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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태일기념관》 종로구 청계천로 105

예술 공간 이야기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을 아시나요.


현재 30대 이상이라면 전태일(1948~1970)이라는 이름이 낯설진 않죠. 1995년에 상영되어 화제가 된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이란 영화가 있었으니까요. 이 영화는 청룡영화상 최우수 작품상과 감독상, 촬영상을, 22살의 전태일을 연기한 당시 20살의 배우 홍경인에겐 춘사영화제 남우주연상 수상의 영광을 줬는데, 영화의 내용은 물론이고 영화제 사상 최연소 남우주연상 수상으로도 당대 큰 화젯거리였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전태일 이름 앞에는 ‘아름다운 청년’이란 수식어가 가장 자연스럽습니다. 저 역시 어렸을 때 이 영화를 봤는데, 정확한 내용이 기억나진 않지만 당시 영화 속 한 장면이 꽤 강렬하게 기억 속에 자리 잡았어요.


영화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 포스터 및 스틸컷 출처: 네이버 영화


2005년, 청계천 6가 평화 시장 버들다리(전태일 다리) 위 보도엔 3m 높이의 전태일 열사의 대형 반신상이 들어섰고 그 후 이곳을 지날 때마다 ‘전태일’은 늘 저의 눈과 마음을 사로잡는, 거친 시대를 헌신적으로 살아간 젊은 청년이었죠. 하지만 제가 알고 있는 것은 매체에 그려진 그의 모습뿐, 노동인권 개선을 위해 애쓴 그의 삶과 활동을 들여다보진 못했다는 생각이 늘 있었어요. 그러던 2019년 서울 청계천로에 전태일 기념관이 생겼고, 2020년은 전태일 50주기였지만 코로나로 인해 찾아가질 못했었는데, 2021년 전태일 문화거리가 조성된다는 소식을 듣고 시간을 내어 전태일 기념관을 찾아봤습니다.


전태일 기념관 외관 © 네버레스 홀리다


전태일 기념관은 한국 노동운동사에서 중요한 기점을 마련한 전태일의 역사적 의미를 재조명하기 위해 서울시가 건립한 시설입니다. 광화문에서 동대문 방향으로 청계천을 따라 걷다 보면 정면 외벽 가득 흘림체로 채워진 붉은 건물을 만나게 되는데, 이곳이 바로 전태일 기념관이에요. 또, 물길이 아닌 보도를 따라 걷다 보면 바닥에 메시지를 적은 금속판들이 이어지는데, 전태일 문화거리 조성에 맞춰 설치된 메시지들로 이를 따라가다 보면 전태일 기념관에 도착합니다.


멀리서부터 시선을 잡아끄는 전태일 기념관 정면 외벽 글씨는 1969년 전태일이 근로감독관에게 보낸 진정서의 내용이에요. 예술가 임옥상이 재해석하고 건축사 윤정원과 하우 건축사무소에서 설계 및 시공했는데, 기념관 입구 기둥에 진정서의 내용을 설명판으로 별도 부착해두어 이 앞을 지나는 시민 모두가 언제라도 내용을 읽어 볼 수 있죠. 또 건물 오른쪽 벽면엔 한 손에 책을 들고 벽면에서부터 뛰어나오는 듯한 <어느 청년 노동자의 상>이 있는데, 누가 봐도 근로기준법을 손에 든 청년 전태일을 연상시킵니다.


전태일 기념관  © 네버레스 홀리다


전태일 기념관은 총 6층인데 관람객이 전시를 구경할 수 있는 장소는 1층부터 3층까지예요. 4층은 노동 허브, 5층은 서울 노동 권익센터 6층은 사무실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관람 동선은, 1층 로비 전시를 보고 3층으로 이동 후 2층으로 내려와 관련 서적을 보며 좀 쉬다가 나오면 딱 좋고요. 입구로 들어서면 바로 로비 전시실이 나오는데 현재 이곳에선 전태일 문화거리 조성 기념 시사만평 전이 열리고 있습니다. 전태일 기념관과 시사만화협회가 함께 개최하는 전시로 국내 노동계의 현실을 알려주는 시사만평과 일러스트이지만 원화 전시가 아니라 좀 아쉽긴 했어요. 시사만화이니 메시지가 더 중요하긴 하지만 그래도 뭔가 인쇄 버전으로 보려니 기획전이라는 느낌은 덜하더라고요.


