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지 않기 위해 쓰는 글
어느 경찰관의 부끄러운 이야기
"온갖 아름다움이란 것이 일시적이고 다만 얼마 동안 빌려온 것이라는 것을 알아버린 사람, 그리고 우리가 인간들 틈이나 나무와 극장과 신문 사이에 있으면서도 마치 차가운 달 표면에 앉아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고독하다는 것을 알아버린 사람은 누구나 다 우울하지..(중략).. 우울은 인식의 시초일 뿐이야."
- 삶의 한가운데(루이제 린저)-
세 가지 우울이 있다. 몸이 경직됐을 때 오는 우울, 마음이 소진됐을 때 오는 우울, 삶이 우리에게 던지는 우울. 첫 번째 우울은 휴식과 이완이 필요하다. 두 번째 우울은 혼자만의 자유가 필요하다. 그리고 세 번째 우울은 고독만이 답을 줄 수 있다. 세 번째 우울은 적당히 산책을 하고 따뜻한 물에 입욕제를 풀어 목욕을 하고 달콤하고 새콤한 것을 찾아 오물거려도 나의 발치에서 떠나지 않는다. 약을 먹고 충분히 잠을 자고 건강한 음식으로 위장을 채워도 담담하게 내 곁에 있다. 되돌릴 수 없는 시간 속에 소중한 것을 놓고 왔을 때, 예컨대 이별과 상실 같은 것, 반짝이는 것이라 믿고 달려가던 삶의 이정표가 사라졌을 때, 내 존재의 가장 가치로운 것을 잃었을 때, 쇠락해져 갈 때, 우리는 세 번째 우울을 느낀다.
"참으로 부끄러운 인생을 살았습니다." - 인간실격(다자이 오사무)-
세 번째 우울은 수치심과 함께 온다. 그 사람에게 더 잘해줄 걸. 그때 한 번 더 도전해 볼 걸. 그들과 더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낼 걸. 두려워하지 말 걸. 만 가지 후회들과 함께 되돌릴 수 없는 시간 속의 그릇된 선택들을 미워하고 제대로 된 선택을 하지 못한 자신을 부끄러워한다. 용서하지 못한 자신이 몹시도 부끄러워서 사람들은 그렇게 시큰둥한 사람들을 붙잡고 열렬히 충고하는 것이다. 자신이 가지 못한 길을 아까워하며 충고하거나, 자기가 지나온 길이 유일한 길인 듯 허풍 떨며 충고하거나. 현상은 달라도 본질은 같을 터이다.
오늘은 달이 유난히 붉었다. 회색빛 구름에 포개어져 있는 붉은 달이 부끄러움을 닮았다.
얼마전 우연히 정약용을 만나고 며칠간 약도 듣지 않는 우울에 시달렸다.
조선 후기 정조시대 실학자였던 그는 조정에서 내쳐져서도 읽고 쓰는 일을 게을리하지 않았고 500여 권의 책을 저술했다. 그는 아들에게 말했다.
“진실로 너희들에게 바라노니, 항상 심기를 화평하게 가져 중요한 자리에 있는 사람들과 다름없이 하라. 하늘의 이치는 돌고 도는 것이라서, 한번 쓰러졌다 하여 결코 일어나지 못하는 것이 아니다.”
세상의 변두리에서 고독의 장막을 두른 그의 삶은 우울증으로 휴직한 나의 상황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상처에 침잠하여 허우적거리는 나와는 달라 보였다. 무거운 수치심을 느꼈다. 그리고 그것은 일종의 그리움이기도 했다. 후회보다 조금은 옅은 그리움이 옛 기억과 함께 가슴에 묵직하게 내려앉았다.
나는 경찰로서 아이들을 만났을 때가 그립다.
내가 경찰이 된 것은 어느 인연에서였다.
아주 더운 여름날 그녀를 만났다. 성인들 대상으로 오전 강의를 마친 후 집으로 들르는 길 매일 같은 자리에 앉아 있던 중년 남성이 손을 떨며 옆으로 고꾸라졌다. 시간은 오후 12시. 하루 중에서도 남중 고도가 가장 높은 시간. 햇빛이 칼날같이 날카롭고 너무 뜨거워 이 정도 햇빛이면 '이방인'의 주인공 뫼르소가 햇빛 때문에 아랍인을 죽였다고 외쳐도 이상할 것이 없었다. 쓰러진 남자는 넘어지다 아스팔트에 머리를 박고 피를 흘렸다. 남자는 계속해서 손을 떨었다. 지글거리는 태양에 타들어가던 아스팔트는 그의 피를 더 빨갛게 데웠다.
