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경험을 특별하게 만들고자 하는 현대인들의 니즈(needs)를 충족시키기 때문이기도 하고, 혼자 책을 뒤적거리며 읽을 책을 선택하는 것보다 조금 더 역동적인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아마도 타인의 '책처방'은 도돌이표처럼 돌고 있는 내 취향을 벗어나 '번하지 않은' 독서를 가능하게 해 주지 않을까 싶다.
무엇보다 좋은 점은 손톱에 일어난 거스러미처럼 모른 체하자니 불편하고 떼어버리자니 상처가 커질 것 같은 우리의 결함들, 일상적 불편함들, 예컨대 감정적 어려움들에 대한 '처방'으로서 책을 바라보는 관점이다.
책이 우리 삶에 어떤 의미인지를 잘 보여주는 단어인 것 같다.
그렇다면 우울할 때 책을 처방받으면 어떤 점이 좋을까?
우울할 때 책을 읽으면 좋은 점 3가지가 있다.
첫 번째, 성취감을 느끼게 해 준다.
우울한 사람은 자신을 좋아하지 않는다. 자신이 세상에서 쓸모없는 존재라고 여기며 더 심해지면 자신을 혐오하거나 극단적 선택을 하고 싶어질지도 모른다. 이때 일상적으로 해낼 수 있는 작은 성공들에 집중하는 것이 우울증을 극복하는 데 도움이 된다. '어이쿠 내가 아침을 먹었네. 아침에 일어나기도 힘들었을 텐데, '와 같은 성공이라던가, '어이구 내가 산책을 30분이나 했네. 나가는 것 자체가 어려운데.'와 같은 성공들이 있을 것이다. 그런 작은 성공들이 나를 괴롭혔던 부정적인 생각을 긍정적인 방향으로 전환해 준다.
책을 읽는 것도 마찬가지다. 방바닥에 누워 자극적인 영상을 보고 싶은 욕구를 이겨내고 활자를 읽는다는 것은 극기가 필요한 작은 성공이다. 또한 책 읽는 것을 훌륭한 것으로 여기는 사회문화적 환경 덕분에, 세상 사람들에게는 책을 읽으면 그 자체만으로도 뿌듯한 감정이 드는 심리적 회로가 설정되어 있다. 책을 읽으면 느껴지는 뿌듯함. 그것이 성취감이고 우울한 사람의 자존감 나무에 물을 주는 감정이다.
두 번째, 셀프 진단. 즉 현재의 마음을 정의할 수 있는 '언어'를 찾게 해 준다.
사람이 우울한 감정을 느끼면 대부분 무기력해지고 집중력과 기억력이 낮아지는 등 어느 도 공통적인 증상이 나타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울이 다 같은 모습으로 찾아오는 것은 아니다. 100명에게는 100가지의 우울이 있다. 우울증 극복의 첫 단계는 '자신만의 우울'을 말로 표현해내는 일이다.
실제로 심리 담을 받을 때도 내 감정과 그 감정을 촉발하는 사건을 언어화하는 것부터 시작한다. 이때 자신의 이야기를 하지 못하는 사람은 전문가도 치료해 주기 힘들다. 그래서 언어능력이 부족한 어린 아이나 노인, 장애인들의 우울증 진단과 치료가 힘든 것이다.
'자신만의 우울'을 표현할 수 있는 언어가 한정적이라면 인간은 화가 나고 답답함을 느낀다. 말을 못 하는 아이가 우울하면 괴성을 지르거나 물건을 던지듯, 자신의 언어가 없는 사람은 우울해도 우울하다 말하지 못하고 술을 마시거나 중독, 폭력성과 같은 문제를 보일 가능성이 크다. 그렇기에 우울할 때 책을 읽고 자신의 마음을 정의할 언어를 찾는 과정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책을 읽으며 내 마음에 와 닿는 언어를 찾으면 그것만으로도 우울감이 어느 정도 해소되는 부분도 있다. 왠지 모르게 우울한 감정을 느끼는 사람이 있다고 생각해보자. 그 사람이 우연히 지하철 벽면에서 '내 마음은 늘 겉돈다’ 하는 한 구절을 읽고 감동을 느꼈다. 그러면 무슨 일이 일어날까? 그 사람은 아마 그 순간 자신이 외롭고 우울하다는 것을 이해받는 것 같은 기분이 들 것이다. 더 나아가 '과거나 미래 모두 불건전하다. 오직 현재만이 건전하다'(붓다에게 배운 마음 치료 이야기,전현수)와 같은 글을 보고 회복의 실마리를 찾을 수도 있을 것이다.
