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약해질 때면 내가 하찮다는 기분에 시달린다. 소멸할 것 같은 기분, 검은 물속에 잠긴 기분. 실은 휴가 한 번 없이 부산 전역에 강의하는 살인적인 스케줄 이후 가고자 하는 사람들의 열망, 승진하지 않은 대다수가 공유한 달뜬 패배의식, 떠난 빈자리의 한기, 새로운 사람들과 교류하는 날 선 애정에 바스러졌는지도 모른다. 오래도록 감기를 앓고 있다.
내가 조금 망가져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툭툭 끊어지듯 사람에게 서운해했다. 너한테 내가 그렇게 하찮아? 이런 질문이었다. 그렇게 몇 통의 전화를 거절한 사람이 있었고, 2주간 사적인 말이라고는 전혀 하지 않고 일만 한 사람도 있었다. 작은 질투가 모여 또 한 번 툭 끊어지고, 엉엉 울고 싶은 기분에 이불보에 묻혀 있다가 일어났다. 나는 잘 울지 않는다.
망가져도 하루를 살아내야 한다는 것을 알 정도는 된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아도 책을 뒤적이고 가끔 운동을 한다. 사람들에게 상처 주는 말은 하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자주 웃는다. 엉금엉금 기어서라도 일 하러 간다.
나를 보살피는 일은 아직 요원하다. 아무리 애써도 이토록 모자라서, 미안하다.
꽃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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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하루치의 낙담>, 박선영
p57 내가 진실만을 썼음에도 불구하고 글과 나라는 인간 사이에 괴리가 발생하는 건 진실의 본질적 속성, 바로 총체성 때문이었다. 진실이란 언제나 총체적이다. 부분적 진실이란 거짓이기 십상이며, 자신의 선을 위장하기 위한 소재일 뿐이다.
p69 중요한 건 지금 사람들이 무슨 얘기를 하고 있느냐가 아니다. 지금 사람들이 안 하고 있는 얘기가 무엇인지 알아내는 게 훨씬 더 중요하다. 대체로 진실은 거기에 있다.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입을 꾹 다문 채 있는 사람들..... 하지 않은 말들의 기미를 알아차리려 귀를 쫑긋 세우기를 멈추는 순간, 당신의 몰락은 예정돼 있다. 사람들이 말하기 시작했을 땐, 이미 늦은 것이다.
p82 긴 세월 지지고 볶은 인간관계들을 통해 내가 내린 결론은, 인간들 사이의 모든 행위는 궁극적으로는 자기가 사랑받고 있는지 확인하기 위한 것이라는 점이다. 동물인 우리들의 불가피한 본능이다. 생존을 위한 우리 뇌의 배선이 그렇게 이루어졌다. 내 편인지 아닌지, 나를 해칠 것인지 아닌지 알아내야만 한다.
p83 사랑받고 있다는 것은 그가 나를 해치지 않으리라는 가장 강력한 증거이므로, 인간이란 동물은 그 증거를 찾아 영원히 황야를 배회하게 마련이다.
p86-87 직장생활의 가장 큰 즐거움은 우정의 쾌락이었다.
p88 우리는 멀어지고 있다. 슬프게도 애달프게도, 그 일은 벌어지고 있다. 너무 많은 맥락들이 우리 사이에 개입해 있고 서로가 모르는 너무 많은 일들이 각자에게 벌어지고 있다.
