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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반장 Jun 27. 2023

살풀이2

이미 나가야 할 이유와 집념이 있는 아이는 되돌리기 힘들다. 나락인 줄 알고 피해 갔던 고통들이 실은 모진 세상사 가난한 인생길의 완만한 초입일 뿐이었다는 사실을 아직은 알지 못한다. 무사히 떠도는 것이 나을까, 얼마간의 불행을 치르고서라도 되돌아오는 것이 나을까. 너를 이해한다, 집에는 언제 올 거니, 선의의 말은 무력하다. 숨을 수 있는 방을 주고, 밥을 주고, 담배를 주고 끝내는 돌아가지 않아도 될 이유를 만들어 주는 텅 빈 선의가 그들을 살게 한다.
  문자를 해도 답이 없다. 내게는 아이가 바라는 것이 없다. 어두워질 때쯤 일어나 수면바지를 입고 나가 담배 한 대를 태우고 라면 한 봉지로 허기를 달랠 수 있다면 돌아갈 이유도 없다. 쉼터는 요구하는 규칙이 많다. 외출도 못하고 담배도 못 태우고 원치 않는 아이들과 어울려야 한다. 집에는 밤낮으로 취해 있는 엄마와 우울증 약 없이는 살 수 없는 언니가 있다. 언니와 엄마는 자기 삶도 감당하지 못하면서, 아이한테만 가혹하다. 훔친 화장품으로 곱게 화장해서 밤거리의 사람들을 얼마간 속일 수 있다면 그것만큼 재밌는 게 없다. 생각해 보면 바라는 것도 별로 없는데 왜 세상은 자기를 내버려 두지 않는지 모르겠다.
  통화연결음은 계속 울린다. 그들은 내가 두렵지 않다. 우범소년이니, 분류심사원이니, 아이들도 들은 바는 있지만 나는 그런 역할이 아니다. 단련된 눈썰미와 재빠른 발재간으로 기똥차게 알아채고 나를 피한다. 수시로 가출하던 아이들이 어느 센터에만 가면 다소곳하게 머무르는데, 잘못했다가는 판사의 영장으로 자유를 박탈당할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아이에게 조금씩 길거리의 자유를 뺏어 사회에 통합하는 기쁨을 느끼게 해주려면, 긴 시간 인내가 필요하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인고의 기간을 견딜 수밖에 없게 만드는 아이의 공포심이다.
  기초 생활수급비를 더 받는다고 해서 아이의 용돈이 충분하지는 않을 것이다. 아이는 이미 성인문화에 익숙하다. 지역아동센터에 연계하든, 상담을 연계하든, 아이는 가지 않을 것이다. 이미 아이는 많은 일을 경험했다. 이제는 더 이상 취한 엄마도, 툭하면 죽는다는 언니도 두렵지 않다. 집을 나가서 스스로 개척한 세계가 있다. 아이가 내 전화를 받아야 할 이유가 무에 있을까.
  어제, 그저께, 지난주에 아이들을 만났을 때 보다 유독 마음이 괴롭다. 그저께 만난 아이는 천진하게 폭력의 역사를 털어놓는 바람에 그만 질려버렸다. 열차 시간도 잊고 빵이든 밥이든 잡히는 대로 두 손 가득 먹을 것을 들려 기차를 태워 보냈다. 아이를 보내고 허둥지둥 나가는데 길을 잘못들어 플랫폼으로 되돌아왔다. 날씨가 서늘했다. 이 아이들이 이런 불행을 겪어야 하는 이유가 뭘까. 사는 이유가 따로 없음을 모르지는 않지만 때론 신이 너무 무심해서 묻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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