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의 선물>

은희경

by 김반장

소설 첫 장에는 <새의 선물> 시 전문이 있다.

아주 늙은 앵무새 한 마리가
그에게 해바라기 씨앗을 갖다 주자
해는 그의 어린 시절 감옥으로 들어가 버렸네

서른여덟의 그녀는 '열두 살 이후 (나는) 성장할 필요가 없었다.' 얼어붙은 마음이 수채구멍을 드나드는 쥐처럼 어른거린다. '나는 쥐를 보고 있다'는 소설의 첫 문장과 연인의 손 끝에 마음속 열기를 느끼지만 다시 '상관없다.'며 쥐를 보는 마지막에서, 그녀의 열두 살은 끝내 그녀의 삶을 냉소에 유폐했음을 보여준다.
열두 살이었던 1969년, 엄마는 미쳐서 죽고 아빠는 일하러 떠나 할머니 집에 맡겨진 어린 소녀는 웬만한 어른보다 조숙했다. 어른들 말 한마디에 미묘한 진실을 알아차렸으며 배신이 본질인 사랑의 배타적 속성을 깨닫는다. 우연 속에 사랑이 피어나고 소유했다는 그럴듯한 환상에 도취되었다가 슬픔으로 그 값을 치르고야 마는 삶의 장난질 속에서, 그녀는 관찰하는 자아와 경험하는 자아를 분리시켜 삶이 맡긴 역할극을 해내고 사건의 인과와 자신의 감정을 담담히 서술한다.

그녀에게 인생을 알려준 건 여성들의 삶이었다. 고된 밭일과 집안 어른 역할을 두루 하는 할머니, 미운 정 고운 정 다 들게 하는 철딱서니였다가 아픔을 겪고 어른이 되어가는 이모, 양장점 군식구에게 겁탈 당해 결혼하고 노동과 육아, 남편의 불륜과 폭력을 견디는 광진테라 아줌마, 죽은 남편처럼 장군이 될 거라고 아들을 떠받들면서 (남편은 장군이 아니었고, 실로 훌륭한 군인이었는지도 알 수 없지만) 염소똥 한약재로 아들을 놀림거리로 만들어 버리는 옆집 장군이 엄마.
거기에 더해 결혼으로 신분 상승을 꿈꾸다가 은수저를 챙겨 야반도주한 미스리, 이모 대신 공장에 취업했다가 화재사고로 목숨을 잃은 경자이모, 권력자 남성에게 성착취를 당하고 그 아내에게 머리를 뜯기는, 그 시절 노동자 처녀가 겪음직한 불운에 쫓겨 다니는 혜자이모 모두, 그녀의 잠재적 인생이었다.
그녀에게 '삶이란 언제나 양면적'이었고 '장난기와 악의로 차 있었다.' '그러니 상처받지 않고 평정 속에서 살아가려면 언제나 이면을 보고자 하는 긴장을 잃어서는 안' 되었다. 그 긴장이 그녀를 열두 살의 감옥에 가두었던 것이다. 그녀는 사랑에 의미를 부여하고 불행을 견디는 전통적 여성상에서 벗어나 삶의 이면을 보고 언제든 버스를 타고 떠날 수 있는 사람이기를 선택했다. 그녀의 삶은 무의미의 항해, 정박할 곳이 삭제된 항로 위의 고단한 여정이다.

그러나 그것이 삶의 완성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녀의 성장은 열두 살에 머물러 있다. 그녀는 미운 정을 알지 못한다. 어리석은 희망과 배신의 고통, 용서하지 못한 회한은 알지 못한다. 사랑의 급류에 한 걸음 물러서서 공포를 뚫어져라 바라볼 뿐, 봄으로써 극기할 뿐, 삶에 처절하게 깨지고 망가져 본 적은 없다. 그녀의 삶에서 반복되는 양상은 사랑 근처에만 머물며 상처받지 않는 게임을 하는 것이다. 그녀의 사고 회로는 '상관없다' 말하며 철저히 상황과 감정을 통제하려는 전략으로 이루어져 있다.
프로이트는 물건을 멀리 던졌다가(부재) 다시 끌어오기(재현)를 반복함으로써 자신의 엄마의 부재에 대한 공포를 통제가능한 것으로 인식하려는 아기의 행동에서 반복강박을 발견했다. 그것이 트라우마 증상 연구의 시작이었다. 트라우마가 향하는 곳, 끝내 이루지 못해 그 언저리에서 같은 기억을 반복하게 되는 그 목적지는 '죽음(부재)'이다.
사랑은 어떤 의미에서 죽음과 같다. 사랑하는 이는 타인이라는 불확실성의 땅에 자신을 노출시키며, 자아를 깨부수고 타인을 전적으로 수용해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변모해야 하므로. 그리고 죽음은 그 자체로도 삶을 뒤흔드는 사건이다. 소설의 끝에서도 사랑의 고통이 죽음으로 희미해지고, 실은 모두 우연에서 비롯된 것임을, 영원한 기쁨도, 고통도 없음을 보여준다. 소설 내내 초연하던 그녀도 죽음의 공포 앞에서는 몸을 떤다.
삶은 계속되었고, 고통스러운 사랑도, 억울한 죽음도, 지나가면 그뿐이었다. 삶이 농담과도 같아 그녀는 냉소에 자신을 가두었다. 그녀는 사랑이 두려워 사랑 근처에서 배회한다. 결국 그녀의 허무는 트라우마 증상이다. 그녀가 머무르는 열두 살의 기억은 사랑이라는 목적지에 가 닿지 못한 반복강박, '어린 시절 감옥'이다. 그 회색지대가 수채구멍의 쥐처럼 서른여덟이 된 그녀의 시선을 사로잡고 있다.