나는 너무 놀라 주위를 둘러보았다. 통행인이 아주 많은 도로였고, 바로 앞에 조그마한 광장에도 사람들이 모여 있었지만 행인들은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세상에 암막이 드리운 듯했다. 암막 뒤의 무대에는 이름 모를 그와 나만 있었다. 떨리는 마음으로 119를 눌렀다. 신고를 하고 나서는 행여나 그가 쓰러진 곳으로 차가 지나갈까 봐 그 옆에서 도로를 막아섰다. 인공호흡이고 뭐고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았다. 그때 경찰 제복을 입은 그녀가 다가왔다. 점심식사를 하러 가는 길인 듯했다. 그녀는 나에게 다가와 어떻게 된 일인지 묻고 쓰러진 남자 옆에서 양산을 받쳐 들고는 시원한 물을 찾아 그의 입에 물을 흘려 넣었다. 그가 정신이 들도록 큰 소리로 부르기도 했다. 곧이어 119 구급대원이 왔고 그 뒤로 신고받은 경찰차가 왔다. 이마에 피를 흘리며 뻣뻣한 몸으로 실려 가는 그가 있던 자리에는 벌겋게 피가 고여 있었다.
그 날 처음으로 생각했다. 경찰이 된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그리고 얼마 되지 않아 나는 경찰이 되어 있었다.
나는 다른 누구보다도 혹독하게 경찰을 배웠다.
선배답지 못한 선배들의 인신공격을 감내해야 했고, 후배들을 혼내는 것이 자신의 본분인 줄 아는 하늘 같은 선배님의 손 발이 되어야 했고, 그 선배가 높이 우러러 빛나도록 그림자가 되어야 했다. 그래도 그 시간이 아주 헛된 것은 아니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나는 일을 빠르게 배웠다. 몇 번이나 경찰관 대표로 강의를 나서기도 했고, 경찰청의 요청으로 몇몇 경찰관들과 강의안을 만들어 전국에 배포하기도 했다. 지구대에서 고생하시는 분들에 비해 부끄러운 수준이지만, 그래도 주어진 것 이상의 것을 해내다 보니 경찰청장 상도 몇 번 받았다.
그렇게 열심히하다보면 나의 직장생활도 살떨리는 겨울을 지나 봄이 올 줄 알았다. 허나 그것은 나의 착각이었다. 어느새 나는 동료들에게 위협적인 존재가 되어 있었다. 인간은 자기보다 뛰어난 사람은 자기와는 아주 다른 사람이라고 여기고 쉽게 상처받지 않는다. 하지만 자기와 같이 평범한 사람이 분주하게 움직이면 그 불안감을 용서하지 못한다. 그들은 만만한 내가 내 일을 열심히 하는 것이 자신들을 침해하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그들을 불안하게 만드는 나의 존재는 악하다고 정의했다. 나의 노동력이 필요할 때는 마음 편히 써먹으면서 나의 노력이 세상에 드러나는 것은 고까워했다. 그들의 불안감으로 내 존재는 허물어져 갔다.
모든 희망이 깨지고, 죽음의 유혹을 견디고, 나를 미워하기도 하고 부당함에 투쟁하기도 하며, 지난한 시간들은 오늘에 이르렀다.
그리고 오늘 나는 그리움에 젖어 부끄러움에 이 글을 적고 있다.
이 글은 잊지 않기 위해 쓰는 글이다.
나는 부끄럽다.
열심히 일했던 지난 시간이 아이들을 위한 열정이었다는 것은 변함없는 사실이다. 퇴근하고 한 밤 중에 자살 시도하던 아이의 연락을 받고 뛰어나가 병원에 입원시킨 적도 있고, 밤늦게 가출한 아이를 찾아 쉼터에 입소시키거나 주말에도 가출한 아이를 찾아 헤맸던 적도 있었다. 보호의 사각지대에 있는 아이들을 찾아 나서 아이들에게 해줄 수 있는 지원 사항도 꼼꼼히 챙겼다. 밤늦은 시간이든 주말이든 휴가를 떠났든 언제 어디서든 아이들의 연락을 받으면 하나하나 모두 답장을 해주었다. 국가의 정책 방향과 상부에서 내려오는 시기별 추진 계획의 틀 안에서 활동해야 하는 대한민국의 공무원으로서 부족함 없이 일했고, 그것은 아이들을 도와주고 싶은 순수한 마음에서 우러난 행동이었다.
