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DNA:한국미술 어제와 오늘》 MMCA 덕수궁관

전시 이야기

《 DNA:한국미술 어제와 오늘》 MMCA 덕수궁관 (2021.07.08~10.10)



온라인 홍보에 많이 쓰이는 '어머, 이건 사야 해' 란 문구, 자주 보셨죠?

그 말을 빌려 써 봅니다. '어머 이건 꼭 봐야 해!!'.

이 전시는 꼭 보셔야 합니다, 적어도 제 글을 읽으셨다면요.(현재는 코로나 상황이 엄중하니 기억해두셨다가 상황이 나아지면 보세요~) 원래는 앞서 올렸던 이건희 컬렉션과 같이 소개하려 했는데 쓰다 보니 앞글이 너무 길어졌어요. 어차피 다른 전시관이기도 하고 전시 기간도 다르니 보기 편하게 나눠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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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 《 DNA : 한국미술 어제와 오늘》 포스터 (우) 덕수궁미술관©국립현대미술관, 네버레스 홀리다


요 몇 년 사이 국립현대미술관에서는 명작들을 시대순으로 톺아보는 전시가 많았습니다. 개관 50주년 <광장>이, 현재 과천관에서 진행 중인 <시대를 보는 눈>이, 종료된 <미술이 문학을 만났을 때>도 그런 성격이 강했죠. 카테고리 분류는 달랐지만요. 그래서 '이번 전시도 비슷하지 않을까...', '봤던 것들 반복이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기우였어요.


《 DNA : 한국미술 어제와 오늘》은 예술가 97명의 토기、도자、불상、한국화、유화、사진、공예、서예、조각、미디어 장르의 근현대 작품 130여 점, 자료 80여 점 그리고 문화재 35점(국보·보물 포함) 이 어우러진 전시입니다. 보도자료를 통해 "《 DNA: 한국미술 어제와 오늘》은 ‘한국의 미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서 시작하여 박물관의 문화재와 미술관의 미술작품을 서로 마주하고 대응시킴으로써, 시공을 초월한 한국 미의 DNA를 찾고자 하였다. 특히 근대의 미학자인 고유섭, 최순우, 김용준 등의 한국미론을 통해 한국 대표 문화재 10점을 선정하고, 전통이 한국 근현대 미술에 미친 영향과 의미는 무엇인지 바라보고자 하였다. "라고 기획의도를 밝힌 전시로, 올 1월부터 현재까지 제가 본 유·무료 전시가 53개 정도인데, 통틀어서 좋은 전시 상위 5위 안에 듭니다. 제 취향을 기준으로요.


제가 생각하는 이 전시의 장점은, 우선 시대를 아우른 진짜 명작이 많다는 겁니다. 근현대 작품에 그치지 않고 고구려 고분 벽화로부터 거슬러 내려오며, 장르 구분 없이 다양한 시대의 명작들을 모두 모아놨어요. 단순히 '놓은'것이 아니라 그들이 가장 잘 보일 수 있도록 '전시' 했죠. 그래서 큰 공간 안에 작은 공간이 여럿 생겨나고 여러 매체의 작품들로 공간이 들쑥날쑥하지만 서로 다른 물성과 표현 기법을 가진 작품들이 상충되지 않고 각자의 자리에서 자신을 잘 드러내고 있습니다. 게다가 미술관 소장품 위주가 아닌, '유물'을 '미술'로 바라볼 기회를 준 문화재、개인 소장 및 신작들도 다수라 보는 즐거움이 상당합니다.


