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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반장 Jun 27. 2023

함께 갑시다

뭐라도 쓰려는 이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 유독 멀게 느껴집니다. 땅이 꺼지거나 내가 액체가 된다면 좋겠습니다. 오늘도 참으로 긴 하루였습니다.

바위같은 현실과 원망어린 시선, 차갑고 모진 말들은 한 번의 스침에도 상흔을 남깁니다. 그래도 어쩔 수 없습니다. 내가 만나는 사람들은 파도처럼 덮쳐오는 우연에서 삶을 구하지 못해 패닉에 빠져 있으니까요. 법과 규칙, 도덕만으로는 답이 나오지 않고, 사람들은 자꾸만 화를 냅니다. 못했다고 혼내고, 모자라다고 혼내고, 영특하게 시비 걸고 목청 좋게 소리치고. 제복을 입었다는 이유만으로 이러는 건 너무 가혹하지 않은가, 묻지도 못하고 ‘분노-받이’로 전락한 영혼이 처연하게 스러집니다. 이제 나에게 인간으로서 남은 것이 무에 있나 싶습니다.
  괴테의 「파우스트」에서 신은 악마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언젠가는 부끄러운 얼굴로 나타나 이렇게 고백하게 되리라. 착한 인간은 비록 어두운 충동 속에서도 무엇이 올바른 길인지 잘 알고 있더라고.’ 신은 오만방자한 악마를 미워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악마는 게으른 인간을 자극하고 일깨우기 위해 신이 인간에게 붙여준 적당한 친구라고 말하지요.
  현장의 혼돈 속에서 제가 따르는 한 줄기 빛은, 내 앞의 사람도 혼란스럽고 어두운 충동 속에서도 삶을 꿋꿋이 살아가려 애쓰는 인간이라는 믿음입니다. 그 순간의 민원인이 아무리 나를 미워하고 비난하며 뻔뻔하게 합리화를 일삼는다 한들 인간의 악은 나를 일깨우기 위함이라 다시 한번 그들의 말을 듣고, 욕구를 읽으려는 관용입니다. 그리고 어떤 혼돈 속에서도 현장의 중심에서 다시 생각하고 스스로 나아가리라는 용기입니다.
  나 또한 초라한 인간으로 쉽사리 미워하다가도, 기분은 흘려보내고 비뚤어지지 않은 영혼만 남겨 소름 돋게 불행한 얼굴들을 다시 봅니다. 혼란스러운 현실에서 분주하게 내뱉는 말과 행동이 타인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제복의 무게가 얼마나 무거운지, 그런 소름으로 글을 씁니다. 계획은 미뤄지고, 일은 느려지고, 조금 더 피곤합니다. 그 까슬한 시간을 오래 씹어 삼킵니다. 글을 쓰는 동안 마주하는 느린 시간 곳곳에 잘게 부수어진 비스킷 같은 소름으로 현장에서의 하루를 연명합니다.
글을 쓴다는 건 보따리 하나를 짊어지는 일 같습니다. 비바람이 몰아치고 눈보라가 할퀴어대도 내려놓을 수 없습니다. 분수에 넘치게  큰 보따리를 짊어지고 휘청거릴 때도 있지만 멈출 수도 없습니다. 끝내 당도한 곳이 어디든 보따리를 풀어 동료들과 나눌 것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 날을 그리며 뭐라도 쓰는 사람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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