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란 쿤데라
삶은 자아를 나르는 드라마다. 밀란 쿤데라가 <불멸>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자신의 일부 이미지로 자아상을 구축해 영원을 욕망하는 인간 군상이다. 우글거리는 기포처럼 무수히 생성하는 현재에서, 자아상으로 선별하는 이미지의 기준은 상상 속 타인의 시선이다. 이때 '시선'은 정신분석학자 라캉이 말하는 대타자, 즉 신과 문명이, 욕망의 대상으로 승인한다는 의미로서 쾌감을 느끼게 한다. 인간은 자신의 일부를 욕망하는 타인의 시선을 욕망하여 자신의 일부를 전체로 착각하는, 이미지의 쾌감에 중독되어 살아가므로, 진정 존재하는 행복을 느끼지 못한다.
내가 그저 존재하는 사람이라면, 존재의 행복을 아는 사람이라면 이렇게 분주하게 살지 않아도 될 것이다. 무의미의 허공을 누리지 못해 헛되고, 헛되고, 헛되도다, 말한다. 공허는, 무언가가 나에게 있어야 한다는 무언의 외침인데, 무엇이 그토록 있어야 한다고 착각하는가. 인간이 화를 내거나 슬퍼하거나 서글프다는 부정적 감정은 대부분 자아의 소유권 투쟁 때문이다. 인간은 인생 대부분을 이 세계에서 얼마큼이 자아의 땅인지 증명하는 데 쓴다.
9일 동안 매일 출근 상태로 독서모임, 글쓰기 모임, 명상 모임을 했다. 작은 패배와 사소한 배제, 일상적 소외를 두루 경험하면서 다른 맥락에서 나를 해석하는 '시선'을 구하러 다녔다. 조직의 기준에서 내가 열등하다고 해서 그 열등함을 '회피'하는 선택, 즉 우위에 있고자 하는 선택을 하는 것이 아니라, 조직의 논리 자체에서 벗어나 더 큰 맥락에서 나를 긍정해야 한다고 느꼈던 것이다. 그러나 그 또한 또 다른 자아상일 뿐이다. 거대한 허공을 견디지 못해 얇은 쾌락 조각을 핥으며 자아의 바위를 나르는 시시포스.
하찮은 나라도, 나는 이미 나고, 내가 아닐 수 없기에,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계획도 했어야 한다는 후회도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자연발생적인 흐름에 몸을 맡기고 부서지고 일그러진 깊은 골짜기를 받아들이고 싶다. 먹고 싶어서 먹고, 웃고 싶어서 웃는, 좋아서 좋고, 하고 싶어서 하는, 징그럽게 솔직한 아이의 욕망이 사랑스러운 건 '상상 속 시선'에 오염된 자의식이 없기 때문이다. 다소 원시적이고 이기적인 욕망에도 너그러워질 필요가 있다.
보잘것없어서 애써 쌓고, 하찮아서 쓸모 있어지려는, 그 대단한 선택들이 스스로를 자기 자신에게서 멀어지게 만든다. 우리는 아마도 영원히 만날 수 없을 것이다. 팽창하는 우주처럼 너와 나도 그렇다. 때로는, 진실로 가 닿고 싶어서, 아이처럼 사랑스러워지고 싶어서, 버려진 땅에 진공으로 존재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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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멸>, 밀란 쿤데라
9 그 부인은 예순이나 예순다섯 살 쯤으로 보였다.
10 그녀는 수영복 차림으로 폴 가장자리를 따라 수영 강사를 지나쳐 사오 미터쯤 갔을 때 문득 그에게로 고개를 돌리더니 미소를 지으며 손짓을 했다. 나의 심장이 졸아들었다. 그 미소, 그 손짓, 바로 스무 살 아가씨 같지 않은가! 그녀의 손은 눈부시도록 가볍게 날아올랐다. 마치 그녀는 장난하듯, 울긋불긋한 풍선 하나를 연인에게 날려 보낸 것 같았다. 비록 얼굴과 육신은 이미 매력을 상실했다지만. 그 미소와 손짓에는 매력이 가득했다. 그것은 매력 잃은 육신 속에 가라앉아 있던 한 몸짓의 매력이었다. 그 부인이라고 해서 자신이 이제 더는 아름답지 않다는 것을 모를 리 없을 테지만, 그녀는 그 순간만은 그 사실을 잊고 있었다. 이런 식으로 우리는 우리 자신의 일부를 통해서 시간을 초월하여 살기도 한다. 어쩌면 우리는 대부분의 시간을 나이 없이 살면서, 어떤 이례적인 순간들에만 나이를 의식하는 것이리라.
*우리 자신의 일부를 통해 시간을 초월해 살기 = 이미지 = 자아상
50 그녀는 사람들의 시선이야말로 몹쓸 압제자요, 흡혈귀의 입맞춤임을 깨달았다.
53 아녜스는 어렸을 때 자신이, 하느님이 자신을 바라보고 있다는, 끊임없이 자신을 바라보고 있다는 생각에 매료된 적이 있음을 생각해 냈다. 아마 그때 처음으로 그런 이상한 관능을 느꼈던 것 같다. 남이 자신을 본다는 데서 느끼는, 내밀한 순간들에, 보지 못하게 하고 싶은 내밀한 순간들을 보이고 있다는 데서 느끼는, 그렇게 시각으로 범해지는 데서 사람들이 느끼는 기이한 쾌감.