열두 살 이후로 성장할 필요가 없었다는 그녀의 말과는 달리, 삶의 완성은 없다. 허무도, 냉소도, 한 순간 창백하게 박제된 삶의 단면이 될지언정, 삶 그 자체가 될 수는 없다. 사랑하되 미워하고 배신하되 사랑하고 끝내 이별하고 상실했다가 그러면서 죽어가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있는 것이 삶이기에, 쇠락하며 시절의 감옥에서 걸어 나오는 것 또한 성장이 아닐까.



p123 사람을 좋아하는 감정에는 이쁘고 좋기만 한 고운 정과 귀찮지만 허물없는 미운 정이 있다. 좋아한다는 감정은 언제나 고운 정으로 출발하지만 미운 정까지 들지 않으면 그 관계는 오래 지속될 수가 없다. 왜냐하면 고운 정보다는 미운 정이 훨씬 너그러운 감정이기 때문이다. 또한 확실한 사랑의 이유가 있는 고운 정은 그 이유가 사라질 때 함께 사라지지만 서로 부대끼는 사이에 조건 없이 생기는 미운 정은 그보다는 훨씬 질긴 감정이다. 미운 정이 더해져 고운 정과 함께 감정의 양면을 모두 갖춰야만 완전해지는 게 사랑이다.

p322 어쩌면 이모의 내면에는 수많은 다른 모습들이 함께 들어 있는지도 모른다. 그 모습들 중에
하나씩을 골라서 꺼내 쓰는 제어장치, 즉 이모의 인생을 편집하는 장치가 지금까지와 다른 방식으로 작동되면 이모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대체 우리들이 나라고 생각하는 나는 나라는 존재의 진실에 얼마나 가까운 것일까.

p327 성숙한 어른이 슬퍼하는 것보다는 철없는 아이의 슬픔은 더 마음을 아프게 한다. 그러므로 철없는 사람은 마음껏 철 없이 행동하면서도 슬픔에 닥치면 불공평하게도 더 많은 사랑과 배려를 받는 것이다. 성숙한 사람은 으레 슬픔을 이겨낼 수 있으리라고 여겨지기 때문에 그 같은 배려를 받지 못한다. 성숙한 사람은 언제나 손해이다. 나는 너무 일찍 성숙했고 그러기에 일찍부터 삶을 알게 된 만큼 삶에서 빨리 밑지기 시작했다.

p333 삶이 내게 할 말이 있었기 때문에 그 일이 내게 일어났다.

p348 그러나 그뿐이었다. 이 모든 것은 천천히 잊혀갔다. 결코 잊히지 않을 것 같았던 일도 있었지만 놀랍게도 그것 역시 너그러운 세월에 의해 그런대로 익숙해지게 되었다.

p362 죽은 이선생님이 이런 얘기를 했었다.
숲 속에 마른 열매 하나가 툭 떨어졌다. 나무 밑에 있던 여우가 그 소리에 깜짝 놀라 도망치기 시작했다. 멀리서 호랑이가 그 여우를 보았다. 꾀보 여우가 저렇게 다급하게 뭘 때는 분명 굉장한 위험이 있는 것이다. 그래서 호랑이도 뛰기 시작했다. 호랑이의 뛰는 모습을 숲 속 동물들이 보았다. 산중호걸인 호랑이가 저렇게 도망을 칠 정도면 굉장한 천재지변이거나 외계인의 출현이다. 그래서 숲 속의 (363) 모든 동물이 다 뛰었다. 온 숲이 뒤집혔고 숲은 그 숲이 생긴 이래 최대의 위기를 맞았다.
삶도 그런 것이다. 어이없고 하참은 우연이 삶을 이끌어간다. 그러니 뜻을 캐내려고 애쓰지 마라. 삶은 농담인 것이다.

p387 불현듯 옆으로 시선을 돌려본다. 줄곧 나를 쳐다보고 있었던지 곧바로 그의 눈이 마주쳐온다. 그가 천천히 손을 뻗어 내 입술에 묻은 맥주 거품을 닦아준다. 손 끝에 온기가 있다. 나는 그의 눈 속을 한참 동안 쳐다본다. 건조한 성격으로 살아왔지만 사실 나는 다혈질인지도 모른다. 집착 없이 살아오긴 했지만 사실은 집착으로써 얻지 못할 것들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짐짓 한걸음 비껴서 걸어온 것인지도 모른다. 고통받지 않으려고 주변적인 고통을 견더왔으며 사랑하지 않으려고 내게 오는 사랑을 사소한 것으로 만드는 데에 정열을 다 바쳤는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상관없다.
지금 나는 무궁화호를 보고 있다.
90년대가 되었어도 세상은 내가 열두 살이었던 60년대와 똑같이 흘러간다. 열두 살 이후 나는 성장할 필요가 없었다.
나는 무궁화호를 보고 있다.
나는 아폴로 11호를 보고 있다.
나는 쥐를 보고 있다. 수채구멍과 변소 구덩이를 오가는 쥐의 태연하고 번들번들한 작은 눈, 긴 꼬리의 유영, 그리고 그 심각하지도 비루하지도 않은 회색의 일과들을.(끝)

매거진의 이전글<그저 하루치의 낙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