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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반장 Dec 06. 2019

삼각김밥과 육개장

단순한 기억을 찾아 길게 늘여 봅니다


뜨뜻한 컵라면 한 사발이 간절했다. 추위가 허기를 몰고 왔나보다. 곯지 않은 허기가 냄새를 맡았을 때는 그것을 먹지 않고는 배길 수 없다. 대충 비슷한 것으로 때우거나, 더 좋은 것으로 달래 보려고 해도 그 허기는 채워지지 않는다. 아마 그 냄새가 기억에서 나는 냄새였기 때문일 것이다.


 '육개장'은 내 평생 처음 먹어 본 컵라면이었다. 어렸을 적부터 천식인지 기관지염인지 몸이 약했던 탓에 라면을 먹어본 일이 별로 없어 라면은 나에게 귀한 음식이었다. 가족들과 야유회를 갔던 어느 날 다른 가족들이 육개장의 비닐 뚜껑을 뜯어 내어 두 번 접은 고깔 모양을 만들어서 그 안에 가득 면을 담아 호로록 삼키는 것을 보고는 그것이 어찌나 부러웠던지. 나도 언젠가는 꼭 육개장을 먹어보고 싶었다.

그러던 어느 날 학교에서 다음 날 미술 시간 준비물로 컵라면 사발을 가져 오라고 알림장을 적어 줬다. 기분이 너무 좋았다. 육개장을 당당하게 먹을 수 있는 기회라니. 가슴에는 비눗방울이 몽글하게 부풀고 집으로 뛰어가는 두 다리는 바람이 된 것처럼 느껴졌다.

엄마는 마지못해 육개장 하나를 사다 주었다. 뜨거운 물을 붓고 다 익기도 전에 젓가락으로 휘휘 저어 한 입 삼켰다. 면이 과자같이 툭툭 부서지면서 입 안에 흩어질 때 나는 고소한 향을 뒤따르던 매콤짭짜름한 맛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육개장 뚜껑을 툭 떼어 내어 고깔꼰을 만들었다. 두번 째 젓가락 질로 한 입에 홀랑 삼킬 수 있을 만큼 라면을 덜었다. 아마도 사람들은 뜨거운 면발을 식힐 요량으로 그랬겠지만, 나는 그저 고깔꼰 모양의 뚜껑에 라면을 넣어 먹는다는 것 자체가 좋아서 후후 불지도 않고 면을 게걸스럽게 삼켰다.    

다음 날 미술 시간이 되어 자랑스럽게 컵라면 용기를 꺼냈다. 육개장의 봉긋한 스티로폼 그릇을 깨끗하게 씻었지만 안에는 빨갛게 물이 들어 있었다. 맵싹한 라면 냄새도 쉬이 지워지지 않았다. 다른 친구들이 꺼낸 준비물에는 빨간 물이 들어 있지 않았다. 그 친구들은 라면 내용물만 빼놓고 하얗고 깨끗한 컵라면 그릇만 챙겨 왔다. 그 날 우리는 컵라면 용기를 가지고 가면을 만들었다. 나는 그 날 원없이 라면 냄새를 맡으며 가면을 쓰고 있었다.


그때의 기억이 육개장 냄새를 맡았던 것 같다. 결국 나는 허기를 참지 못하고 집 근처 편의점으로 가 육개장과 참치마요 삼각김밥을 샀다. 출근했다면 한가하지 않을 시간이었겠지만, 지금의 나는 빠르게 걸을 필요도 옷을 정갈하게 갖춰 입을 필요도 없었다. 집으로 돌아와 육개장 포장을 뜯고, 뜨거운 물을 붓고, 익기를 기다렸다. 라면이 빨리 익기를 기다리는 조급함은 설렘처럼 달콤했다. 동그란 비닐뚜껑을 뜯어 4등분으로 나누어 두 번 접었다. 첫 입은 고깔에 가득 담긴 덜 익은 라면이었다. 면이 부서지는 식감이 좋았다. 라면을 튀긴 기름이 두고 간 고소함도 좋았다. 짭쪼름한 스프 맛도 좋았다. 목을 타고 넘어가 가슴이 뜨거워지는 기분도 좋았다. 육개장은 내 생에 첫 삼각김밥인 참치마요 삼각김밥과 궁합이 잘 맞았다. 땀내나는 교복을 입고 집으로 가는 길 동네에 처음 생긴 작은 편의점에서 처음 먹어봤던 참치마요 삼각김밥은 아직도 내가 제일 좋아하는 맛이다.


짭쪼름한 편의점 나트륨은 건강에는 어떨지 몰라도 나를 기분 좋게 한다. 그래서 회사에서 유난히 지치는 날이면 퇴근 길에 짭쪼름한 편의점 음식을 가득 사들고 안전한 집에서 혼자 먹어 치웠다. 혼자, 혼자인 시간이 고플 때 혼자 먹을 수 있는 찬 음식이 나에게는 구원이었다.  