그럼에도 이렇게 두드러기처럼 부끄러움이 돋아나는 이유는 무엇일까. 법과 규칙 안에서 공무원이 해야 하는 일과 할 수 있는 일 사이에는 / 평가와 승진이라는 보상, 상부의 요구와 상관의 개별적인 스타일, 사무실 분위기에 따라 수많은 갈래길이 있는데 / 그 모든 것들을 생각하다 보면 정작 아이를 위하는 마음은 조금씩 뒤로 밀려나야 했기 때문이 아닐까. 더 특이한 행사, 더 특별한 이야기를 원하는 윗사람들의 기준에 맞추다 보면 춤을 추든, 탈을 쓰든, 이야기를 지어내든 언론에서 비아냥대는 그 뉴스거리가 남의 일이 아니게 될 때가 많았다는 것. 한정된 시간과 자원을 보기 좋은 보고서와 특별한 행사들에 소모해버리고 나면 정작 들어야 할 것을 듣지 못하고 보아야 할 것을 보지 못하고 해야 할 것을 하지 못할 때가 생길 수밖에 없다는 것. 아이들을 위한 길이었다며 호소하는 그 기괴한 변주에서 과연 아이들을 위한 마음이 어디 있냐는 것. 그런 부끄러움.
한 번은 학교의 요청으로 어떤 아이를 만났다. 학교폭력으로 학교에 신고했으나 선생님이 내용을 들어보니 피해라고 하는 것도 워낙 경미하고 양 측의 주장이 팽팽하게 엇갈린다고 했다. 신고 내용을 보니 길기만 길고 산만하여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지 도통 알기 힘들었지만, 대략 서로가 서로의 험담을 했고 둘 다 자신은 결백하다는 내용인 듯했다. 누가 누구의 험담을 했다거나 은근히 따돌렸다는 내용의 학교폭력은 보통 경찰관이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다. 신고내용이 범죄에 해당된다면 수사를 개시하기도 하지만 그 마저도 신고자의 처벌 의사 없이는 처벌할 수 없는 범죄의 경우가 많아 신고자의 의사에 따라 수사가 이루어지지 않는 경우가 다반사다. 그럴 때는 신고를 받아 학교에 통보를 하면 학교 내에서 학교폭력 담당 선생님의 주도로 조사와 행정절차가 이루어지고,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가 열리면 경찰관이 참석해 학교 내부 징계에 대한 의견을 제시할 수 있을 뿐이다. 아이도 이런 상황을 알고 있는 듯했다. 학교에서는 당사자들 간의 동등한 입장이라고 판단을 했다는 것, 그리고 내가 나서서 해 줄 수 있는 것이 별로 없다는 것. 부모님도 아이의 편은 아니었다. 그저 조용히 얼마 남지 않은 시간 동안 잘 견뎌서 학교를 졸업했으면 하는 바람인 듯했다. 아이는 별로 할 말이 없다고 했다. '어차피 말해도 안 되잖아요.' '몰라요'를 반복했다. 나는 아이에게 '학교폭력으로 조사하길 원하냐'고만 물었다. 그것은 그 아이에게 이렇게 말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나는 아무것도 너에게 해 줄 수 없어. 억울하겠지만 네가 감당해야 해. 이것이 세상이야.'
만약 이 아이가 학교를 다니지 않았다면, 가출이라도 했다면, 더 심한 괴롭힘을 당했다면, 상관의 구미에 맞는 우수사례를 완성할 수 있는 하나의 요소라도 있었다면 나는 조금 더 적극적이었을 것이다. 이 아이는 순응적이고 모범적인 아이였고, 부모님도 침묵을 선택했다. 내가 '절차'대로만 처리하면 나에게 지워질 책임도 없었고 그 아이의 목소리를 이끌어 낸들 나에게 올 보상도 없었다. 그것이 행정의 함정이었다.
부끄럽다.
그리고 그 아이에게 미안하다.
내가 다시 그때로 돌아간다면 그 아이에게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나는 나에게 주어진 역할의 한계 때문에 많은 것을 해줄 수는 없지만 그래도 너의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다고, 그리고 혹시라도 운이 좋아 너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면 작은 것이라도 도와주겠다고.
고된 노동을 사랑하고 빠른 것, 새로운 것, 진기한 것을 추구하고 있는 당신들이여, 당신들은 모두 인내력이 부족한 자들이다. 당신들의 근면은 도피이다. 자신을 망각하려고 하는 의지이다.
