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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 社會> vs <강남 모던-걸>

전시 이야기

문화역284 <호텔 社會 Hotel Express284>(2020.1.8 - 3.1) vs M 컨템퍼러리 <강남 모던-걸>(2019.12.20 - 2020.4.30)



전시도 유행이 있습니다.


한때 서울의 대형 전시는 거의 서양 19세기 전후 - 20세기 초 작가들에 집중되어 그들의 작품을 서울에서 만나는 일이 어렵지 않았죠. 전시 역시 재정적인 부분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에 입장 수익과 관객의 기호가 맞아떨어지는 지점을 찾는 게 중요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안정적인 수익을 보장하는 다빈치(1452-1519), 마네(1832-1883), 드가(1834-1917), 세잔(1839-1906), 로댕(1840-1917), 모네(1840-1926), 르누아르(1841-1919), 고갱(1848-1903), 반 고흐(1853-1890), 마티스(1869-1954), 피카소(1881-1973) 등 스테디셀러 steady seller로서의 브랜드 가치를 지닌 작가들을 기획자 입장에서 놓기는 어렵죠. 그래도 이왕이면 더 다양하고 폭넓은 작가들의 작품을 국내에서 만나고 싶은 바람이 더 큽니다. 특히 대여 작품들이 기대 수준에 미치지 못할 때는 더 그렇죠.


최근 우리나라 19세기 말-20세기 초 중반을 시대 배경으로 하는 전시가 많아졌더라고요. 근대사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문화재 복원과 역사적 가치를 지닌 곳들이 문화재로 지정되는 사례들이 늘어남에 따라 그런 콘셉트의 상점과 카페들도 늘고 있고요. 그래서 오늘은 '근대 문화'를 주제로 기획된 전시 2개를 함께 소개드립니다.

 <강남 모던-걸> <호텔 사회> 전시 홍보 이미지

복원공사를 거쳐 2011년 8월 개장한 '문화역 서울 284'는 현재 전시와 공연이 이뤄지는 장소로 활용되고 있습니다. '284'는 1981년 지정된 구 역사의 사적번호이고요. 여러분들도 오가며 한 번은 보셨을 거 같은데요, 이전 글에 써 놓은 적도 있지만 제가 자주 찾는 전시 공간 중 하나입니다. 우선 장소가 주는 분위기가 좋고 무엇보다 좋은 콘텐츠의 전시를 무료로 즐길 수 있다는 장점이 있으니까요. 무료라고 해서 무조건 찾아가진 않지만 이곳의 전시는 무료이면서도 일정 수준을 유지하는 콘텐츠를 제공해서 친구들에게도 추천 및 소개하는 문화기관입니다.

전시장 입구 이미지 ©네버레스 홀리다

'문화역 284'는 <호텔 사회 Hotel Express 284> 전을 통해 전시 기간 동안 '호텔 284'로 변신합니다. 호텔 문화의 도입, 확산, 정착은 물론 현재 생활문화 플랫폼으로서 다양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호텔'을 이해할 수 있도록 작품, 체험, 공연 등으로 구성되어 있어요. 로비(라운지), 객실과 같은 기본 공간부터 수영장, 기념품 숍, 카페(바), 이발소 등 유희 공간을 함께 구성하여 여행·여가·유흥·식문화 등이 집결된 '호텔'을 보여주고 있는 이 전시는, 관람객이 '호텔 '284'에 ' 체크인'하는 순간부터 여정이 시작됩니다.


1층은 <익스프레스 284 라운지>, <오아시스- 풀·바·스파>, <여행·관광안내소>, <프라이빗 라운지>, <이발社會>, <호텔 사회 아카이브(철도, 호텔)>를(을) 주제로, 2층은 <호텔 사회 아카이브(공연, 식문화)>, <그릴 홀>, <객실 Room>로 공간이 세분화됩니다. 공간이 생각보다 많이 쪼개지다 보니 일일이 주제를 생각하면서 보기는 어렵지만 작품이 시원시원하게 배치되어 매 장소마다 전환되는 분위기로 대략적인 흐름은 느낄 수 있습니다.