회사에서는 점심을 혼자 먹을 수 있는 자유가 없었다. 처음 2년 간은 열 명이 넘는 사무실 직원이 모두 몰려다니며 밥을 먹어야 했다. 약속이 있다는 말도 상사의 눈치를 보며 어렵게 꺼내야 했다. 그 다음 있었던 사무실에서는 그보다는 나았지만 그래도 매번 빠질 수는 없어서 한 달에 한 번 정도만 혼자 빠져 나와 혼자인 시간으로 배를 채웠다. 사람은 혼자 살아갈 수 없고 사회적 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적당한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은 충분히 알고 있다. 하지만 하루에 최소 10시간을 보내야 하는 직장에서 숨 쉴 틈 없이 타인에 둘러 싸여 살아가는 것은 촘촘히 짜인 시간 속에서 밀도 높은 하루를 살던 버릇이 있던 나에게는 지치고 힘든 일이었던 것 같다.

좋아하는 고기 한 점 없어도, 다채로운 메뉴가 아니라도, 혀를 자극하는 신기한 맛이 아니더라도, 요즘에는 내가 무얼 먹었는지 기억이 난다. 빨리 먹을 필요도, 누군가와 대화를 이어갈 필요도 없이 지금 먹고 있는 것에만 집중하는 덕분일 것이다. 육개장과 참치마요 삼각김밥처럼 추억이 서린 평범한 메뉴로 괜스레 감상에 젖어 보는  '오늘의 작은 이야기'와 시간에 쫓겨 빠르게 해치울 필요 없이 천천히 씹어 삼키는 밥알이 마음을 충만하게 한다. 이토록 단순한 것을 왜 예전에는 하지 못했을까. 밥이든, 일이든, 대화든 타인의 속도에 맞추느라 그 단순한 기쁨을 버려 두었던 것은 아닐까. 이 단순함을 잃지 않는 것이 나에게는 가장 중요한 일이 아닌가.


그래서 가끔은 단순해져 보려고 한다.   

아무 것도 하지 않은 하루도 가만히 생각해보면 아무 것도 하지 않은게 아니었다. 그 안에 내가 중요하지 않다고 치부해버린, 매일 일어나는 일이라고 무시해버린, 익숙한 일이라고 기억에서 지워버린 수많은 단순함이 숨어 있었다. 나이가 들수록 시간이 빨리 흐르는 이유는 나이가 들수록 설렘과 두려움을 갖고 '처음'해보는 일들이 줄어든다는 물리적인 숙명과  '처음'이 아닌 일들만 반복하는 게으른 관성이 기억 속에서 내가 한 많은 일들을 뭉티기로 생략해버리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는 순간 느낀 감정의 두께에 따라 그 시간을 길게, 혹은 짧게 잘라내어 기억한다. 기억을 생략한다는 것은 내가 얼마나 얄팍한 감성으로 살아가고 있는가를 보여주고 있는 척도다. 그렇기에 이제는 적어도 내가 생략해버린 것이 무엇인지, 그때 느꼈던 것이 무엇인지를 천천히 곱씹어 보려고 한다.


어제 내가 기억에서 생략했던 일은 이랬다.

오늘은 도서관을 꼭 가야겠다 마음 먹었다. 대중교통을 이용할지, 차를 몰고 갈지, 걸어 갈지 고민했다. 차를 몰기에는 가깝고 걷기에는 먼 거리, 버스를 타기에는 너무 노선이 길고 지하철으로는 갈 수 없는 곳에 도서관이 있었다. 선택이라기 보다는, 결심이 필요한 순간이었다. 그래, 걸어 가야지. 처음 가 보는 길이고 오늘은 너무 춥지만, 처음 가는 길은 설레니까.
익숙한 길을 지나 처음 가보는 길까지는 뛰어 갔다. 찬 기운이 바람이 되어 볼을 스쳤다. 처음 보는 돈까스 집은 손님 없이 한산했다. 배달 책자에서 보던 반찬 가게가 보였다. 미용실 사장님은 손님용 의자에 앉아 티비 채널을 돌리고 있었다. 좁은 골목으로 들어섰다. 어떤 집은 담벼락을 베이지 색으로 칠하고 유럽 풍의 등을 달아 놨다. 어떤 집은 높은 담을 쌓아 놓고 그 안에 도자기로 만든 돼지와 푸른 이파리가 늘어져 있는 나무로 화려한 조경을 해놨다. 오래된 벽돌에 지나간 시간이 영글어 있는 3층 짜리 빌라, 내 나이만큼은 나이를 먹었음직한 5층 짜리 아파트, 어색한 색조화장 처럼 파아랗게 페인트칠을 한 단층 집을 지났다. 뒤에서 차가 오면 남의 집 담벼락에 몸을 붙여야 했다. 차가 지나가면 또 다시 사방을 두리번 거렸다. 도서관이 가까워올 수록 카페가 많아졌다. 큰 찻길을 하나 지나 도서관에 도착했을 때는 30분이 흘러 있었다.

기억에서 싹둑 잘려나간 30분.

'도서관에 걸어갔다'는 단순함 안에는 바람의 기억과 오래된 벽돌, 몰랐던  가게들이 숨어 있었다.


삶에서 중요하지 않은 시간은 없다.

나의 시간은 느리게 흘렀으면 좋겠다.

잡하지만 단순한 것들을 사랑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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