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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움 미술관 LEEUM 》 용산구 이태원로 55길

예술 공간 이야기 


오늘 소개할 예술공간은 리움 Leeum입니다. 얼마 만인지 모르겠네요, 리움의 전시를 다시 본 게. 그동안 코로나로 인한 공백도 있었지만 이런저런 일들에 연루되어 한동안 기획전을 하지 않았던 리움이 새 단장을 마치고 10월, 재개관했습니다. 국립기관에서 진행 중인 이건희 컬렉션의 인기가 여전히 사그라들지 않았지만, 리움 역시 사전 예약제로 일시적 무료 관람을 실시하고 있어 예약이 아주 치열합니다.


리움미술관 외관과 야외전시장 © 네버레스 홀리다


저는 예전에 리움 오프라인 멤버십에 가입했을 정도로 이곳을 자주 찾았어요. 1년 회원비가 10만 원인데, 당시에는 전시도 활발했고 회원 프로그램도 많아서 시간 운용만 자유롭다면 그게 나은 선택이었죠. 그 후 점점 기획전도 줄고 상설전도 자주 바뀌지 않아 멤버십 재연장을 하진 않았는데, 애정 하던 미술관이 다시 돌아오니 예술 애호가로서 참 기쁩니다. 예전부터 소개해드리고 싶었는데 기획 전시가 없다 보니 글을 쓰기가 애매하더라고요.


리움을 잘 즐기려면 그 모체가 된 호암미술관의 설립부터 이해하는 게 좋습니다. 호암미술관은 삼성 창업주인 고 이병철 회장 수집의 미술품을 기반으로 세운 사립미술관입니다. 고 이병철 회장(이하 '이 회장')의 호가 '호암'이에요. 어렸을 때부터 선친이 거처하던 사랑방에서 양반 사대부들의 생활에 필수적인 각종 문방구를 접했고 집안의 제사를 통해 도자기의 소중함을 배우면서 골동품에 대한 취향이 싹튼 이 회장은, 30대 초반 대구에서 삼성상회를 설립해 양조업 등을 경영할 때부터 예술품을 수집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그 당시엔 예술품이란 말보다 골동품이란 말을 더 보편적으로 사용했을 때로 '마음의 기쁨과 기의 조화를 추구'했기에 기호에 맞는 골동품을 선택 수집했고, 그 종류도 서화, 토기, 도자기, 불상 등 다양했대요.


국립박물관에서 열린 <호암 수집 한국미술 특별전>  이미지 출처: http://www.koreanart21.com, 기사 출처: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해방 후에도 꾸준히 미술품을 수집해 국내에서 손꼽히는 개인 수집가가 된 이 회장은, 1971년 덕수궁 석조전에 자리한 국립박물관에서 개최한 <호암 수집 한국미술 특별전>에 자신의 수집품 중 203점을 선보입니다. 이 전시로 당대에 많은 찬사를 받았죠. 그 후 고고, 민속, 과학, 자연사 분야를 망라하는 종합 문화관을 구상했고 이 기획을 사재를 털어 1965년에 세운 삼성문화재단을 통해 구체화합니다. 그 결과물이 1978년 완공된 호암미술관입니다.


호암미술관 관람지도 출처: 호암미술관 홈페이지


개인이 수용 및 소장할 수 있는 한계를 넘어 수집된 미술품을, 이 회장은 '민족 공동의 문화유산으로 활용하기 위해 미술관을 건립함으로써 사회에 환원하겠다'라고 공식 선언을 합니다. 1978년 미술관 건물이 거의 완공되는 시점에 국보 7점과 보물 4점이 포함된 자신의 소장품 1167점을 삼성미술문화재단에 기증했고요. 그리고 1982년 4월 22일, 경기도 용인 자연농원의 호숫가에 호암미술관이 정식 개관합니다. 당시만 해도 동양 최대 민간 미술관이었죠. 개관 익일부터 1달까지는 무료 관람, 그 후 어른은 2백 원, 어린이는 1백 원의 입장료를 받았어요. 1980년대 라면 1 봉지가 90원, 초코파이 1개 100원, 지하철 1회 편도 80원, 택시 기본요금이 400원, 소주 1병(360ML)이 190원 정도였다고 하니, 천 점 이상의 소장품 전시를 보는 비용으로 비싼 건 아닌데, 당시에 돈을 주고 미술작품 전시를 본다는 개념이 보편화되지 않았다면 비싸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어요. 게다가 서울이 아닌 용인에 위치했으니 대중적이기보다는 애호가들을 위한 장소였을 거라 추측해 봅니다. 저도 운전을 안 하다 보니 한두 번 가본 게 전부이지만 호암미술관은 '돈은 벌어서 이렇게 쓰는 게 멋이지~'라고 생각했던 몇 안 되는 미술관 중 한 곳입니다. 집 가까이에 있으면 사흘이 멀다 하고 갔을 곳이에요. 현재는 온라인 예약을 통해 무료 관람이 가능합니다.