<익스프레스 284 라운지> 전시 이미지 © 네버레스 홀리다

오랜 역사를 지닌 건축물에는 다른 장소로 이동 가능하도록 로비 끝이나 중앙에 계단을 설치했는데, 이 계단을 통해 로비로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이 모였다가 흩어지기를 반복하죠. '호텔 284'에 체크인 후 만나게 되는 계단과 라운지 구성은 로비를 실내 광장으로 탈바꿈시켜 묘한 분위기를 자아냅니다. 공용 공간이라는 역할에 부합하는 작품들이 어우러져 익숙하면서도 낯선 공간을 표현하는 이곳에서는, 정해진 시간마다 음료와 음식을 제공하는 이벤트도 함께 진행 중이니 꼭 사전에 시간 체크를 해두시기 바랍니다.

<오아시스- 풀·바·스파> 전시 이미지© 네버레스 홀리다

1970-80년대, 타워호텔과 워커힐 호텔, 메트로 호텔 등에 설치된 야외 수영장 및 온천 사우나가  젊은 층의 유흥과 가족을 위한 여가 장소로 인기를 얻습니다.  작품으로 재해석된 수영장과 사우나를 걷다 보면 실제의 물이 존재하지 않음에도 뭔가 촉촉할 것 같다는 기분 탓인지 걸음걸이가 조심스러워지더라고요.  

<콜로니얼 가든> 전시 이미지 ©네버레스 홀리다

로비와도 연결되는 서측 복도는 선로와 가장 가깝게 조성된 수평의 통로 공간입니다. 오른쪽은 건물 외부로 왼쪽은 부인 대합실과 역장 사무실로 이어집니다. 라운지로 기능하는 중앙홀의 연장이자 호텔 정원의 모티프를 재해석하는 공간으로 조성되어 복도를 거닐며 다양한 작품들을 감상할 수 있습니다. 또 열린 문들을 통해 다른 곳으로 이동이 가능한 공간이고요.

<여행·관광안내소>,  <호텔 사회 아카이브> 전시 이미지©네버레스 홀리다

샹들리에 작품 <빛의 군집>이 설치된 방향으로 들어서면 <여행·관광안내소> 섹션이 시작됩니다. 근대 여행은 기차의 발명과 함께 시작되었고 이는 증기선과 함께 세계여행을 가능하게 만들었죠. 철도 여행객들이 묵었던 호텔에서는 당시 호텔 투숙객의 여행 패턴에 맞는 다양한 자료들을 제공했는데요, '타블로이드', '팸플릿', '스탬프', '엽서' 등은 당시 고객의 니즈를 채워주던 요소들이 어떤 것들이었는지를 설명해주고 철도를 통해 여행했던 다양한 인물들의 기록도 소개하고 있습니다. '여행 상품점'을 통해 전시 아트상품도 구입할 수 있어요.


근현대 호텔은 미용문화를 선도하는 역할도 했는데, <이발 社會>는 유명 이발사(barber)의 무료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보니 일찍이 사전 예약이 마감된 체험입니다. 1901년 국내 최초 이발소인 ‘동흥 이발소’가 인사동에 개점했고 근대적 위생관념이 확대에 따라 문명화의 상징으로서 이발소가 하나 둘 생겨나기 시작합니다. 1925년에 완공된 서울역도 이러한 흐름에 따라 역내 이발소를 열어 손님을 맞이했다고 하는데요, 이전 시대와의 단절을 원했던 당대 지식인들과 모던보이들의 호응을 얻기 시작해 한국전쟁 이후 남학생과 직장인의 단정한 용모가 의무화되면서 지금처럼 대중화되었다고 하죠.