-자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니체)-
세상에는 모두를 만족시키기 위한 대안이란 없었다. 어른들의 미숙한 신념과 탐욕을 모두 만족시키다 보면 진정 아이들을 위한 자리는 침해당하기 마련이었다. 나는 많은 일을 했지만, 이제와 돌이켜 보면 직원들을 쥐어 짜내어 성과를 만들어 승진해야 했던 윗사람의 탐욕에 순응하는 '분주함'이었을지도 모른다는 뼈아픈 자각이 든다. 니체의 말마따나 '확신은 감옥'이었다. 혹독한 시간 속에 일을 잘해야 한다는 강박은 절차에만 어긋나지 않으면 옳은 것이라는 확신 속에 나를 가두었다. 삶이 주는 잠재적 가능성을 모두 걷어차고 아이들의 개별성을 행정 언어에 욱여넣는 그 확신이 언젠가는 나를 '최종 해결책'이라는 행정 언어로 수많은 유대인들을으로 학살했던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으로 만들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도 승진의 영광을 바라는 성실한 공무원일 뿐이었으니.
세상에서 행해지는 악의 4분의 3은 공포 때문에 행해진다. -아침놀(니체)-
아마 두려움 때문이었을 것이다. 조금이라도 실수하면 쏟아질 사람들의 비난이 두려웠고, 그 비난이 변하지 않는 사실이 되어 버릴까봐 두려웠고, 비난을 홀로 감내해야 하는 직장인으로서의 현실이 두려웠다. 그들의 비난이 나를 고립시키고, 언제든 인간적인 약점을 캐어내는 감시망 속에 나를 던져놓을까 봐 두려웠다. 패배자로 낙인찍힐까 두려웠고, 무가치한 인간이라고 손가락질받을까 봐 두려웠다. 두려움은 허망했다. 그 두려움으로 인해 나는 죽음의 낭떠러지 앞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사람처럼 열심히 했고, 또 잘 해냈고, 오히려 그것이 다시 내가 두려워하던 상황 속으로 나를 몰아넣었다. 그 두려움 자체가, 그 나약함이 나의 지옥이었고 나의 잘못이었다.
대중에 속하려고 하지 않는 인간은 안락함을 단념할 필요가 있다. 그는 '너 자신이 돼라! 네가 지금 행하고 생각하고 욕망하는 모든 것이 네가 아니다'라고 부르는 자신의 양심에 따른다.
-반시대적 고찰(니체)-
내가 만약 다시 돌아가 아이들을 만날 수 있다면,
지금 내게 남겨진 과제를 해결하고,
내게 던져진 타인의 짐을 견뎌낼 수 있을 만큼 마음이 단단해 진다면,
나를 용서하고,
불안에 떠는 타인을 용서하게 된다면,
그럴 수만 있다면
나는 철저히 고독해질 작정이다.
그리고 강해질 것이다.
더 이상 주눅 들지 않을 것이다.
어차피 우리는 모두 죽음 앞에서 평등한 인간들이 아니던가.
핀잔을 주든, 나를 위하는 척 조언하며 죄인 취급을 하든, 보기 좋은 일을 해내라고 매일 같이 채찍질 하든,
어른의 삶에 주어진 고난과 고립, 타인의 질책과 시선의 감옥, 일그러진 탐욕과 권위,
그 모든 짐을 내가 모두 짊어지고
오직 아이들을 위한 일이 무엇인지 고민할 것이다.
'두려움'과 '나약함'이라는 외피를 벗어 들고 죽음 앞에서 허망하게 사그라드는 것들은 과감하게 지워버리고 오로지 내 눈 앞의 아이들만 생각할 것이다.
내 눈 앞의 아이가 세상에서 마지막 남은 아이인 듯 그 목소리를 소중히 여길 것이다.
그 어떤 순간에도 아이들이 최우선임을 잊지 않을 것이다.
남양주시에 있는 정약용의 생가에는 ‘여유당’이라고 적힌 현판이 걸려있다고 한다. 이는 '겨울에 시내를 건너는 것처럼 신중하고, 사방에서 나를 엿보는 것처럼 두려워하며 경계하라'는 뜻이다.
나도 이처럼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신중할 것이다.
사방에서 나를 엿보는 것처럼 떳떳하려고 노력할 것이다.
타인이 아닌 오직 '부끄러운 나 자신'을 두려워하고 경계할 것이다.
나에게 다시 그 날이 온다면
나에게 다시 기회가 온다면
오늘의 나를 잊지 않을 것이다.
이것은 잊지 않기 위해 쓰는 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