불편한 접근성, 나날이 늘어가는 소장품의 규모, 부족한 수장고와 전시장, 점점 규모와 매체가 다양해지고 커져가는 현대미술 작품들은, 아버지로부터 문화재 사랑과 수집 열, 소장품을 이어받은 이건희 회장에게 새로운 미술관을 구상하게 만듭니다. 그 결과물이 2004년 10월 13일 개관한 삼성미술관 리움 Leeum이죠. Leeum은 설립자의 성인 Lee와 미술관을 뜻하는 뮤지엄 museum의 -um을 조합한 이름이래요.


리움 야외 데크 © 네버레스 홀리다


리움은 선대에 이어 수집한 작품을 전시하기 위해 세계적인 건축가 마리오 보타(Mario Botta, 스위스), 장 누벨(Jean Nouvel, 프랑스) 렘 쿨 하우스(Rem Koolhaas, 네덜란드) 세 사람이 별도의 건물을 설계했고 이를 서로 연결한 획기적인 형태의 미술관입니다. 실내에서 보면 그 규모나 다름을 느끼지 못하는데, 야외 조각 정원 데크를 따라 걷다 보면 형태의 다름과 규모가 한눈에 들어오죠.


당시 리움미술관을 지을 땐 전시시설 설치를 위한 높은 층고를 만들면서 동시에 엄격한 고도제한이라는 법적 조건을 지키는 게 큰 난제였다고 합니다. 리움은 평지가 아닌 경사로에 위치하고 있으니 더 그랬겠죠. 크게 인식되는 부분은 아니지만 리움 내 대부분 시설들이 지하에 위치하는 이유도 바로 법률상의 조건과 지형적인 요소들을 수용해서 지은 결과이고요.


리움 미술관 내부 진입로,  로비, 아트숍 © 네버레스 홀리다


진입로를 따라 들어가면 로비가 나옵니다. 현재는 검은색과 베이지색 톤이 주조색이죠. 좀 더 차분해지고 정돈된 느낌인데, 이 로비의 인포데스크 방향을 바라보고 오른쪽이 현대미술관, 왼쪽이 고미술관, 진입로 출입문 옆이 기획전시실(삼성 아동교육 문화센터)입니다. 현대미술관 방향에는 벽면을 가득 채우는 미디어아트가 있고, 고미술관 방향으로도 대형 전자 패널이 있어 소장품을 검색해 볼 수 있습니다. 또 인포데스크 왼쪽에도 작은 전시실이 있고, 그 외에도 아트숍과 테이크 아웃 카페, 화장실과 짐을 맡길 사물함이 로비에 있습니다. 리움엔 모든 것은 예술가의 작품이라 한 곳도 가볍게 보시면 안 됩니다.


마리오 보타가 디자인한 고미술관(상설전시실)은 한강이 내려다보이는 남산 경사면의 가장 높은 위치에 있습니다. '남산의 지형과 성곽의 역사성에 주목하면서 도시의 원형과 중심을 회복'하는 의미를 담았다고 하죠. 중앙의 로툰다가 지하의 로비 공간부터 최상층까지 관통하는데 이전에 소개했던 한국관광공사의 서울 소개 뮤직비디오에도 엠비규어스와 함께 등장해 화제가 된 곳입니다.


고 미술관 © 네버레스 홀리다


고미술관 관람은 1층 로비에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최상층으로 올라간 후에 계단을 통해 내려오면서 보면 됩니다. 로툰다 상부의 천창으로 유입된 자연광이 비치는 원형 계단은 그 벽에 난 긴 사각형의 창을 통해 계단 반대편의 사람들과 소통도 가능해요. 이곳엔 청자, 백자, 분청, 회화, 불교미술 및 금속공예 작품이 있는데 한눈에 봐도 범상치 않은 명작들이죠. '좋은 게 여기 다 있네' 이런 생각이 자연스럽게 드니까요. 고미술 작품뿐만 아니라 몇몇의 현대미술작품들도 있는데, 특히 천장 높이가 7m에 달하는 로비와 연결된 계단에 설치된 올라퍼 엘리아슨의 <중력의 계단>은, 각도와 위치에 따라 다른 효과를 내니 시각적으로 더 뛰어난 효과를 느끼고 싶다면 꼭 동선대로 내려오세요.


또 다른 상설전시실인 현대미술관은 대형 미디어 패널 옆의 입구로 들어가면 됩니다. 마찬가지로 현대미술관 내의 엘리베이터를 타고 최상층으로 올라가서 보고 한 층씩 내려오면 됩니다. 전시관 전체가 하나의 전시인 경우도 있지만 별도의 전시인 경우도 있으니 그때그때 맞춰서 보시면 돼요. 3층이니 그 층수만 기억하면 전시를 놓치지 않겠지만, 엘리베이터 안내에도 전시 층 소개가 되어 있으니 참고하면 됩니다.