제가 가장 인상 깊게 본 <호텔 사회 아카이브>는 철도, 공연, 식문화 등과 관련된 사료들을 전시하고 있습니다. 한국 철도의 역사는 1899년 일제 주도로 시작되어 물자 및 인력 수탈은 물론 억압의 도구로 기능했는데요, 자료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들이 우리나라와 문화를 어떻게 변형시켰고 훼손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지도에 표시된 조선의 다섯 궁궐을 중심으로 보면 명확하게 그 차이를 느낄 수 있습니다.

<호텔 아카이브 중 공연 아카이브> ©네버레스 홀리다

우리나라 최초 극장식당은 1963년 설립된 ‘워커힐 퍼시픽 나이트클럽’입니다. 2층 공연 아카이브에는 개관 자료부터 ‘하니비 쇼’로 불리며 많은 사랑을 받았던 다양한 기록들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당시 워커힐 호텔은 우리나라 최초 리조트 호텔로서 주한미군을 위한 다양한 문화시설과 위락시설을 갖추고 있었는데요, 그중에서도 워커힐 퍼시픽 나이트클럽은 루이 암스트롱(Louis Armstrong), 밀스 브라더스(Mills Brothers) 등 해외 유명 가수들 공연은 물론 독보적인 퍼포먼스 디너쇼, 서커스, 마술쇼, 외국 무용수들과 민속 무용수들의 군무 등 다채로운 공연을 선보임으로써 문화 보급로의 역할을 했다고 하죠.

<호텔 아카이브  중 식문화 아카이브> ©네버레스 홀리다

뷔페 문화는 다양한 음식을 긴 테이블에 놓고 먹었던 바이킹의 식문화가 프랑스 지역으로 전해지며 확산되었다고 하는데요, 우리나라에서는 1970년대 앰배서더 호텔의 ‘킹스’ 뷔페부터 시작되어 대중적 콘텐츠로 자리매김합니다.

<그릴 홀> 전시 이미지©네버레스 홀리다

우리나라 최초 양식당이었던 구 서울 역사의 대식당 <그릴 홀>에서는 영화 <워커힐에서 만납시다>(1966/ 감독 한형모)가 상영 중인데요, 영화 속 배경이 된 1960-70년대의 쇼장과 무대, 식당을 기본 콘셉트 작품이 구성되어 있어 서로 비교하며 보면 더 즐겁게 감상할 수 있습니다.

<객실> 전시 이미지 © 네버레스 홀리다

<객실 Room>은 사적인 공간이자 수많은 이야기가 누적된 장소로, <201호실 낮잠용 대객실>, <202호실: 문>, <203호실: 서울 호텔>, <204호실 >, <205호실: 호텔, 루시드 드림>으로 나눠진 객실에서는 각각 호텔이 간직하고 있는 장소와 역사, 사람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습니다. 특히 낮잠용 대객실은 시몬스 침대 협찬으로 매트리스의 촉감을 극대화한 방인데요, 누워보면 편안하긴 한데 뭔가 매트리스가 높게 쌓여있고 조도는 낮다 보니 살짝 병동... 같은 느낌이 들더라고요. 요즘 마스크를 쓰고 외부 활동을 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라서 더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요.

공연 장면 © 네버레스 홀리다

'호텔 284'는 전시 70 체험 30의 비중을 둔 전시입니다. 작품 그 자체를 감상하는 것으로 전시가 완성되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별도의 공연, 별도의 신청을 통한 이벤트에 참여함으로써 공간이 더욱 빛나게 되죠. 예상치 못한 순간에 만나는 해프닝적 퍼포먼스도 반갑기는 하지만 그때그때 다른 프로그램을 운영하다 보니 만족도가 높은 전시 관람을 원한다면 꼭 홈페이지를 통해 이벤트 참여시간을 확인하고 가길 권해드립니다.