전시는 동아시아 미학의 핵심이자 근현대 미술가들의 전통 인식에 이정표 역할을 해온 네 가지 키워드, ‘성(聖, Sacred and Ideal)’, ‘아(雅, Elegant and Simple)’, ‘ 속(俗, Decorative and Worldly)’, ‘화(和, Dynamic and Hybrid)’ 4부 구성입니다. ‘성, 성스럽고 숭고하다(聖, Sacred and Ideal)’에서는 삼국 시대부터 고려 시대까지의 이상주의적 미감이 근대 이후 우리 미술에 어떠한 영향을 주고 어떤 형태로 발현되었는지를, ‘아, 맑고 바르며 우아하다(雅, Elegant and Simple)’에서는 해방 이후 화가들이 서구 모더니즘에 대한 반향으로 한국적 모더니즘을 추구하고 국제 미술계와 교류하며 한국미술의 정체성 찾기에 고군분투했던 모습을 보여줍니다. ‘ 속, 대중적이고 통속적이다(俗, Decorative and Worldly)’에서는 서양미술과 조선 및 근현대 주류 미술에 대한 반작용으로 표현주의적이고 강렬한 미감이 추구되던 장식미를, ‘화, 조화로움으로 통일에 이르다 Dynamic and Hybrid(和, Dynamic and Hybrid)’에서는 포스트모더니즘을 추구하며 다양한 가치와 미감이 공존하고 역동적으로 변모하던 1990년대 이후 한국미에 대한 인식의 변화를 보여주죠. 예술가들의 이름만 모아놔도 한국미술사가 뚝딱 만들어질 정도라니까요.


소개하고 싶은 작품은 많지만 워낙 작품 수가 많아서 이번에도 작품 몇 점만 선별해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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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노수, <수렵도>, 1961, 종이에 채색, 217x191cm, 서울시립미술관 소장© 네버레스 홀리다


첫 작품은 박노수(1927-2013)의 <수렵도>입니다. 1부 '성聖' 전시실 입구 가까이에, 고구려 고분벽화가 정면으로 보이는 전시실 왼편 벽에 걸려있죠. 문화재가 유독 많이 있는 전시실인데, 우리에겐 유물이지만 당대엔 '미술'이었던 그들을 한자리에 모아놓음으로써 시대를 초월한 예술성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고구려 고분벽화 외에도 석굴암에 투영된 부처 등 종교적인 색채를 띤 작품들도 어우러져 예술을 바라보는 여러 대상들의 시선을 볼 수 있고, '지극히 높은 경지에 다다른 작품'을 '성聖'으로 지칭한 당나라 서예가 두몽의 철학을 빌려 예술의 지극한 경지에 오른 작품들도 함께 전시하고 있습니다. 정말 화려한 축제의 서막인 셈이죠, 고려청자、금동여래입상、일월오봉도、이건주、김환기、이중섭、권진규、한석홍 등의 쟁쟁한 작품들이 함께 있으니까요.


그렇게 많은 작품 중에서 첫눈에 들어온 작품입니다. 원시적인 느낌도 좋았지만, 그날 굉장히 더웠는데 이 작품을 보는 순간 시원해졌거든요. 제 이전 글에서도 박노수 화백을 설명한 적이 있지만, 이 작품은 우리에게 익숙한 박노수 스타일이 아니어서 좋았고 도상도 재밌고 전통적이면서도 이국적이라 색다르더라고요. 크기도 시원시원 표현도 시원시원해서 화면 속 인물도 되어보았다가, 쫓기는 생물도 되어보며 각각의 표정을 읽는 재미도 큽니다. 이 도상들을 빌려 애니메이션이나 그림자 인형극을 만들어도 너무 좋았겠단 생각도 들었고요.


작품 설명이 구체적이라 그대로 옮깁니다.