p89 멀어진다고 해서 좋아하는 마음을 그냥 내버려 두면 안 된다. 늘 청결한 욕실을 원한다면 청소라는 노력이 부단히 필요한 것처럼, 멀어지는 마음에도 곰팡이가 피지 않도록 햇별을 자주 쐐줘야 한다. 가까이 있는 동안은 이러저러한 사회정치적 자력으로 인해 접시가 잘 깨지지 않는다. 어떻게든 좋은 쪽으로 관계를 유지하게 마련이다. 하지만 떨어지고 나면 이런 저런 실금들이 총궐기하면서 관계의 청산을 요구한다. "이런 일들이
있었잖아요! 그만 끝내라고요!" 그렇게까지 하면서 굳이 만나고 싶지는 않다는 마음이 들기 시작하면, 당신은 실금들의 궐기에 패배하고 만 것입니다. 지고 싶지 않다면 전화기를 들어야 하고, 메시지를 보내야 하며, 가끔은 선물을 고르고, 편지를 써야 합니다. 내가 미처 못했을 땐 아무리 바빠도 기쁘게 연락을 받아야 하고, 정말 바빠서 연락을 놓쳤다면 반드시 콜백을 해야 하며, 예기치 못한 편지나 선물에는 산토끼처럼 깡충깡충 뛰면서 반색을 해야 합니다. 이것이 멀어지기의 기술입니다.
p97 진득하니 기다리지 못한 나의 밭은 성미가 서둘러 타인을 매도하고 등을 돌리게 만들었다.
p106 나는 삶을 잘 살고 싶다. 진짜 삶을 살고 싶다. 삶의 비밀을 속속들이 알고 싶다. 삶의 폭력을 현명하게 잘 헤쳐나가고 싶다. 그러려면 슬퍼야 한다. 슬픔에 귀 기울여야 한다. 슬픔만이 나를 그 길로 안내할 수 있다.
p107 삶의 고통 속에서도 인생은 아름답다는 것을 깨닫는 것. 운명이 아무리 참혹하게 인간을 파멸시켜도, 인간은 결코 파괴되지 않는 생명의 의지를 갖고 있다는 것. 그것이 니체가 말한 그리스적 명랑성이다.
p108 인간이란 운명에 패배하는 존재지만, 그럼에도 자기 자신만은 빼앗기지 않는다는 것. 극도로 비극적인 이야기 전반에 미묘한 명랑성이 감돌고 있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p109 내일 당장 어떤 운명이 들이닥칠지 모르는 생의 덧없음, 진실을 꿰뚫어 본 눈에 영원한 반점으로 맺히는 존재의 공포와 부주리, 이윽고 엄습하는 구토. 허나, 그리스적 명랑성이 삶의 이 참혹을 직시하게 하고, 인간으로 하여금 앞으로 나아가게 만든다.
p109 슬픔 수집가들은 대체로 농담 애호가다. 슬픔의 한복판에서 내 소중한 사람들은 눈물이 들통날 때마다 기가 막힌 농담을 던지곤 한다. 세계는 나를 파괴할 수 없다는 듯이, 나는 결코 부서지지 않는다는 듯이.
p151 나는 어느 것에도 지지 않기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는 부류의 사람이었다. 실패하지 않기 위하여 그 무엇도 도모하지 않는 비겁자. 잘할 것 같은 것만 하며 살다 보니 생이 질식할 듯 지루하고 답답해진 사람. 가난하여라. 네 영혼은 이토록 초라하고 가난하여라.
p169 내 흘러넘치는 사랑은 어떤 둑으로도 가둘 수가 없어서, 자꾸 네게 범람했다. 너에게만은 내 사랑을 철회할 수 없어서, 자꾸 네 방 앞을 기웃거린다. 너무 많은 사랑이 자꾸 애원하고 소리치고 엎드려 기게 만든다.
p180 공론장은 우리가 못을 벗는 무대가 아니다. 개인의 이익을 공동체의 이익과 통합하기 위한 여론 형성의 공간이며, 그렇게 형성된 여론을 통해 주권자인 우리는 대의민주주의 하에서 주권을 행사한다.
p328 아무것도 아니어도 나는 괜찮다. 이대로 끌이어도 내 생은 괜찮다. 실패해도 나쁘지 않다. 사소한 선행과 사소한 보람과 사소한 기쁨들로 저 푸른 선인장처럼 나는 직립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