세 번째,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을 합리적으로 바꿔준다.
모든 사람에게는 세상을 바라보는 자신만의 방식이 있다. 이것을 세상을 바라보는 틀 혹은 구조, 즉 스키마(schema)라고 한다. '아파도 아프다 하지 못하면(최기홍)'이라는 책에서는 스키마를 '마음이 쓰는 안경'이라고 정의한다. 이 스키마는 각자 경험하는 환경과 자신의 타고난 성향이 상호작용 하며 형태를 바꾼다. 이때 스키마가 유연하게 변화하지 못하면 편견이 생겨난다.
편견은 세상을 보는 방식이 굳어진 것이다. 보통 편견은 동일한 문화권의 타인에게서 오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면, 한국 문화권에서 내가 가지는 편견은 '학교를 꼭 졸업해야 한다' '직장생활을 하며 자기주장을 내세워서는 안 된다.' '결혼 적령기에 결혼을 해야 한 다' 등등이 있을 것이다.
우울한 사람의 내면에 있는 편견들은 자기 파괴적이다. '절대 ...해서는 안돼.' 혹은 '꼭 ... 해야 해.'라는 편견을 현실에서 이루지 못했을 때 특히 그렇다. '학교를 꼭 졸업해야 한다'라는 편견이 있는데, 학교폭력으로 학교를 중도에 그만둬야 하는 상황이 생긴다면 자신이 한심하게 느껴질 것이다. '직장생활을 하며 자기주장을 내세워서는 안 된다.'는 편견을 가지고 있는데, 부당한 일을 당한다면 무기력하게 느껴질 것이다. '결혼 적령기에 결혼을 해야 한다.'는 편견이 있는데, 결혼 시기가 늦어진다면 불안하고 두려워질 것이다. 그러다 보면 편견이 자기혐오로 이어지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이 알고 있듯, 이러한 편견들은 매우 비합리적이다.
이때 이 비합리적인 편견들을 깨부수고, 세상에 대한 안경을 고쳐 쓰도록 해주는 것이 바로 책이다.
밀란 쿤데라는 '소설은 도덕적 판단이 중지된 땅이다'라고 했다. 도덕적 판단이 중지된 문학의 세계에서 인간의 삶을 엿보면, 사람을 이해하게 되고 내 안의 편견도 녹아든다. 타인을 이해하게 되면 나도 이해하게 되는 것이다. 더 나아가 사회과학분야의 책을 읽으면 합리적인 판단력이 생겨나게 되고, 우울한 뇌가 시끄럽게 떠들어 대는 소리를 변별해 낼 수 있다. 이 모든 것들은 책을 읽음으로써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다.
책을 읽는 것은 매우 피곤한 일이다. 글자를 한 자 한 자 읽다가 갑자기 딴 생각이 들어 눈이 허공을 헤맬 때도 있고, 아무리 열심히 읽어도 진도가 빨리 나가지도 않는다.
특히 우울한 사람은 밥 먹는 것도 잠자는 것도 힘들고 무기력해져서, 책을 읽기란 불가능에 가까운 일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럴 때일수록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는 우울이 지금 무언가 멈춰야 할 때라는 것을 알려주는 경보음이기 때문이다. 무언가 잘못하고 있다고, 자신을 너무 몰아세우고 있다고, 그만 쉬어야 한다고, 자신을 돌보아야 한다고 쨍그렁거리며 'Help me'를 외치고 있는 것이다.
이럴 때 하던 것을 멈추고, 책을 펴고, 천천히 한 글자 한 글자를 곱씹어 보면, 불안한 마음에 바쁘게 자신을 몰아붙였던 예전보다 자신이 더 나아지고 있음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