"해방 이후에는 고구려 고분벽화의 모티프나 벽화 제작 방법을 활용한 동양화 작가들이 등장했는데, 박노수의 <수렵도>에서는 모티프의 수용을 우선시한 모습으로 고분벽화에 표현된 수렵도를 연상시킨다. 특히 달리는 말위에서 상체를 뒤로 돌려 활을 쏘는 파르티안 사법射法은 무용총과 덕흥리 고분의 수렵 장면에 등장하는 사냥 방법이다. 인물들이 말을 타고 사냥하는 순간을 포착하기 위해 아이보리 블랙 물감과 먹을 섞어 오로지 흑백의 대조만으로 사람과 사물을 부각하는 목판화의 효과를 도입했다. 이 작품은 “고구려 분벽에서 보는 듯한 수렵도를 초묵 일색焦墨一色으로 옮긴 듯하다"라는 평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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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환기, 이중섭의 작품과 함께 전시된 고려청자, 분청사기 © 네버레스 홀리다


위 작품들 역시 1부 전시실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전시를 좀 보러 다닌 분들이라면 김환기의 작품과 백자 항아리가 함께 있는 디스플레이를 보셨을 겁니다. 우리 미술가들 중에는 고려청자、분청사기、달 항아리 등을 직접 화폭에 담거나 그 모습과 닮거나 영향받은 요소들을 도상화한 미술가들이 많은데, 대표적인 작가가 김환기、이중섭、도상봉입니다. 그래서 그들의 작품은 시대가 다른 조선백자나 분청사기、청자들과 함께 있어도 어색하지 않고 잘 어울리죠. 따로 설명을 안 드려도 보면 바로 알게 됩니다. 보통 청자는 자주 등장하지 않는데, 이번 전시에서는 이중섭 속 도상과 <청자상감 포도 동자문 주전자>(고려)와 <분청사기 철화 물고기 무늬 병>(15세기 후반-16세기 전반)를 비교해 볼 수 있도록 구성되었죠. 또 김환기의 점화와의 연관성을 살펴볼 수 있는 <분청사기 인화문 자라 병>(15세기)도 있어 금상첨화입니다. 시대를 뛰어넘는 콜라보로 이런 크로스오버는 언제든 찬성입니다. 사진이 원하는 위치로 딱딱 들어가면 좋으련만 가운데 작품 빼고 위아래로는 사진이 제자리를 찾지 못하네요. 어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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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희 컬렉션 출품작 4점 © 네버레스 홀리다


이건희 컬렉션도 4점 있는데, 한데 모여있지 않아 각 전시장마다 레이블을 잘 읽어보셔야 합니다. 이 작품만 보기 위해 오시는 분들도 계신 것 같은데, 안내원분들께 문의해도 위치를 가르쳐 드리는 게 수월하지 않습니다. 구조가 그래요. 그래서 혹시 제 글을 읽는 분들 중 궁금해하는 분들이 계실지 몰라 이미지로 알려드립니다. 작품을 차근차근 감상하다 보면 만나게 되실 거예요. 이 작품들을. 이중섭의 은지화 작품은 크기가 작으니, 꼼꼼하게 보셔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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겸재 정선, <박연폭朴淵瀑>, 조선 18세기, 종이에 수묵, 119.5×52cm, 개인 소장© 네버레스 홀리다


2부 전시실에도 명작은 넘쳐납니다. 겸재 정선의 <박연폭>은 명화 중의 명화죠. 이 작품은 한국 회화사에 단골로 등장하는 그림인 데다 잊을만하면 여기저기서 소환되어 주기적으로 여러 번 봤어요. 볼 때마다 맛이 다른, 참 모던한 작품입니다. 두드러진 직선의 물줄기가 힘차게 부서지는 폭포 소리까지 형상화한 그림이랄까? 마치 제가 그 화폭 속 인물들이 되어 물보라를 맞고 있는 듯하다니까요. 조선 후기를 풍미한 진경산수화眞景山水畵는 20세기 회화에서도 끊임없는 창작의 원천으로 작용하며 수많은 화가들에게 영향을 끼쳤죠. 정선의 <금강산도 金剛山圖>(조선 17세기, 비단에 수묵담채, 28 ×34cm, 고려대학교 박물관 소장)도 전시 중인데, 보다 보면 자꾸 국립중앙박물관 이건희 컬렉션에 걸린 <인왕제색도>도 보고 싶어 진다니까요. 근데 예약에 성공할 자신은 없으니 내년 4월에 열릴 대규모 특별전을 기다려보려고요.