1층 로비 전시 <만화로 보는 노동의 자리>전 © 네버레스 홀리다


전시 외에도 눈에 들어온  장애인 관람 동선으로, 휠체어를 타고 들어와 전시를 보기 편리하도록 주변 환경이  조성되어 있습니다. 제가 요즘 공공장소에 설치된 사회적 약자들을 위한 시설물들에 관심을 두고 있는데, 효율적으로 마련된 곳은 정말 드물더라고요. 버스, 지하철, 공공장소에 표식과 시설물이 있긴 하지만 정작 이들을 이용하는 분들을  적이 다섯 손가락에 꼽혀요,  일생 통틀어서. 이런 좋은 계절에 분명 그분들도 단풍 구경이든 바깥바람이든 쐬고 싶을 텐데 그런 시설들이 생각만큼 그들에게 편하게 되어 있진 않다는 , 그야말로 동상이몽이랄까... 그런 부분이  갖춰져야 선진국일 텐데 우린 아직 모두가 평등하고 보편적인 복지를 누리고 있진 못하다는 생각이 종종 듭니다. 어쨌든 이곳은   이동이 계단과 엘리베이터  가지로 나뉘어 편리합니다. 전시 공간도 그렇게 복잡하지 않고요. , 기념관 설명을 담은 자료는 기본이고 학술 자료, 근로기준법 등이 수록된 현실에서 활용 가능한 자료들을 무료로 배포 중이라 여러 정보도 쉽게 얻을  있어요.


3층 상설관 전경 및  해설 자료 © 네버레스 홀리다


주요 전시는 3층 상설전시실 ‘이음터’와 기획전시실인 ‘꿈터’에서 볼 수 있어요. 전태일 기념관의 핵심가치인 사랑, 연대, 행동을 전시로 보여주는 공간이죠. 이음터 상설전시 <전태일의 꿈, 그리고>는 꽤 구성이 괜찮은 전시입니다. 그의 어린 시절부터 사회에 눈을 뜨기 시작해서 노동 운동을 하기까지 과정이 일목요연하게 잘 정리되어 있거든요. 적절한 시각자료를 활용해 내용을 구성했는데, 구성이 복잡하지 않고 내용도 부족하지 않아 천천히 읽기만 해도 그의 삶이 그려집니다. 전시회를 가보면 너무 설명이 많거나 구성이 복잡해, 전시 내용이 잘 와닿지 않는 것들이 상당한데, 전태일 기념관의 상설전시는 남녀노소 누구나 전태일에 대한 사전 지식 없이 와서 봐도 충분히 이해하고 공감할 만큼 상당히 잘 되어 있어요. 특히 그의 ‘근로 기준법을 지켜라’,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와 같은 절규는 전시를 따라가며 더 절절하게 다가올 정도로 몰입이 잘됩니다.


3층 상설전시장 © 네버레스 홀리다


상설전 끝은 기획 전시로 이어집니다. 현재 기획전은 노동인권운동가 이소선(1929-2011)의 삶과 현재의 노동이 연결된 전시 공간이에요. 전태일은 숨을 거두기 전 어머니에게 자신이 못다 이룬 일을 이루어 달라 부탁했고, 어머니는 그의 뜻을 이어 청계피복 노동조합을 창립해 노동운동에 헌신합니다. 어머니와 아들의 이야기가 한 공간에서 펼쳐지는데 어떤 전시를 봐도 평등과 인간존중이란 메시지가 전해져 오죠. 과거와 현재를 잇고 있는 노동의 가치와 우리나라 노동인권이 어떻게 현재에 이르렀는지를 알게 해 준 전시 일뿐만 아니라 1970년대 이후 많은 개선을 이뤄왔지만 여전히 개선되지 않는 노동계의 고충이 어떤 것인지를 다시 한번 돌아보는 계기도 만들어 줍니다. 이소선을 떠올리는 15인의 이야기와 사진과 사료가 함께 있어 당시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고요.