현대미술관 © 네버레스 홀리다


현대미술관은 장 누벨이 ' 남산의 지세를 그 심층에 존재하는 암반과 그로부터 솟아나는 건물의 이미지를 통해 구현'하려 했다고 하죠. 근현대미술작품을 전시하기 위한 공간으로 각 층에 자유분방하게 배치된 전시 박스들을 이용해 개별 작가의 작품을 보여주는 독특한 공간입니다. 실제로 확 트인 공간이지만 각자의 '방'을 가진 듯한 느낌을 주는 장소들이 많아요. 그래서 다양한 매체와 성질을 지닌 예술작품들이 생각보다 부딪치지 않고 잘 어울립니다. 이곳 현대미술작품 중에도 재미있는 게 많아요. 오랜만에 봐서 반가웠던 작품들도 있고 새로웠던 작품도 있고 전시장 안의 작품과 외부의 풍경도 잘 어우러져 또 다른 스펙터클을 만들어 내고 있죠. 요즘 내실 없이 비싼 전시들 정말 많은데, 리움의 전시는 그런 전시들에 주머니 털리고 가슴 시린 제게 위로가 되어줬어요.


기획전시실은 렘 쿨 하우스가 디자인한 공간입니다. '너무 튀지 않으면서 도시의 변화와 자연을 관조할 수 있는 수평의 플랫폼'을 제시한 거라 하죠. 전체 지하 2층에서 지상 2층 사이 약 17m를 서로 다른 레벨로 나눠 높은 천고를 필요로 하는 현대 미술 기획 전시와 미디어아트 운용이 가능한 공간을 창출해냈죠. 지하 교육 강당도 있고, 지상 2층에 새로운 휴게 공간과 교육 공간도 마련했어요.


기획전시실 <인간, 일곱 개의 질문> 전 © 네버레스 홀리다


재개관 기획전인 <인간, 일곱 개의 질문> 전은 '인간으로 존재하는 것의 의미를 고찰하고 미래를 가늠'해보고자 기획한 전시입니다. '인간 실존에 대한 성찰이 확산된 20세기 중반의 전후 미술을 필두로, 휴머니즘의 위기 및 포스트 휴먼 논의와 더불어 등장한 국내외 50여 명의 작가와 130여 점의 작품'을 선보이고 있죠. 재미있는 주제 하에 수집된 작품들로 면면도 화려하고 기존 지하, 지상 전시실과 교육실까지 넓게 공간을 사용하고 있어서 구석구석 리움의 변화를 시각적으로 체험할 수 있어요.


앞서 말했지만 기획전시실 2층엔 새로운 휴게공간이 생겼습니다. 엘리베이터를 타야 해요. 김용관 작가가 설계한 <둥근 네모>로 채워진 2층은 네모와 동그라미의 교집합, 합집합, 여집합으로 만든 입체 모듈을 쌓아 만든 조명, 책장, 테이블이 있고 컴퓨터 과학자 레스타의 도형 퍼즐을 응용한 1:2 비례의 닮은꼴 직사각형들도 제작한 다용도 가구도 있습니다. 도형과 패턴들이 시점에 따라 다양한 장면을 연출하는 게 공간 특징으로, 무엇보다 이곳에선 창밖의 야외 조각 공원이 내려다보여 좋더라고요.


기획전시실 내 2층 휴게 및 교육 공간 © 네버레스 홀리다

전시 보다가 쉬어가도 되고요, 그냥 구경하셔도 되는 공간이니 마음껏 활용하세요. 제가 갔을 땐 준비 중이었는데 반대편에서는 아이들 교육 프로그램도 진행될 예정이니 홈페이지 참고하셔서 참여하시면 되고요.


리움의 전시는 예약만 하면 모두 무료입니다. 예약이 쉽지 않다는 게 문제긴 하죠. 또 상설전과 기획전 모두 예약은 가능하지만 관람 시간은 2시간으로 정해져 있어요. 입장은 예약이 완료되면 문자로 전송되는 QR을 찍고 들어가야 하니 시간 계산을 잘해서 보셔야 합니다. 3번에 나눠 보길 권해드리지만. 상설은 앞으로도 무료, 기획전은 연말까지만 무료이니 상황이 여의치 않음 우선순위를 정하는 것도 방법이겠죠.


모쪼록 꼭 예약에 성공하길 바라겠습니다. ^---^


https://www.leeum.org/

http://www.hoammuseum.org/html/main/index.asp

http://www.koreanart21.com/review/artWorldStory/view?id=79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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