박연폭포는 개성시 박연리 천마산에 있는 폭포로, 근처의 가을 단풍이 아름다워 송도삼절(松都三絕)의 하나로 꼽힙니다. 또 금강산의 구룡 폭포, 설악산의 대승 폭포와 함께 한국의 3대 명 폭포 가운데 하나래요. 가볼 기회가 있을지 모르겠네요 살아있는 동안. 정선의 작품 속 등장하는 나무들은 세로선과 가로선으로 간략하게 표현됩니다. 처음 정선의 그림을 봤을 땐, '너무 단순화시킨 거 아냐?'라고 생각했는데, 산에 올라 맞은편 능선을 따라 심어진 소나무를 보니, 실루엣이 딱 그렇더라고요. 그래서 요즘은 산에 오를 때마다 정선의 시선으로 보려고도 해요, 아주 가끔이긴 하지만. <인왕제색도>의 풍경도, 청와대 분수 광장 앞에서 보면 완전 제대로 보이거든요? 나중에 설명드릴 기회가 있을 때 실경과 그림을 같이 보여드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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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상) 이만익, <안녕>, 1989, 45x65.4cm, 종이에 판화, 실크스크린 (좌하) 호돌이 디자인: 김현, <제24회 88 서울 올림픽 포스터>, 1983, 84.1 ×59.4cm, 개인 소장© 네버레스 홀리다


88 서울 올림픽은 대한민국의 역사를 바꾼 거대 프로젝트였죠. 국제 표준에 맞추기 위해 기존의 있던 체제들과 도시 구조가 많이 바뀌게 되었으니까요. 이전에 소개해드린 올림픽공원 안의 평화의 문이나 경기장들은 그런 도시의 대대적인 탈바꿈의 중심에 있던 건축물입니다. 그 변화에 주목한 전시가 작년부터 올 4월까지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에서 <올림픽 이펙트: 한국 건축과 디자인 8090>이라는 이름으로 열렸죠. 굉장히 집중하면서 봤고 만족스러웠어요. 확실히 자료들과 텍스트를 함께 보니 서울이라는 도시 구조와 사회 체제가 얼마나 새롭게 탈바꿈했는지를 알겠더라고요. 재미있는 작품들이 많았어요. 몰랐던 것도 알았고요. 대표적으로 호돌이의 상모 리본이 서울의 'S'를 상징화했다는 건, 진짜 몰랐거든요, 그냥 곡선이 예쁘네~ 정도로만 생각해서.ㅎㅎ 다시 봐도 예쁜 캐릭터입니다, 호돌이는.


우리에게 호랑이는 민화 '까치 호랑이' 속 해학적이고 길상의 의미를 지니며 인간에게 이로움을 주는 상징성을 갖습니다. 예전에 한중일 호랑이에 대한 전시가 있었는데, 확실히 우리나라 호랑이는 귀염귀염 하더라고요. 물론, 옛날 VHS 비디오 인트로에 호환 마마 어쩌고 하면서 어린아이가 든 강보를 물고 가는 눈매가 날카로운 호랑이도 있지만, 대체적으로 우리 호랑이는 신령스럽고 친화적인 동물로 화폭 속에 담겨 있습니다. 까치 호랑이는 화원들이 그린 궁중 양식의 영향을 받아 비교적 정교한 공필채색화로 그렸는데, 이후 이 도상은 차츰차츰 디자인적으로 변화하여 88 올림픽의 마스코트 호돌이가 되었죠. 아... 호돌이 인형 갖고 싶다. (이 의식의 흐름이란 ~ ㅎㅎ) 그런 흐름을 볼 수 있게 전시에서도 까치 호랑이와 함께 올림픽 포스터를 전시하고 있어요. 악재가 겹친 도쿄 올림픽에서도 우리 호랑이는 고생이 많았죠. 상반기를 휩쓴 <수궁가> 속 한 대목인 '범 내려온다'를 차용한 선수촌 현수막. 단순한 응원 현수막에 왜 정치적 해석을 덧붙이는지. 세상 둥글게 둥글게 살면 얼마나 좋을까요.