205 그의 이미지에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무슨 일이 생기긴 했으나 그는 그 일이 뭔지 알지 못했고 앞으로도 알지 못할 것이다. 이는 누구에게나 예외 없이 적용되는 법칙이다. 아마 우리는 왜, 그리고 어떤 점에서 우리가 타인들의 신경에 거슬리는지, 우리의 어떤 점이 그들에게 호감을 주며, 어떤 점이 우스꽝스러워 보이는지 영원히 알지 못할 것이다. 우리 자신의 이미지야말로 우리에게 가장 큰 미스터리인 것이다.
211 "좀 더 재미있고, 좀 더 젊은 방송을 내보내고 싶었나 보지." 하고 아녜스가 말했다. 그녀의 지적은 폴의 방송을 없앤 사람들을 비꼬아 줄 의도에서 나온 거였다. 그러고 나서 그녀는 폴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어 주었다. 하지만 그녀의 말은 절대 해서는 안 될 말이었다. 아녜스의 눈을 통해 폴은 자신의 이미지를 보았던 것이다. 이제 더는 젊지도, 재미있지도 않은 인물로 규정된, 모욕당한 한 남자의 이미지를 말이다.
267 베티나와 로라의 그 몸짓을 불멸에 대한 욕망의 몸짓이라 명명하자. 큰 불별을 갈망하는 베티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을 것이다. '나는 현재와 더불어, 현재의 온갖 근심과 더불어 사라지길 거부한다. 나는 나 자신을 초극하여 역사의 일부가 되고자 한다. 역사는 영원한 기억이기 때문이다.'
342-343 스무 살에 공산당에 가입하는 소년이나, 손에 총을 들고 게릴라에 합류하러 산속으로 가는 소년은 혁명가라는 자기 자신의 이미지에 매혹되었다. 그를 다른 사람들로부터 구분하는 것은 바로 그 이미지이며, 그를 그 자신이게 하는 것도 바로 그 이미지다. 그의 투쟁의 기원에는, 무수한 시선이 집중될 역사'라는 위대한 무대 위에 내보내기 (내가 서술한 그 불멸에 대한 욕망의 몸짓을 실천함으로써) 전에, 매우 분명한 색조를 부여하고 싶은 자신의 자아에 대한 불만스러운 격한 사랑이 있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미슈킨과 나스타샤 필립포프나의 예에서 보듯, 강렬하게
집중된 시선 앞에서 영혼은 끊임없이 늘어나고, 부풀고, 부피가 커지다가, 마치 휘황찬란한 조명을 발하는 기구처럼 마침내 창공으로 날아오른다는 것을 안다.
사람들로 하여금 주먹을 들게 하고, 총을 잡게 하고, 정당한 혹은 부당한 명분을 옹호하도록 자극하는 것은 이성이 아니라 이상 팽창된 영혼이다. 바로 이것이 '역사'의 모터를 돌아가게 할 수 있었던 연료요, 이것이 없었다면 유럽은 잔디밭에
누워서 하늘에 떠 있는 구름들을 권태롭게 바라만 보았을 것이다.
406 그녀는 주위의 아무것도 보지 않았고, 지금이 여름인지 가을인지 겨울인지도 몰랐으며, 걷고 있는 곳이 해변인지 공장인지도 모른 채 걸어갔다. 그렇게 걸은 것은 불안이 그녀를 괴롭힐 때 영혼은 움직임을 요구하여, 그녀가 제자리에 가만히 있을 수 없게 한 때문이었다. 가만히 있으면 고통이 끔찍할 만큼 심해지는 까닭이었다.
406-407 그녀는 도로 가장자리 보도 위를 걸으며 여전히 아무것도 보지 못한 채, 늘 똑같은 모욕의 이미지들만 되돌려주는 자기 영혼의 밑바닥만 뒤적거렸다. 그녀는 그 이미지들에서 시선을 뗄 수가 없었다. 이따금 고막을 때리는 오토바이의 연속적인 폭발음이 지나칠 때만, 그녀는 외부세계의 존재를 알아차렸다. 하지만 그 세계는 어떤 의미도 없었다. 자기를 걷게 해 준다는 것 외에 다른 어떤 이점도 없었다. 가득한 영혼의 고통을 덜어 주리라는 바람으로, 한 장소에서 다른 장소로 이동하게 해 주는 것 외에 다른 어면 이점도 없는 순수한 공허에 불과했다.
409 자신이 동의하지 않는 세상에서 어떻게 살 수 있는가? 타인들의 기쁨과 괴로움을 자기 것으로 하지 못하면서, 그들과 한 통속이 되지 못하면서, 어떻게 그들과 함께 살 수 있는가?
411 그녀는 마지막으로 시골 산책을 나갔던 날 오후가 끝나 갈 무렵에 경험한 기이한 한 순간을 떠올려 보았다. 그때 그녀는 어느 시내 앞에 이르리 풀발에 드러누웠다. 오랫동안 그녀는 마치 시냇물이 자신을 뚫고 흘러서 그녀의 자아라는 온갖 괴로움과 더러움을 씻어 준다고 느끼머 거기에 그렇게 누워 있었다. 기이하고도 잊을 수 없는 순간이었다. 그녀는 자아를 망각했고, 자아를 잃어버렸으며, 자아로부터 해방되었다. 바로 거기에 행복이 있었다.
411 인생에서 견딜 수 없는 것은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자아로 존재하는 것이다.
412 산다는 것, 거기에는 어떤 행복도 없다. 산다는 것, 그것은 이 세상에서 자신의 고통스러운 자아를 나르는 일일 뿐이다.
하지만 존재, 존재한다는 것은 행복이다. 존재한다는 것, 그것은 자신을 샘으로, 온 우주가 따뜻한 비처럼 내려와 들어가는 돌 수반으로 변모시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