<에이-멜팅 팟 > 오프닝 파티 이미지 © 네버레스 홀리다

이 전시는 작품이 많기도 하고 공간에 대한 이해가 없으면 놓칠만한 것들도 많이 있습니다. 이왕 보실 거면 도슨트 설명과 함께 해보세요~ 작품이 더 가깝게 와 닿을 거예요.


M CONTEMPORARY 입구 이미지 © 네버레스 홀리다

M 컨템퍼러리에서 진행 중인 <강남 모던 -걸>은 수많은  사회적 제약에 갇혀 자유롭지 못했던 100년 전 여성의 모습을 그립니다.  주체적인 인격체로서 사회로부터, 자신으로부터 인정받고자 했던 여성상을 풀어내고 있는데 글쎄요.... 잘 와 닿지는 않습니다.

전시 이미지 © 네버레스 홀리다

이 전시 역시 '체험'이 주된 전시 요소로 작용하는데, 별도로 대여 의상(유료 25000-4만 원 선)을 입고 관람하는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전시 구조나 대부분의 작품 성향이 10-30대 여성을 타깃으로 하고 있는 데다가 요즘 흔히 쓰는 말로 '사진 맛집'이라서 사진 찍는 걸 좋아하는 분이라면 15,000의 입장료가 아깝지는 않겠지만 조용히 작품을 감상하고 싶다면... 사람이 적은 시간대를 찾아가는 게 좋을듯합니다.


학생 때 웨딩촬영차 서울에 온 외국 분들의 통역 알바를 했었는데, 그때 방문했던 촬영 스튜디오를 옮겨 놓은 듯한 느낌이 강하더라고요, 이곳은. 사진을 찍으면 잘 나올 수밖에 없는 소품들과 색상들의 전시 물품들이 공간마다 가득합니다. '모던-걸의 라이프 스타일' , '모던- 걸의 직업', '모던 걸이 거닐던 공간'이라는 주제로 공간 구분이 되어 있지만, 너무 화려한 전시 작품들의 색과 배치로 이 섹션 구분을 인지하면서 보는 분들이 많을 것 같진 않습니다. 또 전시 작품을 들여다보고 작가의 이름을 한 번 더 되뇌기보다는 분위기가 전환되는 전시 공간이 나올 때마다 인생 샷을 찍기 위해 다양한 포즈를 취하는 사람들을 쉽게 만날 수 있고요.


 시인이자 화가인 나혜석(1896 - 1948) , 성악가 윤심덕(1897 - 1926) , 수필가이자 미술평론가인 김향안(변동림)(1916 -2004) 등 역사로 기록된 여성 문화예술인을 전시의 소재로 가져왔지만 과연 이들을 이 전시를 통해 제대로 읽을 수 있었던 사람이 몇이나 되었을지 궁금합니다.  '여성'을 주제로 한 공간답게 여성 화장품 기업 CLIO의 후원을 받아 조성된 화장방 공간을 비롯해서 시각적인 즐거움을 주는 화려함이 앞서다 보니 정작 작품과 그 안에 담긴 내용이 잘 전달되지 않는 게 아쉽기만 합니다.

전시 이미지 © 네버레스 홀리다

전시를 찾는 이유 중에 꼭 '학습'이 포함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기획 의도와 시대 고증에 대한 텍스트가 지워진 채로 혹은 가려진 채로 진행되는 전시는 시대에 대한 이상한 환상을 불러일으켜 주지 않을까 염려가 되는 게 사실입니다.  역사 속 인물과 텍스트 역시 전시  곳곳에 담겨있지만 과연 그 숨겨져 버린 이야기와 암시들을 얼마나 찾아보셨는지도 궁금합니다. 다른 분들은 어떠셨는지 모르겠네요.


두 전시 중, 여러분들의 취향은 무엇입니까?




https://www.seoul284.org/%ED%98%B8%ED%85%94%EC%82%AC%ED%9A%8C/


#문화역284 #호텔사회 #강남모던걸 #철도 #체험전시 #Hotelexpress2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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