다른 얘기이긴 한데, 만화영화 '달려라 하니' 오프닝에는 현재 한화 63 시티로 불리는 63 빌딩이 자주 등장합니다. 어느 퀴즈 프로그램에 나왔는데, 63 빌딩은 총공사비 1800억、100만 명의 인력이 동원되어 만든, 6.25 이후 폐허가 된 한국이 고속성장으로 올림픽을 개최할 수 있는 나라가 되었다는 랜드마크로 등장했다고 해요. 당시는 지금과 달리 보여줄 만한 건축물이 적었고 '한강의 기적'이라고 불릴 만한 성공신화를 만들어낸 우리였으니, 여의도에 올라간 63층의 고층건물은 그런 의도를 가장 잘 드러낸 독보적인 건축물이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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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 상단) 권진규, <그리스도의 십자가>, 1970, 건칠, 높이: 141cm, 개인 소장, (오른쪽 상단) 권진규, <불상>, 1971, 목조, 높이: 45cm, 개인 소장 © 네버레스 홀리다


3부 전시실엔 서로 다른 종교 예술작품이 한자리에 있어 오묘한 느낌이 듭니다. 인상 깊은 색감과 형태를 지닌 작품들이 많지만 전 권진규 조각이 마음에 오래 남더라고요. 자료에 적힌 두 작품 해설을 그대로 옮겨드립니다.

"<불상>은 7세기 국보 제83호 금동미륵보살 반가상과 원주 출토 고려 시대 철불좌상을 모델로 한다. 삼산형 보관과 얼굴, 상반신의 신체 표현은 금동미륵보살 반가상을 닮았고, 의습과 수인, 결가부좌 자세 등을 원주 출토 철불좌상을 닮아 있다. 하지만 세부 표현을 보면 두 상과는 조금 다르게 표현된 부분을 찾을 수 있다. 특히 의습의 표현 중에서 결가부좌 한 다리 아래로 내려오는 부채꼴의 의습 표현은 과감하게 생략했고, 왼손의 수인도 항마촉지인을 하고 있는 원주 출토 철불좌상과는 다르다. 최소한의 표현으로 작가가 원하는 존상을 표현한 것이다. 넓게 표현된 철불의 어깨도 실제 인물처럼 표현했으며, 접힌 의습의 표현도 거의 하지 않고 사선으로만 연출했다. 전체적으로 철불에 비해 표현은 더 간결해지고 신체 비례는 보다 현실적인 모습이 되었다. 마주하고 있는 권진규의 또 다른 작품 <그리스도 십자가>는 교회의 의뢰로 제작했다가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의 모습이 너무나도 비통한 탓인지 거부된 작품이다. 건칠로 제작된 이 작품은 종교적 숭고함과 동시에 일반 대중에게 감동을 줘야 하는 종교미술의 달라진 위상을 보여준다. "


<그리스도 십자가>는 1m가 넘는 작품이라 실제로 보면 디테일에 더 감탄합니다. 그리스도 조각상은 시선을 들어 보는 위치에 놓인 게 익숙한데, 시선이 같거나 아래를 향하게 되니까 뭔가 어색하더라고요. 머리 위에 얹은 조형물, 서로 다른 종교 상징물을 벽을 사이에 두고 비치는 벽면을 통해 보이도록 놓은 모습이 참신했어요. 진정한 종교 대통합의 자리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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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덕현, <오마주 2021-Ⅱ>, 2021, 특수 한지에 UV 출력, 연필, 350x830cm, 개인 소장© 네버레스 홀리다


