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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O Mar 16. 2021

에티오피아 국민은행과 딜이 가능할까

Structuring a Credit Facility

이번에는 야심차게 준비했지만 진척이 더딘 프로젝트 이야기를 하나 해 볼까 한다. DR Congo 글을 쓰면서 AfDB의 주력분야인 인프라 파이낸싱을 이야기를 했다면, 우리의 또 다른 주력 중 하나인 credit line 이야기. 이게 왜 주력이냐면, 매년 lending volume 기준으로 AfDB 전체 사업 포트폴리오의 굉장히 큰 비중을 차지하기 때문. 내가 참여한 프로젝트는 그 중에서도 에너지 서비스에 집중하는 credit line을 기획해 보려는 시도였다. 



Credit Line 


Credit line은 사실 굉장히 단순한 구조로, 그냥 대출 한도라고 생각하면 된다. 우리가 credit line 프로젝트를 한다고 하면 아프리카 지역 내 상업은행에 대출을 해 주는 프로젝트를 의미한다. 개인이 신용카드를 쓰면 카드 한도가 있듯이, credit line을 통해 한도를 설정해주면 그 내에서 은행들이 대출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상업은행들도 어디선가 자본을 조달해 와야 은행 업무를 할 수 있기 때문에, 아무래도 자본의 규모가 적고 리스크가 큰 아프리카 국가들 소재 은행들은 AfDB와 같은 DFI의 credit line에 많은 의존을 하는 편이다. (특히 USD/Euro와 같은 hard currency 자본 조달을 해야 할 경우)


기본적으로 은행이라는 기관은 돈이 필요한 모든 개인, 기업이나 사업에 투자를 할 수 있다보니 (대출상환 여력만 확실하다면) credit line도 최종 수혜자가 정해지지 않은 채로 집행되는 사업이다. 이런 이유로 credit line 사업의 development outcome에 대한 회의적인 비판이 있는 것도 사실인데, 한편으로는 큰 규모의 자본 공급을 통해 아프리카의 금융업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도 부정하기는 힘들다. (투입되는 돈이 있어야 시중에 돈이 돌 수 있다) 그 와중 많은 국제기구와 공여기관들이 특정 섹터나 계층에 집중할 수 있는 credit line을 디자인하기 위해 노력을 해 왔고, 그 결과 에너지 credit line, 마이크로파이낸스 credit line 등등의 모델이 등장하게 되었다.



Ethiopian Challenge


우리가 에티오피아 에너지 프로젝트를 디자인하면서 credit line이라는 구조를 선택하게 된 데에는 이유가 있다. 통상 에너지 프로젝트는 정부 차관을 통하거나, 인프라 project finance로 진행하거나, 에너지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업을 대상으로 바로 loan을 주거나 하는 방식으로 만들어지게 되는데, 우리가 초점을 맞춘 영역은 대형 인프라가 아닌 solar home system과 같은 제품을 판매하는 기업이었다. 


현재 아프리카의 solar home system은 pay-as-you-go (PAYG) 시스템을 장착한 스타트업들에 의해 주도되고 있는 상황이고 (시설 설치와 유지관리를 해 주고 2-3년에 걸쳐 판매대금을 받는 방식), 그 외에 중간 상인들이 제품을 수입해 와서 직접 판매하는 방법이 있지만 랜턴과 같은 저렴하고 단순한 제품이 아닌 이상 이용도가 높지 않은 편이다. 그 이유는 제품 초기비용 자체가 높은데다 설치와 유지보수를 개인이 직접 하기엔 다소 어렵기 때문. 


PAYG model for off-grid electrification (source: IRENA)


그런데 에티오피아는 다른 나라들처럼 PAYG solar home system 기업들이 활발히 진출해 있지 않다. 두 가지 이유가 있는데 1) 에티오피아에서는 금융기관이 아닌 회사가 PAYG와 같은 형태의 크레딧을 제공하는 것이 금지되어 있음, 그리고 2) 에티오피아 경제 전체적으로 외화가 너무나 부족하고 외국인/자본 소유 기업의 진입에 굉장히 많은 제약이 걸려 있음. 이렇다보니 해외 solar home system 스타트업의 진입이 사실상 막혀 있는 상황이고, 현지에서 이걸 수입해서 판매하는 무역업자들도 달러를 못 구해서 수입을 못 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에티오피아의 독특한 (= 해외자본을 환영하지 않고 사회주의의 흔적이 남아있는) 구조는 에너지 뿐 아니라 일상 경제에 전반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는데, 우리가 아프리카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다국적 기업들의 진입이 거의 막혀있는 것으로 직접 느낄 수 있다 (특히 통신 및 유통 분야). 다국적 기업도 없고 정부의 외화 컨트롤이 심하다보니 외국 물건을 구하기도 굉장히 어렵고, 이는 에티오피아에 거주하는 외국인들이 가장 불평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통신회사도 국영 에티오텔레콤 독점이다보니 인터넷 퀄리티가 아프리카 주변국에 비해서 나쁘고 비싼 것으로 알려져 있음. 그나마 통신분야는 현 Abiy 총리의 경제개혁 아젠다의 일환으로 개방이 이루어지고 있고, 해외 통신사 2-3곳에 license를 주기 위한 선정 과정이 진행 중이다. 에티오피아가 워낙 인구대국이다 보니 (아프리카 인구 수 2위) 어마어마한 이권이 걸린 사업이라 볼 수 있다. 



