cranes and Peaches (Haehakbandodo)>입니다. <해학반도도>는 문화재청과 국외소재 문화재재단에서 진행하는 '국외 문화재 소장기관 보존 복원 및 활용 지원 사업'의 일환으로 국내에 들여와 보존처리를 마쳤고, 다시 국외 소장처인 미국 오하이오 주 데이턴 미술관 Dayton Art Institute으로 돌아가기 전 잠시 동안 선보이고 있습니다. 거리 두기 상향으로 모든 국공립박물관 미술관이 임시 휴관 중이라 실물은 못 보고 보내야 해요 ㅠㅠ. 장수를 상징하는 해海, 학鶴, 3천 년 만에 한 번씩 열매가 열린다는 신선들의 복숭아인 반도蟠桃가 주된 소재로 등장하는 12폭 병풍 <해학반도도>는 조선 말기 궁중에서 크게 유행한 주제로 왕세자의 혼례를 비롯한 다양한 행사에 사용되며 여러 점 만들어졌다고 하죠. 그중에서도 데이턴미술관 소장 <해학반도도>는 244.5 ×780cm (그림 210 ×720.5cm)의 크기로, 전해지는 조선시대 <해학반도도> 중 가장 클 뿐만 아니라 비단 위에 금박으로 바탕을 처리한 보기 드문 사례입니다.
보존 처리 전 <해학반도도> 이미지 출처: 국립고궁박물관 유튜브 [보존 복원 심포지엄 6] https://youtu.be/07 Y6 APCcxOg
1919년 지역사회의 다양한 후원을 받아 미술학교로 출발한 데이턴미술관은 전체 26,000여 점의 유물 중 약 70여 점의 한국 유물을 소장하고 있습니다. 이 그림은 미국인 사업가 찰스 굿리치가 자신의 서재를 꾸미기 위해 1920년대 후반 구입한 것으로, 사후 이를 상속받은 조카가 1941년 데이턴미술관에 기증하죠. 어느 나라에서 샀는지도 작품에 대한 정보도 부족하다 보니 처음엔 외관상의 특징이 유사한 일본 작품으로, 이후에는 중국 작품으로 분류되었다고 합니다. 중국 작품으로 도록에 소개된 사진을 보고 2017년 이토 미사토(일본 교토 공예 섬유대학 강사)가 '한국 병풍으로 보인다'라며 친구인 김수진(성균관대학교 초빙교수)에게 이 작품의 공동 조사를 제안했고, 이를 계기로 데이터미술관 소장 <해학반도도>의 존재가 우리나라에 알려졌어요.
복원 후 <해학반도도> 이미지 출처: 국립고궁박물관 홈페이지 조선(朝鮮), 19세기 말-20세기 초,
비단에 채색, 금박, 병풍: 244.5 ×780cm | 그림: 210 ×720.5cm, 데이턴미술관 소장
굿리치는 구매 후 그림을 집안에 맞게 재장정했고 그 과정에서 당시 회화의 양 끝을 비롯해 곳곳이 잘려나갑니다. 장정 역시 6폭 판의 일본 형식으로 바뀌었고요. 그 상태로 기증된 작품은 이후에도 관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손상이 심했는데, 다행히 두 연구자에 의해 국내에 알려져 2019년 7월부터 2020년 11월까지 문화재청과 한국조폐공사의 후원을 받아 진행된 복원 수리 과정을 통해 제 모습을 찾게 되었죠.
어쨌거나 아쉽습니다. 그래도 아직 새해인데, 벽 한 면을 가득 채운 십장생의 상서로운 기운을 받으며 실견했으면 참 좋았을 텐데 말이죠.
현재의 <해학반도도>와 함께 언급되는 비슷한 사례가 있는데요, 바로 미국 호놀룰루미술관 소장 <해학반도도> 입니다. 조선의 병풍 그림으론 발견 당시 금박으로 바탕을 처리한 유일한 예였죠. 국립문화재연구소는 2005년부터 정책적으로 해외 주요 박물관 소장 한국문화재 보존처리 비용을 지원했고, 2006년 11월 국립문화재연구소장과 이 프로젝트에 선정된 당시 호놀룰루 아카데미 미술관장(스티븐 리틀 : Stephen L. Littl) 간 보존처리 지원 협약서가 체결되면서 복원이 이뤄졌어요.