기획전 <목소리> 전시 전경 © 네버레스 홀리다


기획전에는 인상 깊은 설치 작품 2점이 있는데, 매 정각에 시작해 10분 정도 작동하는 작가 오민수의 <철과 피>는 노동 현장을 보여주는 설치 미술로 현장에서 채취된 소리가 함께 나와 노동자로서 살아가며 부조리한 구조와 상황을 섬세하게 표현했고, 작가 신민의 종이 조각 군상 <우리들>은 노동자의 현실과 모습을 사실적으로 그려내 눈길을 끌어요.


원래는 전시 해설 시간이 있지만 코로나로 운영 잠시 중단되었어요. 하지만 별도의 설명 없이도 보기에 부담스럽지 않습니다. 또, 전시를 다 본 후 관람객 설문 조사에 참여하면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 기념관 교육자료집」과 전태일이 사용했던 수기 노트를 재현한 기념 노트를 주는데, 이 노트는 전태일이 사용하던 수첩을 재현했어요. 그때의 수첩과는 비교되지 않을 종이 질과 양이니 궁금한 분들은 꼭 설문 조사에 참여해 보세요.


2층 공연장과 자료실(휴게실) © 네버레스 홀리다


전태일 기념관에서는 노동운동과 관련된 공연 관람도 가능합니다. 공연은 전시관 2층 울림터에서 진행되는데 울림터는 무료 대관이 가능한 공연장이 있습니다. 크진 않지만 소규모의 공연을 진행하는 덴 무리가 없어요. 관람료는 무료로, 공연이 공지된 후 홈페이지에서 선착순 신청하면 이후에 확정 문자가 옵니다. 얼마 전 이곳에서 2021 전태일기념관 공연예술 지원 선정작인 연극 <파란 풍선-아라발 3부작>을 봤어요. 공상집단 뚱딴지의 <파란 풍선- 아라발 3부작>은 ‘미궁’, ‘사형수의 자전거’, ‘게르니까’로, 나약하고 힘이 없는 존재이지만 희망을 잃지 않고 더 나은 미래를 위해 노력하는 인간의 모습이 등장하는 연극이었고 수작이었죠. 노동자의 권익 향상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며 더 나은 미래를 꿈꿨던 전태일 정신과 오버랩이 되는 내용에, 보면서 굉장히 먹먹해졌어요. 10명 정도의 관객을 두고 100분을 열연한 배우분들의 수고가 눈에 보였고 한동안 코로나로 쉽지 않았던 대면 공연을 이곳에서 하게 되니 느낌이 새롭기도 했죠. 주기적으로 무료 공연이 이어지니 꼭 놓치지 마세요.


평화시장 앞에 있는 전태일 동상 및 전태일 기념관으로 향하는 도로에 설치된 메시지판과 조명 예술작품 © 네버레스 홀리다


11월 11일부터 13일까지는 제1회 전태일 문화거리축제 관련 전시, 공연, 교육 프로그램 등 다양한 활동이 진행됐습니다. 이 글을 읽는 분 중에 가본 분이 계실지도 모르겠네요. 개인적으론 좀 조용할 때 가서 찬찬히 둘러보고 오는 걸 추천드립니다. 현재 단계적 일상 회복을 위한 거리 두기 개편에 따라 전태일 기념관 전시 관람은 사전예약 없이 가능하고요.


그리고 이후에 발길이 닿는다면 청계천 따라 평화시장 입구에 있는 전태일 반신상을 만나보고 오면 어떨까요? 그리 멀지 않거든요.





https://www.taeil.org/


#전태일기념관 #아름다운청년 #전태일 #평화시장 #전태일반신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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