조덕현(1957-)의 <오마주 2021-Ⅱ>는 약 100년 전 과거 한국인들의 모습을 가로 830cm, 높이 350cm의 화면에 재구성한 작품입니다.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일제강점기 유리건판에 근거하여 약 1,000장의 사진들 가운데 함경도에서부터 제주도에 이르는 다양한 지역의 인물들을 고르게 선별, 같은 날 같은 시각에 전체가 모인 듯한 성비(性比)로 균형을 맞춰 배열했다고 해요. 한국미라는 개념이 만들어지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던 김재원、오세창、전형필、고유섭、 최순우、진홍섭、 황수영、김원용、최완수 등과 한석호、나혜석、윤이상、백남준 등의 예술가들이 포함되어, 그들의 얼굴을 알고 있다면 발견하는 즐거움이 있는 작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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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경, <달빛 왕관_신라 금관 그림자>, 2021, 유리 부표, 황동, 철, 24K 금박, 나무 3D 프린트 조각, 진주, 유리, 자개, 131.7(h) ×65 ×66.4cm, 개인 소장 ⓒ네버레스 홀리다


<서봉총 금관(보물 제339호)>(신라, 금, 옥, 높이: 35cm, 국립중앙박물관 소장)이 놓인 맞은편엔 이수경(1963-)의 <달빛 왕관-신라 금관 그림자>가 있습니다. 깨진 도자기 조각을 이어 붙인 '번역된 도자기'시리즈로 친숙한 작가의 신작으로 현재 아트선재센터에서 이 연작이 전시 중입니다. 제목은 달빛 왕관이지만 왕관은 작품의 맨 아래 마치 받침대처럼 놓여있고 금동대향로를 연상시키는 거친 외관과 아라비안나이트를 생각나게 하는 내부는 비범한 인상을 줍니다. 아쉬운 건 자세히 들여다보는 관람객이 적다는 건데, 이 작품은 제일 아래에 놓인 왕관의 형상으로부터 점차 위로 확장되는 구조로, 밖에서도 위아래를 하나하나 뜯어봐야 하고 갈라진 사이로 각도를 달리하며 내부를 샅샅이 훑어야 합니다. 그 안에 또 다른 세상이 펼쳐지고 있거든요. "어떻게 만들었지?"라는 질문이 쌓일 때쯤엔 아래 놓인 제작 영상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합니다.


<달빛 왕관> 연작은 2017년 베네치아 비엔날레 전시에 전력투구하느라 심신이 피폐해진 상태에서 처음 제작됐다고 해요. 신들의 머리 뒤에서 빛나는 후광, 최고 권력자의 머리 위에 얹힌 왕관의 의미에 관한 의문이 인간 내면의 보편적인 신성에 대한 관심으로 확장된 작품으로, 기도하는 손、십자가、요、식물、만화 주인공、요술봉 등 동서양 문화의 다양한 상징과 무늬들로 작품을 만들면서 치유받는 느낌을 받았다고 해요. 제목에 대해선, "태양과 왕관이 겉으로 보이는 권위의 상징이라면 달빛은 그 이면에 가려진 것들, 상상의 영역을 의미한다"라고 설명하면서 "우리 안에 저마다 신성이 있고, 각자 왕관처럼 휘황찬란하게 빛나고 있다"라고 인터뷰했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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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수궁미술관에서 바라본 석조전, 분수 ©네버레스 홀리다


이 전시만 봐도 고대부터 현대에 이르는 한국미술사가 정리될 정도로 주목할 작품도 다루는 장르도 다양합니다. 고궁을 걷기 좋은 계절이기도 하고요. 곧 전통미술과 근현대미술 연구자 44명이 참여하여 한국미를 대표하는 문화재 10점을 중심으로 공동의 연구주제로 풀어낸 650페이지 분량의 도록이 발간될 예정이라고 하니, 혹 이 전시를 놓치게 된다면 나중에 도록으로라도 천천히 감상해보세요.




https://www.mmca.go.kr/exhibitions/exhibitionsDetail.do?exhId=202101190001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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