<Cranes and Peaches (Haehakbandodo)>, Honolulu Museum of Art( Gift of Anna Rice Cooke, 1927). 병풍 240.8 ×59.3cm, 그림 227.7 ×59.3cm(1번, 12번 그림 227.7 ×54.1) 이미지 출처: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27Cranes_and_Peaches%27,_(Haehakbandodo),_Choson_dynasty,_1842_or_1902._Pair_of_six-fold_screens,_ink,_color_and_gold_on_silk,_Honolulu_Academy_of_Arts.jpg
2005년, 처음으로 이 작품을 조사한 전문가들은 이 <해학반도도>가 18-19세기 조선 유물이라는 데에 동의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일본에서 금 병풍을 유독 크게 만든 것은 아닐까 의심했다고 합니다. 전반에 금박을 부착한 기법이 일본에서는 흔하지만 조선에선 아주 이례적이었기 때문이죠. 그러다 2006년, 이 작품을 국내에서 보존 처리하는 과정에서 화면 오른쪽 암석에 숨겨진 여덟 글자를 발견했고 이로써 국적 논쟁이 마무리되었어요. 색은 바랬으나 금분으로 쓴 ‘군선공수임인하제’(僊拱壽壬寅夏題)라는 제발은 조선식 표기로, '임인년(1842 혹은 1902) 여름에 여러 신선이 장수를 기원하며 올린다'는 의미를 담고 있었거든요. 관련 기사에 따르면 임인년 가운데 이러한 유물을 조성할 만한 해는 1902년이었고, 이 해는 고종(1852~1919)이 51세가 돼 기로소에 입소했을 뿐 아니라 즉위 40주년을 맞아 여러 차례 기념행사가 열렸다고 해요. 특히 고종의 생일인 음력 7월 25일은 황수성절이라는 국경일로 제정돼 외신을 초청한 성대한 잔치가 열렸기에, 이 그림을 고종의 장수기원은 물론 대한제국의 번영을 나타내는 그림으로 해석하는 견해가 대다수죠. 높이 2.7m에 넓이 약 7m로 보기 드문 크기의 병풍이다 보니, 한편으론 '이 거대한 병풍을 궁궐 어디에 놓았을까'에 대한 궁금증도 증폭되었어요. 실제로 경운궁(현 덕수궁) 내 어떤 전통 건축에도 높이 3m에 달하는 병풍을 놓기란 쉽지 않았기에 서양식 궁궐 건축에 놓지 않았을까.. 하는 추측도 있습니다.
알려진 바로는, 1922년 애나 라이스 쿡(Anna Rice Cooke, 1853~1934)이 설립한 Honolulu Academy of Arts (현 호놀룰루 미술관 Honolulu Museum of Art(2011-))는 1927년 야마나카 상회(Yamanaka & Company)를 통해 <해학반도도>를 구입합니다. 야마나카 상회는 오사카에서 시작해 19세기 말 미국에 진출한 일본의 대표적인 골동상으로, 당시 식민지 조선에서 광산, 금융, 학원 사업으로 돈을 번 토미타 기사쿠(1859~1930)가 1922년부터 조선 왕실 미술품 여러 점을 구입해 야마나카 상회에 유통했고, <해학반도도> 역시 야마나카 상회에 판매한 것으로 전하고 있어요. 그렇게 1926년 조선을 떠나 미국 땅에 도착한 <해학반도도>가 지난 2006년 국립문화재연구소의 지원을 받아 80년 만에 고국에 돌아와 보존처리를 거쳤고 이후 서울과 하와이에서 몇 차례 전시를 통해 대중에게 공개되면서 유물에 얽힌 역사와 의미가 새롭게 조명받게 되었죠. 애나 라이스 쿡 여사는 동양미술 분야의 스웨덴 출신 석학 오스왈드 시렌(Osvald Siren) 등 국제적으로 인정받은 전문가들의 조언과 야마나카(Yamanaka), 노무라 요조(Nomura Yozo) 등 동양미술 분야에서 최고 수준의 딜러들과 가까운 관계를 유지하며 우수한 동양 미술품을 수집하였고 1927년 박물관이 개관할 당시 한국 미술품도 전시했다고 합니다. 당시 소장하던 유럽, 미국, 아시아 미술품 약 50,000여 점(2006년 기준) 중 한국 유물이 1,100여 점으로, 국제교류재단의 지원으로 2001년에 한국실이 재개관되었다는데 홈페이지에서는 관련 언급이 없어 현재도 같은 구성인지 모르겠네요.
언제 실물을 볼 진 아직 요원하지만, 국립중앙박물관과 국외소재 문화재재단 유튜브에 관련 정보들이 영상으로 올라와 있어 아쉬움을 달랠 수 있습니다. 알찬 내용이라 적은 시간을 투자해도 많은 내용을 얻어 갈 수 있죠. 특히 <해학반도도>는 큰별쌤 최태성 선생님의 소개도 있어 반갑더라고요, 예전에 한국사를 최태성 선생님의 EBS 강연으로 공부했거든요. 무엇을 보셔도 잘 봤다 싶을 테니 제 글을 읽고 난 후에 시간 되는 대로 틈틈이 봐 두세요. 생각날 때 봐야지 '나중'은 없더라고요. KBS <역사스페셜>에서 2011년도에 방송된 <세한도> 관련 영상도 유튜브에 있으니 함께 찾아보세요.
그럼 , 감기 조심하세요 모두들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요~
https://www.museum.go.kr/site/main/exhiSpecialTheme/view/specialGallery?exhiSpThemId=570115
https://www.youtube.com/watch?v=U_pI2yYtRdE
https://www.edaily.co.kr/news/read?newsId=01403846625969328&mediaCodeNo=257&OutLnkChk=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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