Energy Access Credit Facility


그래서 우리는 에너지 섹터에 초점을 맞추고 달러를 제공할 수 있는 credit line을 디자인하기 시작했다. 주 타겟층은 solar home system을 수입해서 판매하는 무역업 종사자들. 시중에 부족한 달러를 제공함으로써 이런 재생에너지 솔루션의 시장 진입을 촉진하는 데에 목표가 있었다. 추가로 solar home system을 구매하는 최종 사용자들에게도 론을 제공함으로써 (이건 현지통화 birr로) 이들의 초기 비용부담을 줄일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프로젝트의 핵심이었다. 최초로 월드뱅크에서 비슷한 구조의 사업을 정부 차관을 통해 에티오피아에서 진행했는데, 우리는 여기서 한 단계 나아가서 아예 commercial/private sector credit line으로 사업을 만들고 싶었다. 정부가 차관을 받아야 하면 결국 재정부담이 되고, 가능하면 그걸 피하는 게 규모를 스케일하는 데에도 도움이 된다. 


그렇게 사업을 함께 논의하기 시작한 대상이 Commercial Bank of Ethiopia - 에티오피아 업계 1위의 (국영) 상업은행. 제목에 에티오피아 국민은행이라 썼는데 그게 가장 가까운 비유가 될 것 같아서 그렇게 적었다 ㅎㅎ 실제로 어느 동네에 가도 웬만하면 branch를 찾을 수 있을 정도로 에티오피아 전국 방방곡곡에 깊이 파고든 은행이기도 하고, 자본 규모도 그렇고 국영 공기업이라는 점에서도 재무적 안정성이 높게 평가되었다. 에티오피아는 앞에서 열거한 이유로 인해 DFI들도 민간 섹터에 직접 투자가 어렵다보니 (특히 외화 리스크 때문에) AfDB도 다른 나라에서 늘상 하는 credit line조차 에티오피아 대상으로는 진행한 적이 없었다. 이런 리스크를 커버하기 위해 우리는 이 프로젝트에 guarantee를 제공할 용의가 있는 한 donor 기관과 함께 구조를 만들어가기 시작했다. 


완공되면 에티오피아 최고층 건물이 될 이 빌딩은 Commercial Bank of Ethiopia 소유이다


이 프로젝트를 하느라 여러 차례 에티오피아에 출장을 다녀 왔고, 아디스 아바바는 늘 즐거웠던 기억이 많다. 2020년 1월 말에는 모든 팀이 모여 현장실사 출장을 다녀왔다. Commercial Bank of Ethiopia 총재도 만나고 매니지먼트 팀과 연이은 미팅을 하면서 사업구조와 financial term들을 논의해 갔는데. 이게 그리 쉽지만은 않았던 것이, 에티오피아 은행들이 해외 금융기관에서 credit line을 받은 경험이 워낙 적다보니 우리가 제시하는 조건들에 대한 이견을 좁혀가는 과정이 다소 버거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금씩 진행이 되어가나 싶었던 이 프로젝트는, 바로 몇 달 뒤 COVID-19 사태의 직격탄을 맞으면서 잠정적으로 진행이 중단되었다. 우리에게 guarantee를 제공하기로 약속했던 donor가 (에티오피아 정부 요청으로) 코로나 긴급지원으로 자금 계획을 변경했고, 또 전반적인 경제 타격에 대한 우려로 긴급지원 자금이 아닌 이상 credit line과 같은 private sector loan의 진행이 잠정 중단되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몇 달이 흐르면서 모멘텀을 많이 잃었고, 1년이 지난 지금에 이르러서야 다시 프로젝트의 새로운 구조를 논의해야 하는 상황에 있다. 아프리카에서의 사업은 뭐든 쉽지 않은데, 이렇게 코로나라는 예상치도 못한 갑툭튀 사건이 터지니 더더욱 진척이 어렵다. 


2020년 1월 말 Project Appraisal Mission @ Addis Ababa. 이게 우리의 마지막 출장이 될 줄은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



Addis Ababa Snapshots


프로젝트 얘기와 별개로, 에티오피아는 몇 번 출장만 가 보았지만 정말 매력있는 나라이다. 대표적으로 꼽으라면 고산지대에 있어 정말 선선한 날씨, 에티오피아 정교회의 영향과 유럽 식민지배를 받지 않은 역사가 결합되어 아프리카 내에서도 굉장히 유니크한 문화와 전통, 그리고 현지에 깊이 뿌리내린 coffee culture. 어딜 가나 커피를 찾을 수 있는 게 에티오피아인데 덕분에 커피 러버라면 정말 즐겁게 방문할 수 있는 나라이다. 얇게 펴서 구워낸 인제라에 (먹어보면 한국의 술떡?과 비슷한 느낌) 여러가지 요리를 싸 먹는 에티오피아 음식도 정말 맛있음. 


출장으로 방문할 때면 에티오피아 정도면 살아도 괜찮겠다 싶으면서도 (심지어 에티오피아항공 인천 직항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에서 얘기한 이유들 때문에 막상 외국인이 살기에는 힘들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외국인 투자에는 닫혀있는 듯 보이지만 막상 중국의 자본은 어마어마하게 쏟아져 들어오는 나라. 1억 인구의 포텐셜을 바탕으로 무섭게 성장하고 있는 아프리카의 허브, 그래서 앞으로가 더 기대되는 나라이기도 하다. 


Coffee time & Food time
...and Show ti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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